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PREV 2019 Year NEXT           PREV 05 May NEXT

환경과조경 2019년 5월

정보
출간일
이매거진 가격 9,000

기사리스트

[에디토리얼] 북한 도시 읽기
작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고, 실시간 영상을 통해 전파된 평양의 도시 경관도 큰 화제를 낳았다. 우리의 상상과 달리 카메라에 잡힌 동시대 평양의 거리는 활기찼다. 고층 건물의 형태와 아파트의 색채가 화려하게 변모했다. 미래과학자거리와 려명거리에는 첨단 도시의 분위기가 감돌았고, 대동강과 풍성한 녹지를 품은 도시 풍경은 여유로웠다. 한반도에 불어온 봄바람은 북한의 도시, 경관, 건축에 대한 다양한 학술회의로 이어졌고 관련 서적이 연이어 출간되기도 했다. 지난 연말,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는 ‘영화로 보는 북한 도시와 경관’이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을 사흘에 걸쳐 개최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과 함께 북한 도시의 역사와 문화, 구조와 형태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환경과조경』은 5월호 특집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에 이미 오래전부터 북한의 도시, 건축, 조경을 탐사해 온 전문가들을 초대했다. 이번 기획이 평양과 북한 도시들에 대한 편견이나 환상을 바로 잡고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조경학 연구자들에게는 북한의 조경 문화와 도시 경관에 대한 탐색의 실마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적어도 이번 특집을 통해, 북한을 침체된 국내 건설 시장의 돌파구로만 여기는 ‘대박론’에 대한 교정의 계기가 마련되기를 소망한다. 북한의 도시계획과 도시 주거에 대한 일련의 논문을 발표해 온 정인하(한양대학교 교수)는 특집 원고에서 한국전쟁이 남긴 폐허 위에 수립된 평양복구계획, 모스크바에서 유학한 건축가 김정희가 펼친 사회주의 도시 마스터플랜의 이상, 1950년대의 평양 도시계획안, 1960년의 평양 도시총계획 등을 촘촘히 개괄한다. 그리고 사회주의 도시 평양의 구조, 직주근접의 토지 이용, 녹지 체계가 자본주의 도시의 그것과 확연히 구별되는 지점을 논의한다.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북한 도시 읽기』,『 도시화 이후의 도시』 등의 저작을 통해 북한 도시의 구성 환경을 생산, 녹지, 상징의 측면에서 탐구해 온 임동우(홍익대학교 교수, PRAUD 대표)는, 이번 원고에서 북한 도시의 핵심적 상징 공간인 광장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평양에 비해 그간 많이 연구되지 않은 청진, 함흥, 신의주, 원산의 특징을 직접 작성한 액소노메트릭axonometric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시장 경제 체제의 도입을 목전에 둔 사회주의 도시의 미래를 전망한다.1 최근 출간된『풍류의 류경, 공원의 평양』의 저자인 이선(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은 평양의 여러 공원의 모태가 된 명승고적을 살펴보고, 공원과 유원지의 형성 과정과 변천사를 개관한다. “편협한 시각을 거두고 북한을 입체적으로 조명할 때”라는 그의 시각에 눈길이 멈춘다. 『서울 평양 메가시티』와『 서울 평양 스마트시티』를 통해 한반도 광역경제권 네트워크를 구상한 바 있는 민경태(여시재 한반도미래팀장)는 사회주의 도시 평양의 미래 리모델링을 제안한다. 기존의 도시적 맥락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사회주의 도시 시스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도시 박물관’을 기획하면서 그는, 공간의 연결성을 향상시켜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상징적 공간을 재활용하여 관광 명소를 발굴하는 구상을 펼친다. 낙후된 시설을 재발견하는 평양 도시재생 프로젝트와 평양의 명소를 따라 걷는 올레길 코스를 제안하기도 한다. 북한 도시 특집 외에, 이번 5월호에는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스튜디오 테라 대표)의 근작 ‘서울시립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맘껏광장’, ‘숲 갤러리’를 싣는다. 최근의 ‘제주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설계 국제공모’ 당선작과 함께 이번 달의 근작들에서 그의 설계의 중심이 형태와 구성에서 관계와 구조로 옮겨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녹사평역 공공 미술 프로젝트의 하나로 설치된 ‘숲 갤러리’를 함께 둘러보고 그와 나눈 긴 대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싣는다. 그가 강조하는 “생태학적 상상력과 풍경의 디자인”이 한국 조경의 오늘을 점검하고 내일을 기획하는 키워드가 되기를 기대한다. 각주 1.최근 임동우는 1945년 이전 평양의 근대화 시기의 건축을 지도와 함께 자료화한 작업‘모던평양’(http://modernpyongyang.org)을 공개했다. 사회주의 도시로 재편되기 이전 평양의 근대 공간·건축 정보를 구글 API 기반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시각화한 ‘모던평양’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눈으로 평양을 재발견할 수 있다.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멀지 않지만 다가갈 수 없던 곳, 북한이 한층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 이후 이어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은 북한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며 들뜬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았지만, 머지않아 남북한이 경제, 문화, 예술 등 여러 방면에서 교류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된 남과 북의 단절은 상대에 대한 몰이해를 초래했고, 우리는 줄곧 왜곡된 상상에 기반해 북한의 모습을 그려왔다. 이번 기획은 북한의 수도 평양을 살펴봄으로써 북한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사회주의 체제와 이념이 고스란히 반영된 도시의 형성 과정과 변천사를 살피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넌지시 헤아려 보고자 한다. 나아가 평양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 넘치는 기획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해 본다. 북한의 도시 공간에 대한 탐사 없이 그들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다양한 필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북한 도시에 대한 시각을 확장하고 평양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흥미로운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진행 김모아, 윤정훈 디자인 팽선민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사회주의 도시, 평양
평양은 만주로부터 한반도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기 때문에,고구려 시대부터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손꼽히던 곳이다.특히 조선 시대에는 대동강과 보통강을 끼고서 네 겹의 성벽이 건설되었는데,석축으로 된 내성 내부에는 평안도 감영과 객사를 비롯한 주요 행정 및 군사 시설이 모여 있었다.내성의 규모도 다른 읍성에 비해 큰 편이어서6,000여 세대의 주민이 내성 안팎에서 상업과 군역에 종사하며 삶을 영위했다.그렇지만 개항 이후 성곽 도시로서의 평양은 급격하게 변모해 나갔다.경의선 철도가 외성을 관통하고,그 한가운데 평양역이 건설되었다.또한 내성의 일부가 허물리고 그 주위로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 거점이 들어섰다.숭실학교와 광성학교 등이 바로 이곳에 설립되어 학생들을 교육했다.평양은 해방 이전까지 한반도에서 기독교 세력이 가장 왕성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일제 식민지기 평양은 다른 한국의 도시들처럼 기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경의선 철도가 부설된 이후 조금씩 몰려오던 일본인들의 수는 1910년 강제 병합 이후로 일본 군대가 주둔하면서 급격히 늘어났다. 그들은 평양역 주변에 정착하여 일본인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평양은 내성 지역의 한국인 구역과 평양역을 중심으로 한 일본인 구역으로 이분되었다. 1920년대 평양부는 시구 개정을 실시하여 이 두 구역을 연결하고자 했으나, 분리된 도시 구조는 해방 전까지 해소되지 못한 채 유지되었다. 그렇지만 이같은 식민지기의 도시 구조는 한국전쟁 동안 도시가 완전히 초토화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오늘날 대동문과 모란봉 부근의 일부 성벽이 복원되어 과거의 흔적을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평양은 1,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는 고도이지만,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의 역사적 유적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고유한 도시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렸다. 하지만 전쟁이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고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면서, 전후에 북한 정권은 평양을 철저한 사회주의 도시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전후 복구와 도시계획 김일성은 전쟁 중이던 1951년 1일 평양복구계획을 수립할 것을 지시했고, 그해 5월 평양에 대한 최초의 도시계획안을 완성했다. 이 계획안은 건축가 김정희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김일성의 배려로 북한의 첫 번째 해외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모스크바에 있는 소련 건축 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났고, 한국 전쟁이 치열했던 1951년 1월에 귀국해 평양시 복구계획을 맡았다.11951년의 계획안에는 검게 칠해진 도시 블록과 도로망이 간단하게 그려져 있다. 이 계획안에 등장하는 가장 큰 특징은 김일성이 제시한 것으로, 첫째 일제 식민지기에 형성된 평양의 기형적인 시정하고, 둘째 광범한 근로 인민을 위한 문화 시설과 편의 봉사 시설을 갖춘 현대적인 도시로 복구 건설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2 이렇게 작성된 평양복구계획안으로 김일성은 1952년 5월 모란봉지하극장에서 전람회를 개최했다. 여기에는 대동강 유보도 계획안, 도심 중심부 형성안, 고층 살림집과 대상 공공건물 설계도가 함께 전시되었다.3 이 전람회를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1953년에 내각 결정 제125호 ‘평양시 복구재건에 관하여’를 발표했다. 이는 전후 평양복구계획의 기본 방향을 결정하고 있는데, 주요 내용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도시의 기본을 보존하면서 주택, 산업 및 교통의 옳은 배치와 도시 주민 생활의 정상적 건강 조건을 보장하는 주택 구역을 옳게 조직하는 것이다. 대동강을 도시의 축으로 설정하며, 대동강을 따라 구릉 기복 조건에 어울리게 건축물을 배치하며, 김일성광장을 남산 동쪽 기슭에 건설하며, 대동강과 평행되면서 하류에 공장, 기업소를 배치하며, 주택 지구를 녹화하고 도시 주변에 녹지대를 형성할 것 등이다.”4이는 1953년에 작성된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에 반영되어 있다. 1950년대 중반에 등장한 평양 도시계획안은 기존의 방향을 충족시키면서 몇 가지 새로운 제안을 담고 있다. 우선 김일성광장에서 시작된 도시 축을 대동강 좌안까지 확장해 더욱 강조되도록 했다. 대동강을 평양 도시계획의 중심 요소로 포함하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이를 통해 도시 축을 명료하게 구성한 것이다....(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이왕기, 『북한 건축 또 하나의 우리 모습』, 서울: 서울포럼, 2000, p.130. 2. 김일성, 『김일성 저작집』 제6권, 평양: 조선로동당, 1980, p.280. 3. 평양건설전사 편찬위원회 편, 『평양건설전사 2』, 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7, p.144. 4. 리화선, 『조선건축사 2』, 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9, p.104. 정인하는 한양대학교 건축학부의 건축 역사 및 이론 담당 교수다. 1987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프랑스 파리 제1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 한국에 귀국한 이후 동아시아 건축 및 도시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며, 이와 관련된 다수의 논문과 저작물을 발표했다.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북한 도시의 축, 광장과 상징 공간
