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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의 식물이야기(16)
  • 환경과조경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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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1564~1616) 원작 논란
머지않아, 정확히 말하자면 11월 3일 인디펜던스데이로 유명해진 롤란드 엠머리히 감독의 최신 영화 한 편이개봉될 예정이다. 제목은‘익명anonymous’이다. 한국에서도 개봉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영화는 세상을 좀 시끄럽게 할 것 같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그의 작품을 정말로 직접 썼는가?”에 대한 논란을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누가 셰익스피어를 모르겠는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셰익스피어. 그의 작품을 직접 읽거나 연극으로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햄릿이며 로미오와 줄리엣, 맥베스와 오셀로 등의 내용 정도는 누구나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희곡 서른일곱 편 중에서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은 작품은 단 하나밖에 없다.2 햄릿은 무려 일흔다섯 번, 로미오와 줄리엣은 총 쉰 번이나 영화로만들어졌다. 16세기 중·후반에서 17세기 초에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희곡은 지금도 연극무대에 꾸준히 오르고 있으며 그의 명성은 조금도 시들지 않고 있다. 이 사실은 다른 어느 작가도 이루지 못한, 수백 년의 시대를 초월한 셰익스피어의 천재성과 그의 작품의 보편성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오셀로, 맥베스, 그리고 팔스타프 등의 작품은 베르디가 오페라로 작곡하여 더욱 널리 알려지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이런 전무후무한 희대의 작가가‘본인의 작품을 직접 쓰지 않았을 수 있다’는 논란이 18세기에 시작되었고 이 논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원작 여부에 대한 의문이 더욱 짙어져가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 근거가 되는 몇 가지 핵심적인 논지를 들자면, 첫째로 보통 작가들은 평생 서너 편의 희곡도 쓰기 어려운데 서른일곱 편의 희곡을, 그것도 두고두고 명작으로 남을 그 많은 희곡들을 과연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단순한 인간이 쓸 수 있었는가라는 점이다. 평균 일 년에 한 편 이상을 쓴 셈이다. 특히 작품 속에서 보이는 엄청난 철학적 깊이와 고대 문학과 예술에 대한 방대한 지식, 그리고 법률이며 정치 상황에 대한 전문적 지식, 궁중 생활과 테니스며 매사냥 등 귀족들의 생활에 대한 상세한 묘사들로 미루어 볼 때 셰익스피어의 출신 성분과 교육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주장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셰익스피어의 언어인데, 그는 역대 작가 중 가장 많은 단어를 구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 17,750개의 단어를 썼으며 가장 서민적인 표현으로부터 최고급 수준의 언어까지 다양하게 구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필요하면 새로운 단어도 만들어 냈다. 영어 사전에 가장 많이 인용된 것도 그의 언어이다. 물론 교육 수준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독학으로 지식과 언어 구사력을 넓히고 명작을 쓰는 것이 가능한 일이니 이 논란은 크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둘째는 외국어 실력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쓴 사람은 그리스어와 라틴어 외에도 상당한 수준의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구사했음에 틀림이 없는데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어느 사이에 외국어까지 배웠겠는가라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장갑을 만드는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나 기본 교육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스물한 살 정도 되었을 때 런던으로 가서 배우가 되었다. 그리고 희곡을 써서 바로 무대에 올렸는데 쓰는 족족 엄청난 반향을 얻었고 유명해졌다. 그런데 어디에서고 그가 고등 교육을 받았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어 습득 역시 천재라면 가능한 일에 속한다. 세 번째는 그의 외국 지리와 문물에 대한 지식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상당 부분이 영국 이외의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탈리아의 베로나를 무대로 하고 있다. 오셀로와 베니스의 상인은 물론 베니스가 무대이고, 햄릿은 덴마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그 외에 보헤미아, 시칠리아, 프랑스, 그리스, 이집트 등 거의 온 세상을 무대로 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 나라에 가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장면 묘사들이 작품에 실려 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 자신은 영국을 떠나 본 적이 없다. 물론 이 역시 여행 서적들을 읽어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이지만 보통 여행 서적에서 다루지 않는 세세한 문물들까지 알고 있다는 것은 천재성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다. 네 번째로 의심이 가는 점은 인쇄된 판본 외에 셰익스피어가 직접 쓴 편지, 일기, 메모 등이 한 줄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유품 중에 책이 단 한 권도 없었다는 점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보았을 거라는 해석도 있는데, 아무리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 하더라도 작가의 서재에서 책이 한 권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한 줄의 메모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다. 인쇄로 넘기기 전에 손으로 쓴 원고가 한 편이라도 혹은 부분적으로라도 어딘가는 남아 있는 것이 정상이다. 글 쓰는 사람들이 대개 작품 외에도 편지나 메모, 일기 등을 남기기 마련이다. 특히 그가 남긴 유언장을 보면 누가 어떤 가재 도구를 물려받는가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정하고 있음에도 그의 작품의 판권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이 없다는 대목에 도달하면 누구나 마음속으로 물음표를 찍게 된다. 이미 1780년 경 셰익스피어 고향 출신의 전기작가 제임스 윌멋이 스트팻퍼드 일대의 반경 오십 마일의 범위에 있는 모든 도서관과 사택들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단 한 줄의 편지도 나타나지 않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본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이메일처럼 당시의 일상적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편지였음을 감안할 때 특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셰익스피어가 사업에 능란했다는 점이다. 그는 런던의 글로브 극장의 주주였고 재산을 많이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자녀들 교육을 등한시해서 그의 딸들이 문맹이었다는 점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딸이 둘이었는데 한명은 아예 문맹이었고 다른 한 명은 자기 서명이나 겨우 그리는 정도였다고 한다.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보이는 엄청난 교육적, 문화적 수준에 비추어 볼 때 정말 상상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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