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인, 하지만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도시화
인간은 온전한 도시를 만들 수 있는가? 영국의 초기 낭만주의 시인이자 찬송가 작사가로 유명한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1731~1800)는 “신은 농촌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God made the country and man made the town)”라는 유명한 시구를 통해, 농촌(country)과 도시(town)의 창조 주체를 신과 인간으로 대비하며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를 표현했다.1 흥미롭게도 한국의 도시화 50년은 소도시(town)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많은 도시city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거주하는 초거대 도시(megalopolis)를 만들어냈다. 그간의 연재에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 도시화 50년의 현황과 메커니즘을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 도시화의 일상적 메커니즘을 살펴본다.
나는 공교롭게도 2000년대 초반 부동산 광풍이 불던 시기와 2000년대 중후반 행정중심복합도시 및 지방혁신도시가 건설되던 시기에 실무 건축가로 일했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대표적 대규모 설계사무소에서 주로 현상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팀에 소속되어 일했다. 인구 수천 또는 수만을 위한 아파트 단지, 인구 수십만을 위한 도시가 삽시간에 계획되고 곧바로 건설되어, 그곳에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변화의 현장에 있게 됐다. 그때의 짜릿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던 경험이 없었다면, 때늦은 미국 유학도 지금의 연재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도시화 50년이 초래한 물리적 세계의 변화는 인위적인, 너무나 인위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이는 마치 우리 주변의 물이나 공기처럼 이제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미국에서 6년여의 박사 과정과 강사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제 1년 반이 조금 넘었다. 미국에서 동아시아의 급속한 도시화와 대규모 물리적 개발에 대해 연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공고한 문화가 돼버린 한국 도시화의 일상적 메커니즘을 낯설게 실감할 때가 있다. 지난 반년 동안 서울시 모 자치구의 거리 재생을 위한 기본 구상 연구에 참여했다. 경쟁 입찰에 당선된 후 주민과 담당 공무원을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였다. 담당 공무원은 놀랍게도 나를 자신의 상사에게 “과장님, 용역 업체입니다”라고 소개했다. 한 번도 내가 용역 업체에서 일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용역, 용역 업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용역用役(service), 물질적 재화의 형태를 취하지 아니하고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일.2 용역 업체用役 業體(service company), 경비, 청소, 운송 등과 같이 주로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육체적 노동을 제공하는 기업체.3
지금 한국에서 하고 있는 일과 유사한 일을 미국, 중국, 심지어 남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에서도 수행했지만, 한국처럼 정부 중심의 수직적 관계가 문화로 내재되어 있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없다. 대학교수의 연구 과제조차 용역 업체의 업무로 인식되고 있으니, 일반 설계사무소나 엔지니어링 회사의 업무는 어떻게 간주되고 실행될 것인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이같이 마치 개인의 습관이나 조직의 관행 또는 사회의 문화처럼 우리 일상 속에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는 한국 도시화의 메커니즘을 계획 제도, 정부 사업, 행정 소품 등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도시화 메커니즘의 계획 제도: 법, 제도, 정책, 국정 과제, 슬로건
한국 도시화의 일상적 메커니즘을 작동하는 첫 번째 단계로 계획 제도가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과 제도를 통한 통치를 원칙으로 한다. 대한민국의 최상위 법 규범으로서 헌법은 공공복리와 공공 필요에 따라,4 그리고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 개발과 보전을 위해5 국민의 사유 재산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근거를 제시한다. 이에 따라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헌법의 하위에 법률, 대통령령, 총리령·부령, 자치법규 등의 법령이 위계에 따라 구성되며, 상위법 우선, 신법 우선, 그리고 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적용된다.
대한민국의 도시화 관련 주요 법령의 종류 및 특징은 표2에서 보는 바와 같다. 흥미롭게도 대한민국의 도시화 관련 주요 법령의 종류와 제정 시점은 해당 정부의 성격 및 임기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박정희 정부는 ‘건축법’, ‘도시계획법’, ‘국토이용관리법’, ‘주택건설촉진법’ 등 도시화 관련 주요 법령을 최초로 제정했으며, 이에 대한 시대적인 법적 정비로서 김대중 정부는 ‘주택법’, ‘국토계획법’ 등의 법령을 제·개정했다. 한편 노무현 정부에서는 주목할 만하게도 ‘행복도시법’, ‘혁신도시법’, ‘도시재생법’ 등 여러 특별법을 제정했으며, 문재인 정부는 오늘날 이에 대한 법적, 제도적 계승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서 특별법은 일반법에 비해 지역·사람·사항에 관한 법의 효력이 좁은 범위에서 적용되는 법률을 말하며, 일반법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도시화 관련주요 법령에도 보수와 진보의 정권 성향이 중요하게 반영돼 있으며, 나아가 대한민국의 실제 물리적 세계에도 여러 단절적 전환이 법적, 제도적으로 시도됐음을 알 수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William Cowper, The Task: A Poem in Six Books , London: Printed for J. Johnson, 1785.
2. “용역”, 표준국어대사전, 2019년 4월 10일 접속(https://ko.dict.naver.com/#/entry/koko/fa27753328404c4ca29c7861983be780).
3. “용역 업체”, 고려대한국어대사전, 2019년 4월 10일 접속(https://ko.dict.naver.com/#/entry/koko/eb4afa670562415a93b87fa066093b0f).
4. 대한민국 헌법 제23조. “①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②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③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5. 대한민국 헌법 제122조.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 중국의 쓰촨 대학교, 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건축,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