포스트 평창올림픽 2018년은 한반도에 새로운 물결이 휘몰아친 해다. 베트남에서의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조금 상황이 달라졌지만,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시작되어 올 초까지 이어져 온 남북 화해의 흐름은 한반도 혹은 적어도 한국에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의 성과로 북을 방문해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던 2000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당시의 분위기는 조금 더 통일에 대한 염원이 가득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하더라도 통일은 한국인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하나의 대전제였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떠나, 국민들은 북한을 이해하기보다는 북한과 통일된 한민족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정치적 논의를 즐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 20년이 흐르고 북한에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논의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두 나라가 정치적 통합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닌 북한 사회의 변화와 자본화, 이러한 변화에 따른 한국과의 교류 가능성, 한국의 경제 성장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즉 한국인들이 진정으로 북한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북한 도시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여 년간 북한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외부 강연을 다녔지만, 작년 한 해처럼 청중들이 북한의 도시, 더 나아가서는 북한의 부동산투자 가능성에 대해 궁금해한 적은 없었다. 이전에는 대부분의 질문이 “평양은 전기가 잘 안 들 어온다던데 엘리베이터는 작동하나요?” 혹은 “어떠한 방식으로 통일이 돼야 할까요?” 하는 식이었다. 강연 내용과는 별개로 북한에 대한 피상적 호기심에 근거한 질문들이다. 하지만 최근 강연에서는 많은 변화를 느낀다. 북한에 새로운 도시 모델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평양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과연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현상일까, 북한에 돈주(북한의 신흥 자본가)가 많아졌다는데 그들을 통해 북한 부동산에 투자하는 중국인이나 외국인은 없는가 등 북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고 깊어진 질문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 덕분인지 더 많은 사람이 북한의 도시와 도시 공간에 대해 알고자 하기도 한다. 사회를 알기 위해서는 도시를 알아야 하고, 또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 사회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도시의 핵심 공간, 광장 우리가 북한의 도시 혹은 평양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밟아야 하는 과정은 김일성광장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이 도시 공간을 충분히 이해해야만 그들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사회를 이해해야만 건설적인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필자는 “우리가 김일성광장을 객관화해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곤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건축과 도시를 다루는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히 객관화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믿고 있다. 흔히 그리스의 아고라(agora)나 로마의 포럼(forum)에서 광장의 원형을 찾곤 한다. 이는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도시 공간이었다. 실제로 아고라는 그리스어로 ‘모이는 곳’이라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 시장을 형성하는 곳이었으며 지도자의 연설을 듣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스어 agorázō는 “I shop나는 구매한다”을 의미하고, agoreúō는 “I speak in public나는 공개 석상에서 이야기한다”을 뜻하는데, 두 단어 모두 아고라가 그 어원이다.1 즉 광장이라는 도시 공간에는 두 가지의 매우 중요한 성격이 함축되어 있는데, 시장과 공공이 그것이 다. 특히 시장은 도시의 근본적 기능이기도 하다. 많은 전문가는 생산한 물품을 거래할 공간의 필요성이 도시 발생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그만큼 시장은 도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기능이며 도시의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또한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아고라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로마의 포럼처럼 아고라는 대중이 집결해 연설을 듣고 논쟁하고 토론하는 도시 공간이었다. 그리스의 정치를 발전시킨 물리적 공간 중 하나인 것이다. 렘 콜하스는 프랑스 혁명 등의 시민 혁명은 18세기 건축에서 나타난 발코니 덕분에 가능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혁명가 혹은 지도자가 3~4층 높이의 발코니에 올라 많은 대중을 상대로 연설할 수 없었다면, SNS는 물론 TV나 라디오도 없던 시절에 시민 혁명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과연 광화문광장이 없었다면 정치 민주화를 위한 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광장의 근원과 기능은 유럽 도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동아시아와는 달리 유럽의 광장은 교황이나 주교가 회중을 모으기 위한 공간, 왕이 군대를 집결시키거나 퍼레이드를 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유럽에서 기원한 사회주의 도시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듯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은 사회주의 도시 건설을 위한 ‘도시 디자인의 16가지 원칙(The Sixteen Principles of Urban Design)’을 발표했는데, 그중 여섯 번째 원칙은 다음과 같다. “도시의 중심지는 도시의 핵심 공간을 형성한다. 도심은 도시의 정치적 중심지다. 도심에는 중요한 정치적, 행정적, 문화적 장소가 자리한다. 도심의 광장에서는 정치 데모, 행진, 축제 등이 일어난다. 도심은 가장 중요하고 기념비적 건물로 구성되어야 하며, 도시 계획의 건축적 구성을 지배하고 도시의 건축적 실루엣을 결정해야 한다.”2이처럼 사회주의 도시에서는 도시의 중심성에 주목하고 광장의 기능을 강조했다. 상징적 건축물 등으로 구성되는 이 공간에서 정치적 집회나 행진, 축제를 위한 행사가 벌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회주의 도시가 유럽의 도시 문화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광장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이를 ‘사회주의화’했을까.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Sharon Boda, Trudy Ring, and Robert Salkin, eds., International Dictionary of Historic Places: Southern Europe, Routledge, 1996, p.66. 2.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center forms the veritable core of the city. The center of the city is the political center for its population. In the city center are the most important political, administrative and cultural sites. On the squares in the city center one might find political demonstrations, marches and popular celebrations held on festival days. The center of the city shall be composed of the most important and monumental buildings, dominating the architectural composition of the city plan and determining the architectural silhouette of the city.” Lothar Bolz, Von deutschem Bauen: Reden und Aufsatze, Berlin(Ost): Verlag der Nation, 1951, pp.32~52. 3. 김정희, 『도시건설』, 평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학원, 1953. 임동우는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도시설계전공 전임교수이며, 프라우드 건축사사무소 대표다. 2013년 뉴욕건축가 연맹의 젊은건축가상을 받았으며,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한국관의 참여 작가다.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평양전-평양살림의 총감독이었으며,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평양전의 총괄큐레이터를 맡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리닝 하우스(Leaning House), 이그레스 하우스(EEgress House), 투란단다사나 하우스(Tuladandasana House) 등이 있으며,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2011), 『북한도시 읽기』(2014), 『도시화 이후의 도시』(2018) 등을 펴냈다.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평양의 오아시스, 공원과 유원지
핵, 플루토늄, ICBM…. 우리나라 국민만큼 이러한 단어에 관한 정보를 자주 듣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북한 관련 뉴스 기사는 대부분 핵과 관련된 내용이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은 우리 국가와 국민의 안위에 직결되는 것이고, 정치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핵이나 미사일, 삼대 세습 등 정치적 주제를 제외하고는 북한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피자와 스파게티만 먹어보고 이탈리아 음식 전체를 평가할 수 없는 것처럼, 핵무기와 미사일만으로는 북한을 다 알 수 없다. 작년 봄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이후, 평양냉면이 다시금 인기몰이를 했다. 평양냉면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음식이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평양이 왜 냉면으로 유명해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다.『조선의 민속전통』은 평양냉면, 평양온반, 평양숭어국과 어복쟁반 등을 평양의 대표 음식으로 소개하는데, 이는 모두 주변 지역에서 나온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이다. 조선 후기의 풍속과 연중행사를 정리한 『동국세시기』는 메밀로 만든 냉면 중에는 평안도의 면이 가장 좋다고 했고, 일제 강점기의 조사에 따르면 평안남도는 좁쌀과 수수, 메밀 등을 전국에서 가장 많이 심는 지역이다. 지역의 자연환경으로 인해 곡물로 만든 음식이 평양의 대표 음식이 된 것이다. 우리와 같은 자연환경과 민속 문화를 가진 북한의 일상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생활 속 벌어지는 일과 상황이 북한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북한에도 최고급 명품을 파는 호화 백화점이 있으며, 부동산 투기가 성행하고 미세 먼지로 골머리를 앓아 공기 정화 소독기(공기 청정기)의 개발과 판매가 늘고 있다. 지식 분야도 다르지 않다. 북한의 최고 대학이라 일컫는 김일성대학교의 논문집을 살펴보면, 북한 산천의 생태 환경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자부터 최첨단의 기술력을 쌓고자 애를 쓰는 기술공학자까지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자신의 연구 분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그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우리는 그간 북한을 편협한 시각으로만 바라봤다. 정치적 색안경을 쓰고 북한을 바라보면 단색이지만, 색안경을 벗으면 다채로운 빛깔의 속살을 볼 수 있다. 최근 남북 관계와 주변국들의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서 평양에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나 이념의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념적 색깔을 걷어낸다면, 평양의 새로운 면모를 찾아낼 수도 있다. 평양이라는 도시에 중첩된 여러 층위를 한 꺼풀씩 벗겨내며 평양을, 그리고 북한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온 것이다. 북한의 수도, 평양 수년 전 중국의 칭다오 시민을 대상으로 베이징, 도쿄, 서울, 평양 등 네 도시의 관광 이미지를 비교 분석한 논문1이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평양은 다른 세 도시에 비해 인지적 이미지와정서적 이미지2가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 논문은 중국 시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기 때문에 평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객관적인 평가라 할 수 있다. 물론 논문의 결과가 평양의 현재 이미지에 관한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평가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때 중국인들이 평양을 ‘천하제일강산’이라 칭했지만 이제는 그 평이 무색해졌다. 북한이 오랫동안 자초해온 고립이 도시의 모습도 바꿔 놓았다. 소프트웨어가 바뀌니 하드웨어도 바뀐 셈이다. 평양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역사 문화가 중첩되면서 도시의 성격과 품위도 바뀌었다. 하지만 평양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문화의 층위는 매우 두텁다. 평양은 한 나라의 도읍지로 번성했으며 물산이 풍부한 상업 도시로도 유명했다. 또 명승고적이 많고 풍류 넘치는 도시로서 누구나 한 번쯤은 유람하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근래에는 우리와 체제와 이념이 달라 끊임없이 부딪혔으나 누군가에게는 꿈에 그리는 그리운 고향 땅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평양은 이념에 갇힌 도시였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의 삼대 세습에 넌더리를 내고 그들의 체제와 이념에만 붙잡혀 정작 그들이 사는 도시라는 물리적 공간에는 관심이 없었다. 북한의 주민이 먹고 일하며 쉬고 잠드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통제와 구속이 많은 평양 시민에게 공원은 일종의 오아시스다. 평양 시민들이 여가를 보내는 장소인 공원을 통해 그들이 어찌 살아왔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에는 ‘평화와 화해’라는 거대 담론이 필요치 않다. 소시민들에게는 이념보다 일상의 삶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남려영, “북경 서울 도쿄 평양 관광이미지 비교분석 연구:중국 칭다오 시민을 대상으로”,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2.이 연구에서 인지적 이미지는 관광지 자체의 매력 혹은 자원 등 이미지를 구성하는 일련의 속성에 대한 평가이며,정서적 이미지는 전체적이거나 구체적인 속성을 평가함으로써 얻게 되는 정서적 반응을 의미한다. 이선은 충남대학교 임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식생 및 입지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자연과학자로서 인문학과의 접점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한국전통조경식재: 우리와 함께 살아 온 나무와 꽃』(2006), 『한국의 자연유산』(2009), 『우리 자연유산 이야기』(2012), 『풍류의 류경, 공원의 평양』(2018) 등이 있다. 최근에는 『정원사를 위한 라틴어 수업』(2019)을 번역했다.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살아 있는 도시 박물관 평양의 미래
