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PREV 2020 Year NEXT           PREV 08 August NEXT

환경과조경 2020년 8월

정보
출간일
이매거진 가격 9,000
잡지 가격 10,000

기사리스트

살아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한겨레」 토요일 판의 작은 지면에 4주에 한 번 칼럼을 싣고 있다. 조금 더 많이 읽히기 바라는 마음에 쑥스러움을 누르고 페이스북에 공유하곤 하는데, ‘브릭웰(Brickwell)’을 다룬 6월 27일 자 칼럼 “함께 쓰는 도시의 우물”에는 평소보다 많은 ‘좋아요’가 달렸다. 글의 마지막 문장처럼, 깊은 우물 밑 잔잔한 수면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장마철 오후를 보냈다는 문자 메시지를 여러 통 받았다. 건축가 강예린·이치훈SoA과 조경가 박승진loci이 설계한 경복궁 옆 고즈넉한 통의동 골목의 브릭웰. 편안하면서도 묵직하고 튀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건물의 지상층이 뻥 뚫려 있다. 안으로 몇 걸음 들어서면 식물도감을 펼친 듯 밀도 있는 숲. 우물처럼 깊은 원통형 숲 아트리움 위로 고개를 들면 초현실적인 하늘 풍경. 이방인을 환대하는 이 ‘공공의 정원’을 통과하면 서촌의 오랜 기억을 담은 백송터로 연결된다. 브릭웰은 개인이 소유한 장소지만 누구나 들어가 산책하고 앉아 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공간사회학적 의미가 감각적 체험과 미학적 참여를 짓누르지 않는다. “살아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조경론을 과장과 과잉 없이 구현해온 박승진의 안목과 솜씨 덕분일 것이다. 이달에는 ‘브릭웰 정원’과 함께 박승진의 근작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 ‘어퍼하우스 남산 전시관’을 묶어 특집 지면을 꾸린다. 세 작업은 여러 지면에 소개된 박승진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이라는 현상 혹은 대상에 대한 그의 성찰과 실험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 몇 그루, 철마다 번갈아 꽃을 피우는 꽃나무와 작은 풀들이면 족하다. 여기에 더해 나비를 보고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27쪽)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사실 브릭웰이나 어퍼하우스 남산은 모두 “공간적 한계, 여기에 자연의 일부를 이식한다는 역설”(42쪽)이며 그런 역설이 낳는 “부조화를 할 수 있는 한 가득 채우는”(47쪽) 비평적 작업이기도 하다. 프로젝트가 끝나도 장소는 늘 자란다. 그의 말처럼 “계절은 늘 흐르고 식물들도 변신을 거듭하면서 성장하고 번성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은 놀랍고 늘 경이롭다”(39쪽). 자연을 묻고 답하는 박승진의 다양한 형식의 글들에는 이론과 실천이 교차한다. ‘그래서 조경은 결국 무엇인가’라는 학부생들의 도전적 질문에 횡설수설하는 날이면, 도시의 온갖 소란과 소음에 지치는 날이면, 나는 박승진의 글을 꺼낸다. 우연히 펼친 아무 쪽이나 읽더라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뒤엉킨 생각이 정리된다. 활자 사이사이로 그의 작업들이 겹쳐 떠오른다. 내가 가장 즐겨 읽는 박승진의 글은 남기준이 편집한『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나무도시, 2007)의 한 챕터인 “조경의 영원한 로망, 자연”인데, 그중에서도 “살아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제목을 단 부분은 다시 읽어도 언제나 새롭다. “생명이 있는 것은 멈추지 않으며, 자연은 그 멈추지 않는 존재들로 가득하다. 푸른 하늘을 무리지어 나는 새들이 지나간 자리에 별들의 운행이 시작된다. 해가 뜨고 달이 지는 사이 식물들은 피어나기와 움츠리기를 반복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바다를 향해 흐르고 그 긴 여정 동안 대지를 적시고 꽃들을 피어나게 만들며, 목마른 존재들의 갈증을 풀어준다. 땅은 모은 것을 받아들인다. 날아온 풀씨를 품어 생명으로 피어나게 하고, 나무들을 곧추세워 자라게 하며, 양분을 아낌없이 내줌으로 그것들이 단단한 결실을 맺게 해준다. 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온갖 미물微物들의 보금자리며, 거만한 인간들에게도 영원한 안식처가 된다. 풀과 나무들은 물과 땅과 해와 더불어 자라남으로 움직이는 모든 존재들의 양식이 되어준다. 꽃을 피워 우리들의 가슴을 매혹케도 하며, 그 충만한 몸체를 내어줌으로 생명이 쉬어갈 거처를 허락하기도 한다. 낮이 가고 밤이 오듯, 자연은 곧 움직임의 결과다. 창세 이후 단 한 번도 지구는 태양과 더불어 운행을 멈춘 적이 없다. 봄비가 내리고, 개구리가 깨어나며, 이삭이 달리고 이슬이 맺히는 절기적 자연 현상은 바로 이 우주적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니, 아무리 작은 생명체 속에서도 온 우주의 기운이 미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음 문단에서 박승진은 조경을 이렇게 정의한다. “조경은 바로 이러한 우주적 움직임과 관계에 대해 주목하는 작업이다. … 조경은 자연과 더불어 시간을 엮어내는 일이라는 점에서 여타의 디자인과 다른 본질적인 차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는 아름다운 글을 이렇게 맺는다. “동시대 조경이 자연에서 희망을 찾는다면, 우리는 이 소중한 일을, 경관을 조화롭게 만드는 일, 곧 조경調景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겠는가.” 이번 달 특집에서 우리는 박승진의 조경造景 아닌 조경調景을 만날 수 있다.
[풍경 감각] 있지도 않은 풍경은 아름답고
“아름답다”고 말하면 친구들은 의아한 표정을 짓곤 했다.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표현이기도 하고, 어디가 어떻게 아름다운지 되묻는 말에 설득력 있는 대답을 못했기 때문일 듯하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아름답다고 하고 싶다. 있지도 않은 어떤 풍경1에 대해. 조경학과에 다니는 동안 꽤 여러 번 말도 안 되는 설계를 했다. 모래 유실로 사라진 해수욕장을 대신할 인공 구조물을 바다 위에 띄우거나, 쪽방촌 주민들이 잠시 햇볕을 쬐고 구름을 구경하도록 공터에 주변 건물보다 높은 공중 데크를 디자인했다. 부루마블 게임을 한 뒤 게임판 위에 세워진 건물대로 공간을 만들겠다고도 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1. 이번 글과 그림은 이제니의 시집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의 도움을 받았다.
