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12월 제5회 조경비평상의 수상작이 선정되었다. ‘환경과조경’에서 ‘조경비평 봄’으로 주최를 옮긴 이번 조경비평상 공모에는 총 다섯 편의 평문이 접수되었으며, 조경비평 봄 회원들의 최종심사결과 이경근, 최영준의 응모작을 각각 가작으로 선정하였다. 심사기준은 주제 또는 문제의식 선택의 안목과 평문의 완성도, 비평가로서의 발전가능성 등이었다. 이에 본지는 두 편의 수상작을 수록한다.
초벌그림 그리기. 손으로 쌓아가는 가능성
이수학의 초벌그림 그리기에 대한 고찰
이경근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졸업예정
그에 대한 스케치
설계 수업을 처음들을 당시, 하루 종일 대상지인 세종문화회관을 맴돌았던 적이 있다. 해가 지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배가 고팠다. 나에겐 조경보다 허기가 먼저 왔다. 1년이 흐르고 또 다른 설계수업이 찾아왔다. 그저 시간이 흐른 만큼 익숙해져서 시대의 흐름을 흉내내보기도 하고, 그럴듯한 수식을 더해도 보지만 왠지 작품은 생기가 없었다. 많은 개념이 모여 설계안을 이루는 과정에서 설계란 작업은 점점 모호하게만 느껴졌다. 1년 전에 느꼈던 허기를 그동안 너무 많은 말들로 채운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마련해 준 <아뜰리에 나무> 이수학 소장의 특강을 듣게 되었다. 막 도착했을 때는 마침 시청 앞 광장 공모전에 관한 이야기가 진행 중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트레싱지를 가득 매운 그의 스케치였다. 스케치들은 특강이 계속되는 동안 화면에 머물렀다. 때로는 발상의 도구로, 때로는 공간에 들어찰 실체하는 존재로 그 선들은 설계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매김해 있었다.
흔히들 작가의 손에 대해 얘기한다. 손은 상상과 작품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라 말하기도 하고 스스로 작품이 되고자 하는 몸의 연장(延長)으로 보기도 한다. 스케치 또한 손의 연장이라면, 시작부터 끝까지 그의 설계는 손으로, 몸으로 진행된 것이다. 설계자와 설계 사이에 데이터나 논리에 앞서, 손의 흔적이 놓여있다는 것은 생경하면서도 믿음직스럽다. 그것은 여과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 그를 보여준다. 따라서 그의 설계과정은 설득이 아니라 표현에 가깝다 하겠다.
자신의 설계를 보여주는 동안 말이 길어지곤 하면 그는 어김없이 웃음으로 설명을 얼버무리곤 했다. 일견 프로페셔널 하지 못한 모습 같지만, 그 웃음으로부터 이 글은 시작한다. 그 웃음에서 느껴진 것은 안일한 작가주의나 무책임이 아니라 겸연쩍음이었다. 말은 손의 언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그 나름의 신중함과 말로 인한 과잉을 염려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휘 이전에 떠오른 것-트레싱지 위에 난 무수한 선은 말을 대신한 무수한 손의 작업에 다름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어휘로 치환하지 못한 겸연쩍음, 어휘로 표현하지 못한 얼버무림 같았다. 그는 그 속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