도시에는 역사적 흔적이 시간 순서대로 쌓여 있다. 북한의 수도 평양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판단과 관계없이 도시는 그 자체로 시간을 담은 물리적 공간이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한다. 비록 다른 이념적 기반 위에 세워져 그 모습이 낯설고 때로는 거부감이 느껴지더라도 말이다. 언젠가 평양의 도시와 환경에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모든 것을 새롭게 구축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역사적 기록물인 기존 도시 구조를 유지하되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방향으로 도시 공간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사회주의 도시계획으로 구현된 평양은 자본주의 도시 서울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역사의 일부이자 자산이다. 특히 평양은 사회주의 도시 중에서도 이상적인 모델로 여겨진다. 서울과 대비되는 평양의 특성은 외국 관광객이 보기에 매력적일 수 있으며, 두 도시를 함께 방문하는 것은 흥미로운 체험이 될 것이다. 평양은 다른 자본주의 도시와 비교하면 파격적인 공간 구조로 이루어졌는데, 어떤 부분은 도시계획 측면에서 상당한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 북한의 지구 단위 계획, 풍부한 공원 녹지, 상징적 공간, 경관 축 등을 잘 발전시켜 활용하면 도시를 보다 풍부하게 경험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평양 본연의 도시적 맥락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사회주의 체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도시 박물관’으로서 평양을 제안한다. 공간의 연결성 향상: 도시에 생명력 불어넣기 도시 공간의 분절은 지역 간 활발한 교류를 막는다. 도시에 피를 통하게 하고 생명력을불어넣기 위해서는 단절된 공간을 서로 연결해야 한다. 도시 내부 네트워크의 연결성을 향상해 공간 간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공간의 단절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언덕이나 하천 등 자연 지형지물로 인해 분절되기도 하며, 도로나 철도 등의 교통망으로 지역이 나뉘기도 한다. 평양에서 눈에 띄는 단절의 원인으로는 철도망을 들 수 있다. 일제 식민지기부터 철도는 주요 산업 시설을 잇는 중요 교통망이었기 때문에 평양 시내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 평양역을 중심으로 동쪽은 중요 정부 기관이 밀집된 중구역이고, 서쪽은 산업 시설이 모여 있는 평천구역이다. 철로에 의해 분절된 두 공간은 그 성격도 매우 다르다. 서울 연남동의 경의선 숲길에 가보면 철로가 놓였던 공간이 공원화되면서 주변 환경이 매력적으로 전환된 것을 볼 수 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로를 지하화하고 지상에 선형 공원을 조성했을 뿐인데, 가로 주변으로 활력이 생겨나 이전과는 다른 명소로 탈바꿈했다. 이같이 공간의 연결성 강화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도심의 인구가 밀집된 지역일 경우 그 효용 가치는 더욱 크다. 평양역을 지나는 철로는 남북 방향으로 길게 뻗어 동서 간 단절을 심화한다. 만약 역 주변의 철도 차량 기지를 외곽으로 이전하고 고속 철도를 지하에 새로 건설한다면, 이 지역의 공간적 특성을 크게 바꿀 수 있다. 평양역과 주변 공간을 포함하는 재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주거, 상업, 문화, 컨벤션 시설 등을 갖춘 복합 지구로 개발하는 것이다. 또한 평양은 강의 도시라 할 수 있다. 넓은 대동강이 S자 모양으로 평양 시내를 관통하며, 지류인 보통강도 도심을 휘감고 있다. 대동강 서편, 보통강 동편은 고구려 시대의 평양성(북한국보 제1호)이 위치한 지역이며 현재도 평양의 중심이다. 따라서 평양 시내에는 강에 인접한 공간이 많으며, 이러한 수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도시 경관은 물론 사람들의 공간 체험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민경태는 연세대학교에서 건축공학 학사 및 도시설계 석사,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MBA 과정을 밟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경제·IT 전공으로 북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에서 신기술 소싱, 기술벤처 투자, 해외 공공 기관 협력 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재단법인 여시재에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 평양 메가시티』(2014), 『서울 평양 스마트시티』(2018) 등이 있다.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더 읽을거리, 더 볼거리
1. 『도시화 이후의 도시』임동우, 스리체어스, 2018. 대부분의 도시가 성장을 끝낸 탈산업시대, 우리는 앞으로 어떤 도시를 지향해야 할까. 임동우는 경제 성장과 효율의 논리로만 도시를 바라보는 한국 도시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미래 도시에 대한 힌트를 평양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공동체 중심의 삶을 꾸리는 사회주의 도시에 우리가 배울 가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도시를 편견 없이, 더 나은 삶의 여건을 보장하는 유기적 도시 공간으로 살피다보면 그가 제안한 ‘생산에 기반을 둔 커뮤니티네트워크’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 『북한 도시 읽기』임동우·라파엘 루나 엮음, 담디, 2014. 도시와 건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포괄적이고 현실적으로 살필 수 있는 바로미터다. 이 책은 북한의 27개 도시와 8개의 주요 도시, 70여 개의 건축물을 분석해 상세한 다이어그램과 도면으로 보여준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과 소련의 접경 지역, 비무장 지대의 자연환경, 북한 도시 네트워크 등 국내외 전문가와 학자가 구축한 객관적 자료를 통해 북한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북한 도시의 미래에 대한 시나리오를 써 내려 간 ‘미래도시 제안’ 파트에서는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도시, 건축 전문가들의 발칙한 상상력을 맛볼 수 있다. 3. 『북한, 도시로 읽다』전상인, 통일부 통일교육원, 2015. 프랑스 역사학자인 페르낭 브로델은 “도시는 변압기와 같다”고 이야기했다. 역사적으로 도시가 사회 변동의 온상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상인은 북한의 도시를 이해함으로써 북한 체제의 특성과 변화를 파악하고자 했다. 북한의 수도인 평양, 북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함흥, 역사 도시이자 남북 경제 협력의 무대인 개성, 평양 주변의 신흥 위성 도시인 평성의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북한의 과거와 현재를 살핀다. 또한 도시화 가속 현상 등 다양한 도시 문제를 다루며 북한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준다. 이 책은 북한의 실상을 좀 더 심층적으로 탐구하고자 마련된 통일교육원의 ‘주제가 있는 통일강좌’ 46번째 시리즈로 발간되었으며, 통일부 홈페이지 북한자료센터에서 무료로 열람 가능하다(https://unibook.unikorea.go.kr/). 4. 『서울 평양 스마트시티』민경태, 미래의창, 2018. 『서울 평양 스마트시티』는 남북 동반 경제 성장을 위해 ‘한반도 8대 광역경제권’을 만들자는 도발적 구상을 제안한다. 구상안에는 최첨단 도시 네트워크로 연결된 경제 공동체를 기반으로 북한을 한반도 4차 산업혁명의 출발지로 만드는 전략이 담겨 있다. 인천공항과 해주, 김포, 강화, 파주, 서울을 포함한 ‘해주-개성-인천 벨트’는 경제특구가 되고, 다양한 자연 경관을 지닌 지역을 연계한 ‘원산-금강산-양양 벨트’는 관광 도시로 거듭난다. 개성공단 모델에서 벗어난 새로운 남북 경제의 패러다임이 궁금한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5. 『조선자본주의공화국』다니엘 튜더·제임스 피어슨, 전병근 역, 비아북, 2017. 우리는 핵, 미사일 등의 정치적 문제에 가려진 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간과해왔다. 하지만 북한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정치적, 기계적 이미지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에 집중해야 한다. 이 책은 여전히 견고한 3대 세습 체제와 국가의 통제 속에서도 자본주의로 인해 변화한 북한 주민의 생활 양식에 주목한다. 다양한 정보원을 토대로 한 폭넓은 취재를 통해 활력이 넘치는 북한 사회의 면면을 만날 수 있다.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서울시립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유청오 나는 서울시립대학교의 구성원이다. 캠퍼스를 대상지로 한 수업도 여러 해 진행했고, 대학 시설과의 조경 담당 주무관과 캠퍼스에 대한 소소한 얘기도 나눈다. 시민들이 공원으로서 찾는 100년 된 대학 캠퍼스에서 조경을 가르치고 고민하는 일은 교수이자 조경가인 내게 더할 나위 없는 특권이다. 우리 대학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건축 설계공모가 진행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관심을 둘 이유가 없는, 교내에서 계속되는 여느 공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당선 팀의 건축가가 찾아왔다. 조경설계 파트너를 찾는 과정에서, 이 학교에 있는 사람과 함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잘해봤자 본전이고 잘못하면 두고두고 애를 먹을 터라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무릇 학교 캠퍼스는 이래야 한다며” 떠들어 온 말을 수습하고 점검해야겠다는 책무감이 부담감을 이겼다. 자연 경관 끌어들이기, 다양한 활동 담기 조경가에게 건축물에 딸린 외부 공간은 매력적이지 않은 대상일 수 있다. 대개의 경우 건물 설계가 끝난 후 빈 공간을 채우는 수동적 역할만 허락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건축가의 디자인적 관용이라는 엄격한 제어 장치가 작동한다. 하지만 다른 유형의 설계와 달리 독특한 재미를 주기도 하는데, 건물과 건물 사이, 건물의 구조가 만들어낸 빈 공간을 해석하는 일이 그것이다. 공모 당선안을 살펴보니 옥상 레벨에서 건물이 세 개의 매스로 분리되며, 그 사이 중정형 공간에 주변의 자연 경관을 끌어들이고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마당이 마련되어 있었다. 마당은 옥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중앙 보행로와 연결되는 캠퍼스의 주요 외부 공간과 수직적으로는 분리되지만, 캠퍼스 안팎의 공간과 자연스럽게 이어져 하나의 흐름 속에 위치하게 된다. 건물 내부 프로그램과 학내의 다양한 활동을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는, 나아가 캠퍼스와 마을이 즐겁게 만나는 시각적, 공간적 경계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스튜디오 테라(김아연, 허대영, 안형주) 건축 설계 최문규, 가아건축사사무소 시공 금호산업 조경 시공 영림산업 조경 감리 삼우씨엠건축사사무소(황장아, 김만수) 공사 감독 서울시립대학교 시설과(최한수, 김지훈) 위치 서울시 동대문구 서울시립대로 163 부지 면적11,794.28㎡ 연면적20,782.20㎡ 건축 면적5,244.33㎡ 조경 면적5,324.21㎡ 완공2018. 8.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 사이를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내외 정원, 놀이터, 공원, 캠퍼스, 주거 단지 등 도시 속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으며 동시에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한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스튜디오 테라 대표다.
맘껏광장
권력과 공간, 권리와 광장 우리 시대는 광장의 힘을 목격했다. 프랑크 만쿠조(Franco Mancuso)가 광장을 “대중에 의해 정의되는 유일한 물리적 공간”이라고 정의한 것처럼,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발언하려는 시민들의 점유로 도시의 빈 공간은 비로소 정치 공간이자 살아 있는 광장이 되었다. 권력은 공간을 지배하려는 욕구와 함께 진화해 왔다. 인류는 끊임없이 영토 분쟁을 벌였으며, 혁명은 광장과 가로를 무대로 전개되었고, 권력자는 건축물과 정원, 나아가 도시를 개조해 힘과 권위를 가시화했다. 시민 계급의 성장은 권력자가 배타적으로 소유하던 공간에 대한 공중의 권리를 요구하며 근대적 의미의 공공 공간을 창출했다.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권리를 확보하는 중요한 물적 기반이다. 권력은 광장을 만들지만 광장이 권력을 구축하기도 한다. 광장은 이런 의미에서 대중에 의해 성장하며 대중을 성장시키는 자기 전복적이고 순환적인 성질을 가진다. 이는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광장이 필요한 이유이자 청소년들에게 광장이 필요한 이유다. 극도의 경쟁과 학업에 내몰리는 아이들, 의무와 과제에 밀려 자신의 권리에 대해 무지한 그들, 우리의 청소년은 그들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맘껏 해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금지당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권리광장으로 조성된 ‘맘껏광장’은 도시의 주체로서 아이들의 권리와 권력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공공 공간 실험 프로젝트다....(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연구 책임 및 총괄 디자이너: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기본 및 실시 설계: 스튜디오101(김현민, 김지현, 김은지, 오태현, 이슬기) 건축 설계 건축사사무소 신(신호섭, 이나영) 아동 워크숍 및 운영 계획 이재영(공주대학교), 조찬희, 조경준(한국환경교육 연구소) 시공 건축: 대미디자인 조경: 아산종합건설 시설물: 파인파크 전기 태진이엔씨 입구 조형물 황중환(조선대학교) 맘껏카페 거울 최진호 기획 참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설계연구실(최진호, 이현승, 김지은, 신영재),유니세프한국위원회 아동권리 3팀(성종은, 오다솔, 윤다은), 군산시 어린이행복과(황대성, 노창식, 최유창), 군산시 산림녹지과(심문태, 진방택, 두순영),군산시 청소년수련관(정락영, 이민우) 면적 약 3,600㎡ 완공2018. 11.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 사이를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내외 정원, 놀이터, 공원, 캠퍼스, 주거 단지 등 도시 속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으며 동시에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한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스튜디오 테라 대표다.
