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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 환경과조경 2011년 11월

Changdeok Palace

造營_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로 하고 경복궁을 창건하였으나, 정종 때 다시 개성으로 환도하였고 태종 때에야 수도를 옮길 준비를 하면서 경복궁 동쪽 향교동 일대에 궁궐을 조성하게 된다. 태종 5년(1405) 2월 한양에 한 달 간 머물면서 친히 공사의 진행을 둘러보고, 1년에 걸친 공사 끝에 창덕궁昌德宮이라 명명하였다. 이어 1411년 진선문進善門과 석교石橋를 건립하고, 다음해 돈화문敦化門을 준공하는 등 왕궁의 보완 공사를 진행하고, 1418년 7월 박자청朴子靑에게 명하여 인정전仁政殿을 개축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태종은 인정전의 개축 공사가 끝나기 직전 승하하고, 뒤를 이은 세종이 즉위한 1419년 9월 준공하게 되었다. 그 후 인정전은 1453년 단종의 즉위와 동시에 두 번째 개축을 하게 되고, 모든 공사는 세조 6년(1460년)에 이르러 마무리되었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경복궁·창덕궁·창경궁이 불타버리게 되어, 광해군 원년(1609) 재건 공사가 시작되어, 1614년 원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1623년 광해군에 반대한 세력에 의해 창덕궁의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으나 1636년 인조는 후원1인 옥류천 주위에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을 지었으며, 1644년에는 존덕정을, 1645년에는 취향정을 건립하였다. 또한 1692년에는 애련지와 애련정이 조성되고, 인조 25년(1647) 창덕궁의 전반적인 복구가 다시 이루어지게 된다. 이후 1704년 대보단이 조성되었으며, 1776년 영조는 규장각을 짓고, 정조는 부용정을 개축하였다. 1828년 순조는 사대부의 생활을 즐기기 위해 민가 양식의 연경당을 건립하였다. 이후 1908년 일본에 의해 궁궐 일부에 개축이 행해지고, 인정전에는 서양풍 가구와 실내 장식이 도입되게 되었다. 1917년 대조전을 비롯한 내전 일곽이 소실되었는데
이때 정궁인 경복궁의 침전 공간에 있던 교태전·강녕전, 동서행각, 연길당·함원전 등의 건물을 헐어 사용하였다. 그 후 1990년대에 들어와 3단계에 걸친복원 공사가 이루어져 1995년 인정전 주변의 내행각 11동이 복원되었고, 1999년 외행각 주변 15동이 복원되었으며, 2002년 규장각 권역에 대한 복원공사가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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