디자인 스튜디오 loci
2007년의 따뜻한 봄, 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design studio loci)(이하 로사이)가 문을 열었다. 조경설계 서안의 독립 스튜디오로 시작해 현재는 파트너십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는 로사이의 작업은 박승진 소장의 삶과 아주 가깝게 맞닿아있다. 로사이의 지난 10년의 작업을 총망라한 『도큐멘테이션』(2018)에서 조경가의 “일과 일상은 자연스럽게 교차”한다고 말한 바 있듯, 박승진은 일상에서 마주한 생각들을 섬세한 형태로 작품에 녹여낸다. 작품 소개 글을 읽어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설계 철학과 혜안, 공간과 자연에 대한 진중함을 볼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신사옥’(2018)이 “단순하지만 뚜렷하고 분명한 곡선, 여기에 마운딩하여 쌓아 올린 유선형의 정원섬”(이명준, “정원섬, 보이는 정원”, 『환경과조경』 2018년 8월호)에 자연의 한 자락을 담았다면, 이번 특집에 소개하는 세 개의 근작은 자연을 다루는 찬찬한 손길을 통해 우리의 감각이 증폭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브릭웰 정원’에서는 비 오는 날 커피 한잔을 즐기며 바라보는 우물의 풍경을,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에서는 쓰임새가 좋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 순환을 보여주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어퍼하우스 남산 전시관’에서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지 않는 실내 환경의 역설적 경관을 만날 수 있다. 이곳들을 예리한 눈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책하며 탐색한 이명준의 글이 지면을 방문한 독자들의 상냥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기대한다. 더불어 2014년 1월호부터 3월호에 박승진이 연재한 ‘그들이 설계하는 법’도 다시 꺼내 볼 것을 권한다. 진행 김모아, 윤정훈 디자인 팽선민
[디자인 스튜디오 loci] 브릭웰 정원
공공의 취향 길을 걷다 보면 공사 현장을 자주 마주친다. 높은 가설 펜스가 설치되고 공사 분진과 소음을 막아줄 가림막도 놓인다. 안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궁금증이 유발된다. 친절한 건축주라면 크게 확대한 조감도라도 벽면에 그려 넣지만, 그만그만한 현장에는 일반적인 공사 개요와 현장 소장 연락처 정도로 그친다. 건설 장비가 수시로 드나들고 그로 인한 소음, 공사 분진이 발생하기에 언제나 민원이 들끓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공사 현장을 이웃한 주민들의 고충도 나름 이해가 간다. 통의동이라는 말에 우선 솔깃했다. 몇 해 전 사무실을 옮기고자 시내 곳곳을 알아보던 중, 통의동에 나름 근사한 적산 가옥을 발견하고 계약 직전까지 같으나 결국 무산된 적이 있었다. 집이 되었건 일터가 되었건 한 번쯤은 터를 잡아 보고 싶은 동네였다. 작은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일을 가리는 것이 가당치 않겠으나, 관심 있는 동네의 프로젝트는 일단 환영이다. 백송터 앞 대상지는 여느 현장처럼 가설 펜스로 둘러쳐 있었다. 생각보다 비좁은 도로, 사방이 주택으로 둘러싸인 부지 조건이 눈에 들어왔다. 건축 설계는 끝이 났고, 이제 막 시공사가 정해져 공사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백송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다지 크지 않은 건물에서 이웃한 백송터와의 관계는 중요한 것이었다. 오래전에 태풍에 쓰러진 후 육중한 밑둥치만 남은 고목. 마치 고목의 유해를 견고히 호위하듯 둘레에 새로 심어진 젊은 백송 네 그루. 건축주의 생각은 확고했다. 건축물의 공지는 당연히 백송과 연결되어야 하고, 그 지점이 설계의 출발점이 되어야 했다. 건축 설계는 이미 상당한 시간 동안 수많은 대안을 검토했고, 결론은 브릭웰brickwell(벽돌우물)이었다. 행태와 재료의 콘셉트를 한마디로 아우르는 개념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총괄:디자인 스튜디오loci(박승진) 진행:디자인 스튜디오loci(최상민,구보배,장수연,오지훈) 건축 설계SoA(강예린,이치훈) 조경 시공 태극조경(금교식) 건축주 기산과학(강태선) 위치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35-17 설계 기간2018~2019 준공2020. 6. 사진 유청오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 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 작업을 늘 꿈꾸지만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그래도 읽고,쓰고,가르치며,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조경설계 서안에서 설계 실무를 거쳐2007년 디자인 스튜디오loci를 열었다.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
여름이 왔다. 연일 기온이 삼십 도를 오르내리고 습도 또한 높아 견디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창밖의 나무들이 짙은 녹색의 기운을 씩씩하게 내뿜고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불과 두어 달 전만 해도 옅은 어린잎에 불과한 것들이 이제 완전히 자라나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이즈음에는 식물들의 이런 모습에 늘 감탄한다. 작은 씨앗들이 땅에 떨어져 때를 기다리다가 어느새 움을 튼다. 떡잎을 내밀어 제 존재를 드러낸 후에는 날마다 자라고 변신을 거듭한 끝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한겨울을 나목의 상태로 버틴 나무들은 또 어떠한가. 무슨 신호를 받았는지 때가 되면 저마다의 일정으로 잎을 내밀고 빛을 받아들인다.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면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이다. 한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잎들은 겨울에 앞서 생장을 멈추고, 후대를 위해 지상으로의 장렬한 낙하를 기다릴 것이다. 성장과 번식이라는 이 오묘한 생명의 순환을 지켜보고 있자면 새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게 된다. 2016년 늦가을 우리 일행은 서둘러 런던으로 날아갔고, 시내에 있는 첼시 약용식물원(Chelsea Physic Garden)으로 향했다. 며칠 후면 시즌이 마감되기 때문에 바쁘게 결정하고 실행한 일정이었다.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가장산업단지에는 아모레퍼시픽의 주력 제품을 생산하는 통합 공장(아모레퍼시픽 뷰티 파크)이 자리하고 있다. 2012년에 준공한 이 공장은 당시에도 화장품에 사용되는 원료 식물들을 소재로 일부 조경 공간을 구성했으나, 준공 4년 차를 지나면서 좀 더 본격적인 ‘식물원’으로서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었다. 규모가 비슷한 첼시 약용식물원은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의 중요한 벤치마킹 사례지였다. 이 식물원은 3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런던의 가장 오래된 식물원이다. 기본적으로 약제의 원료가 되는 식물을 연구하는 곳이기에, 공간의 구성이 식물을 효율적으로 분류하고 관리하기에 적합해야 한다. 방문자들에게 식물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쓰임새를 중요하게 설명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템스 강변의 이 오래된 식물원은 이제 막 새롭게 ‘원료식물원’을 만들려고 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얘기해주고있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총괄:조경설계 서안(정영선,박승진) 진행:디자인 스튜디오loci(박승진,최상민,장수연,오지훈) 시공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총괄:한권영) 발주 아모레퍼시픽 위치 경기도 오산시 가장산업단지 내 아모레퍼시픽 뷰티파크 면적 약18,000m2 설계 기간2016~2019 시공 기간2017~2019 준공2019. 7. 사진 양해남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 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 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 작업을 늘 꿈꾸지만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읽고, 쓰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에서 설계 실무를 거쳐 2007년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어퍼하우스 남산 전시관
