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를 막아내야 하는 치수의 대상으로 생각하던 한강은 시민이 쉽게 찾아가 이용해야 한다는 친수, 이수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고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제까지 한강에 교량을 놓고, 둑과 둔치를 만들고, 각종 시설물을 만드는 일은 한강홍수에 견딜 수 있는 튼튼한 구조물이어야 했다. 시민들이 이들 장소와 시설을 어떻게 편히 사용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관심은 몇 년마다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큰 홍수의 경험으로 쉽게 좌절되어 유람선이 오가는 강물과 넓은 둔치에 시민이 갈 수 있다는 것 정도로 위안을 해야 했다. 하지만 한강은 그저 서울의 남과 북을 가르고 있고 한강교량으로 건너다녀야 했던 대도시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거대한 빈 공간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뀔 준비를 하고 있다.
한강을 획기적으로 바꾸기 위한 서울시의 노력은 대단하다. 먹고 살기에 바쁜 시민들에게 인간답게 사는 화두 하나를 던진 것으로도 그 시도 자체는 성공이라 할 수 있고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시민의식의 발전에 어울리는 적절한 정책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한강을 만들 것인지, 누가 참여하여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한 충실한 논의를 거칠 여유를 갖지 못하고 일사천리로 추진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우려하고 있다. 시민의 공감을 얻어 만들어진 한강 전체에 대한 큰 그림을 만드는 것보다 곧바로 시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단위사업들이 먼저 추진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 익숙한 방식이기도 하고 일정부분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정책의 불씨를 살려내기 위하여, 안타깝지만 피하기 어려운 선택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은 수많은 전문가, 비전문가의 아이디어를 모아놓는 것으로 시작되어 혹 그대로 추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길지 않아도 논의를 거치며 수정, 보완되며, 숙성되지 않았으나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다양한 시각의 검증과 논의를 매듭짓고 추진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한강 르네상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많은 사업들이 그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실제의 현실 프로젝트로 추진되고 있으며, 어찌되었던 제대로 만들어내야 하는 역할이 전문가들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계천 사업과 마찬가지로 원론적 비판으로 시민과 전문가들이 실제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적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건강한 비판과 참여는 전문가들에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이고 우리 사회에서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실천하며 일을 진행시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이다.
결코 자랑스럽게 바라보기 어려운 한강의 인공구조물, 시설물, 경관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이던 건축가들에게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조금씩 주어졌다. 건축을 그저 주어진 대지에 건물을 짓는것 정도만으로 알고 있던 우리 사회에 어쩌면 큰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극복하고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던 한강에 시민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할 일이, 집을 짓지만 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역할을 하며 아름다운 조형물로 완성하는 일을 하는 건축가들의 참여로 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이제까지 그 선례가 없던 일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