숲 갤러리
숲은 사진 속 풍경처럼 정지된 이미지가 아니다. 숲은 각자 고유한 시간을 지닌 무수한 생명체가 성장하고 경쟁하며 소멸하는 장소다. 밖에서 볼 때와 그 안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숲의 밀도는 다르다. 숲의 구조와 밀도는 끊임없이 변한다. ‘숲 갤러리’는 오랜 기간 벌채와 식재, 도시의 오염으로 퇴행적 천이를 겪고 있는 남산 소나무숲의 밀도와 시간, 그 안의 관계를 함께 들여다본다. 소나무숲에는 때죽나무, 신갈나무, 팥배나무, 단풍나무, 산벚나무처럼 소나무와 다투거나 화해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식물이 있다. 계절이 바뀌고 식물이 성장하며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숲의 변화를 압축된 시간과 빛의 변화로 재현한다. 변화하는 유기체로 숲을 이해하는 것에서 자연과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연과 관계 맺기로서의 예술적 실천과 경험 자연에 대한 보편적인 선호나 편안함을 유전자에 내재된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라고 설명하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는 개념이 있지만, 자연을 감상하며 즐거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일은 근대의 산물이다. 자연을 소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미적 대상으로 인지한 것은 자연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의해 자연을 통제 가능하며 과학 원칙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과 공포감이 제거된 자연은 비로소 관조의 대상이 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작가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디자인팀 고미진, 송민원, 심지수 디자인 지원 서울시립대학교 조경설계연구실(이현승, 윤승렬,김규성, 박희진, 최윤경) 제작 및 설치 총 관리 초록선(배용은) 조명 유엘피(이연소, 이부영) 금속 대성(이원길) 유리 제일유리(고영석) 목재 유명목재(지명환) 전기 태흥, 지원전기(유흥준) 포장 로얄아키텍처(조두연, 양상준) 도장 윤세남 등기구 셀라이팅(엄세범, 조항수) 시트지 금석커뮤니케이션스(남성남, 김면관) 자문 김광수, 김지석, 유석연, 조민정, 한봉호, 황경주 큐레이터 이재준 전시 기획 및 실행 티팟(조주연, 정동헌, 김혜진) 규모4,000(L)×420~310(H)×550(W)mm 완공2019. 3.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 사이를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내외 정원, 놀이터, 공원, 캠퍼스, 주거 단지 등 도시 속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으며 동시에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한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스튜디오 테라 대표다.
인터뷰: 생태학적 상상력과 풍경의 디자인
조경가 김아연은 1990년대의 문을 연 90학번이다. 이 시기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분기점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변곡점이기도 하다. 조경 1세대와는 전혀 다른 토양에서 성장한 김아연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업을 내놓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은 “조경의 시대”라는 수사가 결코 과장이 아닐 만큼 한국 조경의 전성기였다. 정부와 공공이 빅 프로젝트와 국제 설계공모를 쏟아냈고 민간의 아파트 시장도 유례없는 호황을 구가했다. 사회 전반의 녹색 열풍은 조경의 시대를 여는 촉매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한국 조경은 이런 외적 조건을 충분히 소화해내기에는 기초가 허약했다. “양적·외형적 비대 성장의 이면에 넓게 퍼진 비만한 고독, 그리고 문제의식과 실험정신이 부재한 자리에 골 깊게 팬 몰개성과 무비판의 우울한 반복.”1 김아연이 맞닥뜨린 환경이었다. 그는 당시의 한국 조경을 둘러싼 표피적 장식주의와 상업적 물량주의를 정면 돌파하며 ‘다른’ 조경의 서막을 열고자 했다. 대규모 마스터플랜 설계공모에서 연이어 성과를 내는 한편, 상상을 현실에 구현하는 작업을 통해 특유의 디자인 문법을 정련해가기도 했다. 실무의 최전선과 학교 교육을 가로지르며 설계 실천과 교육의 접면을 넓혀온 그는, 최근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 조경가들의 롤모델이기도 했다. 조경가로서는 드물게 다수의 설치 미술 작업을 병행해 온 그가 공공 미술 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의 일환으로 최근 문을 연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내에 ‘숲 갤러리’를 선보였다. 전시장에서 멀지 않은 녹사평의 한 카페에서 조경가 김아연을 만났다.2 숲, 이미지의 소비를 넘어 살아 있는 일상의 공간으로 -두 번째 경험은 역시 처음과 다르네요. 얼마 전 ‘숲 갤러리’를 처음 관람했을 때는 낯선 숲에서 무언가를 알아보고 싶은 느낌이 들었는데, 두 번째 오니 궁금함보다는 숲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충동이 생겼어요. 작가에게도 자신의 작품이 올 때마다 다르게 느껴집니까? “구조체가 완성된 후 조명 연출을 시작했는데, 계속 에러가 나서 거의 매일 출퇴근하다시피 했어요. 제 눈에는 계속 하자 난 것만 보여요.”(웃음) -조명 연출이 아주 까다로웠다고 들었어요. “전문 조명 팀 유엘피ULP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런데 결국은 제 작품이다 보니 모든 결정과 연출을 직접 해야 해서 외주 주듯 맡겨 놓고 뒷짐지는 게 안 됐죠. 조명 제품의 성격, 스마트 방식의 연출 프로그래밍을 다 공부해야 했어요. 어떤 것까지 가능한지 스스로 테스트해야 한 거죠.” -여전히 조명 부분이 아쉬운 건가요? “그래도 많이 좋아졌는데, 조명 자체만 아는 거로는 안 되더라고요. ‘숲 갤러리’ 후면 공간이 깊지 않아요. 유리판과 광원의 관계를 제가 몰랐던 거죠. 될 줄 알았는데 앞에서 보니까 유리가 빛을 적절하게 확산시키지 못했어요. 그래서 막판에는 혼자 인천의 페인트 가게에서 반사 효과가 있다는 열 차단 페인트를 사서 다시 바르고 난리를 쳤어요.” -잡지에 별도로 나가겠지만, 그래도 ‘숲 갤러리’의 의도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세요. “사람들이 숲을 구체적인 일상의 공간으로 생각하기를 바랐어요. 우리가 숲이라는 어떤 공간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면 그 공간에 대한 태도와 인식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요즘 시대가 자연을 소비하기만 하잖아요. 특히 인스타그램 같은 이미지 매체를 통해 자연이 그냥 사진 찍기 좋은 배경 이미지로만 소비되죠.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숲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숲에서 감동 받고 숲을 일상의 공간이자 살아 있는 유기체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게 이번 작업의 핵심이었어요.” -‘구체적으로 이해’한다는 건 어떤 거죠? “사람들은 소나무 숲이라고 하면 대부분 하동이나 경주 남산의 송림 같은 곳을 찍은 배병우 선생의 유명한 사진 속 장면, 즉 아주 잘 관리된 순림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현실의 소나무 숲은 도시 속에서 퇴행적 천이를 겪는 숲이에요. 그런 숲 속에선 소나무의 세력이 계속 약해지고 참나무, 팥배나무, 때죽나무류가 우세해지기 시작하죠. 일종의 전쟁터 같은 공간인데, 우리는 그 메커니즘을 잘 몰라요. 순간적으로 소비하는 자연의 이미지 이면에 존재하는 지난한 프로세스의 한 단면을 나타내고 싶었어요.” -전형적인 그림처럼 박제된 숲이 아니라 도시의 일상에 존재하는 숲,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숲을 문화적으로 경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요즘은 숲에서 놀이 활동도 하고 강연도 하는데, 막연하게 바라보는 숲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거죠. 나의 구체적 활동 공간으로, 일상의 공간으로 숲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숲이 단지 생태적 공간이 아니라 문화적 공간으로 작동되면서 시민과 구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자연을, 숲을 이미지로만 소비하면 안 되나요? “중요한 지적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음식만 찍는 게 아니라 숲을 찍으며 잠시 기뻐하는 것도 물론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조금 더 거시적으로 보면, 자연을 대상화한 근대의 문제가 동시대에는 자연을 시각적 이미지로만 소비하는 현상으로 대체된 게 아닐까요? 조경은 시각적 연출이 아니라 공간의 구조와 형태를 만드는 행위잖아요. 조경이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다루는 작업이라면, 그 관계의 구체적인 지점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배정한, 『조경의 시대, 조경을 넘어』, 도서출판 조경, 2007, p.6. 2. 조경가로서 김아연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6년 전인 『환경과조경』 2013년 5월호(pp.36~45)의인터뷰 기사를 권한다. 또한 그는 『환경과조경』 2014년 7월호부터 세 달간 연재한 ‘그들이 설계하는법’에 설계 작업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지향점을 피력한 바 있다.