고민 없이 작업 의뢰를 수락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예상되는 작업량에 비해 현저히 많은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와 작업이 까다롭고 보상이 적어도 그 이상의 재미가 보장되는 경우. 하지만 대부분의 작업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일한 만큼 받게 되어 있고, 보상이 클수록 재미는 반감되기 마련이다. 설계 사무실의 많은 작업은 이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도 가끔은 일탈의 수준을 넘나드는 작업을 상상할 때가 있는데, 어퍼하우스(Upper House)남산 전시관이 여기에 해당됐다.보상보다는 ‘재미’. 이때 재미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낯선 미적 쾌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용도가 폐기된 넓은 실내는 낯선 공간이다. 바닥과 천장, 벽과 창만 남은 이 단순한 구조체는 2,700m3의 큰 용적을 갖는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사뭇 영화적이다. 사각 틀을 통과한 빛은 거침없이 바닥에 닿고, 서서히 움직인다. 아침의 빛은 가볍고 신선하며 늦은 오후의 빛은 지쳐 있고 농도가 짙다. 실내 공간은 자연을 배척한다. 빛은 제한적이고 공기와 물의 흐름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살아있는 식물은 실내에서 스스로 생육할 수 없다. 실내라는 공간적 한계, 여기에 자연의 일부를 이식한다는 역설에서 이 작업은 출발했다. 3개월 남짓 유지되는 한시적 설치 작업이라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디자인 스튜디오loci(박승진) 조경 시공 태극조경 건축 설계 두마인드오피스(민준기,장별) 발주 어퍼하우스 위치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260.199 면적900m2 준공2019. 6. 사진 장미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 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 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작업을 늘 꿈꾸지만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읽고, 쓰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환경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에서 설계 실무를 거쳐 2007년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정원의 감각
잠 못 드는 장마 기간의 밤이다. 여기 안성은 해가 떨어지면 아직은 제법 선선하다. 창문을 열면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축사 냄새와 형언하기 어려운 미묘하게 기분 좋은 자연 내음, 거기에 내 옷의 섬유 유연제 향이 뒤섞여 후각을 적신다. 귀를 기울이면 근처 아파트 예정지의 늪지에서 개구리가 비지엠BGM을 깔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속삭임이 이따금 간섭하며, 가까운 소형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피아노와 전자음이 뒤섞인 고요한 음악이 들린다. 여름밤의 ASMR. 보이는 것은 스마트폰 메모 앱의 한글 자모뿐이건만 다른 감각기들이 나를 이 여름밤의 낭만으로 휘감는다. 시각이 사라지니 다른 감각이 깨어난다.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이하 원료식물원)과 브릭웰 정원에 관한 원고를 청탁받고 답사도 다녀왔으나 마감을 앞둔 지금까지도 착상이 떠오르지 않다가 문득, 그곳의 지금, 그러니까 밤 풍경이 궁금해졌다. 식물원이라는 로망 원료식물원의 밤엔 인기척이 없을 것이다. 퇴근 시간이 되면 인적이 드물 테니까. 그런데도 그곳의 밤이 궁금해지는 건 식물원이 내게는 실재보다는 낭만, 말하자면 로망의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여름밤에 요정이 나타나 마술을 부려 동식물과 곤충 그리고 물과 흙, 돌에게도 목소리를 주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지는 않을까.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은 화장품 원료로 쓰이는 식물을 그러모아 유럽의 식물원 콘셉트로 디자인한 공간이다. 원료식물원은 2012년 오산 아모레 뷰티 파크(이하 뷰티 파크)의 조경을 디자인할 때 이미 조성되어 있었다. 뷰티 파크 정면의 도로와 맞닿은 부지에 마련되었던 원료식물원에 경사면을 평지로 만들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뒤 작년에 다시 디자인했다. 듣도 보도 못한 피부 건강에 좋은 식물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이자 인플루언서를 초대해 브랜드를 홍보하는 쇼룸의 역할도 한다. 거기에 화장품 원료의 실험, 연구, 대중 교육 기능도 담당하니 지적인 호기심까지 충족시키는 종합 정원 세트인 셈이다. 공원도 그렇지만식물원이라는 콘셉트는 서양, 특히 유럽에서 발명되어 20세기 전후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유명한 창경원 식물원은 한반도에서 보기 힘든 진귀한 식물의 전시장이었고 우리는 이국적인 식물 취미(taste)에 열광했다. 감각하는 자연 식물원에는 자연의 생명이 충만하게 살아 숨 쉬고 우리는 그 기운을 감각기로 받아들인다. 예술가는 자연의 감각을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사랑을 설명하는 데 활용하곤 한다. 루카 구아 다니노 감독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2017)에서 주인공 소년은 이탈리아의 북부 시골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면서 첫사랑을 만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간다. 여기서 시골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은 낭만으로 적셔진 찬란한 한때, 내가 온전히 살아있었던 그 순간을 비유하는 데 동원된다. 전작 ‘아이 엠러브(I Am Love)’(2009)의 주인공인 상류층 부인은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 도시 외곽의 자연을 만끽하며 사랑하는 이와 정사를 나눈다. 육체는 자연과 뒤엉킨다. 우리의 땀과 자연의 내음이 혼재된 이미지. 야생 초화류의 향기와 거기에 도취한 벌의 몸짓과 노래와 함께. 사랑의 편에서 보면 사랑이 자연처럼 싱그럽고 때론 야생적(wild)이라는 의미지만, 자연의 편에서 보면 자연이 우리의 사랑같이 낭만이면서 추억이고 에로틱한 심상마저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고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 풀과 꽃, 흙 향기가 코안을 두드리는 야릇한 청량감, 그런 살아있는 자연의 기운을 감각하며 우리가 살아있(었)음을 느낀다. 움직임-감정의 정원 예술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독일의 정원 이론가 히르시펠트(C.C.L. Hirschfeld)는 정원을 움직임(motion)을 통해 감정(emotion)을 불러일으키는 다감각적 예술 장르라고 설명했다.1 여기서 움직임은 자연의 여러 생명의 생동, 그러니까 나뭇가지와 잎의 흔들림, 그것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잔잔한 물의 파장과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자연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생동을 우리가 움직이면서 온몸으로 감각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감동시키는 감정이라는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앞의 두 영화에서 사랑을 자연과 동일시하는 건 움직임과 감정이라는 경험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원료식물원은 히르시펠트가 설명한 정원 예술의 정수를 보여 준다. 원료식물원은 뷰티 파크가 공들여 만든 투어 프로그램의 일부다. 큰 틀에서 보면 원료식물원은 아모레퍼시픽의 창업부터현재까지의 기업 문화를 스토리텔링 전시로 구현한 스토리가든과 아모레퍼시픽과 관련한 과거와 현재의 모든 기록을 그러모아 구축한 박물관인 아카이브 사이에 위치한다. 아쉽게도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다른 곳은 방문할 수 없었지만, 원료식물원은 아모레퍼시픽이 꼼꼼하게 기획한 투어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면서 경험하는 정원이다. 먼저 기업 문화를 이해하고 식물원을 거닐며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식물들을 실제로 만난 뒤 아모레퍼시픽의 사료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마무리하는 여정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이명준·배정한, “18~19세기 정원 예술에서 현대적 시각성의 등장과 반영: 픽처레스크 미학과 험프리 렙턴의 시각 매체를 중심으로”, 한국조경학회지 43(2), 2015, p.32.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다가 지난봄 안성으로 이사와 한경대학교 친구들과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꼰대는 되지 말자 노력하면서.코로나19확산으로 봄학기 내내‘집콕’했고 여름 방학에는‘홈캉스’를 즐길 예정이다.간만의 답사 기회를 얻은 데 감사하며,그런 마음을 답사 일기로 전한다.
