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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제대로 말 걸고 싶으니까
  • 김모아 (more-moa@naver.com)
  • 환경과조경 2021년 5월

 

종이책을 만드는 편집자지만 요즘은 작업 영역이 지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새로운 달이 시작될 무렵 잘 마름질된 잡지가 손에 쥐어지면 또 다른 소소한 편집이 시작된다. 도구는 포토샵과 학창 시절 익힌 얄팍한 디자인 기술. 서투른 솜씨로 인스타그램을 채울 콘텐츠를 다듬기 시작한다. “디자인 전문 월간지의 편집기획, 조사, 취재, 인터뷰, 작품 섭외, 필자 섭외, 교정과 교열, 사진 촬영, 편집 디자인, 마케팅이 한 번에 뒤섞여 돌아가는 도전적인 작업”(이번 호 에디토리얼’)이라면, 잡지의 내용을 각종 SNS에 올릴 콘텐츠로 매만지는 일은 마케팅 정도로 분류될 것이다.

기껏해야 손바닥만 한 공간을 채우는 일인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책 편집과는 한참 다르고, 얕보고 뛰어들었다가 한나절을 몽땅 빼앗긴 적도 있다. 인터넷 속 세상은 한계를 알 수 없는 넓은 세계라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눈길을 빼앗기 위해 내가 쓸 수 있는 공간은 턱없이 작게 느껴진다. 짧은 시간에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니, 되도록 매력적이고 호기심을 동하게 하는 사진을 골라 올린다. 이 과정에서 매력적이라는 형용사를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한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인증샷을 남기고 싶은 사진이 좋을지, 조경 전공자의 구미를 당길만한 독특한 디테일을 담는 것이 좋을지. “요즘 시대가 자연을 소비하기만 하잖아요. 특히 인스타그램 같은 이미지 매체를 통해 자연이 그냥 사진 찍기 좋은 배경 이미지로만 소비되죠.”(배정한, “조경가 김아연 인터뷰: 생태학적 상상력과 풍경의 디자인”, 20195월호) 지금처럼 봄바람이 불던 날 나눈 대화에서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던 김아연 교수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하다. 머뭇거리다가 프로젝트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전경 사진을 대표 이미지로 설정한다. 경쟁에서 탈락한 사진은 화살표를 누르면 넘겨볼 수 있도록 함께 올린다. 아주 조금의 관심만 있다면 누구나 발견할 수 있도록.

글귀가 주인공이 되어야 할 때도 있는데, 확장된 선택지 앞에서 더 긴 고뇌에 빠진다. 짧지만 강렬한 보물 같은 문장은 기왕이면 독자들이 스스로 찾게 하고픈 욕심이 생기고, 길고 유려한 문장을 꼽았다가 너무 구구절절한 것 같아 망설인다. 2020년 리뉴얼과 함께 사라진 꼭지 이달의 텍스트를 꾸릴 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가까스로 사용할 구절을 정한 후에도 디자인이라는 한 가지 고비가 더 남아 있다. 메시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보기에 예쁘지 않으면 다른 콘텐츠에 쓸려나가기 일쑤다.

갖은 노력 끝에 정돈된 피드를 보고 있으면, 잡스 1. 에디터의 인터뷰 한 구절이 떠오른다. 누구든지 플랫폼에 글과 이미지를 올려 전파할 수 있는 누구나 에디터가 될 수 시대”.1 ‘○○○님이 회원님의 게시물을 좋아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알림이 울리기 시작하면, 독자와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 즐겁다가도 조금 씁쓸해진다. 싸이월드 시대에는 퍼가요~라도 남았는데, 좋아요 버튼은 너무 많은 것을 생략해버린다. 고백하자면 한때 인스타그램의 댓글창에서 여러 의견이 오가는 모습을 꿈꾼 적이 있다. 플랫폼의 속성을 잘못 이해한 데서 기인한 헛된 기대였다. 정신을 차리고 요새는 잡지 콘텐츠를 재가공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정문정 작가의 말처럼 냉면은 놋그릇에 담고 설렁탕은 뚝배기에 담아야 먹음직”2스러운 법이니까.

잡스 1. 에디터의 에세이 꼭지를 통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2018)을 펴낸 정문정이 본래 잡지를 만들던 에디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잡지 에디터에서 브랜드 저널리즘의 에디터로, 유튜브와 페이스북용 콘텐츠를 만드는 디지털 콘텐츠의 총괄 에디터로,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일을 하며 겪은 일화들이 나를 자꾸만 불안감에 빠트렸다. 포기하지 않고 읽어가다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에디터로서 내가 익힌 기술 중에는 세계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토대로 타인을 설득하는 최적의 방식과 시기를 찾아내는 일도 있었다. 제대로 말 걸고 싶으니까. 에디터는 백 번 듣고 한 번 말한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 넘치는 세상에서 꿋꿋하게.”3 잡지가 다른 인쇄 매체와 구분되는 지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해진 날짜에 반드시 찾아간다는 약속일 테다. 보통 정기 구독이 끝나는 시점은 연말, 아직 일곱 번이나 대화의 기회가 남아 있다.

 

1. 『잡스 1. 에디터』, 레퍼런스 바이 비, 2019, p.28. 잡스는 매호 하나의 브랜드를 다루는 잡지 『매거진 B』가 새롭게 선보이는 단행본 시리즈다. 브랜드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직업인과 나눈 대화를 인터뷰집 형식으로 전달한다.

2. 같은 책, 정문정, “에디터는 백 번 듣고 한 번 말한다”, p.176.

3. 같은 책, 정문정, “에디터는 백 번 듣고 한 번 말한다”,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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