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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水戰略 - 원생경관의 시학적 복원
  • 환경과조경 2008년 8월
山水戰略 - 원생경관의 시학적 복원

경관문화 = 라이프스타일
문화라는 말은 너무나 많은 것을 내포하고, 최근 들어 이 단어의 쓰임이 지나치게 광범위해 진 경향이 없지 않지만, 오피스박김이 생각하기에 경관을 만드는 행위(조경)가 창출하고 기여하고자 하는 문화란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이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경관의 수준은 도시민이 언제 어떻게 쉬고, 즐기고, 출퇴근길에 무엇을 감상하며 추억하게 되는지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사실 조경행위는 대개 처음부터 프로그램의 제공을 목적으로 경관을 만들게 되는데, 집 앞 세 평의 마당과 텃밭에서부터 대형 공원에 이르기까지, 대체자연을 만듦으로써 자연의 경험을 주고자 한다는 점이 공통점이라 하겠다. 도심 속에서 탁 트인 광장이 주는 경험도 사실은 대자연속에서 갑자기 펼쳐지는 평원이 주었던 의외의 청량감에 기원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러한 조경의 부산물들 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경관들은 땅의 지형적인 조건(geomorphological condition)에 의해 만들어진 경관의 존재 그 자체가 제공해주는 ‘원생경관’ 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설악산의 봉우리들이 만드는 스카이라인, 그 앞에 선 사람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드는 그랜드캐년(Grand Canyon), 나지막한 언덕들에 둘러싸인 따뜻한 물과 보드라운 모래를 천연수영장으로 제공하는 월든 폰드(Walden Pond)와 같은 천혜의 공간들은 경외감을 주는 동시에 보는 이가 품고 있던 일상의 괴로움을 하찮게 만들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산지가 전 국토의 3분의 2에 달하는 한반도의 지형을 ‘평지가 모자라고 개발이 힘들다’고 간주하는 것이 근대식 개발논리의 관점이었다면, 이러한 땅의 형세를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매력적인 도시경관의 가능성으로 재발견 하는 것이 바로 21세기의 관점이어야 하겠다. 우리는 굳이 설악산에 가지 않더라도, 물론 스케일의 차이는 있지만, 세종로를 운전하다가도 경복궁 뒤편으로 펼쳐져있는 인왕-북악-북한산을 감상할 수 있고, 맑은 날 한강다리를 건너다보면 남산의 능선을 즐길 수 있다. 휴일엔 땀날 정도의 등산로를 제공하는 높고 낮은 산들이 도심 속에 산재해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빌딩 사이로 발견해 내며 감지덕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 더 훌륭히 보전될 수 있었던 원생경관의 자투리일 뿐이다. 유럽의 고도(古都)에서 전망대에 올라 수백 년 된 건물들과 새 건물들이 지형위에 완벽한 짜임새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지만, 원래 산속에 들어앉아 있던 우리의 도시들도 전쟁 후 30년을 달리 보냈더라면 지금쯤 그들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상 유래 없는 경제성장을 통해 기근에서 벗어났지만 대신 큰 것을 잃었고, 이제와서야 서서히 그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서울의 청계천 복원사업, 한강르네상스를 비롯하여 전국의 지자체에 까지 널리 퍼지고 있는 공공디자인 사업 등은 - ‘어떻게’와 ‘무엇을’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 모두 우리의 도시경관이 지금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 ‘문화’가 한 민족이나 국가의 아이덴티티의 총합 혹은 그 자체라고 볼 때, 우리의 경관문화를 생각함은 자연히 ‘한국적 경관은 무엇인가’의 질문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말해 한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한 이래 자연을 어떻게 즐기고 아끼고 살아냈는지, 어떤 경관을 만들어 왔는지, 그리고 현재 새로 만들어지는 경관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그 무엇이 과연 있는지에 대한 자문일 것이다.
오피스박김이 지난 2년간 서울의 오피스에서 고민한 것도 바로 이러한 것인데, 특히 대규모 오픈스페이스를 설계할 때 끊임없이 구하고자 하던 해답이었다. 참가했던 세 번의 현상설계를 통해 오피스박김이 한국적 경관을 만들기 위해 택한 방법은 “산수전략(山水戰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야말로 산(산, 둔덕, 섬 등)과 물(강, 바다, 호수 등)을 다루는 전략을 세움으로써 그것이 공간설계의 원칙이 되도록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조경 프로젝트는 산이 많고 그에 따라 물도 많은 한국의 지형에 들어앉아 있기 때문에 산과 물에 대한 전략이 매우 근본적인 공간적 뼈대를 만드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때로는 현존하는 산과 물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강화시킴으로써 이들이 새로 들어가는 프로그램의 근간이 되도록 하였고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부 오픈스페이스 설계경기), 다른 때는 산을 만드는 것과 물을 만드는 것을 다르지 않다고 보았으며 (청라지구 호수공원 설계경기), 또 어떤 때는 산의 연속을 만듦으로써 혁신적 방법의 경관복원을 시도하는 (마곡 워터프런트 설계경기) 등, 각 프로젝트마다 모두 다른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세 가지 유형의 산수전략 모두가 결국 새로 만들어질 경관을 통해, 동시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산과 물의 지형의 조화를 근간으로 새로운 경관을 만드는 것은 곧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중략)

이탈리아의 지리학자 투리(Eugenio Turri)는 사람이 경관을 마주할 때 (땅을 변형시키는)행동자(actor)로서, 혹은 (이야기를 만들어 경관에 의미를 부여하는) 관찰자(spectator)로서 행동한다며 이러한 반응이 한 공간을 경관으로 만든다고 하였다. 후자는 우리 선조들이 경관을 대했던 방식을 유사하고, 전자는 계몽시대이후 형성된 서구적 자연관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산수전략은 상기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선, 상호 연계적 소통 과정으로, 땅의 변형을 “극화”하여, 관찰자의 의미부여를 안내 하고자 하는 행위라 볼 수 있다. 산수전략은 한국 현상설계라는 현실 무대에서 제안된 것으로, 동시대 경관문화를 지시하고자 하는 대안이었다. 즉, 한국적 경관은 “과거의 물상”을 모사하는 규범이기 보다는, 새롭게 ‘정의’해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이미 많은 것을 잃어버려 전통경관의 원본을 복원 할 수 없다는 것은, 원생경관의 역설적 복원을 통해, 오히려 그 시학적 복원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없어진 산과 물을 다시 만듦으로써 경관의 골격을 재생시키고 이 자체가 음유의 대상이 되도록 한다면, 우리 도시들은 더 이상 편평한 땅에 과잉프로그램을 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다시 한가롭게 경치를 즐기던 내재된 라이프스타일의 회복과 함께, 동시대 도시가 요구하는 복합적 프로그램까지도 담을 수 있는 경관을 재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글 _ 박윤진, 김정윤 (오피스박김 소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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