동탄 재난안전공원
1970년대 이후 비약적 경제 성장으로 도시화가 가속화되며 대규모 택지 개발과 사회 기반 시설 건설이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생태 환경이 지속적으로 훼손됐고 오염 물질이 과도하게 유입된 하천은 자정 능력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치마골천 역시 개발로 인해 수순환 체계가 붕괴되어 유지용수가 부족해지며 사라질 위기에 놓인 곳이었다. 하지만 2010년 화성시 소하천재정비계획을 통해 실도랑과 실개천을 복합적으로 조성하며 지속가능한 자연 순환형 계류로 재탄생했다. 이 치마골천을 중심으로 재난안전공원, 어린이를 위한 커스텀놀이터 등 도시에 새로운 변화를 불어넣는 공간을 마련해 동탄의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치마골천의 부활 저영향개발LID을 적용한 수순환 계획을 통해 치마골천의 물순환 생태 기능을 회복하고자 했다. 30m~130m 높이에 걸쳐 펼쳐지는 치마골천의 수직적 경관 스펙트럼을 기반으로 하천, 들, 도시, 산이 공존하는 동탄의 풍경을 담아냈다. 더불어 물길을 이용해 다채로운 수경관을 연출했다. 물놀이장, 생태 습지 등 다양한 형태의 수공간은 물길이 재생되며 점차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6개월간 함양지 수원을 방류하고 꾸준히 모니터링해 함양지에서 신리천까지 이어지는 긴 투수 공간을 따라 물이 끊이지 않고 흐르는 수순환 체계를 구축했다. 재난안전공원 토지 이용이 고밀화되고 복합적으로 바뀌며 재난 발생률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대형 복합 재난으로 이어질 위험성 또한 커졌다. 도시계획을 통한 근원적 관점의 도시 방재 계획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방재 대책은 크게 구조적 대책과 비구조적 대책으로 나뉜다. 구조적 대책은 시설 중심의 예방책으로, 도시 기반 시설 개선을 예로 들 수 있다. 직접적인 피해를 저감할 수 있지만 지속적인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반면 비구조적 대책은 꾸준한 재난 교육을 통해 재난 발생 시 대피 요령 및 대처 능력을 향상시켜 장기적이며 균형 있는 방재 체계를 구축한다. 한국은 일반적으로 비구조적 대책에 대한 체계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공원의 영향권에서 수용할 수 있는 재난의 규모를 산정하고, 공원에 방재 기능과 재난 교육 기능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공간을 설계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시행 한국토지주택공사 시공 중흥토건 위치 경기도 화성시 동탄2신도시 목동 일원 면적 재난안전공원: 39,571m2 커스텀놀이터: 4,800m2 치마골천: 1,565m 사업 기간2015. 8. ~ 2020. 5. 준공2020. 5. 사진 유청오 그룹한 어소시에이트는1994년 창립 이래,도시인에게 자연과 호흡하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 왔다.삭막한 주거 환경의 한복판에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린 시절의 추억,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가치를 구현하며,여유와 즐거움이 넘치는 문화 환경을 헌정한다.
산마루 놀이터
서울의 옥상, 창신동 창신동은 맑은 바람과 높은 하늘을 만날 수 있는 서울의 옥상이다. 대상지는 서울 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위치하지만 가파른 도로와 밀집한 주택들로 인해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 외엔 사람의 발길이 드물었다. 2007년 창신·숭인 일대의 재개발 계획이 추진되어 뉴타운 지구로 지정됐지만 2013년 해제되었으며, 이후 부지는 소규모 어린이 공원과 도시 텃밭, 주차장으로 이용됐다. 2015년 서울시는 창신·숭인 지역을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해 사업의 일환으로 아이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친환경 자연형 어린이 놀이터에 대한 설계를 공모했다. 아이들의 감성을 키우는 놀이터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고 주변 여건을 살려 지역 사회의 특색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개발로 인해 깎이고 사라진 창신동의 언덕과 산세를 다시 흙으로 치환해 연속적인 풍경을 조성하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터를 마련했다. 일반적인 놀이터는 어린이를 대상화하고 미숙한 존재로 치부한다. 도널드 위니컷(D. W. Winnicott)은 “어린이들은 놀이를 통하여 타자성을 실험한다. 이를 통하여 타자와 만나는 법, 대화하는 법, 공감하는 법을 배워간다”고 말했다. 놀이터는 아이들이 자연과 접촉하며 감성을 키우는 공간이며, 다양한 놀이를 유발하는 창작 터이자 사회 생활 터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놀이 기구가 아닌 흙을 만지며 어울리고 자발적으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가는 이용 방식을 구상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조진만건축사사무소,임옥상미술연구소,조경작업소 울 면적 대지 면적: 2,220m2 건축 면적: 815.75m2 위치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설계 기간2016~2018 완공2019 사진 유청오 조진만건축사사무소는2013년 서울에 설립된 건축설계사무소다.조진만은 한양대학교와 베이징 칭화대학교에서 수학하고 이로재와OMA에서 실무를 익혔다.한국 및 네덜란드 건축사를 취득하고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며 고가하부 종합 활용계획 수립,낙원상가 공용공간 개선 설계,창신동 채석장 전망대,산새마을 두레주택,한강 유수지 활용방안 연구,문화가 흐르는 서울광장,도시건축센터 운영계획 수립 등을 담당했다. 2016대한민국 공공건축상, 2017국토부 신진 건축가상, 2018서울시 건축상, 2019세계건축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조치원문화정원
‘세종문화정원 조치원정수장 설계공모’에서 당선된 이엠에이건축사사무소로부터 협업을 제안받았다. 1935년부터 2013년까지 사용된 낡은 정수장을 펜스로 단절되어 있던 인접 공원과 통합하여 다양한 문화 활동을 누리는 도시 정원으로 재생시키는 프로젝트였다. 당선안은 북측 정수 시설과 서측 공원을 연결하는 순환 동선을 복잡한 외부 환경에 대응시켜, 다양한 문화 활동이 가능한 실용적 외부 공간을 계획하는 동시에 여러 개의 정원으로 연속된 공간과 경험을 제시했다. 이 같은 콘셉트와 기본 방향에 공감했고, 계획을 구체화하는 세 가지 전략을 설정했다. 첫째, 설계안의 의도를 명쾌하게 전달하고 구현한다. 외부 공간 계획을 최대한 수정하지 않고 설계안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최적의 재료와 톤 앤드 매너(tone and manner), 디테일(구현 방식)을 찾는 데 주력했다. 예를 들어 외부 공간을 하나로 엮는 핵심 동선인 순환 산책길의 재료를 콘크리트로 정하고, 멕시코 콘크리트 포장 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섭외해 원하는 수준의 포장을 구현했다. 또한 외부 진입로의 디딤돌 포장은 순환 산책길과 구별되면서도 무난히 어울리도록 적절한 포장 종류와 패턴을 찾는 식으로 진행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에이치이에이 건축 설계 이엠에이건축사사무소(이은경) 시공 동보건설, 성지 구조 설계 미래에스디지 기계 설계 청림설비기술사사무소 전기 설계 대경전기설계사무소 위치 세종시 조치원읍 수원지길 75-21 면적 대지 면적: 13,538m2 건축 면적: 1,156.26m2 설계 기간 2018. 3. ~ 2018. 8. 완공2019. 7. 사진 유청오, 텍스처 온 텍스처(texture on texture) 에이치이에이(HEA)는 도시 공간의 자연을 다루는 창의적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 회사다. 합리적이고 세심하며 감각적인 자연을 만드는 브랜드 그룹 자연감각을 공유하고 있다. 자연과 도시 라이프의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고 감각 차원의 자연 경험을 창출하기 위한 설계 및 디자인 빌드 과정에서 새로운 형식과 방법을 고민한다. 자연의 가치에 기반해 지속 가능한 사회적 영향력을 추구하며, 도시 자연의 핵심 가치를 발견하고 공유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망포 글빛누리공원
