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신설한 “조경가 인터뷰” 코너는 지난 8월에 출간된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에 쓴 “조경가 리뷰에 앞서”란 글의 후속 기획이다.
의도는 단순하다. 이제 조경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는 것이다. “조경의 시대”가 단지 듣기 좋은 레토릭이 아니라면, 조경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조경가들에 대해서 다양한 시선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러자면 뭔가 이야기할 꺼리가 미리 좀 있어야 할테니 그걸 잡지에서 해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담고자 하는 내용은 이렇다. 특정 조경가의 중요 작품에 대해, 특징과 경향, 작품을 빚어낸 생각에 대해, 때에 따라서는 설계 어휘와 방법론, 프로세스, 미학관 등등에 대해, 가능하다면 설계 철학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해볼까 한다. 물론 이 모두를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조경가는 작품의 경향에 대해, 어떤 이는 대표작 위주로, 또 다른 조경가는 무난하지만 재미 없는 소개 수준에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행간을 읽어주는 눈 밝은 독자들에 의해서, 더 나아가서 담겨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해석을 덧붙여 의미를 생산해내는 창조적인 독자들에 의해, 조경가에 대한 담론으로까지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꿈꿔본다.
소개하는 방식은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정리가 기본 포맷이 될 것이다. 조경가를 만나 그(들)의 생각을 옮겨보자, 이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다. 다만, 가급적 짧은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는 진행하지 않으려고 한다. 단답형으로 묻고 답하는 방식은 가독성도 떨어지고 질문과 대답이 겉돌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형식을 실험해가며 최대한 조경가들의 육성을 담아보려고 한다. 그들에 대한 담론은 결국 그들의 목소리에서 시작될 테니까 말이다. 묻고 답하는 방식을 피하되 육성을 담을 수 있는 어떤 묘수가 있을지는, 몇 회에 걸쳐 찾아볼 생각이다(초반에 소개되는 분들에겐 양해를 부탁드릴 수밖에). 참고로 이번호는 몇 가지 키워드에 대해 풀어서 질문을 던져 놓고, 그에 대한 실마리가 담겨 있는 답변을 재구성해 소개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렇다면, 어떤 조경가를 선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가장 중요하면서 어려운 대목이다. 사실 그 문제가 해결이 안돼서, 앞에서 언급한 책의 큰 주제가 “우리시대의 조경가”에서 “설계공모 리뷰”로 선회되었으니, 선정 기준의 난감함은 정말 큰 벽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의외로 쉽게 해결책이 찾아졌다. 얼마전 열린 “광교신도시 공원 특화 컨셉 디자인 공모 시상식 및 세미나”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이규목 교수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욕을 먹는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플로어에서 이야기한 순간이었다. ‘어떤 이슈가 있길래, 그렇게 말씀하셨을까’라는 생각은, 조금 더 자세히 작품에 대해서 알고 싶고 듣고 싶다는 궁금증으로 커졌고, 순간 “조경가 인터뷰” 코너의 방향이 머릿속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세미나가 끝나자마자 당선자인 김정윤․박윤진 소장을 만나 섭외까지 마무리 짓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최근 2-3개월 내에 이슈가 되었던 설계공모 당선자나 그 기간 동안 완공된 작품을 설계한 조경가를 “이 달의 조경가”로 하면 어떨까하던 처음의 망설임은, 그게 최선이라는 결론으로 바뀌었다.
"특화 컨셉"이란 미션_광교의 경우
조경가 선정 원칙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준 이규목 명예교수(서울시립대)의 코멘트를 거칠게 옮겨보면 이러하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시설이 담겨 있는 능숙해 보이는 안과 어떻게 보면 설계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두 가지 상반된 성격의 안이 최종 단계에서 논의되었는데, 조경설계의 변화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후자의 안에 한 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심사평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여러 가지 쟁점 중의 하나는 “한두 가지의 강한 아이디어만으로 도시 전체에 걸쳐진 공원이 성공적으로 조성될 수 있는가”였다.
그런가 하면, 역시 당시의 세미나에서 의견을 밝힌 조경진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는 “당선작은 서구적 공원이 아닌 새로운 한국적 공원 모델을 제시했다. 이제까지의 한국조경설계가 컨셉과 기법에 치중한 것에 비해 디테일과 일상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며 김정윤 소장의 안이 한국적이며, 일상에 대한 천착에서 비롯되었음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디자인한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는 평은 무엇에 기인하는 것일까? 어떤 측면에서 당선작은 한국적으로 읽혀졌고, 일상에 대한 고려가 엿보였던 것일까? "8%, 하이힐을 신고 정상에 오르다"라는 어찌보면 광고 카피 같은 제목의 안이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이길래?
