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6일부터 12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갤러리 서미(Gallery Seomi)에서는 추상도자조각으로 유명한 폴 샬레프(Paul Chaleff)의 전시회가 열렸다.
폴 샬레프는 1990년대 이후 도자기 본연에 대한 이해를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추상표현주의, 구성주의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미술사적인 접근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도자조각을 선보여와 추상도자조각의 선구자로 불리는 세계적인 조각가이다.
그가 추구하고 있는 도자조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조각과 도예의 접목으로 생겨난 것으로 실용적인 기능에 충실해 온 전통적 도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점토라는 매체의 자유로운 조형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창조가 가능해지면서 시작된 조각 장르이다. 이는 최근의 미술사나 미학사에서 볼 수 있듯 현대 조각에 개방성이 추구되면서 모더니즘 이후의 조각이 조각으로서 형식의 일관성을 강조할 뿐 철, 돌, 알루미늄, 점토, 나무, 철사, 마직물, 시멘트 등 특정 재료에 제한을 두지 않는 점과 맥을 같이 한다.
이번 서울전에서 선보인 “사자의 몫(Lion’s Share)”과 “해마(Hema)” 그리고 “스플래쉬(Splash)”는 각각 그 규모는 다르지만 두 개의 점토 덩어리들이 마치 “서로 반대로 작용하는 두 개의 힘”처럼 작용하도록 관련 있게 조작하는 작가의 형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작가 스스로 “충돌하는 형식들”이라고 언급하는 이런 접근법은 흡사 1세기 전의 보치오니의 조각에서 나타난 역동적인 운동성과도 닮아있다.
전시장에 전시된 그의 작품을 보면 약간 녹이 슨 듯, 푸른 이끼가 낀 듯한 묘한 색감을 띤다. 마치 쇠를 녹여 주물로 제작한 듯 보이나 엄연히 흙으로 빚어 가마에서 구워낸 도자조각들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는 물리적인 존재가 주는 외형적인 단단함이 보이는 동시에 근본적으로 점토라는 재료가 주는 유연성이 작가의 태도로 드러나 있다. 그는 “흙과 물로 생성된 점토는 이 지구상에 어떤 소속감을 전해주는 물질이다. 만약 점토가 없다면 진정한 고독이나, 명상, 소생의 환희 역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며 흙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원초적인 안정감을 작품을 통해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