2017년 가을, 망포4지구의 공원 설계를 의뢰받았다. 기존 설계안을 참신한 아이디어로 변경해주기를 요청했는데 일정이 매우 촉박했다. 하지만 공원 스케일의 공간을 설계할 좋은 기회였기에 프로젝트를 수락했다. 김현 교수와 대상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 받은 인상은 ‘이대로도 좋다’였다. 방치된 농경지가 하늘과 나란히 놓여 탁 트인 초지가 펼쳐지고, 주변엔 대규모 주거 단지가 올라가고 있었다. 단지가 완공될 즈음 현재의 경관이 유지된다면 그 자체로 매력적인 공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초지의 경관을 담는 도시공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간과 인력이 부족한 일정 속에서 조경가 조제와 협업해 계획안을 발전시켰다. 공원의 중심부는 기존의 땅을 최대한 보존하는 한편, 주변부는 새롭게 건설되는 주변 도시 맥락에 대응하도록 중심부와 구별했다. 더불어 중심부와 주변부, 주변부와 도시가 만나는 경계 공간의 성격을 정의해 나갔다. 공원 북서측에는 도서관이, 서측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들어설 예정이었으므로 이와 연계한 놀이, 운동, 휴게 공간을 서측 주변부에 연속적으로 계획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에이치이에이, 조제(Joje) 조경 MP김현(단국대학교 교수) 조경 실시설계 서인조경 건축 설계 조호건축사사무소 시행 미드 시공 HDC현대산업개발, 롯데건설 위치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동탄지성로 549-15 면적 대지 면적: 45,107m2 건축 면적: 1,664m2 설계 기간2017. 11. ~ 2018. 5. 준공 2020. 5. 사진 유청오 에이치이에이(HEA)는 도시 공간의 자연을 다루는 창의적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 회사다.합리적이고 세심하며 감각적인 자연을 만드는 브랜드 그룹 자연감각을 공유하고 있다.자연과 도시 라이프의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고 감각 차원의 자연 경험을 창출하기 위한 설계 및 디자인 빌드 과정에서 새로운 형식과 방법을 고민한다.자연의 가치에 기반해 지속 가능한 사회적 영향력을 추구하며,도시 자연의 핵심 가치를 발견하고 공유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연산 롯데캐슬 골드포레
연산 6구역은 남쪽의 금련산과 인접하여 쾌적한 환경에 놓여 있지만, 남북을 기준으로 단차가 20미터가 넘는 부지였다. 단지 남쪽에는 미관을 해치는 나지가 있어 이에 대한 해결책도 필요했다. 단차 극복과 차폐를 설계의 주안점으로 삼았다. 단지 중앙에 평지의 오픈 스페이스를 확보하고 외곽부와의 단차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동선을 1/12의 구배로 계획하고 옹벽 등 불량한 경관을 차폐하는 다양한 공간을 계획했다. 설계 콘셉트는 ‘블루 포레 파크(Blue Foret Park)’다. 풍성한 녹음의 숲과 푸른 물결을 담은 리조트풍의 외부 공간을 만들고자 다양한 특화 공간을 계획했다. 단지 중앙에 물을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는 세 개의 수 공간(레이크플라자, 포레스트밸리가든, 블루펀가든)을, 주동 사이사이 공간에 특색을 더하는 네 가지 정원(그라스스트림가든, 갤러리 가든, 파인퓨어가든, 테라스가든)과 수종별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다섯 가지 테마 숲(사계숲, 파인숲, 동백숲, 굴거리나무숲, 배롱나무숲)을 마련했다. 금련산맥은 기장군의 달음산에서 영도구의 봉래산까지 이어지는 산맥이다. 대상지 배후에 위치한 금련산맥을 형상화한 석가산을 단지 중앙 광장(레이크플라자)에 조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공간을 전개해 나갔다. 거의 모든 주동에서 석가산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위치를 선정했다. 산맥의 형상을 구현하기 위해 면적 500제곱미터 이상의 산수 정원에 넉넉한 규모의 석가산과 생태 연못을 조성했다. 퍼걸러와 바 테이블, 티 하우스 등을 더해 이용자의 편의를 높이고, 정원을 한 바퀴 빙 둘러볼 수 있는 순환 산책로를 통해 다양한 공간을 하나로 엮었다. 레이크플라자와 인접한 두 가지 수공간은 공간의 연계성을 한층 높인다. 남쪽에는 풍부한 녹음과 자연형 계류가 있는 포레스트밸리가든을 마련했다. 마치 물이 석가산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경관이 연출되며, 단지 중앙부터 외곽까지 구불구불하게 뻗어 나가는 녹지의 형상으로 좀 더 자연스러운 자연 풍경이 펼쳐진다. 북쪽에는 물놀이 시설을 갖춘 어린이 놀이터를 조성했다....(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제이티이엔지, 롯데건설 디자인연구소 시공 롯데건설 조경 시공 경원필드 위치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 834-4번지 일원 면적 대지 면적: 47,672m2(1,230세대) 조경 면적: 22,972m2 완공2020. 7. 사진 유청오
[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그래스호퍼 연대기 Ⅱ
변신 Ⅱ 카프카의 ‘변신’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변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 스스로가 변했다고 믿는 정신 착란 상태였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레고르가 경제력을 잃자 나태해져 있던 가족들이 지금까지의 고마움은 잊고 갑자기 벌레 보듯 그를 바라보게 된 거라는 해석도 있다. 변신은 물론이거니와 ‘학술원에의 보고’와 ‘시골의사’ 등 그의 다른 단편들에서도 카프카는 아무것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물론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우리는 언제나 꽤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처럼, 그런 방식이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위대한 표현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스호퍼 연대기를 시작하고 나서 나 또한 실존적 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그래스호퍼를 알기 때문에 연재를 하는 것인지, 그래스호퍼에 대해 말해야 하기 때문에 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래스호퍼를 잘 안다고 추켜세워 주는 것을 사람들은 현대적인 유머처럼 즐기고 있는 것인지. 20대 이후에는 늘 결국 아무것도 의미 없을 거라는 근본적 허무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러면서도 이 연재를 시작한 뒤 온갖 그래스호퍼 영상을 밤마다 보고 있는 나 자신이 이해가 안 간다. 이건 내가 아니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어느 시점에선가 정말 벌레로 변해버린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그 시선들이 사실은 진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건지 도 모른다. 목록 Ⅱ 그래스호퍼로 할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계속 나열해보겠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 생각해보니 사실 그게 맞는 목록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스호퍼에 그래놀라와 요거트를 타서 단백질이 풍부한 저칼로리 디저트를 만든다고 한들 누가 뭐라고 할까. 그런 고민을 결국 떨쳐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그래스호퍼를 잘 알기 때문에 연재를 하는 사람인지,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잘 알아야 하는 건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취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것들이 언제나 인생을 망치지만. 지난 연대기에서는 그래프 매퍼로 로프트를 하는 예시를 들어 파라메트릭 모델링을 진행하는 기초 구조를 설명했다. 이번에는 그 스크립트를 몇 단계 발전시켜 하나의 프로젝트 모델을 완성해보겠다. 그림 1은 스크립트의 전체 구조다. 00_Loft Base가 모델링의 기본 서피스를 구축하는 섹션이고, 여기에 논리 구조별로 01_Tween Surface, 02_Wood Generator, 03_Fish-Wave Maker 섹션을 단계적으로 구축해 모델을 발전시켰다. 1번부터 설명해보겠다. 트윈 서피스 트윈 서피스(Tween Surface)(그림 2)는 트윈 커브(Tween Curves)라는 명령을 사용해 두 개의 입력 커브 사이에 연속성을 갖는 새로운 면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선을 내가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을 통해 생성한다는 거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곡면의 연속성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라이노의 모든 커브 관련 명령어는 커브를 구성하는 정보들을 재구성해 새로운 결과 커브를 구축한다. 트윈 커브는 2개의 입력 커브 사이에 몇 개의 중간 커브를 만들지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면 A에서 B로 향하여 형태와 곡률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점진적으로 변하는 커브들을 만든다. 나는 우선 A와 B 사이의 가상의 면을 7개로 나누는 참조 값을 대입해(레인지, Range 사용) 6개의 중간 커브를 만들었다. 그리고 입력 커브들을 포함 0에서 7번까지 총 8개의 커브를 0에서 6번, 1에서 7번의 두 그룹으로 나누고(시프트, Shift 사용) 그래프트Graft를 사용해 데이터 구조를 맞춘 뒤 로프트로 7개의 기본 서피스를 만들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 8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공간잇기] 흐릿한 고향 땅, 이야기 지층을 찾아서