[이미지 스케이프] 빛꽃
또 LED 장미야? 좀 식상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DDP에서 큰 인기를 얻은 후로 너무 많은 곳에서 설치해 이젠 싫증이 나기 시작했거든요. 더구나 색이 바뀌는 LED 표현은 선호하지 않아서 말이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입니다만,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LED 조명을 보면 약간의 거부 반응이 들 정도입니다. 이번 사진은 ‘다락옥수’ 지붕에 설치된 LED 장미정원입니다. 다락옥수는 옥수역 고가 하부 공간을 활용해서 만든 공공 문화 시설입니다. 최근 고가 하부를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시도되고 있죠? 운동 시설을 설치하기도 하고, 컨테이너를 쌓아서 임시 주거 공간이나 사무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곳 옥수역도 여러 번의 변신을 거듭한 끝에 작년 4월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과 모임 장소, 북카페 등으로 구성된 현재의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건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고 옥상부에 맥문동을 식재해서 식물로 둘러싸인 건물을 만들었는데, 이 맥문동이 말썽이었던 모양입니다.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로 맥문동이 다 죽어버려서 오히려 흉물처럼 보였던 거죠. 주민들은 개선해 달라고 계속 요구했고, 그래서 이 LED 장미정원이 만들어졌습니다. “4,000여 송이의 LED 장미꽃은 일곱 가지 다채로운 빛깔로 구성되어 주민들에게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성동구의 기대를 살짝 비웃으면서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속으로는 ‘이런 클리셰는 이제 그만 해야지’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이상스럽게도(?) 꽤 괜찮아 보였습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이미지의 재생산과 사유의 확장
화가 김환기는 김광섭의 시 ‘저녁에’로부터 영감을 받아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제목의 추상화를 그렸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김광섭의 시에서처럼 밤하늘의 수많은 별이 연상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나의 점으로 빠져들게 된다. 김환기는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캔버스에 점을 찍었다고 한다. 점 하나하나마 다 특별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면, 하나의 점을 찍는 데도 수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림 1은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 당선작인 ‘깊은 표면(Deep Surface)’에서 제안한 광장의 포장 이미지다. 오토캐드에 900×900mm의 정사각형 모듈을 만들고, 그 위에 폴리선(polyline)으로 5~7개의 점을 찍어 다각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폴리선 편집 명령edit polyline을 통해 다각형의 폴리선을 스플라인(spline)으로 전환 했다. 이 스플라인 위의 점들을 임의로 옮겨가며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원형들을 재생산했다. 이후 원형 패턴들을 900×900mm 모듈 안 적당한 위치에 배치했다. 몇 번의 복사 명령으로 끝낼 수 있는 일이지만, 광장의 전체 면적, 즉 3만6천여 개의 그리드 안에 원형의 패턴을 겹쳐지지 않도록 적절한 위치에 놓는 데는 (실제 조성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꼬박 이틀이 걸렸다. 이 작업은 도면 위에 트레이싱지를 깔고 그림을 그리는 아날로그적 작업 방식과 유사하다. 그래픽 알고리즘 편집기인 그래스호퍼 3Dgrasshopper 3D와 패턴 알고리즘 파일(온라인상에서는 수많은 패턴 알고리즘이 무료로 공유된다)을 활용하면 손쉽게 다양한 패턴을 실험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저 방식을 택했을까?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변화 속에서 디자인을 배웠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상상할 때는 항상 펜을 들었다. 머릿속 상상이 손끝의 감각을 통해 지면으로 옮겨지면, 그 그림을 통해 다시 사유하게 되고, 또다시 손은 무언가를 그려낸다. 이러한 반복 속에서 사유는 확장되고 디자인은 더욱 구체화된다. 그런데 디지털 프로그램의 정확성과 신속함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생략시킨다. 그래서 디지털 프로그램으로는 디자인을 상상하고 확장하기보다 단순히 결과물을 작성하는 작업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디지털 시대의 산물을 온전히 체득하지 못한 내게 이 방식은 사유와 이미지, 혹은 상상과 실제 사이의 간극을 줄여준다. 여기 또 다른 이미지들(그림 2~6)이 있다. 브이레이V-ray를 통해 얻어지는 렌더ID(Render ID)파일들로, 렌더링 작업의 부산물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조용준은 서울시립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진양교 교수의 ‘채우기와 비우기’ 설계 이론과 제임스 코너의 실천적 어바니즘을 기반으로 한 간단명료한 디자인에 영감을 받았다. 15년여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 설계와 페이퍼 아키텍처를 추구하며, 독자적인 설계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깊이(invisible depth), 생성적 경계(generative boundary), 언플래트닝 랜드스케이프(unflattening landscape)를 탐구하고 있다. 최근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 팀의 당선을 이끌었으며,개인 자격으로 서울형 저이용 도시공간 혁신 아이디어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는, 조경] 첫 조경 드로잉
19세기 중반 미국에서는 조경과 관련된 큰 사건들이 일어났다.우선 조경이라는 전문 분야가 확립됐다.1전문 분야를 가리키는 우리말 조경가/조경에 해당하는 영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가 만들어지고 분야의 정체성이 확립되었다.엄밀히 말해 첫‘조경’드로잉이 그려진 시기다.이전 연재에서 다뤘던 대개의 드로잉 유형이 용도에 따라 전문화됐다.공모전 드로잉으로는 대중과 의사소통하기 수월한 투시도가 중요하게 이용됐고,공사를 위해서는 수치 정보가 정확히 기입된 평면도와 입단면도 같은 투사 드로잉이 사용됐다.현재 조경 계획과 설계에 빈번하게 이용되는 기법인 경관 정보의 맵핑과 지도 중첩(map overlay)방식도 이 시기에 처음 등장한다. 센트럴 파크 공모전 드로잉 우리가 공원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 중 하나인 센트럴 파크가 조성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1857년 개최된 뉴욕의‘센트럴 파크 설계공모전(Plans for the Central Park)’에서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1822~1903)와 칼베르 보(Calvert Vaux)(1824~1895)의 출품작‘그린스워드(Greenswar)d’계획이 채택되어 조성된다(그림1).서른세 개의 출품작 중 가장 늦게 제출된 그린스워드는 가로8피트,세로3피트에 달하는 마스터플랜과 이를 설명하는 열두 장의 일러스트레이션 보드(이 중 열한 장이 남아 있다),설계 설명서로 구성되었다.2옴스테드와 보의 드로잉을 보면 알 수 있듯이,그들의 안은 이전의 영국 풍경화식 정원 양식의 영향권에 있다.마스터플랜에서 보이는 구불구불한 길과 잔디가 무성한(greensward)지형은 풍경화식 정원을 연상시키며,공원의 주요 전망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과 공원의 모습을 묘사한 투시도 드로잉은 옴스테드와 보가 그리는 센트럴 파크의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다.3그린스워드 계획의 마스터플랜은 다른 출품작과 마찬가지로 공모전의 지침에 따라 먹(India ink)과 세피아 톤으로 그려졌다.단,부지의 현재 모습과 설계 이후의 모습을 그린 아홉 쌍의 이미지 중 설계 이후를 보여주는 세 쌍의 이미지는 유화로 공들여 마무리되었다(그림2, 3, 4).4이러한 회화적 묘사 기법은 미국의 야생지(wilderness)풍경을 화폭에 담은 당대의 허드슨 강 화파(Hudson River School)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5 흥미로운 점은 현존하는 그린스워드 계획 드로잉 중 마스터플랜과 다른 드로잉 한 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투시도의 형식을 취한다는 사실이다.예외인 한 장에서 위쪽 정원 아케이드 빌딩은 입면으로,아래쪽 화원은 평면으로 그려졌다.6이러한 요소는 공모 지침의 필수 요구 사항이었기 때문에 넣었던 것이며,공모전 당선 이후 옴스테드와 보의 구체적 설계 과정에서는 자취를 감춘다.짐작하자면,옴스테드와 보는 센트럴파크를 여러 장의 풍경으로 구성된,말하자면 완벽히 그림 같은 공원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중략)... *환경과조경373호(2019년5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영어landscape architect/ure의 기원과 전문 분야의 탄생 과정에 관한 연구로 다음을 참조할 것. Joseph Disponzio, “Landscape Architecture/ure: A Brief Account of Origins”, Studies in the History of Gardens & Designed Landscapes 34(3), 2014, pp.192~200; Charles Waldheim, “Landscape as Architecture”,Studies in the History of Gardens & Designed Landscapes34(3), 2014, pp.187~191.우리말 조경의 명칭과 전문 분야의 성립 과정에 관한 연구로는 다음을 참조할 것.우성백, “전문 분야로서 조경의 명칭과 정체성 연구”,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7. 2. Morrison H. Heckscher,Creating Central Park, New York: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08, p.26.그린스워드 계획의 설계 설명서는 다음 책에 실려 있다. Charles E. Beveridge and David Schuyler, eds., The Papers of Frederick Law Olmsted: VolumeⅢ,Creating Central Park 1857-1861,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3, pp.117~187. 3. 옴스테드와 보의 그린스워드 계획은 풍경화식 정원의 영향을 받았지만,조금 다른 미학을 추구했다. 18세기 초중반 영국에서 유행한 풍경화식 정원이 목가적 풍경을 지향했다면,그린스워드 안은 목가적 풍경과 함께 미국의 거칠고 손대지 않은 야생지를 감상하는 자연 문화를 반영하기도 했다.흔히18세기에서19세기 초까지의 영국의 정원을 뭉뚱그려 풍경화식 정원이라 부르고,그러한 공원이 구현한 목가적 풍경을 픽처레스크 미학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픽처레스크는18세기 말 영국의 아마추어 정원 이론가인 윌리엄 길핀(William Gilpin, 1724~1804),유브데일 프라이스(Uvedale Price, 1747~1829),리처드 페인 나이트(Richard Payne Knight, 1750~1824)가 정원 설계 방법에 대해 논쟁을 벌이면서 만들어낸 하나의 미학적 범주다.그들은 당대에 지배적 미적 범주였던 미와 숭고의 중간에 위치하는 자연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제3의 범주인 픽처레스크를 제시했다.픽처레스크는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숭고의 특징을 어느 정도 길들인 것으로,대체로 자연의“울퉁불퉁하고 거칠고 갑작스러운 변화”를 의미했다.이러한 픽처레스크 미학 혹은 길들여진 숭고의 미학은19세기에 미국으로 수용되어 초월주의 자연 문학과 허드슨 강 화파의 회화에 적용되면서,야생 자연에서의 명상적 감상을 추구하는 초월적 숭고(transcendental sublime)로 변모하게 된다.옴스테드와 보가 센트럴 파크에 만들어내고자 한 자연은 그러한 미국적 숭고의 미학이 반영된 자연이다.국내 연구로 다음을 참조할 것.이명준·배정한, “숭고의 개념에 기초한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의 미학적 해석”,『한국조경학회지』40(4), 2012, pp.78~89. 4.그린스워드 계획이 혁신적이라 평가받은 이유는 공원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공원 아래로 감추어 보이지 않게 하고 보행로 유형을 다양하고 유기적으로 디자인했기 때문이다.공모전 출품작에 대한 설명으로 다음을 참조할 것. Charles E. Beveridge and Paul Rocheleau,Frederick Law Olmsted: Designing the American Landscape, New York: Rizzoli International Publications, 1995, pp.54~55; Sara Cedar Miller,Central Park, an American Masterpiece: A Comprehensive History of the Nation’s First Urban Park,New York: Abrams, 2003, pp.81~88; Morrison H. Heckscher, Creating Central Park , pp.20~24. 5.옴스테드와 보는 센트럴 파크를 설계하고 조성할 때 허드슨 강 화파의 영향을 받았다.예컨대 보의 아내 메리 멕엔티(Mary McEntee)의 형제는 허드슨 강 화파에 속하는 저비스 맥엔티(Jervis McEntee, 1828~1891)였고,옴스테드와 보는 그에게 그린스워드의 설계 이전과 이후의 드로잉을 그리도록 부탁했다고 한다.또한 옴스테드와 보는 허드슨 강 화파의 유명 화가인 프레드릭 처치(Frederic Edwin Church, 1826~1900)와도 친분이 있었다. 1871년 보의 제안에 따라 옴스테드는 처치를 센트럴 파크 공사 감독 위원으로 임명한 바 있다. Mark R. Stoll,Inherit the Holy Mountain: Religion and the Rise of American Environmentalis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5, p.98.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조경 설계와 계획,역사와 이론,비평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조경 아카이브 구축,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가천대학교와 원광대학교,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조경비평 봄’과‘조경연구회 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공간의 탄생, 1968~2018] 한국 도시화의 일상적 메커니즘, 계획 제도와 일상적 소품
