책을 편집하는 것은 영화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복합적인 작업이다. 특히 『환경과조경』 같은 디자인 전문 월간지의 편집은 기획, 조사, 취재, 인터뷰, 작품 섭외, 필자 섭외, 교정과 교열, 사진 촬영, 편집 디자인, 마케팅이 한 번에 뒤섞여 돌아가는 도전적인 작업이다. 편집자가 멀티플레이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매달 일정한 날짜에 잡지를 내야 하므로 편집자는 항상 시간과 싸운다. 필자가 원고 마감을 지키지 않더라도, 약속한 날까지 사진이 도착하지 않더라도, 데드라인 전날 편집장이 원고 교체를 결정하더라도 무조건 정해진 날 편집을 마무리해야 한다. 편집 일을 하며 무척 당혹스러운 건 한 달을 먼저 산다는 점이다. 12월에 다음 해 1월호를 만들면 막상 새해 첫날이 와도 감흥이 없다. 칼바람 부는 2월에 새봄맞이 3월호에 집중하다 보면 계절을 착각하기 십상이다. 겨울에 봄옷 입고 가을에 겨울옷 입는 편집자가 적지 않다. 무더위가 한창인 늦여름에 낭만적인 가을 풍경 이야기를 쓰다 보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진다.
조경 저널리즘의 최전선을 질주하고 있는 김모아, 윤정훈 편집자의 한 달을 잠깐 들여다보자.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빼서 늘 집중해야 하는 건 기획 업무다. 기획의 스펙트럼은 참 넓다. 1년간 어떤 흐름으로 무슨 주제와 콘텐츠를 구성할지 계획하는 장기 기획,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주제를 발굴하고 엮는 특집 기획, 콘텐츠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보장해주는 긴 호흡의 연재 기획. 물론 면밀한 조사와 성실한 취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머리를 쥐어짜며 작성한 기획서가 곧바로 채택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기획서에 대한 편집주간과 편집장의 반응은 기껏해야 ‘한 번 더 생각해 봅시다’ 아니면 ‘더 발전시켜 봅시다’다.
작품과 필자를 섭외하고 원고 일정을 관리하는 일 앞에는 늘 난맥이 놓인다. 오히려 해외 작품 섭외에는 ‘루틴’이 있어서 공력이 적게 든다. 설계사무소 홈페이지, 뉴스레터, 웹진, 소셜미디어에서 신중히 고른 후보작 리스트를 두고 편집회의를 한다. 후보작을 좁힌 뒤 이메일로 섭외를 시작하는데, 대개 해외사에는 홍보 담당 부서나 직원이 있어서 바로 반응이 온다. 도면, 사진, 설명을 한 묶음으로 정리한 ‘프레스 키트’가 금방 도착한다. 정작 막막한 건 국내 작품의 발굴과 섭외다. 실을 만한 근작을 수소문하기 위해 갖가지 레이더를 총동원한다. 의외로 섭외 성공률이 낮다. 섭외되더라도 진행 과정이 순탄하지 않다.
정리된 도면과 출판 가능한 사진이 없는 경우, 정제된 형식의 작품 설명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집과 연재 원고에 맞는 필자를 찾고 섭외하는 일에는 다양한 조사와 공부가 필요하다. 필자와 소통하며 원고를 맡기고 받는 일은 잡지 편집의 중요한 과정이다. 필자는 원고 마감일을 어기기 일쑤다. 요즘은 편집자의 애를 태우는 ‘잠수형’ 필자가 거의 없지만, 연이은 독촉 연락에 이제 곧 보낸다는 말만 반복하는 ‘철가방형’ 필자가 여전히 드물지 않다. 최악의 상황이 언제든 일어난다. 도착한 원고가 편집자의 기획 의도와 완전히 다르거나, 필자와 편집자의 소통 과정에서 서로 조율한 방향과 크게 어긋나는 경우도 있다. 다시 써달라고 요청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많은 시간이 들고 손이 가는 편집 과정은 교정과 교열, 그리고 편집 디자인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와 취재 기자의 기사가 도착하면 우선 모니터로 일독하며 오탈자를 바로잡고 잡지사의 띄어쓰기 원칙, 외래어 표기법 규칙에 맞게 원고를 수정한다.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머리를 맞대고 수정 원고와 이미지들을 배치하고 구성하는 편집 디자인이 시작된다. 출력한 초벌 편집본을 놓고 1교가 진행된다. 디자이너의 수정을 거쳐 재출력한 버전으로 편집자를 바꿔가며 2교와 3교를 진행한다. 교정과 교열은 오탈자 정도만 고치는 작업이 아니다. 문법과 어법에 맞지 않는 단어나 문장을 잡아내고, 정확하지 않은 사실이나 표현을 적확하고 자연스러우며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걸러내고 다듬는 일이다. 글이 더 잘 읽히게, 지면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재구성하는 일이다. 4교에서 책임자의 ‘OK’가 떨어지면 인쇄 이전의 과정이 끝나고, 다음 달의 역동적인 사이클이 다시 시작된다.
여러 멀티플레이어 편집자들이 1982년 7월부터 2021년 5월까지 『환경과조경』 397권을 만들며 어제와 오늘의 한국 조경을 기록하고 내일의 조경 문화를 설계해 왔다. 이번 호 특집 ‘편집자들’에 그들을 초대했다. 『환경과조경』을 거쳐간 김정은, 백정희, 손석범, 양다빈, 조수연, 조한결 편집자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환경과조경』은 어떤 잡지였으며, 조경이란 무슨 의미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