내 고향이니까 다시 돌아왔죠 멀리 북한 땅까지 한눈에 보이는 소이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철원평야는 과거 철원 시가지가 있던 곳이자 사방이 탁 트인 넓은 평원이다. 한국전쟁 때 피난 갔다 고향 땅이 그리워 다시 돌아왔다는 1928년생 임희순 할아버지는 더 이상 번성했던 구철원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없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송두리째 사라진 고향은 이제 기억에만 존재해 이따금 꺼내 볼 뿐이다. 철원에서만 15대를 이어온 임 씨 집성촌에서 태어난 임 할아버지는 “철원은 대대로 땅이 비옥하고 좋아 쌀농사가 잘되서 어릴 적 가난하고 없이 살아도 흰 쌀밥만큼은 배부르게 먹었다”고 회상한다. 피난 가서 처음 보리밥을 접해 기름진 고향 땅이 더욱 그리웠다는 그는 친척이자 이웃이던 동네 사람들과 마당에 모여 쌀로 온갖 음식을 만들어 먹던 기억을 풀어놓는다. 마당의 모습, 가족 구성원, 멀리 보이던 석양과 초가집에 대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이야기하며 마치 그날 그때로 되돌아간 듯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철원역에 있는 쌀 저장 창고에 쌀 포대를 실어 나르던 일본군 트럭을 뒤따라 쫓던 기억부터, 학창 시절 철원역에서 금강산전기철도 타고 금강산으로 소풍을 갔던 추억, 해질녘 한달음에 뛰어올라 바라보던 숨 막히게 아름다운 철원평야와 시가지 풍경이 아직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에 선하다. 모두 사라진 지 오래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절대로 잊히지 않는 애틋하고 번성했던 고향의 일상 풍경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상의 장소, 철원평야 일상이란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의미한다. 개인과 역사, 사회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상호 관계성을 탐구하는 일상사 연구의 거장 알프 뤼트케는 역사 속 이름 없는 대다수 사람의 삶은 고난 속에서 일궈낸 생존의 역사이며 ‘역사 속의 일상들(historische altage)’이라 했다. 또한 역사학자 세르토(M. de Certeau)는 역사가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흔적을 마을과 같은 일상의 장소에서 찾는다고 했다. 일상에 대한 탐구는 단순하거나 단편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개인이 영향 받고 관계 맺는 생활 속 모든 대상과의 유기적 상호 관계를 세밀히 관찰해야 한다. 임 할아버지의 경험과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고향의 마당, 골목, 평야, 석양의 모습은 유년 시절 일상의 장소에 관한 기억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가 담긴 이야기 속 철원역, 일본군, 쌀 저장 창고와 철원평야는 묵직한 역사의 흔적이기도 하다.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받은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가 하나둘 모여 고향 땅의 흔적을 찾아주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의 지층을 드러내는 중요 단서가 된다. 일상의 장소란 우리 주변의 평범한 환경이자,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대물림 속에서 사람들과 관계 맺고 교류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환경을 말한다. 개인이 애착을 갖는 일상의 장소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수집하고 이를 역사·문화적 맥락에 놓는 일은 평범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비무장지대DMZ 접경 지역인 철원은 정치적, 지리적 특성이 마을 주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대표적 장소다. 남북이 번갈아 통치했던 수복 지구라는 특성과 1953년 정전협정 같은 사건은 철원의 역사·문화적 환경 조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굴곡진 역사의 철원평야를 터전으로 삼은 주민들의 일상이 녹아든 사라진 장소, 그곳에 얽힌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 처절한 일상은 자유와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 8월호)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10년간 생활했다.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주거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한국인의 생활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수료했다. SOM뉴욕 지사, HLW한국 지사, GS건설,한옥문화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약16년간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한국인의 참다운 생활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북 스케이프] 정원, 제3의 자연
존 딕슨 헌트(John Dixon Hun)t가 『그레이터 퍼펙션즈(Greater Perfections)』의 앞부분에서 가장 심도 있게 다루는 내용은 ‘정원이란 무엇인가’다. 모두가 아는 단어라도 일상과 학문에서의 쓰임이 다르니 그럴 때일수록 정의를 내리는 일이 중요하다. 정원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으나 형태(둘러싸임)와 성격(즐거움 혹은 생산), 자연적 요소와 문화적 요소의 결합 등이 공통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원으로 보면 정원은 항상 위요되어 있거나 어떻게든 주변과 달라 보인다. 그렇다면 정원과 달리 보이는 주변은 어떤 곳이며, 어떤 이유로 정원은 다르게 보이는가? 르네상스 시대의 정원 연구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예술로서의 정원에 관한 논의는 르네상스 인문학자들에 의해 정교해졌다. 이들은 정원을 ‘제3의 자연(terza natura)’이라 칭했다. 헌트 등의 연구자들이 정원 이론 연구에 도입한 이 개념은 16세기 중엽의 르네상스 인문학자인 야코포 본파디오(Jacopo Bonfadio)와 바르톨로메오 타에조(Bartolomeo Taegio)등이 사용한 신조어다. 『그레이터 퍼펙션즈』에서 헌트는 본파디오의 서간문을 주로 인용한다. 동료 인문학자 플리니오 토마첼로(Plinio Tomacello)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본파디오는 고향 가르다 호숫가에 있는 자신의 시골집을 설명한다. 고대 로마의 소 플리니우스(Pliny the Younger)의 레토릭을 모방한 이 서간에서 그는 우선 주변 경관을 보고, 호숫가와 비탈로 시선을 돌리고, 이어 정원을 묘사한다. 그의 정원은 신화 속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이나 알키노오스 왕의 정원처럼 과일이 풍성하며 행복하고 축복받은 곳이다. 이는 마을 사람들이 노력해 이룬 것으로, 자연이 예술과 결합되고 나아가 예술과 같은 성질을 띠게 됐다. 본파디오는 그 결과 ‘제3의 자연’이 생겨났다고 하는데, 용어를 따로 설명하진 않는다.1 타에조 또한 예술과 자연이 결합해 그 사이에 서 제3의 자연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됐다고만 한다. ...(중략)... 각주 1. Jacopo Bonfadio, Lettere famigliari di Jacopo Bonfadio, Brescia: Presso JacopoTurlini, 1746, pp.12~20. *환경과조경388호(2020년 8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종로 우리동네 놀이터 설계공모