인위적인,하지만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도시화 인간은 온전한 도시를 만들 수 있는가?영국의 초기 낭만주의 시인이자 찬송가 작사가로 유명한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1731~1800)는“신은 농촌을 만들고,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God made the country and man made the town)”라는 유명한 시구를 통해,농촌(country)과 도시(town)의 창조 주체를 신과 인간으로 대비하며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를 표현했다.1흥미롭게도 한국의 도시화50년은 소도시(town)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많은 도시city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거주하는 초거대 도시(megalopolis)를 만들어냈다.그간의 연재에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 도시화50년의 현황과 메커니즘을 살펴보았다.이번 글에서는 한국 도시화의 일상적 메커니즘을 살펴본다. 나는 공교롭게도2000년대 초반 부동산 광풍이 불던 시기와2000년대 중후반 행정중심복합도시 및 지방혁신도시가 건설되던 시기에 실무 건축가로 일했다.게다가 대한민국의 대표적 대규모 설계사무소에서 주로 현상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팀에 소속되어 일했다.인구 수천 또는 수만을 위한 아파트 단지,인구 수십만을 위한 도시가 삽시간에 계획되고 곧바로 건설되어,그곳에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변화의 현장에 있게 됐다.그때의 짜릿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던 경험이 없었다면,때늦은 미국 유학도 지금의 연재도 없었을 것이다.한국의 도시화50년이 초래한 물리적 세계의 변화는 인위적인,너무나 인위적인 변화였다.하지만 이는 마치 우리 주변의 물이나 공기처럼 이제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렸다.미국에서6년여의 박사 과정과 강사 생활을 마치고,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제1년 반이 조금 넘었다.미국에서 동아시아의 급속한 도시화와 대규모 물리적 개발에 대해 연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이미 공고한 문화가 돼버린 한국 도시화의 일상적 메커니즘을 낯설게 실감할 때가 있다.지난 반년 동안 서울시 모 자치구의 거리 재생을 위한 기본 구상 연구에 참여했다.경쟁 입찰에 당선된 후 주민과 담당 공무원을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였다.담당 공무원은 놀랍게도 나를 자신의 상사에게“과장님,용역 업체입니다”라고 소개했다.한 번도 내가 용역 업체에서 일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용역,용역 업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용역用役(service),물질적 재화의 형태를 취하지 아니하고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일.2용역 업체用役 業體(service company),경비,청소,운송 등과 같이 주로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육체적 노동을 제공하는 기업체.3 지금 한국에서 하고 있는 일과 유사한 일을 미국,중국,심지어 남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에서도 수행했지만,한국처럼 정부 중심의 수직적 관계가 문화로 내재되어 있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없다.대학교수의 연구 과제조차 용역 업체의 업무로 인식되고 있으니,일반 설계사무소나 엔지니어링 회사의 업무는 어떻게 간주되고 실행될 것인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이같이 마치 개인의 습관이나 조직의 관행 또는 사회의 문화처럼 우리 일상 속에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는 한국 도시화의 메커니즘을 계획 제도,정부 사업,행정 소품 등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도시화 메커니즘의 계획 제도:법,제도,정책,국정 과제,슬로건 한국 도시화의 일상적 메커니즘을 작동하는 첫 번째 단계로 계획 제도가 있다.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과 제도를 통한 통치를 원칙으로 한다.대한민국의 최상위 법 규범으로서 헌법은 공공복리와 공공 필요에 따라,4그리고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 개발과 보전을 위해5국민의 사유 재산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근거를 제시한다.이에 따라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헌법의 하위에 법률,대통령령,총리령·부령,자치법규 등의 법령이 위계에 따라 구성되며,상위법 우선,신법 우선,그리고 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적용된다. 대한민국의 도시화 관련 주요 법령의 종류 및 특징은 표2에서 보는 바와 같다.흥미롭게도 대한민국의 도시화 관련 주요 법령의 종류와 제정 시점은 해당 정부의 성격 및 임기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를테면 박정희 정부는‘건축법’, ‘도시계획법’, ‘국토이용관리법’, ‘주택건설촉진법’등 도시화 관련 주요 법령을 최초로 제정했으며,이에 대한 시대적인 법적 정비로서 김대중 정부는‘주택법’, ‘국토계획법’등의 법령을 제·개정했다.한편 노무현 정부에서는 주목할 만하게도‘행복도시법’, ‘혁신도시법’, ‘도시재생법’등 여러 특별법을 제정했으며,문재인 정부는 오늘날 이에 대한 법적,제도적 계승을 시도하고 있다.여기서 특별법은 일반법에 비해 지역·사람·사항에 관한 법의 효력이 좁은 범위에서 적용되는 법률을 말하며,일반법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도시화 관련주요 법령에도 보수와 진보의 정권 성향이 중요하게 반영돼 있으며,나아가 대한민국의 실제 물리적 세계에도 여러 단절적 전환이 법적,제도적으로 시도됐음을 알 수 있다. ...(중략)... *환경과조경373호(2019년5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William Cowper, The Task: A Poem in Six Books , London: Printed for J. Johnson, 1785. 2. “용역”,표준국어대사전, 2019년4월10일 접속(https://ko.dict.naver.com/#/entry/koko/fa27753328404c4ca29c7861983be780). 3. “용역 업체”,고려대한국어대사전, 2019년4월10일 접속(https://ko.dict.naver.com/#/entry/koko/eb4afa670562415a93b87fa066093b0f). 4.대한민국 헌법 제23조. “①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②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③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5.대한민국 헌법 제122조.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중국의 쓰촨 대학교,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인간,사회,자연에 대한 건축,도시,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
[바우하우스와 모더니즘 조경] 정원 신세계의 정복자들
모더니즘과 개인 정원 20세기의 모더니즘 정원은 유럽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로 확산됐다는 점이 과거와 확연히 달랐다.우선 미국으로 수출됐고 남미,캐나다 등 미 대륙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아시아에도 상륙했다.지금 돌아보면 한국의1950년대, 1960년대의 정원에도 영향을 미쳤던 듯하다.나는 소위 말하는‘미국식 정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산 증인이다.흔히 말하는 신흥 주택이었던 것 같다.거실 유리문을 열면 바로 넓은 잔디밭이었고,연못과 온실이 있었으며,잔디밭 가장자리에 화단이 있었다.그 미국식 화단에서 한국 호미로 장미와 백합을 정성스레 가꾸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서울 도심에 아직 한옥이 즐비하던 시절이었다.친척과 친구들의 집이 죄다 한옥이었던 기억이 난다.더러는 마당 한가운데 높이 단을 쌓고 화단을 가꿨던 집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시멘트로 도배한 신식 마당이었다. 서울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한옥이 사라지고 외곽의 신흥 주택이 고층 아파트 단지로 뻥튀기되며 한국의 근대 조경이 시작됐다. 1970년대 중반,지구의 다른 곳에서 모더니즘이 끝나가고 있는 시점에 중간 과정 없이 역사 속으로 불쑥 뛰어든 것이다.그 까닭에 한국의 조경은 개인 정원보다는 공공 정원,고속 도로변의 조경이나 단지 조경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개인 정원의 비율이 아직은 극히 낮고 조경가의 설계 범위에 거의 속하지 않는 한국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이 자리에서 모더니즘과 개인 정원을 고찰하는 것이 좀 어설퍼 보인다.그럼에도 모더니즘의 첫 라운드가 개인 주택의 좁은 마당에서 치러졌던 까닭에 한 번 개괄해 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베를린만 보더라도 현재 정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개인 정원이 무려160개소에 달한다.여러 번 전쟁을 치르고도 살아남은 주택과 빌라 정원들이다. 1860년대에 조성된 것도 많지만 대부분은 모더니즘 시대에 탄생했다.모더니즘 정원사에서 개인 정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뜻도 된다. 정원의 신세계? 대개 미술이 가장 앞서가고 그다음 건축이,그리고 제일 뒷전에서 정원이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조경가가 남달리 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원의 속성이 남다르기 때문이다.시멘트나 철근,벽돌 또는 물감은 그 자체로19세기 중엽 루돌프 지베크(Rudolph Siebeck)가 설계한 빌라 정원(1857).풍경화식 정원의 설계 기법을 여과 없이 반복했던 시대의 산물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이런 설계 방식을1920년까지 고수한 인물들도 적지 않았다.별 감동을 주지 않는다.다만 이들을 쌓고 세우고 화폭에 붓질을 하면 감동적 작품으로 변신이 가능하다.그에 비해 정원을 이루는 나무와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문제다.구식으로 심건,신식으로 심건 나무 몇 그루만으로도 정원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게다가 절기에 따라 모습을 바꿔가면서 늘 스스로 새로워지고 변화하는 것이 정원이다.그러므로20세기 새 시대가 도래하여 모두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어도 정원 전문가들 사이에선 새로운 정원에 대한 요구가 그리 절실하지 않았다.정원 혁신을 원한 것은 오히려 타인들,건축가와 예술가들이었다.건축가들은 자신이 고안한 새로운 건축과 조화되는 정원을 원했고 예술가들은 아방가르드 개념을 정원에 적용하여 제멋대로의 정원을 만들었다.이들이 이렇게 남의 영역을 침범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중략)... *환경과조경373호(2019년5월호)수록본 일부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오랜 정원을 감각하는 방식
담양의 소쇄원이 서울 도심에 이색적인 모습으로 재현됐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4월 18일부터 5월 19일까지 개최되는 ‘한국의 정원 展: 소쇄원, 낯설게 산책하기’에서 소쇄원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낯설게 만나볼 수 있다. 총 17개의 설치 미술, 영상, 사진, 동양화, 공예, 페이퍼 아트, 북 아트, 그래픽 디자인, 인터랙티브 디자인 작품은 아날로그 예술부터 현대 디지털 미디어를 폭넓게 아우르며, 소쇄원을 다채롭게 감각하는 법을 보여준다. 조경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소쇄원은 가장 친숙하고 대표적인 전통 정원이다. 하지만 소쇄원을 비롯한 한국의 정원은 아직 일반인에게 낯선 공간이다. 서양의 정원과 달리 한국 정원은 시각적으로 형태가 분명하지도 않고, 자연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며, 찾아가기 어려운 곳에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상당수다. 방송 미술·영상 콘텐츠 제작 전문 기업 SBS A&T가 주최하고 크리에이티브 팀 올댓가든(All That Garden)이 주관한 이번 전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국 정원이 가진 독자적 아름다움과 철학적 의미를 쉽고 감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마련됐다. 참여 작가 대다수는 전시 준비를 계기로 소쇄원을 처음 알게 된 이들이다. 작품 세계가 뚜렷한 전문 작가보다 다양한 현장에서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활동가들을 참여 작가로 초청했는데, 이를 통해 작품 자체보다는 전시의 주제인 소쇄원과 정원을 경험하는 다양한 방식을 부각하고자 했다. 전시는 네 개 섹션으로 나뉜다. ‘일상으로부터 달아나기’(섹션 1), ‘따뜻한 기억에 더 가까워지는 순간’(섹션 2), ‘조금 특별한 상상을 허락한다면’(섹션 3), ‘같이 산책할까요?’(섹션 4)는 대숲, 애양단, 제월당, 광풍각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풀어낸 권혜원 작가의 글을 토대로 구성됐다. 전시장 구성은 소쇄원의 공간 구조를 모티브로 한다. 대숲, 애양단, 대봉대, 제월당, 광풍각을 통과해 퇴로로 나가는 구조를 큰 관람 방향으로 설정하고, 작품간 여백의 변화를 통해 ‘열림과 닫힘’, ‘중첩의 반복’이라는 소쇄원의 공간적 특성을 드러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시네마 스케이프] 어떤 나라
작년 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에서 주최한‘영화로 보는 북한 도시와 경관’심포지엄을 기획하며 북한 영화를 두루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북한이 해외 영화사와 공동 제작한‘김동무는 하늘을 난다’(2012)가2018년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어 대중적 관심도 높아진 터였다.유튜브 검색만 하더라도 북한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고,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이 올린 영상을 통해 변모한 평양의 최근 풍경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한국영상자료원이 소장하고 있는 북한 콘텐츠도 예상보다 많았다.보유 리스트를 검색해서 사전에 신청하면 자료를 볼 수 있었다.하지만 그중 심포지엄에 적합한 영화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매끈한 상업 영화에 길들여진 눈높이로는 전형적 인물 유형,작위적 서사,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옥희의 대사 같은 톤을 인내하기 쉽지 않았다.무엇보다 모든 영화에는 공통적으로 체제 선전 메시지가 깔리고“위대한..님”투의 표현이 빈번히 등장했다.여성 건축가가 재취업하며 자아를 찾는 과정을 담은‘행복의 수레바퀴’(2000),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일상을 그린‘우리집 이야기’(2016),평양의 도시계획을 수립한 김정희에 대한‘한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1987)모두 공공장소에서 풀 버전으로 상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판단했다.결국 북한의 문화 유적과 도시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와 해외에서 제작한 북한 영화를 대안으로 선정했다. 선택한 영화 중 하나인‘어떤 나라’(2004)는2003년 평양에 사는 두 소녀가 매스 게임(mass game)(집단 체조)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모란봉 제1중학교에 다니는 열세 살 현순과 열한 살 송연이 주인공이다.현순은 노동 계급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전업 주부인 할머니와 어머니와 함께 사는 외동딸이다.송연은 김일성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지식 계급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사이의 세 자매 중 막내딸로 반려견과 함께 산다.승연의 집 베란다에서 대동강이 좀 더 가깝게 보이고 아파트 평수가 조금 더 넓다는 점을 제외하면 두 집의 계급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순이네 가족은 소파와 텔레비전이 있는 방에서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보낸다.이 방에 상을 펴고 밥을 먹는다.조부모가 지내는 방인데 일종의 가족실 기능도 한다.등교와 식사 준비로 분주한 아침,일과를 마치고 텔레비전 앞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저녁,강변에서 여가를 보내는 휴일 풍경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다.끄고 켤 수 없고 볼륨 조절만 가능한 라디오를 통해 매일 아침7시에 기상 사이렌이 울린다거나,단 하나의 국영 채널을 통해 하루 다섯 시간 동안 선전 뉴스와 드라마를 방영하는 방송 시스템이나,정전이 될 때마다 익숙하게 초를 켜는 모습이 이곳이 평양임을 상기시킨다. ...(중략)... *환경과조경373호(2019년5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북한의 조경가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하다. 어떤 개념과 이론을 바탕으로 설계를 할까. 시공하는 데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고, 권한과 지위는 어느 정도일까. 영화의 배경에 등장하는 강변의 풍경과 광장 디자인,녹지 패턴과 식재 수종이 눈에 들어오는 직업병을 어찌할 수 없다.
