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을 도시화하라
지난 5개월간의 연재에서 한국 도시화 50년의 문제의식과 현황, 메커니즘을 살펴보았다. 이제 한국 도시화 50년의 구체적 공간 사례를 시대별로 탐구한다. 첫 번째 사례로 1970년대 공간의 탄생에 대해 농촌의 도시화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를 위해 농촌과 농촌의 도시화에 대한 기본적 질문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농촌은 과연 무엇이며, 농촌의 도시화는 어떠한 변화와 관련되어 있을까?” 농촌은 도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삶터, 일터, 쉼터 등이 융합되어 있는 마을, 즉 물리적 정주 환경을 기본 단위로 구성된다. 따라서 농촌의 도시화는 단순히 마을의 물리적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의 생활 변화, 농업의 경제적 의존 변화, 자연자원 관리의 변화 등 여러 사회생태적 변화와 긴밀하게 연관된다.
1970년대 농촌의 도시화를 한반도의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보면, 전통적인 농촌·농경 사회가 도시·산업 사회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농촌 지역의 문명사적 전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문명사적 전환은 한반도 최초의 농경 시점까지 소급해 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 이전부터 유지, 진화, 발전되어 온 정주 환경의 물리적·사회생태적 변화라고 규정할 수 있다.1 다시 말해 1970년대 농촌의 도시화는 풍수 사상, 배산임수, 씨족 마을 등 전통 마을의 구성 원리에 따라 형성된 농촌 마을의 근대화 과정이다. 이 중심에는 ‘새마을운동’이 있었으며,2 ‘새로운 도시만들기’를 향한 정부 주도의 도시화에 따라 전국의 모든 농촌 마을에서 대규모의 물리적 변화가 일시에 일어났다.
한국의 정부 주도 도시화와 대규모 물리적 개발은 1960년대 계획 국가의 형성과 함께 시작됐으며, 1960년대에는 특정 지역 개발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이, 1970년대에는 국토종합개발계획의 토대 하에 본격적인 국토 개발이 추진됐다. 이와 같은 도시화 맥락에서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정부 주도로 추진됐다. 1972년 내무부의 새마을농촌건설계획 보고서의 첫 페이지는 당시의 도시화를 향한 열망적 선언을 강렬하게 드러낸다.3 이에 따르면 기존의 전통적인 농촌의 취락과 기반은 개조와 개벽의 대상이며, 1980년대의 선진화된 농촌을 목표로 농촌 정주 환경의 도시 형태 형성 및 도시 성격화를 추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새마을운동에서 보이는 농촌의 도시화는 한국만의 일은 아니며, 근대 산업 국가로 진입하며 직면하게 되는 도시화 과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새마을운동의 시작과 경과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정부 주도의 농촌 개발 또는 농촌 근대화 운동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새마을운동이 처음부터 중앙 정부 주도로 체계적으로 추진된 것은 아니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에 새마을가꾸기사업으로 실험적으로 시행됐으며, 197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새마을운동이라는 현재의 명칭을 사용하게 됐다. 새마을운동은 농촌 개발이라는 표면적 이유뿐만 아니라 쌍용양회의 시멘트 과잉 생산, 박정희 정부의 정치적 기반 유지 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원인이 되어 시작됐다. 특히 박정희 정부는 1969년 삼선개헌 이후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신에게 큰 지지를 보이는 농촌을 안정적인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야 했다.
이에 따라 중앙 정부는 1970년 전국 33,267개의 마을 각각에 시멘트 335포대와 철근을 무상으로 제공해 시멘트와 철근의 자유롭고 효율적인 활용을 유도했다. 그 결과는 중앙 정부의 기대를 훨씬 넘어선 것이었으며, 중앙 정부는 이같은 성공에 고무되어 향후 새마을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1971년에 이르러 마을 조림, 진입로 확장, 소하천 정비, 퇴비장 만들기, 소류지 준설, 관정 보수, 하수구 정비, 공동 우물, 빨래터 만들기, 쥐 잡기의 10대 새마을가꾸기사업을 지정해 추진했다. 새마을운동은 초기 실험의 성공에 따라 기반 조성(1971~1973), 사업 확산(1974~1976), 사업 심화(1977~1981)의 단계를 거쳐 급속도로 확대되어 추진됐다.4 결과적으로 새마을운동은 기초 환경 개선 위주에서 점차 농가 소득 증대의 방향으로 전환됐으며, 농촌을 벗어나 도시, 공장, 직장, 학교 등으로 점차 확대됐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4호(2019년 6월호) 수록본 일부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 중국의 쓰촨 대학교, 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건축,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