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토요일 판의 작은 지면에 4주에 한 번 칼럼을 싣고 있다. 조금 더 많이 읽히기 바라는 마음에 쑥스러움을 누르고 페이스북에 공유하곤 하는데, ‘브릭웰(Brickwell)’을 다룬 6월 27일 자 칼럼 “함께 쓰는 도시의 우물”에는 평소보다 많은 ‘좋아요’가 달렸다. 글의 마지막 문장처럼, 깊은 우물 밑 잔잔한 수면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장마철 오후를 보냈다는 문자 메시지를 여러 통 받았다. 건축가 강예린·이치훈SoA과 조경가 박승진loci이 설계한 경복궁 옆 고즈넉한 통의동 골목의 브릭웰. 편안하면서도 묵직하고 튀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건물의 지상층이 뻥 뚫려 있다. 안으로 몇 걸음 들어서면 식물도감을 펼친 듯 밀도 있는 숲. 우물처럼 깊은 원통형 숲 아트리움 위로 고개를 들면 초현실적인 하늘 풍경. 이방인을 환대하는 이 ‘공공의 정원’을 통과하면 서촌의 오랜 기억을 담은 백송터로 연결된다. 브릭웰은 개인이 소유한 장소지만 누구나 들어가 산책하고 앉아 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공간사회학적 의미가 감각적 체험과 미학적 참여를 짓누르지 않는다. “살아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조경론을 과장과 과잉 없이 구현해온 박승진의 안목과 솜씨 덕분일 것이다.
이달에는 ‘브릭웰 정원’과 함께 박승진의 근작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 ‘어퍼하우스 남산 전시관’을 묶어 특집 지면을 꾸린다. 세 작업은 여러 지면에 소개된 박승진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이라는 현상 혹은 대상에 대한 그의 성찰과 실험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 몇 그루, 철마다 번갈아 꽃을 피우는 꽃나무와 작은 풀들이면 족하다. 여기에 더해 나비를 보고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27쪽)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사실 브릭웰이나 어퍼하우스 남산은 모두 “공간적 한계, 여기에 자연의 일부를 이식한다는 역설”(42쪽)이며 그런 역설이 낳는 “부조화를 할 수 있는 한 가득 채우는”(47쪽) 비평적 작업이기도 하다. 프로젝트가 끝나도 장소는 늘 자란다. 그의 말처럼 “계절은 늘 흐르고 식물들도 변신을 거듭하면서 성장하고 번성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은 놀랍고 늘 경이롭다”(39쪽).
자연을 묻고 답하는 박승진의 다양한 형식의 글들에는 이론과 실천이 교차한다. ‘그래서 조경은 결국 무엇인가’라는 학부생들의 도전적 질문에 횡설수설하는 날이면, 도시의 온갖 소란과 소음에 지치는 날이면, 나는 박승진의 글을 꺼낸다. 우연히 펼친 아무 쪽이나 읽더라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뒤엉킨 생각이 정리된다. 활자 사이사이로 그의 작업들이 겹쳐 떠오른다. 내가 가장 즐겨 읽는 박승진의 글은 남기준이 편집한『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나무도시, 2007)의 한 챕터인 “조경의 영원한 로망, 자연”인데, 그중에서도 “살아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제목을 단 부분은 다시 읽어도 언제나 새롭다.
“생명이 있는 것은 멈추지 않으며, 자연은 그 멈추지 않는 존재들로 가득하다. 푸른 하늘을 무리지어 나는 새들이 지나간 자리에 별들의 운행이 시작된다. 해가 뜨고 달이 지는 사이 식물들은 피어나기와 움츠리기를 반복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바다를 향해 흐르고 그 긴 여정 동안 대지를 적시고 꽃들을 피어나게 만들며, 목마른 존재들의 갈증을 풀어준다. 땅은 모은 것을 받아들인다. 날아온 풀씨를 품어 생명으로 피어나게 하고, 나무들을 곧추세워 자라게 하며, 양분을 아낌없이 내줌으로 그것들이 단단한 결실을 맺게 해준다. 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온갖 미물微物들의 보금자리며, 거만한 인간들에게도 영원한 안식처가 된다. 풀과 나무들은 물과 땅과 해와 더불어 자라남으로 움직이는 모든 존재들의 양식이 되어준다. 꽃을 피워 우리들의 가슴을 매혹케도 하며, 그 충만한 몸체를 내어줌으로 생명이 쉬어갈 거처를 허락하기도 한다. 낮이 가고 밤이 오듯, 자연은 곧 움직임의 결과다. 창세 이후 단 한 번도 지구는 태양과 더불어 운행을 멈춘 적이 없다. 봄비가 내리고, 개구리가 깨어나며, 이삭이 달리고 이슬이 맺히는 절기적 자연 현상은 바로 이 우주적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니, 아무리 작은 생명체 속에서도 온 우주의 기운이 미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음 문단에서 박승진은 조경을 이렇게 정의한다. “조경은 바로 이러한 우주적 움직임과 관계에 대해 주목하는 작업이다. … 조경은 자연과 더불어 시간을 엮어내는 일이라는 점에서 여타의 디자인과 다른 본질적인 차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는 아름다운 글을 이렇게 맺는다. “동시대 조경이 자연에서 희망을 찾는다면, 우리는 이 소중한 일을, 경관을 조화롭게 만드는 일, 곧 조경調景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겠는가.” 이번 달 특집에서 우리는 박승진의 조경造景 아닌 조경調景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