환상과 현실의 교차점에서 설계를 묻다
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귀국전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Spectres of the State Avant-garde)’1이 지난 3월 27일부터 5월 26일까지 아르코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귀국전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이 선보인 기본 전시 구성에 참여 작가의 신작을 더하고, 미술관의 공간 구조를 반영해 재구성한 연출을 통해 보다 풍부한 내용과 관점을 담고자 했다. 서울은 수차례에 걸쳐 다시 만들어진 도시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한강의 기적’이라 불렸던 모습조차 재건축, 재개발에 덮여 이제 낡은 영상과 사진으로만 남았다. 하지만 보존형 도시재생의 아이콘이된 세운상가도 처음에는 국가의 현대성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아방가르드적 도상이자 문화적 혁신을 추구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1960년대에 막 문화를 논하기 시작한 한국 사회에서 도시의 아방가르드를 실현하고자 했던 집단인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이하 기공)는 세운상가, 구로 한국무역박람회장, 여의도 마스터플랜(1969)등을 통해 국가 중심의 도시 개발에서 설계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현대성 구성에서 기공의 역할을 되짚고 미래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데 대한 설계의 역할을 묻는다. 1960년대 한국의 국가관과 기공 국가로 대변되는 권력과 설계 분야의 대립과 타협을 다루는 만큼, 전시 소개문은 서두부터 기획 의도와 전시 관점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1960년대 말은 국가의 계획 이데올로기와 건축가의 비전이 뒤엉켜 있던 시대”였다. 역설적으로 “억압적인 발전 국가”는 “건축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냉전 시대 특유의 국가적 이미지 고취에 대한 필요성과 아방가르드에 대한 건축적 이상이 조우한 시대적 상황, 이로 인한 아방가르드 건축의 비상은 비단 국내의 유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분단 상황과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건축적 경쟁 구도, 그 결과물인 한스 샤로운(Hans Scharoun)의 샛노란색 베를린 필하모니(Philharmonie)건물이나 1987년 베를린 국제건축전IBA을 떠올려보자. 1960년대 한국에 존재한 국가적 아방가르드라는 모순은 세계적 상황이 압축된 형태였다. 기공은 한국적 상황 또는 “한국 근대성의 조건”을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하나의 틀이다. 전시는 기공의 2대 사장이었던 김수근의 지휘 아래 진행된 네 개의 프로젝트―세운상가, 구로 한국무역박람회장, 여의도 마스터플랜, 엑스포70 한국관―를 중심으로 1960년대 한국의 설계의 환상과 현실을 엮으며 오늘과 미래에 대한 고찰을 이끌어 낸다. 1층의 서현석의 ‘환상도시’, 김경태(EH)의 ‘참조점’,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1960년대 기공 프로젝트에 내재한 모순과 역설을 다룬다. 2층에 위치한 김성우의 ‘급진적 변화의 도시’, 설계회사의 ‘빌딩 스테이트’, 바래BARE의 ‘꿈세포’, 최춘웅의 ‘미래의 부검’, 로랑 페레이라(Laurent Pereira)의 ‘밤섬, 변화의 씨앗’은 한국의 근대 아방가르드가 외면한 공간 또는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공간을 조명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1.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는 근대 한국의 도시계획을 주도했으나 그 실체가 남아 있지 않고, 아카이브도 거의 구축되어 있지 않다. 이에 착안해 전시는 국가적 목표와 개인의 이상향 사이에서 표류한 당대의 건축가와 그들의 유산을 ‘유령’으로 설정했다. 신명진은 뉴욕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후 경관에 이끌려 조경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재 서울대학교 통합설계·미학연구실에서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경계의 땅을 상상하다
남과 북이 휴전 협정을 맺으며 한반도 허리를 길게 가로지르는 철책이 놓였다. 두 개의 철책이 만든 너비 4km의 선형 공간은 비무장 지대DMZ(demilitarized zone)다. 말 그대로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군사 시설이나 군대를 주둔할 수 없는 구역이지만, 이름과 달리 DMZ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도는 모순적 공간으로 자리 잡아왔다. 그간 남북이 경쟁하듯 DMZ 내에 감시 초소 GP를 세워 왔기 때문이다. GP당 40~80여 명의 병력이 주둔한다고 하니, DMZ를 한반도에서 가장 무장된 지역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지난해 DMZ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9 · 19 군사 합의’의 일환으로 남북 GP 20여 개가 철수된 것. 강원도 고성 DMZ 평화 둘레길의 민간인 통행이 승인되고, DMZ국제다큐영화제 수상작 앵콜 상영회가 열리는 등 DMZ와 관련된 여러 소식도 들려온다. 이러한 변화를 시작으로 DMZ는 진정한 평화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앞으로 DMZ는 어떠한 모습으로 변해가게 될까? 3월 21일부터 5월 6일까지 문화역서울 284에서 선보이는 ‘DMZ’ 전은 DMZ와 접경 지역을 정치·사회 적, 문화·예술적, 일상적 측면에서 살피며 이러한 궁금증에 답한다. 전시의 틀은 민간인 통제선에서 시작해 DMZ와 GP로 이어지는 공간의 축, DMZ가 형성된 시점부터 GP가 사라지는 미래까지의 시간의 축에 의해 형성됐다. 전시장 곳곳으로 뻗어 나가는 두 개의 축은 서로 교차하고 헤어지며 다섯 개 섹션을 만들어냈다. 3등 대합실에 마련된 ‘DMZ, 미래에 대한 제안들’(섹션 A)은 예술가와 건축가, 디자이너, 철학자 등이 제안한 DMZ의 미래를 보여준다. 최재은은 대합실 입구에 ‘증오는 눈처럼 사라진다’를 발판처럼 설치해 관람객들이 무의식적으로 밟고 지나게 했다. 이 작품은 DMZ의 철조망을 녹여 만들어졌는데, 철조망은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게 된 두 진영 사이의 증오”를 상징한다. 즉 남북을 갈라놓았던 구조물이 분리된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새들의 수도원’은 새와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승효상의 고찰이 담긴 작품이다. 그는 DMZ가 인공 시설이 들어서기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라는 점을 고려해, 자연스럽게소멸되는 대나무와 마 끈을 재료로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허물어질 수 있는 느슨한 구조물을 제안했다. 너른 자연 위에 고요히 서서 주변을 지나는 새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모습은 승효상의 건축 철학 ‘빈자의 미학’을 떠올리게 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이달의 질문] 이럴 때 조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조경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때가 딱 요즈음이다. 주변에서 많은 사람이 묻는다. 마당에 뭘 심는 게 좋아요?, 우리집과 옆집 사이에는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할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원에 대한 빅 픽처(big picture)가 무궁무진하다. 나름 전문가로서 몇 가지 조언을 해드리곤 한다. 이웃들의 정원은 소박하지만 이야기가 담겨 있고 정겨움이 느껴진다. 가끔 내게 도움을 받은 이웃들이 정원을 어느 정도 만들고 나를 집으로 초대한다. 함께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마시며 정원에 대한 평론을 한마디씩 주고받을 때 조경하길 잘했다고 느낀다. 정재혁 롯데건설 학생 때부터 일을 하는 지금까지, 답사를 명목으로 잘 조성된 조경 공간에 놀러 갈 때 조경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같이 날 좋은 봄에는 특히 더! 안주연 팩토리엘 공간의 본질을 깊게 알아가는 시간을 보낼 때 조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공간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아내는 것은 조경의 업이자 그 자체로 좋은 경험이다. 그렇기에 조경가의 역할은 넓고 중요하다. 같지만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생활 주체에게 풍부한 영감을 주는 다양한 공간들이 확장되길 바란다. 이병우 조경하다 열음 내가 만든 공간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산보를 즐기는 노부부의 담소, 한적한 벤치에서 담배 한 대 즐기는 아저씨, 삼삼오오 모여 오손도손 수다를 나누는 어머니들…. 내가 만든 공간이 사람들의 행복의 기반이 된다고 깨달을 때 보람차고, 조경하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최용 조경설계시공관리 올인원 글쎄, 며칠 생각해봤는데 사실 조경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딱히 없다. 하지만 괜찮다. 조경하길 후회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니까. 분명한 건 고르고 골라서 이 직업을 택했다는 점이다. 나는 타인의 조언을 참고하는 스타일이 아닌데다, 스스로 확신이 들지 않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애초에 만족도 후회도 없다. 쓰고 보니 나르시스트의 자기 고백이다. 나성진 얼라이브어스 소장 심리학자 에밀리 에스파하니 스미스(Emily Esfahani Smith)는 테드 강연에서 삶에는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창조적인 일을 할 때 자신을 넘어서는 초월성과 삶의 목적을 느낀다는 것이다. 조경을 통해 이 두 가지를 경험할 때마다 조경의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환경과조경』에 수록된 여러 작품을 보면서 감동을 받으며, 내가 설계할 공간을 상상하며 예술가가 된 기분을 만끽하고, 그 공간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 박지원 경북대학교 조경학과 유년 시절 주로 뒷산에서 놀던 내가 처음 아파트 단지로 이사하고 놀랐던 경험이 있다. 한없이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 동네 뒷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고, 풍부한 화단으로 멋을 낸 이 공원은 여러모로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고등학교 수험 기간이 끝나갈 즈음 공원에서 쌓은 추억은 나의 꿈이자 전공 선택의 이유가 되어 있었다. 졸업 후 이제 막 현장에 발을 내딛은 새내기인 내가 조경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특별한 사건이나 순간은 아직 없다. 하지만 그 순간을 마주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김병호 유신
[편집자의 서재] 유빙의 숲
