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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과 세종로 ; 역사문화도시는 과정부터 문화적으로
  • 환경과조경 2008년 2월

총론 없는 각론은 숲 없는 나무다

서울시의 광화문 앞 광장조성과 4대축 조성 사업은 도심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애초의 목적 중 가장 큰 것일 텐데, 무엇이 역사적인 것이고 무엇이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과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숲 없는 나무가 되어 버렸다.

서울시의 역사·문화축 계획은 주변 블록이 일부 포함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line)적인 것인데, 이 축에 대한 논의는 서울 전체의 역사문화에 대한 마스터플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콧날을 세운다고 얼굴 전체가 낳아지는 것이 아닌 이치와 같다. 숲을 살리려면 진입로를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숲 전체의 역사적 자연사(natural history)를 회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경복궁-서울광장-숭례문-서울역-남산의 역사문화축이 과연 진정성 있는 역사문화축인가? 조선 풍수에서 주산과 안산을 잇는 것은 물리적 길이 아니라 지형적 경관배치가 아니었던가. 이 지형적 경관 축에 길을 놓아 물리적 축을 만든 것은 일제에 의해서이다.

조선의 주 길은 서울시가 말하는 ‘역사 문화축’이 아니라 경복궁-광화문(표석위치)―보신각-광교-숭례문 축이었다. 조선풍수관점에서 상지(相地, 땅의 생김새를 관상한 후 길흉을 예견)하고 포치(布置)한 후 조영(造營)한 것을 서구식 물리적 축으로 해석해서 바꾸려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오늘날 서울시의 공간(도시건축)정책은 상지(相地), 포치(布置), 조영(造營)은 없고 오로지 천박한 자본논리만 존재한다.

공공의 권리인 조망권(문화 경관)은 넓은 직선도로를 강조하여 확보하는 것보다 산의 등선(맥)으로 이루어진 경관을 가려버린 고층건물들에 대한 정책적 고려로 풀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예를 들어 행정도시 이전 후 정부청사 건물과 주변 고층건물에 대한 재배치(철거포함) 및 디자인 문제로 아직까지 착공도 못하는 서울시청사 포기까지 담고 있어야한다.

서울의 도심개발의 시작은 보기 싫은 블록 내부를 가리는 빌딩들을 건설하는 것에 불과했다. 1966년 존슨 대통령 방한 이후 도심 재개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1972년 남북대화 개최를 계기로 과시형 도심 재개발 사업이 본격 시행되었다. 플라자 호텔을 통해 도심 슬럼가였던 남산 판자촌과 소공동 중국인촌을 가린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서울 도심개발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리기 위한 '가림막' 설치에 불과하였다.
폭력적인 가림막 안에서 서민은 고통 속에 버림받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현대 건축을 도배하고 있는 “가림막 건축”은 도시를 이루며 켜켜이 역사와 생명의 선을 이어온 땅의 - 땅은 토건자본이나 행정가(서울시), 전문가(건축. 설계사)들에게는 자신의 이권을 채우는 수단일지는 모르지만 민중에겐 생명 그 자체이다 - 주체 들을 한낮 울타리 속의 관상용 동물로 전락시켜버렸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문화재청 문화경관분야 문화재전문위원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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