종로 지역 곳곳에 자연과 어우러진 어린이 놀이터가 새롭게 마련될 예정이다. 지난 4월 종로구는 지역 어린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특색 있는 놀이 공간을 마련하고자 ‘종로 우리동네 놀이터 조성사업 설계공모’를 개최했다. 사업 대상지를 동부권과 서부권으로 나눠 근린공원 내 놀이터와 야외 생활 체육 시설 등 11개 공간을 선정하고, 그중 자연환경이 우수하고 이용률이 높은 여섯 개 부지(청운공원, 평창2운동장, 수송공원, 원서공원, 창이놀이터, 숭인공원)에 대한 공모를 진행했다. 참가자는 동부권 혹은 서부권 부지를 선택해 세 개의 놀이터를 계획해야 했으며, 주변 자연과 지형을 활용한 놀이 시설을 계획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는 것이 설계의 주안점이었다. 김선아(SAK건축사사무소), 유재춘(서울시립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김효영(서울시 공공건축가), 안병호(PMI건축사사무소), 최상훈(롯데건설 CM사업본부), 편해문(놀이터 디자이너), 이현삼(서울시 조경과), 박신규(서울시 건축기획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6월 9일 심사를 진행해 권역별 당선작을 선정했다. 서부권에는 한수그린텍·오파드건축연구소 팀이, 동부권에는 제드건축사사무소·한국공간디자인학회 팀이 선정됐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진주백년공원
구 진주역사가 지역 특색을 살린 문화 공원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2012년 주약동에 있던 진주역이 가좌동으로 이전하며, 기존의 역사와 폐선로는 오랜 시간 활기를 잃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진주시는 이 유휴 부지를 낙후된 원도심을 활성화하는 공원으로 만들고자 ‘구 진주역 복합문화공원 조성 기본 및 실시설계 공모’를 개최했다. 시민의 휴식과 정서 함양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 역사 문화 자원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과 연계한 관광 거점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대상지 인근으로 자리를 옮길 국립진주박물관과의 연계성, 주민 생활 환경 개선, 생태 환경 보존 및 역사 자원 정비도 요구됐다. 지난 3월부터 석 달간 진행된 공모에 7개 작품이 제출됐고, 6월 22일 열린 심사에서 스튜디오201의 ‘진주백년공원’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입상은 스튜디오 엠오비(2등작, 상금 3,600만원), 플로건축사사무소(3등작, 상금 2,700만원), 비에스환경디자인그룹(4등작, 상금 1,800만원),CA조경(5등작, 상금 900만원)이 차지했다. 심사위원회는 진주백년공원은 “일반적 문화 공원의 형태를 뛰어넘어 단절된 역사와 문화를 다시 잇는 공원으로 설계됐으며, 구 진주역의 흔적을 잘 살리면서도 편안한 공간으로 구성됐다”고 평했다. 당선팀에게는 설계권이 주어지며, 올해 중으로 설계를 마무리해 2021년까지 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진주백년공원 구 진주역 부지는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폐쇄된 공간이었다. 이 땅을 문화를 담은 공원으로 조성해 도시 변화로 인해 소외되었던 구도심을 되살리고자 한다. 완결된 형태의 공원이 아닌, 구도심의 변화와 새로운 시설 및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빈 공간이자 열린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편집자의 서재] 도큐멘테이션
부끄러운 건지 슬픈 건지 모르겠지만, 책을 만드는 나도 좀처럼 책을 읽지 않고 있다. 책보다 더 최신이고 유용하며 무엇보다 흥미를 돋우는 것들이 너무 많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시시각각 구미를 당기는 콘텐츠가 올라오고, 넷플릭스와 왓챠 같은 OTT 서비스에는 볼거리가 차고 넘친다. 그러다 문득, 손바닥만 한 화면 속 무한한 세계가 공허하고 LTE의 속도감에 급 피로해질 때 그제야 책에 눈을 돌린다. 일단 클릭하게 만드는 광고나 추천 영상이 없는 책 속 시간은 스마트폰보다 한층 느긋하게 흐른다. 클릭, 재생, 공유로 바빴던 손가락에겐 때에 맞춰 종이를 넘기는 단순 업무가 주어진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촉감이 오랜만이라 어색하기도 하지만 곧 나만의 속도로 활자와 이미지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뇌가 말랑하던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쓰지 않아서인지 화면을 통해 무언가를 읽고 이해하는 일은 영 더디기만 하다. 돌고 돌아 책의 영향권 안에 다시 들면 진화가 덜 된 호모스마트쿠스2에서 간만에 제 기능을 하는 호모사피엔스가 된 기분이다. 『도큐멘테이션』1은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10년(2007년~2017년)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묘한 매력을 가졌다. 누드 사철 제본으로 실로 엮인 종이의 단면이 책등에 그대로 드러나고, 모든 페이지는 180도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600쪽이 만드는 두께감에 비해 의외로 가볍고 재생용지의 거친 듯 보드라운 촉감과 구수한 냄새는 친숙하다. 책의 물성을 극대화한 외관에 비해 구성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SNS를 닮았다. “먹고 노는 일, 일에 대한 생각 등이 사용자가 올리는 순서대로 게재”3된 페이지를 죽 나열하면 하나의 인스타그램 피드처럼 보일 것이다. 누군가의 SNS 계정을 통해 그사람에 대해 대강 알 수 있듯이 특별한 구분 없이 지면에 포개진 사진들은 조경가 박승진의 일과 일상을 예사롭게 드러낸다. 도면, 모형, 작업 테이블, 출장과 여행 중 만난 소소한 풍경은 감각적이면서도 일상적이다. 그에 반해 어둡고 잔뜩 흔들린 사진, 공사 현장, 출장 중 묵은 숙소, 특별할 것 없는 거리 풍경은 흔히 볼 법한 사진이다. 박 소장이 난생처음 퍼머를 하며 찍은 셀피나 (그를 패닉 상태에 빠뜨린) 18대 대통령 개표 방송 화면은 책보다는 SNS와 어울린다. 대부분 사진이고 실린 글을 다 합쳐도 30쪽에 불과한 책쯤이야. 금세 읽겠다는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오래 잡혀 있었다. 박승진의 글은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어서 찬찬히 보게 되는 그의 작품과 닮아 있다. 글에 종종 등장하는 목욕탕과 맥주처럼 소소한 만족감을 주는 문체에 정이 갔고, 자연과 땅에 대한 고민의 말들 앞에서는 죽죽 밑줄을 긋고 싶었다. 속도를 내지 못한 데는 책의 생김새도 한몫했다. 어느 페이지든 활짝 펼쳐지니 종이 한 장 가득 채운 사진 에 눈이 좀 더 오래 머물렀다. 사진에 대한 설명은 맨 뒷장의 색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일일이 쪽수를 확인하며 사진과 정보를 대조하는 일은 아날로그적 감각을 자극했다. 사전을 보듯 종이를 뒤적이는 경험은 수고스럽지만 싫진 않았다. “무의미한 과장과 무책임한 소거”가 동반되지 않은 사진들은 시간의 무게를 담고 있었다. 막 시작한 프로젝트, 마무리에 접어든 프로젝트, 기본 설계를 다시 조정해야 하는 프로젝트, 준공된 프로젝트, 준공 후 점검하는 프로젝트. 저마다 다른 시제를 가진 수 개의 현장을 동시에 다뤄야 하는 고단함, 하나의 공간이 완성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책장을 넘기는 느린 손을 통해 어렴풋하게 체감됐다. 막연한 긍정 혹은 암울한 이야기로 종이책의 미래를 점치는 일은 이제 조금 촌스러운 유난인지도 모르겠다. 세계적인 아트북 출판사 슈타이들Steidl의 대표 게르하르트 슈타이들은 어반라이크(Urbanlike)와의 인터뷰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관계는 논쟁이 아니라 논의에 가깝다고 말했다.4 책은 아날로그의 산물이지만 정교한 만듦새를 구현하거나 홍보를 하는 데 디지털 기술의 덕을 크게 보고 있으므로 공존에 가깝다는 것이다. 영상으로만 전할 수 있는 콘텐츠가 있듯 책만이 주는 이야기와 경험이 있다. 이번 호에는 지난 7월 오픈과 동시에 조경가들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열렬히 채운 ‘브릭웰(Brickwell)정원’이 실렸다. 소식을 뒤늦게 전하는 아쉬움은 뒤로 하고, 인스타그램 속 공간이 종이를 통해 색다르게 각색되길 바라본다. 460×275mm의 지면에 놓인 박승진 소장의 다정한 글과 일련의 시퀀스로 배열된 사진들이 ‘어 이거 봤던 건데’ 하는 독자에 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기를. 각주 정리 1. 박승진, 『도큐멘테이션』, design studio loci, 2018. 2. 스마트 시대의 기기와 서비스를 주도적으로 사용하며 일과 삶의 영역을변화시키는 신인류를 뜻하는 말 3. 김모아, “조경가의 일과 일상 사이”, 『환경과조경』 2018년 4월호, p.140. 4. 『어반라이크』 40호, 어반북스, 2020, p.49.
