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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의 식물이야기(7): 고대 약용식물 이야기 3, 세종대왕 편
  • 환경과조경 2010년 11월

세종대왕의 유산
세종대왕의 업적 중 거대한 두 개의 산맥은 한글창제와 탁월한 과학기술적 성과일 것이다. 이 두 산맥이 하도 크고 높기 때문에 그 그늘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나머지 업적들도 대단한 것들이다. 국토의 확장을 통해 국력을 신장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고 이를 위해 화기개발에 힘썼으며 성의 수축, 병선 개량, 병서 간행 등 국방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 밖에도 아악을 정리하고 금속 화폐인 조선통보를 주조했으며 불서를 한글로 번역하였고, 단군사당을 세워 국가의 근본을 확실히 했다. 그는 심지어 처용가의 곡절을 참작하여 가사(歌辭)를 개찬하여 봉황음(鳳凰吟)이라 이름하며, 조정의의 정악(正樂)으로 삼았다고 하니 가무에도 관심과 조예가 깊었음을 말해준다.

이렇게 다방면에 조예가 깊던 세종대왕이었으나 정원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나보다. 만약 관심을 두었다면 그는 틀림없이 집현전 학자들을 시켜 조원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게 했을 것이다. 물론 조원 관련 관직과 교육제도를 마련하고, 조원용 소재의 생산과 수급 체계도 확실히 자리 잡아 놓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그건 대왕이 다른 분야에서 보여준 철저함으로 미루어 보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자취는 아쉽게도 아직 찾아지지 않는다.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해서 그가 관심이 없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니다. 위의 방대한 사료들을 제대로 정리하다 보면 조원에 관한 자료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많은 학자들이 나름대로 각기 전문분야의 세종 업적을 연구하고 있지만 그 학자들 자신이 조원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정리하는 과정에서 간과했을 확률도 없지 않다. 우리가 해야 하는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세종대왕이 조원에 대한 체계를 잡았다한들 지금 우리 조경계가 달라졌을까?
전통이 모자라기 때문에 맥락이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고 보면 그것도 해답은 되지 못한다. 사실 세종의 업적 중 한글창제만이 역사의 소용돌이를 뛰어넘어 존속하였을 뿐이다. 그 외의 것은, 특히 15세기에 이미 유럽을 능가했던 과학기술은 그 맥을 제대로 이어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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