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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따라 밟아본 삼국지 유적과 경관(8)
  • 환경과조경 2010년 11월

봉추선생 방통이 젊은 나이에 죽은 면죽 낙봉파

낙봉파는 사천성 면죽(綿竹)을 지나 산길로 20킬로미터 들어간 곳에 있다. 이곳에는 방통묘뿐 아니라 백마파, 백마관, 방통사 등이 있다. 인근 계곡에 낙봉파 표석을 세웠고 그 옆 죽은 자리에 혈묘를 자그마하게 만들었다. 백마관(白馬關)은 본래 한나라 때부터 군사요충지로 성도와 농서 사이를 잇는 고역도(古驛道)였다. 본래 산 이름을 따서 녹두관(鹿頭關)이었으나 방통이 탔던 백마 이름을 따라 바뀌었다. 방통묘는 다른 묘와 달리 돌로 견고하게 만들었다. 큰 공적도 못 세우고 젊어서 죽은 방통에게는 과분한 것 같았다. 묘 앞에는 방통을 죽게 한 백마모형을 만들어 놓아 방통의 한을 기리게 했다. 방통사(龐統祠)는 두 채로 되어 있는데 앞의 용봉이사전은 제갈량과 방통을 같이 모셨고 뒤의 서봉전은 방통만 모셨다. 중간에 작은 사당이 있어 장비가 버티고 앉아 있는데 이렇게 장비는 어디서나 친근하고 애교스런 표정을 띠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통에 관련되는 여러 비석을 모아 놓은 봉추 비랑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100미터쯤 가면 낙봉파가 나오고 그 언덕에 방통이 피를 뿌리며 죽은 자리에 혈묘(血墓)가 있다. 묘 바로 옆에 우리와 여행을 같이 한 전한중박물관장 서홍조(徐鴻藻) 씨가 설명하고 있다. 그는 삼국지에 정통한 중국인 학자로서 성도에서 한중까지 소위 ‘고촉도(古蜀道)’를 여행하는 동안 우리에게 많은 유적 현장을 안내했다. 마지막으로 작은 골짜기에 ‘낙봉파’라는 비석이 서 있다. 자그마한 언덕일 뿐이어서 삼국지를 읽으며 심산유곡의 험난한 골짜기를 상상했던 우리에게는 실망만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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