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수목 컬렉션과 역사적인 정원의 만남
식물원을 찾아가는 길은 마치 새로운 영화를 보거나 책을 펼쳐 드는 일처럼 색다른 설레임을 준다. 같은 나무와 꽃을 가지고도 그것을 어떤 공간에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따라 정원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오브제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가장 역사적인 도시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의 북쪽 체스트넛 힐(Chestnut Hill)에 위치한 모리스 수목원은 120년이 넘는 역사가 살아 숨쉬는 장편 드라마와도 같은 공간이다. 마치 드넓은 초원에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듯 각각의 독특한 주제와 디자인으로 짜여진 정원을 감상하는 일은, 사실 단순한 꽃놀이나 마음의 휴식을 주는 시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후세대를 위한 모리스 남매의 선물
모리스 수목원은 처음 콤프턴(Compton)이라는 이름으로, 1887년 존 모리스(John Morris, 1847 ~ 1915)와 리디아 모리스(Lydia Morris, 1849 ~ 1932) 두 남매의 여름 휴양지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모리스 남매의 부친 아이작 모리스(Isaac Pascall Morris)는 철강 제조 회사 아이피 모리스(I.P. Morris) 사의 설립자로, 이 회사는 남북전쟁 후 전기 보급과 자동차 발명 등 급부상하기 시작한 산업화에 힘입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존 모리스는 하버드대학교 엔지니어링학과를 졸업한 후 부친과 함께 회사를 경영해 나갔고, 은퇴 후에는 여동생인 리디아와 함께 수목원 조성에 전념했다.
모리스 남매는 1881년부터 1906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아시아, 유럽 등 전 세계를 함께 여행하며 정원 조성에 대한 아이디어, 예술 작품, 조각품, 식물들을 수집하여 하나하나 수목원을 일궈 나갔다. 특히 1889년에 시작한 세계 여행은 11개월에 이르는 대장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존 모리스는 하버드대학교 부속 아놀드 수목원의 첫 디렉터였던 찰스 사전트(Charles S. Sargent)와, 식물학자이자 식물 탐험가였던 데이비드 페어차일드(David Fairchild), 명망 높은 식물 수집가 E.H. 윌슨(Ernest. Henry Wilson) 등 당대 내로라하는 식물 전문가들과 교류를 통해 전 세계로부터 갖가지 진기한 식물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많은 정원사와 원예가를 고용하여 체계적이면서도 독특한 스타일의 정원을 조성하고 관리해 나갔다.
모리스 남매는 또한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되는 도시화에 따른 난개발을 우려하여 자연환경과 토지의 보전 관리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는 후에 콤프턴이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부속 모리스 수목원으로 변모하는 데 중요한 주춧돌이 되었다. 남매는 또한 교육의 힘을 믿었고, 언젠가 그들이 일군 땅이 대중을 위한 정원이 되어 원예와 식물학을 위한 교육 기관의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결국 1932년 리디아 모리스의 죽음 이후 콤프턴은 정식으로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부속 모리스 수목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