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설계교육
우선 미국의 디자인 스쿨의 교과과정을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간단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학교마다 커리큘럼의 차이가 있으므로, 하나하나 교과과정의 디테일보다는 큰 방향만 짚어보고자 한다. 디자인 스쿨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디자인에 중점을 준 커리큘럼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스튜디오 수업에 중점을 둔 교과과정이다.
일단 한 학기의 시간표를 살펴보기로 하자. 학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커리큘럼은 스튜디오 수업을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할애한다. 한학기 15학점의 수업들 중에 6학점인 스튜디오 수업에 나머지 9학점 과목들 이상의 시간이 할애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튜디오 수업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스튜디오는 크게 mid-term critic과 final critic이 있으며, 스튜디오를 담당하는 사람의 재량에 따라 더 많은 중간 크리틱을 가지게 된다. 물론 개별 크리틱은 매주 이루어진다. 여기서 ‘스튜디오를 담당하는 사람’에 대해서 잠깐 짚고 넘어가보기로 하자. 스튜디오를 담당하는 사람은 그 학교의 교수님 일수도 있고, 다른 학교의 교수님 일수도 있으며, 실무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일수도 있다. 각 학기별 학교의 예산에 따라, 유명한 건축가나 조경가가 스튜디오의 담당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스튜디오를 담당하는 사람의 역할은 무엇일까. 스튜디오 수업은 근본적으로 토론 수업이다. 스튜디오의 담당자는 토론의 진행자의 역할을 맡는다. 그들은 어떤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다만 방향을 제시할 뿐이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개개인을 도와준다. 나머지는 각 개개인 학생의 몫이다. 각각의 학생들은 스스로 공간에 대한 자신의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학생들은 크리틱에서 자기의 스토리를 클라이언트에게 팔아야(sell)한다. 1차적인 클라이언트는 스튜디오의 담장자이며, 2차적인 클라이언트는 각각 중간 크리틱에 참여하는 외부 인사들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질 수도 있으며, 그곳에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으로 각각 학생들의 스토리를 평가하는 것일까. 그들은 학생들이 ‘어떻게’ 스토리를 풀어나가는가를 지켜본다. 어떤 논리로 개개인의 idea를 전개해 나가는가를 보는 것이다.
■ 어떻게 스토리를 전개하였는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던져지는 첫번째 질문은 ‘왜 그렇게 했을까’(Why) 일 것이다. 왜 그런 컨셉을 가지게 되었으며, 왜 그런 전개를 하게 되었을까. 필자를 포함해서 한국에서 유학 온 분들이 제일 고생을 하는 부분이 여기이다. 그 이유(Why)를 어떻게(How) 풀어나갈 것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의 How가 적용되게 된다. How to reason your process와 How to communicate your process이다. 필자는 한국 사람들이 똑똑하다고 여긴다. 한국 사람들은 설계를 시작하며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이 머리 속에 샘솟듯이 넘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끼리는 서로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이해를 하고 공감대가 형성이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서부문화권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들은 왜 그런 형이상학적인 개념이 나왔는지에 대해서 형이하학적인 수단으로 한단계 한단계씩 풀어줘야 비로소 이해를 한다. 자신이 그 하나하나의 단계를 논리화(process reasoning) 할 수 있을 때, 그 스토리는 힘을 가지고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남에게 팔(sell) 수 있는 개인의 스토리가 완성되었다면 어떻게 그 스토리를 남에게 전달할 것인가(how to communicate)라는 과제에 당면하게 된다. 1차적으로는 자신의 논리를 설명할 수 있는 Verbal Skill이 요구가 되며, 2차적으로 자신의 논리를 보충해줄 수 있는 각종 드로잉, 모델, 혹은 퍼포먼스가 요구된다. 매 학기는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노력으로 점철되어진다.
■ 이번에는 스튜디오 수업이 아닌 다른 수업을 잠깐 들여다보자. 기타 다른 수업들도 디자인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을 제공한다. 이론을 공부하는 수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수업에서 디자인 과제가 주어진다. 디자인 과제라 함은 드로잉, 도면, 혹은 모델을 만들어오는 과제를 의미한다. 수목학 수업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1주일에 대략 10개 정도의 나무만 가르친다. 그리고 2주에 한번 정도로 배운 나무들은 이용한 디자인 과제가 주어졌었다. 수목원이 아닌, 공원 및 개인정원에 대한 방문도 많이 이루어진다. 실제적으로 수목들이 디자인에 어떻게 쓰이는지, 그 용도가 수업의 초점이었다. Grading수업은 귤 껍질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을 한다. 깐 귤 껍질을 나무 판에 못으로 박으며 어떤 형태를 만들어 낸 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Contour라는 개념을 인식하게 한다. 생태관련 수업은 어떻게 물이 흐르는 가부터 시작을 하게 된다. 물의 흐름을 그려나가고 모델을 만들어 물을 부어보기도 한다. 이러한 교육은 이후에 스튜디오 수업에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게 해주는 초석이 된다.
■ 학교마다 성향이 다르긴 하지만, 미국의 설계교육 중 또 하나의 큰 특징은 Multi-discipline이다. RISD의 경우 Landscape Architecture department는 Architecture, Interior Design, Industrial Design, Furniture Design department와 함께 하나의 단과대학을 형성한다. 다른 과에서 제공하는 스튜디오 수업을 들을 수도 있으며, 다른 과의 교수님이 조경과의 수업을 맡기도 한다. 이는 다른 분야에서는 어떻게 디자인이 이루어지며, 어떠한 접근을 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다. 본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많은 다양성과 가능성을 테스트를 해보며 안목을 넓힐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실무에서 설계
■ ‘실무라는 상황’에서 하는 설계라고 해서 설계의 근본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상황이 바뀌었을 뿐이다. 학교에서는 없었던 상황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혼자가 아닌 어떤 조직(직장)에 소속이 되고, 학교와는 다르게 예산이라는 것이 주어졌으며, 다른 컨설턴트들과 일을 하며, 자신의 스토리(설계내용)에 공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 및 기타 사항 등이 추가된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차이점은 클라이언트이다. 학교에서는 공간에 대한 전문가 분들이 설계의 클라이언트였지만, 실무에서는 그렇지 않은, 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클라이언트가 더 많다.
미국에서는 관 주도의 public 프로젝트보다는 디벨로퍼등에 의한 private 프로젝트가 훨씬 많으며, 그들은 경영, 정치, 행정, 및 기타등등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어떻게 클라이언트를 설득시킬 것이냐에 대한 부분이 부각된다. 그리고 그 설득의 근본은 잘 그린 그림 한 장의 결과물이 아니라, 설계대상지로부터 시작되어지는 자신의 스토리를 전개할 수 탄탄한 논리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 정 환 Sung, Chung Hwan
SWA, 본지 미국 리포터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