[CODA] 멀리서 대화하기
긴 비 소식이 싫지만은 않았다. 지난해 마른장마에 바싹 타들어 간 할머니네 밭의 고춧대가 어른거렸으니까. 또 여름비만이 주는 순간들이 좋았다. 적당히 서늘한 온도로 콧속을 적시는 바람이라든가 화단 옆을 지날 때 나는 흙내 같은 것들. 그거면 엉망으로 젖어드는 바짓단과 걸을 때마다 물을 찍찍 뱉는 운동화쯤은 기꺼이 견딜 수 있었다. 그래서 우산이 뒤집혀 비를 흠뻑 얻어맞고도 그럴 수도 있다고 웃어넘기다, 무심코 들여다본 휴대폰 속 뉴스에 당황했다. 여름이면 곧잘 놀러 갔던 항구 도시가 빗물에 잠기고 있었다. 캐리어를 들고 낑낑대며 오르내렸던 지하철역 계단이 흙탕물 폭포로 변한 모습을 먼 나라의 풍경처럼 지켜봤다. 간판이 나뒹굴고, 산이 무너지고, 차량이 흙더미에 깔렸다는 이야기가 꼭 시차가 큰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듣는 것처럼 드문드문 이어졌다. 괴상했다. 분명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 곳곳에 머무는 이들을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시대인 줄 알았는데. 열차를 타고 몇 시간만 달리면 도착할 곳이 까마득히 아득하게 느껴졌다. 폭우 관련 뉴스를 보기 위해 손가락으로 액정을 두들기며 평온한 온라인 세계를 누비다 우리를 잇고 있는 이 얄팍한 연결망을 다시 생각해봤다. COVID-19로 촉발된 언컨택트(uncontact)에 대해서도. 두 해 전부터 ‘라이프 트렌드’ 시리즈로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문화 동향을 예리하게 관측해온 김용섭은 언컨택트를 “불편한 소통보다 편리한 단절을 꿈꾸는 현대인의 욕망”1이라 설명한다. 이제 사람들은 “끈끈하게 스킨십하거나 만취하지 않아도 충분히 관계를 형성하는 시대”2를 원하고 “언컨택트는 우리가 가진 활동성을 더 확장시켜주고, 우리의 자유를 더 보장하기 위한 진화 화두”이며 “비대면의 위상이 높아지는 계기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욕망의 문제”라는 것.3 무조건적 단절이 아니라 직접 만나지 않아도 소통에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언컨택트의 핵심이라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얼마 전 진행한 ‘제36기 환경과조경 통신원 랜선 간담회’ 얘기다. 따스한 봄에 만나려던 계획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조금 늦추어지나 했더니 한 계절이 끝나도록 거듭 약속을 미루게 만들었다. 언제까지 가느다란 가능성에 기대어 있을 수는 없어서 큰맘 먹고 온라인 형식의 간담회를 기획했다.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질문도 주고받아야 하니 줌 화상회의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마이크를 차고,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모니터만 놓으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선 생각보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없었다. 거대한 장비들이 꽤 많은 자리를 차지했고, 카메라 시야를 가리지 않는 범위에서 동선을 짜다 보니 오히려 무대가 좁아졌다. 음향 역시 문제였다. 크지 않은 세미나실에서 마이크를 사용하니 하울링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스피커에서 빠져나온 소리가 다시 마이크로 들어가지 않도록 때에 맞춰 스피커를 껐다 켜기를 반복해야 했다. 즉 사회자와 발표자가 마이크를 쓸 때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침묵 속에서 기사 쓰기의 기초에 대해 설명하다 모니터 속 60여 쌍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의 심정이란. 같은 공간에 있지 않다는 점은 생각보다 많은 감각을 앗아갔다. 학생들이 집중을 하고 있는지는 둘째 치고, 내 말이 이해는 되는지 혹 이야기가 지루하지는 않은지 분위기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이런 불안감이 염소 울음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드러날까봐 애꿎은 생수병만 열심히 비워댔다. 처음이라 여러 부분에서 어색했을 텐데도 귀 기울여준 학생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한다. 아직 서툴고 낯설지만 이 모든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니까. 대신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조금 더 마음을 쓰기로 다짐해봤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소통은 쉽게 누군가를 소외시키곤 하니까. 더불어 전국의 의미 있는 소식들이, 또 작지만 가치 있는 공간들이 알려지지 못한 채 잊히지 않도록 좀 더 바삐 눈을 굴려봐야겠다. 각주 정리 1. 김용섭, 『언컨택트』, 퍼블리온, 2020. 2. 같은 책, pp.70~71. 3. 같은 책, pp.86~87.
감각적인 휴게 시설물 ‘문 오아시스’
토인퍼니싱(Toin Furnishing)은 토인디자인의 실용주의 디자인 브랜드로,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실내 가구의 개념을 외부까지 확장한다. 도시 환경과 어우러져 이용자에게 편리함을 선사하는 시설물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티 하우스와 퍼걸러 같은 복합 휴게 시설물부터 자전거 보관대, 벤치, 쓰레기 집적소 등 일상에 꼭 필요한 편의 시설물을 통해 디자인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최근 출시된 ‘문 오아시스(Moon Oasis)’는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원형의 입구가 특징적인 휴게 시설물이다.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휴식을 즐기는 낭만에서 모티브를 얻어, 세련된 디자인의 티 하우스로 재탄생시켰다. 이용자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입구에 미기후를 조절하고 미세 먼지를 저감할 수 있는 미스트 분사 장치를 설치했다. 더불어 냉난방 시설, USB 전원 포트, 다용도 테이블 등을 갖추고 있어 이용자들의 다양한 활동을 수용한다. 측면부는 폴딩 도어로 구성되어 필요에 따라 창을 열어 실외까지 공간을 확장해 이용할 수 있으며, 내부 조명이 있어 야간에도 안전하다. TEL. 02-533-3720 WEB. www.toinp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