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총장 임명으로 조경분야 위상을 높이고,
전통조경에 대한 관심으로 별서정원 등 명승지정에 기여"
올해 2월초, 조경학과 교수가 부총장에 임명되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단순히 개인 신상의 변화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지만, 보통 인문계열의 교수들이 임명되기 마련인 부총장직에 실무 중심의 응용학문인 조경학과 교수가 임명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하고도 반가운 화젯거리이자 사회적으로 조경분야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그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제13회 올해의 조경인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된 상명대학교 환경조경학과의 이재근 교수. 아니나 다를까 그를 올해의 조경인으로 추천한 추천서에는 그의 부총장 임명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더불어 학자
이자 교육자로서 후진양성에 대한 열정을 비롯해 오랜 기간 실무에 종사했던 조경가로서의 전문성,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것에 대한 근원적 접근으로서 전통조경에 대한 진지한 성찰 등 대학의 부총장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조경인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담당해온 그간의 삶이 가득 담겨있었다.
부총장, 조경가로서 전문 식견이 교육경영의 리더로
이재근 교수의 부총장 임명은 지난 2001년 동국대 최상범 교수에 이어 두 번째이지만 전문분야의 책임과 역할이 날로 강조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30여년의 역사와 함께 이제 성인기에 접어든 조경분야 또한 그 역할에 동참할 수 있음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사건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이재근 교수는 “우리나라에 조경학과가 설립된 지 37년이 되었으니 충분히 교육행정가나 정치가, 지자체장 등이 나올 수 있는 시점이다”며 지난 시절 신입사원에서부터 시작해 한림종합건설의 대표이사까지 재임했던 실무경험이 지금의 학교경영에 좋은 밑거름이 되는 것 같단다. 그러면서 “조경가이자 학교의 수장으로서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지고, 학교발전에 기여해 조경의 위상을 높이겠다” 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이런 뜻은 상명대학교 천안캠퍼스 곳곳에 이미 깊게 배어 있었다. 부총장이기 이전에 조경가로서 그동안 ‘아름다운 캠퍼스 만들기’사업에 역점을 두어왔던 것. 천하제일복지, 안서동천, 백록천지, 커튼월 물의 광장, 봉황소, 매송동산 등 캠퍼스 곳곳에 천안의 역사와 터의 의미를 조경디자인 요소로 사용해 크고 작은 공간들을 조성해왔다. “아름다운 캠퍼스 만들기는 학생들에게 학교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학문욕구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됐어요. 더불어 학생들에게 조경의 의미와 역할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그의 노력과 실천이 빛을 발한 것일까, 작년에는 환경부와 (사)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가 수여하는 제9회 자연환경대상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통조경, 한국 현대 조경의 뿌리
그가 조경을 하게 된 계기는 제대 후 복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서울시립대 농업경영학과에 입학했으나 제대 이후 학과가 폐지되어 조경학과를 선택했던 게 인연이 되었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자란 영향 때문인지 수목과 자연, 경관을 다루는 조경이 매력적이었다고. 그중에서도 특별히 관심을 가져온 분야가 바로 전통조경이다. 이유인 즉 전통조경은 현대조경의 뿌리일뿐더러 그 뿌리의 맥을 찾아 조경을 해야 한국의 정서가 묻어날 수 있다는 평소 철학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조경은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삼국시대 이전부터 좋은 환경과 유적,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서양의 조경 개념에 치우친 나머지 한국 풍토에 맞게 발전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죠. 우리의 전통을 현대조경에 접목해야 하는 건 이 시대 조경가의 임무가 아닐까 합니다.”
이렇듯 전통조경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진 그는 현(사)한국전통조경학회의 전신인 정원학회의 창립 발기인 12인중 1명으로 참여하였으며, 지난 2006년부터 2년간 전통조경학회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2003년부터는 문화재청의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천연기념물 및 명승지정에 큰 열정을 쏟고 있다. 특별히 전통조경학회지에 ‘우리나라 명승 지정의 현황 및 개선방향’, ‘명승지정을 위한 세부 평가 항목에 관한 연구’, ‘별서 명승의 개념에 대한 의미론적 해석’ 등 명승 현황과 별서정원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수록하는 등 우리나라 고정원들이 명승으로 지정되도록 하는 데 앞장서왔다. “명승은 자연유산이자 인문환경의 복합체로서 경관(scene)이라는 측면에서 분명 조경이 다루어야 하는 분야입니다. 천연기념물, 천연보호구역, 노거수, 별서정원 등도 교육적으로나 경관적 가치로 볼 때 조경가가 다루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노력으로 담양 소쇄원, 명옥헌, 보길도 윤선도 원림 등 그동안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던 별서정원 11곳이 명승으로 지정되는 결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명승으로 지정된 곳은 총 72개, 다른 나라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다. “앞으로 명승이 많이 지정되어야 합니다. 이웃 나라인 중국, 일본, 심지어 북한에도 3백여개가 넘는 명승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제 70여개에 불과하니까요”라며 “앞으로 이 분야에 조경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조경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관심을 촉구했다.
계약학과 내 조경전공 신설, 실무종사자 학위취득 기회부여
올해 상명대는 국내 최초로 대학원에 환경조경전공 계약학과를 신설하여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계약학과는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업과 학교가 계약을 맺고 기업에 필요한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하는 학과로, 정원 외로 운영되기 때문에 입학이 용이하며, 입학생 전원에게 50%의 장학금 혜택이 돌아갈 수 있음은 물론 학업과 실무를 병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번 상명대의 계약학과 신설은 이재근 교수의 적극적인 주도로 이루어진 것으로 현재 조경실무를 하고 있는 35명의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학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향후 조경인들이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이런 노력은 그동안 상명대에 재직하면서 240여명의 대학원생을 길러낸 교육자로서 역량 있는 조경인 양성을 위해 노력해온 이재근 교수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부분. 더욱이 이번 계약학과의 신설은 (사)한국조경사회, (사)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와 계약을 맺음으로써 이들 단체의 기업회원사에 소속된 직원들만을 모집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상명대는 물론 양 단체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했다는 측면에서 조경분야를 향한 그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수상소감을 묻자 “이번 수상을 계기로 올해의조경인 수상자 모임(올조회)에 들어가서 조경분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올조회의 한 사람으로서 조경분야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니 영광스럽습니다. 다른 훌륭한 분들도 많은데……송구하네요”라며 역시나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분야를 우선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를 보면서 겸손함은 물론 늘 조경분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그간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해서 가슴이 뿌듯해졌다. 조경전문가로서, 또한 교육자로서, 우리의 것을 사랑하는 전통조경학자로서 그가 맡은 역할에서 한결같이 최선을 보여준 그이기에 이번 특별상 수상이 더욱 값지지 않을까. 부디 그 한결같음이 앞으로도 꾸준하길 바라고, 많은 조경인들에게 존경받는 거목으로 기억되길 기대하며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