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평창올림픽
2018년은 한반도에 새로운 물결이 휘몰아친 해다. 베트남에서의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조금 상황이 달라졌지만,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시작되어 올 초까지 이어져 온 남북 화해의 흐름은 한반도 혹은 적어도 한국에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 정책의 성과로 북을 방문해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던 2000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당시의 분위기는 조금 더 통일에 대한 염원이 가득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하더라도 통일은 한국인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하나의 대전제였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떠나, 국민들은 북한을 이해하기보다는 북한과 통일된 한민족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정치적 논의를 즐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 20년이 흐르고 북한에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논의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두 나라가 정치적 통합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닌 북한 사회의 변화와 자본화, 이러한 변화에 따른 한국과의 교류 가능성, 한국의 경제 성장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즉 한국인들이 진정으로 북한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북한 도시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여 년간 북한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외부 강연을 다녔지만, 작년 한 해처럼 청중들이 북한의 도시, 더 나아가서는 북한의 부동산투자 가능성에 대해 궁금해한 적은 없었다. 이전에는 대부분의 질문이 “평양은 전기가 잘 안 들 어온다던데 엘리베이터는 작동하나요?” 혹은 “어떠한 방식으로 통일이 돼야 할까요?” 하는 식이었다. 강연 내용과는 별개로 북한에 대한 피상적 호기심에 근거한 질문들이다. 하지만 최근 강연에서는 많은 변화를 느낀다. 북한에 새로운 도시 모델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평양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과연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현상일까, 북한에 돈주(북한의 신흥 자본가)가 많아졌다는데 그들을 통해 북한 부동산에 투자하는 중국인이나 외국인은 없는가 등 북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고 깊어진 질문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 덕분인지 더 많은 사람이 북한의 도시와 도시 공간에 대해 알고자 하기도 한다. 사회를 알기 위해서는 도시를 알아야 하고, 또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 사회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도시의 핵심 공간, 광장
우리가 북한의 도시 혹은 평양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밟아야 하는 과정은 김일성광장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이 도시 공간을 충분히 이해해야만 그들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사회를 이해해야만 건설적인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필자는 “우리가 김일성광장을 객관화해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곤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건축과 도시를 다루는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히 객관화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믿고 있다.
흔히 그리스의 아고라(agora)나 로마의 포럼(forum)에서 광장의 원형을 찾곤 한다. 이는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도시 공간이었다. 실제로 아고라는 그리스어로 ‘모이는 곳’이라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 시장을 형성하는 곳이었으며 지도자의 연설을 듣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스어 agorázō는 “I shop나는 구매한다”을 의미하고, agoreúō는 “I speak in public나는 공개 석상에서 이야기한다”을 뜻하는데, 두 단어 모두 아고라가 그 어원이다.1 즉 광장이라는 도시 공간에는 두 가지의 매우 중요한 성격이 함축되어 있는데, 시장과 공공이 그것이 다. 특히 시장은 도시의 근본적 기능이기도 하다. 많은 전문가는 생산한 물품을 거래할 공간의 필요성이 도시 발생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그만큼 시장은 도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기능이며 도시의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또한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아고라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로마의 포럼처럼 아고라는 대중이 집결해 연설을 듣고 논쟁하고 토론하는 도시 공간이었다. 그리스의 정치를 발전시킨 물리적 공간 중 하나인 것이다. 렘 콜하스는 프랑스 혁명 등의 시민 혁명은 18세기 건축에서 나타난 발코니 덕분에 가능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혁명가 혹은 지도자가 3~4층 높이의 발코니에 올라 많은 대중을 상대로 연설할 수 없었다면, SNS는 물론 TV나 라디오도 없던 시절에 시민 혁명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과연 광화문광장이 없었다면 정치 민주화를 위한 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광장의 근원과 기능은 유럽 도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동아시아와는 달리 유럽의 광장은 교황이나 주교가 회중을 모으기 위한 공간, 왕이 군대를 집결시키거나 퍼레이드를 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유럽에서 기원한 사회주의 도시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듯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은 사회주의 도시 건설을 위한 ‘도시 디자인의 16가지 원칙(The Sixteen Principles of Urban Design)’을 발표했는데, 그중 여섯 번째 원칙은 다음과 같다. “도시의 중심지는 도시의 핵심 공간을 형성한다. 도심은 도시의 정치적 중심지다. 도심에는 중요한 정치적, 행정적, 문화적 장소가 자리한다. 도심의 광장에서는 정치 데모, 행진, 축제 등이 일어난다. 도심은 가장 중요하고 기념비적 건물로 구성되어야 하며, 도시 계획의 건축적 구성을 지배하고 도시의 건축적 실루엣을 결정해야 한다.”2이처럼 사회주의 도시에서는 도시의 중심성에 주목하고 광장의 기능을 강조했다. 상징적 건축물 등으로 구성되는 이 공간에서 정치적 집회나 행진, 축제를 위한 행사가 벌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회주의 도시가 유럽의 도시 문화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광장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이를 ‘사회주의화’했을까.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1. Sharon Boda, Trudy Ring, and Robert Salkin, eds., International Dictionary of Historic Places: Southern Europe, Routledge, 1996, p.66.
2.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center forms the veritable core of the city. The center of the city is the political center for its population. In the city center are the most important political, administrative and cultural sites. On the squares in the city center one might find political demonstrations, marches and popular celebrations held on festival days. The center of the city shall be composed of the most important and monumental buildings, dominating the architectural composition of the city plan and determining the architectural silhouette of the city.” Lothar Bolz, Von deutschem Bauen: Reden und Aufsatze, Berlin(Ost): Verlag der Nation, 1951, pp.32~52.
3. 김정희, 『도시건설』, 평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학원, 1953.
임동우는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도시설계전공 전임교수이며, 프라우드 건축사사무소 대표다. 2013년 뉴욕건축가 연맹의 젊은건축가상을 받았으며,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한국관의 참여 작가다.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평양전-평양살림의 총감독이었으며,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평양전의 총괄큐레이터를 맡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리닝 하우스(Leaning House), 이그레스 하우스(EEgress House), 투란단다사나 하우스(Tuladandasana House) 등이 있으며,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2011), 『북한도시 읽기』(2014), 『도시화 이후의 도시』(2018)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