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날의 이 ‘세계’는 고요히 꿈틀거린다.
쉼 없는 생장을 이어온 풀과 나무들이 잠시 멈추는 것과도 같이 고된 일을 마친 이들에게는 휴식과 충전의 시기인가 하면, 봄이 되어 분주해질 일들을 위해 이 겨울, 명징한 밤의 냉기를 빌어 열심히 노동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난히도 추운 날씨만큼이나 올 겨울은 한산하기만 하다. 모두들 어디로 간 것일까?
온 나라가 ‘걷기’와 ‘파기’ 열풍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명소만을 고집하지 않으며, 둘레길, 올레길과 같은 이름으로 저마다의 다양한 방식으로 두루 체험하고자 한다. 또 다른 곳에서는 우리네 도시와 강이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파헤쳐지고 과감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전자가 목적지 위주의 ‘도장찍기’식 여행과 ‘정상탈환’형의 등반에서 벗어난 여행과 체험의 새로운 발견이라면, 후자는 정치와 자본의 공생 속에서 개발행위를 통한 업역과 물량의 확대·재생산 행위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
잠시, 봇물처럼 터져 나올 듯한 조경행위와 수요에 설레기도 하지만 이내 두려움이 앞선다. 여전히 밥그릇 싸움이 될 수도, 또는 제 살을 깎아 환부를 땜질하듯 치장하고 미화하는 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걷기를 통한 과정중심형의 체험 열풍은 여전히 식지 않고, 눈여겨 볼 곳들을 제외한 우리의 일상과 주변은 이미 황폐하고 빈곤해져 버렸다. 그럼에도, 또다시 특정한 지점의 ‘공간과 장소’를 말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전적으로 이 글을 싣는 매체의 한계일 것이다. 마치 카메라가 들이대는 부분만을 전달받는 뉴스나 영화처럼 시각매체의 속성이자 표현수단의 한계인 셈이다. 또한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체험적 내용들을 말글과 한정된 시각이미지로 설명하려 든다는 것도 자칫 위험한 일일 수 있다. 일찍이 Kevin Lynch는 ‘좋은 사진이 꼭 좋은 환경은 아니다’라고도 한 바가 있다.
여기 허물거나 파내지 않으며, 당신이 원한다면 계획된, 또는 의도된 루트를 따라 걸을 수도 있는 장소들을 만나보자. 대상지의 ‘원형 틀(archetype)’을 가급적 유지하며 시간성에 의한 체험 또한, 유의에 두며 형성된 4개 유형의 공간들이다. 그것은 곧 예술을 담는 경관이자, 예술적일 수도 있는 일상의 경관이다.
그곳들을 만나는 데에는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도 대표성을 지니는 방식들을 취하였다. 장소와 공간을 체험하는 다양한 방식을 비교해보며 그 본질을 느껴보기 위함이다.
그것들은 각각 #01 직접 체험을 통한 ‘보고, 느끼고, 말하기’, #02 가본 적 없는 곳의 글과 사진을 통한 ‘장소의 간접경험’, #03 설계 등의 방법으로 조성에 직접 관여하는 ‘만들어 보기의 공간’, #04 동일 장소에 대한 고정 시점의 ‘비연속적(non-continuous) 반복의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