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이 모자랄 지경인 최근의 정치면 기사에 유행어처럼 자주 등장하는 단어, 프레임frame. 사전을 펼쳐 보면 참 많은 뜻이 있다. 자동차ㆍ자전거 따위의 뼈대, 사람ㆍ동물의 골격, 창문이나 액자의 틀, 안경테, 영화나 TV 방송의 장면 한 컷, 신문과 잡지의 박스 기사 테두리 등 그 쓰임새가 다양한데, 요즘은 ‘생각의 틀’ 정도의 뜻으로도 통용된다.
“정치에서 프레임은 곧 권력이다”, “언론이 프레임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그녀에 대한 허상을 키웠다”, “‘장미 대선’에서 프레임 전쟁은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등 요즘 언론 매체가 흔히 쓰는 프레임의 용례를 이해하기 위해선 미디어 비평가 토드 기틀린의 정의가 유용하다. 프레임은 “현실에 대한 인식, 해석, 제시, 선택, 강조, 배제와 관련된 지속적인 패턴”(『무한 미디어』, 휴먼앤북스, 2006)이며, 프레임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는다.
언어학을 현실 정치에 적용한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고 정의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어떤 사람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은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와이즈베리, 2015). 어떤 사고의 틀을 주면 사람들은 다른 중요하고 본질적인 일이 벌어져도 주어진 틀에서만 인지하고 판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레이코프는 “상대방의 프레임을 부정할수록 오히려 그 프레임은 강화된다”고 프레임의 효과를 설명한다. 한번 자리 잡은 프레임, 웬만해서는 내쫓기 힘들다는 것이다.
프레임이 정치와 언론에만 관련된 딱딱한 개념인 것만은 아니다. 사회 심리학자 최인철의 스테디셀러 『프레임』(개정증보판, 21세기북스, 2016)이 웅변하듯,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다. 같은 풍경이더라도 둥근 창, 네모 창으로 볼 때 완전히 다른 경관이 되듯, 어떤 마음의 창으로 세계를 보는가에 따라 우리의 일상과 인생이 달라진다. 프레임은 애매함으로 가득 찬 세상에 질서를 부여해 준다. 그것은 “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보도록 이끄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보는 세상을 제한하는 검열관의 역할도 한다”. 그래서 중요하고, 어렵다. 프레임은 독하게 마음먹는다고, 굳게 결심한다고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인철은 자신의 틀을 지혜롭게 깨는 것, 즉 프레임을 리프레이밍하는 과정의 끊임없는 반복을 강조한다.
조경계에도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프레임들이 있다. 조경 공부를 하거나 조경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연은 선이고 인공은 악이라는 ‘자연 프레임’에 익숙하다. 이 전형적 이원론의 우산 밑에 여러 갈래의 지류가 공존하는데, 그중 하나가 조경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구원자(이다 또는 이어야 한다)라는 식의 프레임이다. 조경과 건축을 대립항으로 놓(아야 한다)는 신념도 자연 프레임의 연장선상에 있다. 1970년대에 제도권 조경을 개척한 60대 조경가도, 구체제의 혁신을 갈망하는 30대 조경가도, 희망과 설렘을 가득 품은 대학 신입생도 대부분 이런 공허한 창을 통해 조경을 본다. 이 프레임의 물리적 산물은 곡선 신봉이나 녹색 맹신 정도로 귀결되곤 한다. 지극히 추상적인 데다 논리적이지도 않은 이런 고정 관념의 실익은 무엇일까.
물론 조경계를 지배하는 프레임이 늘 추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매우 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프레임도 적지 않은데, 지난 수년간 가장 영향력이 컸던 것은 단연 ‘위기 프레임’이다. ‘조경이 위기를 맞았다’로 간명하게 요약할 수 있는 이 프레임은 위기의 원인을 대개 두 가지로 본다. 짧게 줄여 말하자면, 첫 번째 원인은 경제 전반의 불황으로 건설 시장이 침체했고 그 결과 조경 일거리가 고갈되어 간다는 것.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진단은 너무나 당연해서 공허하다. 문제의 원인을 조경계 외부의 조건에서만 찾는 환경결정론은 조경 자체에 대한 성찰적 반성과 대안적 지향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두 번째 원인은 조경 고유의 업역을 건축이나 산림 등 사촌 분야가 빼앗고 있다는 것. 현실 상황을 이렇게 진단하며 조경계의 일부 리더나 언론은 잠식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때로는 침탈이라는 무시무시한 말까지 동원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공유하는 것은 좋지만, 분노와 적의를 동반한 이런 프레임은 냉철한 상황 인식과 진단에 토대를 둔 대안으로 연결되지 못할 때가 많다. 과거 회귀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금도 간혹 다시 고개를 드는 1970년대식 국토 담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풍 단합 담론을 면밀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반복적으로 강화되는 위기 프레임은 이 프레임에 노출된 사람들로 하여금 조경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찾게 하지 않고, 오히려 위기를 회피하거나 조경을 포기하게 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학생들에게 조경 뉴스를 가급적 읽지 말라고 권한다. 그러나 레이코프가 말하듯 “프레임을 부정할수록 오히려 그 프레임은 강화된다”.
여러 심리학과 미디어 이론이 말하듯, 어떤 프레임으로 보는가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 어떤 프레임으로 조경과 그 주위의 조건을 읽는가에 따라 조경의 목적, 대상, 교육, 문화적 가치, 사회적 역할이 적지 않게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만들고 의존해 온 기성의 프레임을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유일한 단수의 프레임을 의심하고 다양한 복수의 프레임을 열어 놓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기성 프레임의 해체를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작지만 참신한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과조경』에 던져진 숙제 중 하나다.
이수학 소장(아뜰리에나무)에 이어 앞으로 세 달간 ‘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맡아줄 백종현 대표(세계수프로젝트)에게 감사드린다. 이번 4월호 지면에는 특집 기획물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달에 실은 여러 프로젝트와 공모전의 공통분모가 주거 단지라는 점을 쉽게 알아차리셨을 것이다. 미국, 싱가포르, 한국의 최근 사례를 통해 ‘아파트 조경’ 설계의 현재를 점검해 볼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