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경 40돌. 그러나 생일상은 없었다. 아니 예년보다 밥상이 신통치 않았다. 힘들 줄 짐작했었지만 정말 어려운 한 해였다. 그런데도 ‘조경 자격증이 노후보험’이란 현수막이 도심의 자격증 학원 앞에 걸려있다. 중장년층 취득 자격증 순위에선 조경기능사는 4위를 달리며 조경을 유망 업종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렇게 배출된 기능인들이 전문건설업을 쉽게 등록하여 조경공사업 업체수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2010년 현재 1,451개).
조경은 과연 그렇게 노후를 보장해 주는 산업인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반적인 건설경기 퇴조 속에 조경이란 배는 올 한해 요동을 쳤다. S엔지니어링은 작년 말에 크게 휘청거린 뒤 지금도 회생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또 다른 엔지니어링은 휴대폰으로 인원감축을 알린다는 흉흉한 소문이 연초부터 떠돌았다.
지켜보는 이들의 사정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올해 조경 분야에서는 협력사 담당자가 갑자기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경영난에 어쩔 수 없이 직원을 줄인 곳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설계사무소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원인은 일감 감소이다. 설계물량 감소는 곧 시공물량 감소로 이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긴 한숨이 나온다. 그나마 행정·혁신도시 건설과 4대강 사업에 의존하여 겨우 버텨온 건설사들에게 올 겨울은 빙하기의 시작처럼 여겨진다.
지금의 어려움보다 더 큰 문제는 흐릿한 앞날에 있다. 어려움은 항상 기대와 희망으로 극복할 수 있는데 말이다. 한국건설경영협회가 10월에 연 ‘2013년 건설시장 환경변화와 대응발
표회’에서 내년도 전망이 나왔다. 국내 건설시장이 올해보다 1.3% 증가에 그칠 것이라 한다. 건설을 비롯한 모든 시장의 확대는 수요 증가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수요 증가에 반하는 저출산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그 미래는 지금 일본의 모습이다. 저출산 문제는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고용불안, 교육비 부담, 주택문제 등의 사회문제와 도미노처럼 연결된다. 얽히고설켜 쉽게 풀지 못하는 난제들이다. 헝클어진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해결한 알렉산더의 지혜가 아쉽기만 하다.
어려운 상황에서 <환경과조경>은 연속특별기획을 마련했다. ‘한국조경의 오늘을 진단하다’가 지난 8월부터 진행되었다.
어려움을 서로 나눔으로써 힘을 얻기 위함이었다. 넉 달에 걸쳐 조경의 각 축을 이루는 여러 실무자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상에서 모였다. 문제점 인식과 진단,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과 비전을 얘기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3040세대가 이끌었다. 이들은 조경계의 허리층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연령대이다. 그러나 ‘끼인 세대’로서 먹고 살기 각박하여 사실상 조경분야와 관계된 일은 관심 밖이라는 말이 나왔다. 뜻밖이었다. 여기저기서 이렇게 튀어나오는 자조어린 언어에서는 현실에 대한 당혹감이 그대로 묻어있었다. 그동안의 공급과잉에 중독되어 더 크게 성장할 동력을 키우지 못했다는 자성도 나왔다. 때문에 ‘풍성한 현상설계나 턴키와 같은 설계 중심의 발주방식으로 조경설계의 르네상스임을 의심하지 않았지만…’이라는 회상에서는 “우리가 거품에 취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이를 ‘소탐대실’로 표현했다. 조경계 내부의 문제점으로 인접분야와 비교되는 낮은 기술 전문성이 지적되었다. 그럼에도 조경계 내부의 소통과 교육 시스템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고, 지금도 도시숲과 도시농업 등으로 밀고 들어오는 외부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진단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매체가 그 분야의 이슈를 꺼내서 건드려야 한다는 언급은 언론 입장에서 매우 교훈적이다. 조경계 전체의 어려움 속에서 매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내부적인 어려움
은 외부적인 의존을 낳고, 그 과정에서 언론의 독립성이 훼손될 빈틈이 생긴다. ‘현재의 매체가 산업계와 함께 움직이는 것 같다’는 지적은 그러한 징조의 포착이리라. 건축계의 〈공
간(space)〉지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 광고를 일절 싣지 않고, 국제적 수준의 매체로 발전시켰다. 물론 공간건축설계사무소의 물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건축인의 관심 부족으로 지금 경영난에 봉착해 있다. 매체는 항상 분야의 고른 발전을 위해 독립성을 지켜야 하고, 시장에선 그 노력을 지켜주어야 함을 잘 보여준다.
뒤를 이은 50대 조경인들의 좌담회에서는 3040세대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이미 기성
조경인으로 우뚝 선 분들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난 20년간 조경의 황금기를 구가했지만 솔직히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만든 성과가 아니었다.’는 자성은 비슷하였다. 3040세대가 언급한 조경설계의 르네상스가 실은 비정상적인 물량 폭주에서 비롯되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그런 거품을 양산했던 아파트 건설경기의 둔화를 자연적인 사회진화현상의 결과로 해석했다.
‘눈앞의 이익’이나 ‘당장의 어려움 회피’에만 매달리지 말자. ‘비전’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이 기회에 먼 시야로 우리 분야의 고유한 가치를 확인하고 재정립해 나가자.’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한편, 두 분의 설계종사자는 좁은 시장의 한계를 ‘해외로의 진출’로 뚫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설계품의 신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했다. 해외시장 진출은 3040세대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이었다. 해외 진출을 위한 걸림돌인 회사규모나 자본력의 한계 극복을 위해 합자회사운영방식으로 공동투자, 운영관리와 같은 구체적인 제안까지 나왔다.
해외 한인 조경가들의 SNS토론은 조금 관점이 달랐다. 앞의 두 집단과는 다른 얘기들이 많았다. ‘한국적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치부하여 성토한 열성 독자까지 있었다. 그러나 원래가 타자적인 시각에서 한국 조경의 민낯을 보고자 한 기획이었다. 한국 조경에 대해 ‘틀에 박혀있다.’ 혹은 ‘스타일과 빛’에 대한 논의의 부재가 지적되기도 했다. 그 원인도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 클라이언트의 폭이 좁다. 둘째, 프로젝트의 타입이 적다는 의견이었다. 그리고, 이것 역시 근본적으로 시장의 한계에서 비롯됨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시공인과 교육인의 목소리에서도 흘러나왔다. 그것은 막연한 낙관론, 외형적 성장에 도취, 화수분의 시대 등으로 표현되었다. 모두 지난 시대에 대한 자성이다. 특히 ‘조경의 전문성을 높이는 등의 경쟁력 향상에 게을리 하였다.’는 반성은 앞서 다른 집단에서도 공통되게 나왔던 고백이다. ‘무늬만 전문인’이라는 말로서 전문성 부족을 꼬집었다. 10년 전인 2000년에 440개였던 조경공사업체수가 2010년에 1,451개로 늘어났다. 이렇게 급증한 조경업체가 과연 더 나은 전문성으로 무장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렇지만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개발과 조성의 토건시대에서 복지와 문화의 시대로 변해가는 상황에서, 조경이 새롭게 가치를 인정받고 새로운 업역을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는 긍정적 해석도 나왔다.
발전은 변화에서 비롯되며 자성은 변화를 추동한다. 여기에 이번 논의의 의미가 있다. 4회에 걸친 기획 논의가 40돌을 넘어가는 한국 조경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