우선, 하이힐을 신은 사람이 상징하는 것은, 보통의 산이라면 정상까지 오를 수 없는 복장이나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이다. 그야말로 ‘누구나’ ‘언제나’ 산에 올라 산을 즐길 수 있어야 도시공원으로 기능하는 것이라 본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 오피스박김은 휠체어와 유모차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경사 8%의 프로미나드를 계획한 것이다. 결국 작은 물길이 흐르는 부담 없는 경사의 프로미나드와 그 산길의 중간 중간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개방형 공간, 그것이 광교 당선작의 전부라 말할 수도 있는 셈이다. 거기에다 작위적인 네이밍 방식을 취하지 않고, “호수로 가는 길, 자연으로 들어가는 길목, 숲속의 배움터, 나무 아래 작은 밭”처럼 공간의 특징을 그대로 이름으로 풀어낸 점에서도 기존과 다른 자세가 엿보인다. 그런 점들 때문에 다른 안과 구별되고, 디자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까지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단순하되 새롭고 강렬하다. 그런데 산 정상까지 8%의 길을 내겠다는 발상은, 새롭지만 일견 과도해 보인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윤_한국에는 산이 정말 많다. 그래서 도시를 만들 때, 평지에는 집을 짓고 산은 그대로 남기게 되는데, 그 산지를 어떻게 도시공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특히나 광교는 어느 신도시 못지않게 산지가 많아, 풍부하고 넉넉한 자연 환경을 자랑하는 곳이어서, 도시민의 라이프 스타일에 부합하는 산지형 공원은 무엇일까, 그 해법을 제시해보고 싶었다. 우선 평지에 있건 산지에 있건, 도시공원이라면 점심시간에 일하다가도 "야, 우리 산책 가자" 그러면서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또 휴일엔 아이를 데리고 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도시공원이어야 한다. 만약에 이번 공모에서 주어진 산지를 기존 방식대로 이용하고자 했다면, 그야말로 약수터가 될 뿐이다. 이곳을 산이 아니라 공원으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지형 공원에 하이힐을 신고 갈 수 있듯이, 도시의 산지형 공원 역시 하이힐을 신고 당연히 갈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8%, 하이힐을 신고 정상에 오르다”란 컨셉이 도출되었다. 굉장히 간단한 발상이지만, 도시의 산지형 공원이 어떠해야 할까란 문제를 잘 정의하지 않았나 싶고, 그 부분을 심사위원님들이 잘 봐주신 것 같다. 그리고 과도한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대신 숲에서 하늘을 만날 수 있는 작은 개방공간과 같은 한두 가지 핵심적인 요소만을 넣어서 산이 가지고 있는 공간감을 계속 즐기되, 예전에 우리가 경치 좋은 산과 물을 찾아가서 향유하던 라이프 스타일을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재현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설계를 하는 조경가들도 그렇고, 사업을 주관하는 발주처도 그렇고, 심사를 맡는 전문가들도, 모두 말로는 새로운 안이 나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해외로 답사도 많이 다니고, 결국 설계공모도 하는 것일 텐데, 막상 공모를 통해서 못보던 안이 나오면 대번에 현실성이 없다고 한다. 굉장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이번 안에 대해서도 산의 지형을 따라야지 거기다 왜 8%를 만드느냐, 그렇게 정상까지 가야할 필요가 있느냐, 시공성이 있느냐, 환경 훼손이 심한 것은 아니냐, 걱정이 많으시다. 쉽게 임도를 생각하면 된다. 임도 만드는 기술이 있으니, 절성토를 최소화해서 충분히 현실화할 수 있다. 그리고 프로미나드는 8% 미만이지만 두 가지 경사의 프로미나드를 가로질러 갈 수 있는 등산로가 있다. 각자가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원하는 방법으로 산을 만날 수 있게 한 것이다.
아울러서 요즘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 조경에는 왠만한 아기자기한 외부 공간들이 다 있다. 광교신도시에 지어질 아파트 외부공간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산지형 공원에까지 만남의 광장을 비롯한 다채로운 이용 위주의 공간이 필요할지 의문이었다. '아기자기한 조경'이 아닌, 산이 줄수 있는 공간적 경험의 기회를 극대화 하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였다.
박윤진_프로미나드의 중심을 흐르며 보행자와 함께 산을 도는 물길은 광교 신도시의 랜드마크면서 큰 경관자원인 두 호수의 상징적 수원으로 계획한 것이다. 이 물길은 새로 만들어질 도시내 11개 하천과 두 개의 호수를 비롯한 광교 수체계 내에서 만들어지게 되는데, 다른 물길들에 비해 수량과 규모는 매우 작지만 산속에서 훨씬 더 시적인 경관을 연출할 것이다. 또 하나는 한가지 강한 아이디어로 모든 공간을 설명하는 것이 최선인가라는 의견도 있는데, 비슷한 아이디어 몇 개를 병치시키기 보다 처음부터 명확한 위계를 가진 프로그램을 만들어야만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실행단계에서 합리적 취사선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광교의 경우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설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이번 작품은 산이라는 공간을 가장 잘 체험할 수 있는 카펫트 같은 공간이다. 바닥이 편안하지 않으면, 제대로 체험할 수 없다. 거기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