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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샨즈 798 예술지구
  • 환경과조경 2007년 2월
Dashanzi 798 Art Zone in Beijing

 지금 베이징에서는 국제적인 화랑들이 속속 입성하면서 새로운 문화특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와 같은 문화특구가 베이징에서는 다섯 곳 정도가 있는데 페이지아춘(Feijiacun), 쑤어지아춘(Suojiacun), 이슈동취(Art East Area), 지우창(Jiuchang), 그리고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따샨즈(Dashanzi) 예술구이다. 따샨즈 예술구는 원래 이곳 지명이었던 ‘798꽁창’工場으로도 널리 알려진 곳으로 동시대 미술을 역동적으로 이끄는 곳으로 유명하다. 좀 과장하면 현재 중국에서는 ‘유행하는 당대 예술흐름을 아느냐 모르냐가 아니라 ‘798’의 변화를 아느냐 모르냐‘로 그 말을 대변한다고 한다.
 
 따샨즈 예술구는 미국 뉴욕의 소호SOHO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원래는 공장지대였던 소호가 예술촌으로 변신한 것처럼 베이징 따샨즈 거리의 798공장은 1950년대 코민테른 기간 동안 소련의 재정 원조로 건설된 산업단지였다. 독일 바우하우스 양식으로 세워진 공장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초기 비밀 군수시설로 사용되었고, 이곳에서 중국의 첫 원자탄 주요 부품이 탄생했으며, 인공위성이 연구됐던 곳이다. 베이징의 정비와 더불어 군수공장이 이전한 후 무려 20여년간 폐허로 남겨져 있다가 1980년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시기에 한 대학교수가 이곳의 방치된 공장 창고 한 곳을 임대하여 작업장으로 사용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앙상한 시멘트벽을 허물어 작업실을 꾸미고, 외부에 자신만의 벽화나 조형물을 만들어 내면서 현대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처음에는 몇 사람의 노력에 의해 예술 특구로서 일명 ‘798’로 불리는 따샨즈(大山子) 예술지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1990년대에 이르러 중국 사회주의 건설 현장의 핵심지역이었던 곳이 예술가들의 메카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예술거리로 변모했지만 여전히 과거의 공장들이 증기를 뿜으면서 힘차게 돌아가기도 하는 특수한 곳이기도 하다. 입구에서는 택시조차 안으로 못 들어오게 통제하고, 더러는 정도가 넘치게 삼엄한 경비가 있는 곳이기에 공장과 미술관이라는 이 부조화는 더욱 흥미롭기까지하다. 이곳의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서구의 파란눈의 디자이너가 활개치고 스킨헤드를 한 고급외제차를 탄 중국인 디자이너가 빵빵거리며 지나가고, 화려한 갤러리의 간판아래 정확하게 퇴근시간이 되면 줄줄이 작업복을 입고 퇴근하는 공장근로자들의 모습이 한 공간에 공존하면서 벤츠와 마차가 함께 지나는 중국의 한 면모를 보여주는 듯 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또한 뛰어넘어, 예술가들의 공간만이 아니라, 빈 공장을 빌려 개조한 대형공연장부터, 화랑, 예술센터, 아뜰리에, 디자인회사, 유명브랜드 홍보관, 레스토랑, 칵테일바 등 각종 공간의 집합체로 발전되어서, 국제화 색채의”소호식의 예술취락”, “Loft 생활방식”으로 한 트랜드를 형성하고 있다. 즉 당대예술, 공간, 건축, 문화사업과 역사문맥, 도시생활환경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서, 798은 이미 하나의 문화개념으로 자리잡았으며, 각계 전문가와 대중들에게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도시문화와 생활공간의 개념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798의 분위기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하자면 798을 중심으로 하는 공장지역의 건축물의 스타일은 심플하면서 기능을 추구한다. 천박하기 짝이 없는 거대한 현대공장의 여러 기구와 낮은 천장을 가진 아파트형 건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1950년대 초 소련의 건설지원과 동독 책임하에 설계 건설된 중요한 공업지구였기에 아시아의 중심, 중국의 중심에서 가장 서구적인 예술촌이 탄생하게 된 것 인지도 모른다. 물론 처음부터 정식으로 지정된 예술지구는 아니었다. 북경도시문화의 진행과 도시면적의 확장에 따라, 본래 교외에 속하는 따샨즈 지구가 도시지구의 한 부분이 되었고, 공장은 멀리 이전되고 그 자리에 필연적으로 도시의 정의와 발전에 맞는, 오염이 없고, 효율적이며, 지식을 요하는 새로운 형식의 산업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당초 첨단 IT단지가 계획되었으나, 관광산업을 주도할 만큼의 주요한 산업으로서의 문화상품의 가치에 눈을 뜨면서 정식 예술지구로 지정된 것이다. 이는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고자 하는 역사적 추세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징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느낀 것은 세계적이고 거대도시이면서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 현지 물가수준보다 엄청난 입장료와 음식값을 받는 곳천안문 일대와 대사관 거리 등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는 삭막하고 지저분하고 아직 발전해야 할 부분이 많을 뿐아니라 문화예술방면은 더욱 그렇다고 생각했다. 또한 ‘798’에서 생활하기전만해도 누릴 수 있는 문화적 수준과 혜택이 서구의 다른 나라보다 낮다고 생각했던 서울도 이제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특히 영화관은 흔히 접할 수 있는 생활문화공간이 되었지만 이곳에서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조차 쉽지 않고 영화관람료가 우리나라의 3배나 되는 것을 보면서 문화적 시설과 의식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곳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조금 부담이 되더라도 기회라 생각하자는 한국본사의 취지에 798 예술지구안에 북경지사를 개설하고 생활하게 되면서 이제는 개발이라는 명목안에 철거만 우선시 해온 정책 때문에 도심지안에 이러한 예술지구 하나도 갖지 못한 서울이 더욱 안타까워졌다. 이곳에 방문해 온 한국의 미대교수님들, 작가분들, 건축인테리어 종사자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다면’, ‘나중에 이런 곳에 작업실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보면서 그 생각이 더욱 더해진다. 공장지대를 녹색공간으로 색칠하고 바꾸는 것만이 조경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도시에서 그 해답과 그리고, 남아있는 숙제를 느끼게 된다.


(윤성융·두레환경디자인 중국지사)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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