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마지막 주 주말을 코다에게 내어주기로 했다. 집에서는 좀처럼 글 쓰는 일에 속도가 붙지 않는다. 일 년 전이었다면 카페 창가 자리에 노트북을 펼치고 워커홀릭 흉내라도 냈을 텐데, 팬데믹의 여파가 어쭙잖은 허세를 부릴 기회도 앗아갔다. 별수 없이 접촉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좁은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제17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새롭게 기록하기
비대면 시대는 지치지도 않고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다. 매년 이맘 때 열리는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이야기다. 예정대로라면 한 달 전부터 시상식과 더불어 진행될 전시회의 방식, 그러니까 전시장 연출이나 패널 배치 방법, 현수막 디자인에 대한 논의를 한창 나눴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코로나19가 문제였다. 전국의 조경인이 참여하는 공모인 만큼, 대면 행사를 열면 전염병이 전국으로 번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시상식은 이제 제법 익숙해진 줌 서비스와 유튜브로 대체하면 된다지만 전시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작품집을 만들어 배포하는 데서 끝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고르고 골라 선택한 게 아카이브 형식의 온라인 전시였다. VR 같은 기술로 가상의 전시장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공모의 취지와 과정, 심사평, 수상작의 패널과 설계 설명서, 작품의 이해를 돕는 동영상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온라인 페이지를 만들었다. 능수능란한 도슨트가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완성하고 보니 생각하지 못했던 장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당연히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쫓겨 허둥지둥 작품을 둘러보지 않아도 된다. 패널 속 깨알 같은 글씨를 들여다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뜰 필요도 없다. 클릭 한 번이면 마스터플랜이든 단면도든 화면 가득 띄워 탐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같은 형식의 전시가 매년 반복된다면 훌륭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될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겼다. 단순히 패널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작품의 주제와 그에 따른 전략을 키워드로 정리해둔다면, 조경설계의 경향과 흐름을 사회 현상의 변화와 엮어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온라인 전시회(www.nkla.co.kr)는 2021년 10월 13일까지 계속된다. 아직 들러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접속해볼 것을 추천한다.
LH가든쇼, 정원은 경계를 품었나
서울 촌놈이라는 수식어에 딱 맞는 삶을 살아와서 그런지 한적한 교외에 갈 때면 늘 낯선 감상에 빠진다. 일상을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버려두고 모른 체하는 듯한 감각은 묘한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제2회 LH가든쇼’가 열린 동말근린공원이 딱 그런 장소였다. 높은 아파트 대신 야트막한 산을 배경으로 둔 공원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 때문인지 한갓져 보였지만, 쓸쓸하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덕분에 인파에 치여 정원을 스쳐 지나듯 방문하지 않고 맘껏 머무를 수 있었고, 오랜만에 이어폰을 끼지 않고 바람이나 날벌레의 날갯짓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정원, 경계를 품다’를 주제로 만들어진 아홉 개의 작가정원이 공원을 채웠다. 다른 정원박람회보다 넉넉하게 지원된 정원 조성비 덕분인지 완성도가 상당해 보였다. 그런데 하나의 길을 따라 꼭 미술품을 전시해놓은 것처럼 배치된 정원의 모습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국내 정원박람회에서 조성된 대부분의 정원은 존치를 목표로 한다. 미술 작품이야 전시가 끝나면 철거하거나 자리를 옮길 수 있지만, 땅을 조작하고 뿌리를 내리는 식물을 주로 다루는 정원은 애초에 이동에 적합한 대상이 아니기도 하다. 정원 하나하나에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경계를 지우는 방법이 담겼는지 몰라도, 멀리서 보면 정원의 행렬이 꼭 공원에 새로운 경계를 세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원박람회가 과시적 행정이나 일회성 보여주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원 위치를 좀 더 신중히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 한 달 편집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었을 뿐인데, 틸란드시아를 걸어둔 창문 너머 하늘이 금방 어둑해졌다. 드디어 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