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설렘
“20대 초반에 내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방송인 곽정은이 『코스모폴리탄』 기자 시절을 두고 한 말이다. 기자 일이란 한 개인의 능력과 관심사, 의견을 드러내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식의 하나라는 것. 그로부터 두 달. 운명처럼 원고 청탁 전화가 왔다. 쿵. 6년 전 내 손길이 닿은 첫 번째 잡지를 손에 들었을 때의 설렘이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 했다. “뭘 쓰면 되죠?”
시작과 끝
시작과 끝에 대한 기억은 그 무엇보다 선명하다. 긴장되는 면접처럼 특별한 기억은 오래 남기 마련이니까. 환경과조경에서의 시작은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 설계공모였다(2014년 8월호). 허리케인 샌디로 인한 피해를 더는 반복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 첫 출근을 했을 때 이미 페이지 구성을 마친 상황이었다. 공모 내용을 파악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내색은 안했지만 공모에 참여한 비아르케 잉엘스(Bjarke Ingels)의 팬이었기에 이미 익숙한 내용이었다. 비아르케 잉엘스 그룹BIG의 설계안(‘BIG U’)을 담당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어쨌거나 회사 적응이 조금이나마 수월했다. 운이 좋았다.
리질리언스(resilience)(회복탄력성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어의 의미를 한정 짓는 느낌이다)가 화두에 오를 때면 잡지를 기획하는 이들의 얼굴은 다소 상기되는 듯했다. 회의 테이블 한가운데 자리한 리질리언스의 변주된 모습만큼 앞으로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콘텐츠라는 확신에서였을까. 꾸준히 잡지를 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2016년 여름(전진형, ‘리질리언스 읽기’, 338호~343호)과 2018년 여름(‘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 363호), 2014년부터 2년에 한 번씩 리질리언스에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했다. 『환경과조경』 에디터들은 확실히 어쩌다 검색된 완공작을 편하게 싣는 것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밖에서는 감사하다.
그런데 과연 잡지 밖 세상도 같은 얼굴로 상기되어 있을까. 안타깝게도 실무에서 회복탄력성이나 리질리언스가 언급되는 장면에 대한 기억이 없다. 점수를 높이기 위한 ‘친환경’을 붙인 유사 아이템 정도가 최선이었다. 니얼 커크우드(Niall Kirkwood) 교수가 한 인터뷰가 떠오르곤 했다. “…회복탄력성 등에 대한 전문가가 생겨났을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하버드 GSD의 설계 교육을 묻다”, 2015년 8월호) 그의 말처럼 “실무의 98%”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 같다. (후략)
* 환경과조경 397호(2021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양다빈은 2014년 여름부터 2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환경과조경과 함께했다. 기술사사무소 렛(LET)에서 조경 설계의 기본을 배웠고,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땅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자 했다. 현재는 엘피스케이프(LPSCAPE)의 팀장으로 조경 디자인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한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강동구청 청사 조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