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과 콩나무
원고 청탁을 받고 난 후,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동안 수행한 프로젝트가 담긴 폴더들을 하염없이 클릭하며 여닫기를 반복하며 지쳐갈 즈음, 2018년 여름 SRT에 몸을 싣고 매주 부산을 오가며 진행한 하나은행 부산 IPC가 떠올랐다. 하나은행이 부산 서면에 PB 센터를 새로 열면서 기존 건물의 내외부와 조경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였다. 지명 설계공모를 통해 선정된 안을 토대로 조경, 건물 입면, 벽화, 음향 설계 및 감리를 수행했다.
하나은행 부산 IPC는 초기 브랜딩 단계부터 동화 ‘잭과 콩나무’를 기본 콘셉트로 계획되었다. 잭과 콩나무는 시대 혹은 나라별로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주인공이 콩나무를 타고 하늘 높은 곳에 있는 거인의 집에 올라 보물을 훔친 뒤, 거인의 추격을 뿌리치고 인간 세계로 다시 내려와 콩나무를 벤다는 큰 맥락은 동일하다. 이러한 이야기를 조경의 방식으로 구현해야 했다.
거대한 콩나무 한 그루
건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콩나무라는 핵심 개념에 따라 방문객이 잭이 되어 콩나무를 타고 거인의 집을 향해 떠나는 모험을 형상화했다. 지하 2층과 지상 1층 사이 계단실은 콩나무의 뿌리, 1층은 콩나무의 얼굴, 12층부터 15층까지의 램프 구간은 하늘을 향해 뻗은 콩나무 줄기, 15층은 거인의 마당, 16층은 거인의 집으로 개념화했다.
콩나무의 뿌리: 지하 구간이 콩나무의 뿌리에 해당됐기 때문에 지하 2층에서 지상 1층에 이르는 계단실에 콩나무의 뿌리가 흙 속을 무작위로 뻗어나가는 형상의 벽화를 제안했다. 발주처는 큰 맥락에서의 디자인 개념에는 동의했으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동화적이고 예쁜 이미지를 원했다. 결국 몇 번의 디자인 회의를 거쳐 동화 속 줄거리를 담은 도안이 들어가게 되었다.
콩나무의 얼굴: 1층 외부 공지는 영업점 출입구가 있는 곳이자 서면역 주변의 많은 유동인구가 지나기 때문에 콘셉트를 강력하게 드러내야 하는 중요한 곳이었다. 상층부 건축 설계의 가장 큰 형태적 언어인 ‘땡땡이’ 패턴에 주목했다. 상하의를 비슷한 패턴의 옷으로 코디하듯 건물 상부의 패턴에서 착안한 패턴을 1층 건물 입면과 바닥 포장에 적용했다. (후략)
* 환경과조경 397호(2021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원종호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에서 설계의 기본을 익혔으며, 현대건설에 근무하며 해외 현장에서 시공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JWL)에서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다양한 규모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조경가가 문화인으로 인정받는 날까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공부하고, 실험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