‘맘껏광장’ 지면의 레이아웃을 구상하면서 마지막 페이지에 넣으려던 사진이 있었다. 광장 중심부의 메타세쿼이아에 매달린 노란 리본들, 바람에 날리는 리본에 한 아이가 손을 뻗는 사진이었다. 어린애는 그것이 마냥 예뻐 보였거나 그저 호기심이 많았던 것이라 해도 어쩐지 절묘한 순간 같았다. 잠시 사심이 발동해 사진을 넣을 명분을 떠올렸다. 리본은 추모 행사 때 달렸고 행사는 맘껏광장의 청소년운영위원회가 주도한, 그러니까 아이들이 나선 일이다, 이곳이 아동권리광장임을 다른 방식으로 말해주기도 한다, 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으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바람이었다. 전체적인 공간 구조와 특성을 잘 보여주는 이미지를 넣는 것이 먼저였다. 한정된 지면에 광장의 다양한 공간을 보여주기 위해 그 사진은 빼기로 했다. 조심스러운 면도 있었다. 어쩌면 이 공간보다 특정 사건을 부각할 수도 있으므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무척 지겨워하거나 때론 정치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하므로. 아직 4월인 탓인지 아니면 그 사진이 자꾸만 떠올라서인지, 기자의 사심이 용인되는 이 지면에는『유빙의 숲』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이 책을 담백하게 소개하자면 여덟 개의 짧은 이야기가 모여 있는 소설집이다. 사사로운 마음을 품고 소개하자면 2014년 침몰하는 배를 목격한 이후 써내려간 이야기다. 모든 이야기가 그날의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진 않지만 작가는 그날 이후 죽음 이후의 일들에 시선을 두곤 했다. 소설 속 다양한 이야기를 곰곰이 읽다 보면 그날과 같은 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나 말 같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첫 번째 단편 ‘유리주의’에는 전면이 통유리로 된 호텔과 그곳에 묵는 관광객들이 등장한다. 호텔 청소부들이 아침마다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들을 치우고 끊임없이 창을 닦는가 하면 사소한 갈등에 사로잡힌 투숙객들은 호텔 앞 호수의 괴물을 보고도 못 본 척 침묵한다. ‘유빙의 숲’은 어미를 잃고 심해를 헤매는 삼백 살 된 상어, 가라앉는 배에서 조카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형사, 몸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병에 걸린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비극으로 방황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귤목’에는 손자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보낸 할아버지가 나온다. 아들은 갑자기 손자가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전하는데, 말도 없이 떠난 것에 이상함을 느낀 할아버지는 직접 제주도로 향한다. ‘뼈바늘’은 살해당한 여자와 그것을 방관한 남자가 영혼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는 이야기로, 절망에 빠진 누군가에게 더 큰 절망을 안겨주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뒤이은 세 단편 ‘귤橘, 화花―도주 1’, ‘쇳물의 온도―도주 2’, ‘파도의 온도―도주 3’의 주인공 이화는 남편에 이어 자식마저 잃어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은 상황에 놓였지만 죽지 못하고 아득바득 살아간다. 소설은 현실과 환상을 한데 섞고 서로 관련 없는 이야기를 동시에 늘어놓는다. 난해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특징은 “비현실적인 계기를 통해 현실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가를 관찰하는 것”2이며, 에둘러 말하는 작가의 조심스러움이기도 하다. “그 사람을 잃고 남은 사람들이 시간을 견디는 이야기, 어떻게든 도망가 봤지만 결국 파도 위에서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채로 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3로 이루어진 소설집의 마지막 단편은 ‘커피 다비드’다. 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다비드는 다양한 원두를 선별해 사람들에게 맛 좋은 커피를 내주고, 저마다의 이야기도 들어준다. 다비드가 하루를 마치고 카페 문을 닫으려는 때 섬으로 구급대 헬기가 날아오고 누군가 실려 간다. 그간 헬기를 탔던 사람 중 젊은 산모를 빼고는 모두 유골로 돌아 왔다. 그는 헬기가 떠난 후 아무도 없는 카페의 모든 불을 켠다. “어두운 하늘로 날아간 누군가가 이 빛을 보고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기 때문이다. 결국『 유빙의 숲』을 잡지의 말미에 두기로 한 것은 다비드 때문이다. 맘껏광장에 노란 리본이 매달려서가 아니고, 글을 쓰는 때가 아직 4월이어서도 아니며, 소설에 애정이 있어서도 아닌, 작가가 모든 이야기의 끝에 어떤 시작처럼 다비드를 놓은 것처럼 4월이 끝나고 5월 시작되는 지점에 이 책을 놓아두고 싶었다. 각주 정리 1. 이은선, 『유빙의 숲』, 문학동네, 2018. 2. 같은 책, p.279. 3. “ 이은선 ‘꼭 잊지 말아야 하며 사랑해야 한다’”, 「채널예스」 2018년 11월 23일.
[CODA] 나란히 앉아 인터뷰하기
후드 티나 맨투맨이 익숙하지만 이날만큼은 블라우스와 재킷을 집어 든다.조금 허전해 보이는 손목에는 팔찌보다는 시계가 제격,노트북과 태블릿PC,공들여 작성한 질문지까지 챙겨 넣으면 인터뷰가 있는 날 출근 준비가 그제야 끝난다. 2015년 말에 입사했으니 이제4년 차 편집자,여전히 기획과 취재,편집,기사 쓰기 등 어려운 것투성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긴장되는 일을 뽑으라면 역시 인터뷰만 한 게 없다.썩 외향적이지 않고 말주변이 좋은 편도 아니기에,낯선 상대와 대화하는 일은 상상만으로 허리를 꼿꼿히 세우게 만들고 입안을 바싹 마르게 한다. 잡지 만드는 게 꿈이기만 했던 시절, 인터뷰는 뭔가 멀고도 신기한 전문적인 영역의 일이었다. 멋들어진 단어가 가득하지만, 결코 오글거리진 않은 문장으로 정리된 인터뷰는 잘 정돈된 공간에 앉아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인텔리를 떠올리게 했다. “다들 어쩜 그렇게 멋있게 말할까? 굉장히 멋진 말로 이루어진 질문이 10줄쯤 나오면 그것보다 더 멋있는 말로 이루어진 대답이 20줄쯤 나왔다”1는 누군가의 글이 딱 내 마음 같았다. 긴장감 넘치는 랠리처럼 이어지는 문답을 읽고 있으면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똑똑해진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나는 그 멋진 말들에 압도됐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멋있고 날카롭고 사색적인 질문을 할 수가 있지?”2 그러니 난생처음 인터뷰 자리에 동행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건 당연한 일일 테다. 정식 인터뷰어가 아닌 경험을 쌓기 위한 신입 기자로서 함께하는 것이었지만, 내게도 인터뷰 질문지가 쥐어졌다. 얼마나 시적이고 함축적인 문장이 가득할까, 그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질문지는 시적이기보단 체계적이었고, 함축적이기보단 치밀했다. 완고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틀을 잡아줄 줄기 질문들 밑에 여러 가능성과 이야기의 확장성을 염두에 둔 가지 질문들이 담뿍했다. 그 모양이 당신도 모르는 당신의 이야기를 끌어내겠다는 포부로 가득한 전략서 같았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루는 모든 일이 그렇듯, 잘 짜인 질문지도 현장에서 완벽한 마스터플랜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대화는 질문지를 탈출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잘도 뻗어 나갔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를 몇 번 반복하고서야 간신히 본래의 주제로 돌아오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저쪽으로 삐죽, 또다시 이야기가 샌다. 신입 기자의 초조함이 불안함으로 바뀔 즈음 인터뷰이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 잠깐 사이에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질문지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인터뷰 주제와 잘 어울렸고,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어 신선했다. 질문과 답변 사이 침묵의 길이가 짧아지고 대화에 발랄한 리듬이 얹어질 때, 글자로 빼곡한 인터뷰지가 사실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이 찰나를 맞이하는 게 이렇게 즐겁다면 주제에서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대화에 마음을 졸이는 일도 꽤 견딜만한 기다림의 시간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했다. 약 18년간 전문 인터뷰어로 활동하며 50여 권의 인터뷰집을 펴낸 지승호는 “인터뷰는 기술이 아니고 태도”3라 말한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존중이 느껴진다면 누구나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철저한 사전 조사는 상대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동시에 상대에게 신뢰감을 주어 인터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인물에 대해서는 인터뷰이의 작품이나 글,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탐구하면 된다지만, “20년 된 친구에게도 못한 얘기”를 하게 만드는 편안함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문득 2019년 1월호에 실린 조경가 김호윤과 배정한 편집주간의 인터뷰 서문이 떠올랐다. “서로 긴장한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마주 보지 않고 같은 방향을 보며 소장 방의 사이드 테이블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때로는 서로를 보는 것보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라포르rapport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다음번 인터뷰 장소로는 창밖 풍경이 예쁜 카페를 물색해봐야겠다. 각주 정리 1. 박찬용, 『잡지의 사생활』, 세이지, 2019, p.93. 2. 같은 책, p.93. 3. 엄지혜, “인터뷰어 지승호 ‘내레이션이 너무 많으면, 다큐도 재미없잖아요’”,「채널예스」 2015년 6월 10일.
[PRODUCT] 녹화율 67%를 자랑하는 ‘리비오그린’
리비오 에코디자인연구소Livio Eco Design Institute가 신제품 ‘리비오그린Liviogreen’ 잔디 블록을 출시했다. 리비오그린은 잔디 생육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해 인공 지반의 녹화율과 배수 기능을 효율적으로 높이는 제품이다. 기존의 소형 잔디 블록은 내부 식재 공간이 협소해 잔디 활착률이 낮았다. 하지만 리비오그린은 블록 상부에 폭 100mm, 깊이 40mm의 U자형 식재 공간을 두어 좀 더 많은 토양을 보유할 수 있다. 또한 뿌리가 좌우로 넓게 뻗어 나갈 수 있어 잔디 분포를 균일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67%의 높은 녹화율을 자랑하는 리비오그린은 큰 하중에도 잘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되어, 많은 사람이 지나는 보행로나 광장, 주차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리비오그린은 게릴라성 집중 호우에 대응하거나 여름철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하는 공간을 조성하기에도 적합하다. 배수 기능이 필요한 공간에는 블록의 식재 공간에 식물 대신 자갈을 넣어 투수성을 높일 수 있으며, 잔디의 증산 작용으로 노면 온도 상승 억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공간 미화가 주된 목적이고 유지 관리의 편의성을 중시한다면, 토양 대신 인조 잔디를 채워 세련된 선형 녹지를 연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TEL.02-6928-5588 WEB.hilyung77.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