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도시디자인, 풍요 속의 빈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도시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뜨겁다. 각 도시마다 세계적인 건축가 및 조경가들에게 공공 프로젝트의 설계를 맡기기도 하고, 공공 건축물이나 공공 공간의 설계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새로운 공원을 만들고 하천을 복원하는 일은 지자체마다 역점을 쏟는 일들이다. 또한 수년 전부터 공공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자체마다 간판을 비롯하여 가로시설물, 보도블록, 거리의 예술품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부분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언뜻 보면 우리 도시환경의 질은 날로 개선되고 있고, 조경, 건축, 도시설계, 환경디자인 등의 분야는 많은 프로젝트들이 양산되면서 외적으로 풍요해 보인다. 물론 그간의 노력들이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제에 풀어야 할 문제점도 많다. 도시환경개선과 관련된 많은 프로젝트가 단기적인 사업위주의 관점에서 추진되어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들어 놓았을 때는 근사하나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고, 운영과 관리를 고려하지 않은 설계로 인해 초기 설계에 많은 변형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공공의 예산을 많이 투자하여 조성해 놓았는데 그럴만한 가치가 과연 있는가에 의구심이 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해외 건축가들이나 조경가들을 초청해서 설계한 뒤에 이를 홍보와 마케팅을 위해서만 활용하고, 이후 실시 설계등의 최종적인 디자인 퀄리티에는 무심한 경우도 발견된다. 진정으로 좋은 도시공간을 만드는 방식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고에서는 도시브랜드, 공공디자인, 가로환경디자인 등의 이슈와 문제를 집어보면서 한국의 도시디자인의 당면 과제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한다. 나아가 공공디자인, 가로환경디자인 등의 도시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대안적 방향도 제시하고자 한다.
도시 브랜드와 장소 만들기
21세기는 도시의 시대이다. 세계의 도시들은 무한경쟁체제에 돌입하여 있다. 투자를 유치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도시들은 각 도시만의 개성 있는 브랜드를 가지고자 한다. 도시의 오래된 전통과 역사가 브랜드를 형성하기도 하고, 산업과 문화가 브랜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때로는 새로운 도시공간과 건축물이 도시브랜드를 창출해내기도 한다. 아나 클링맨(Anna Klingmann)은 Brandscape: Architecture in the Experience Economy(2007)에서 세계 도시들이 각자 도시들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건축을 브랜딩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향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도시간의 경쟁체제 상황 속에서 도시나 기업들이 세계적인 스타건축가 및 디자이너를 선호하는 경향은 불가피한 경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브랜드스케이프'(도시 경관이 다국적 기업의 브랜드나 스타건축가들의 작품으로 점유되는 현상을 일컬음)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한 브랜드 건축은 섬처럼 복잡한 사회조직과는 유리되는 공간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장소의 맥락과는 어울리지 않는 '복제의 문화'에 빠져드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랜드스케이프는 도시경관을 형성하는 강력한 힘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