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 : (사)한국조경학회 조경설계연구회, 월간 환경과조경
일시 : 2005년 12월 6일(화) 오후 7~9시
장소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82동 103호
사회 : 배정한(단국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조교수)
토론 : 황용득(동인조경 마당 소장)
오형석(조경설계사무소 LOSYK 소장)
정욱주(서울대학교 조경학과 조교수)
이호영(조경설계 서안(주) 대리)
정리 : 백정희 기자
배정한 : 조경가라는 이상과 삶이라는 현실 사이의 교집합은 아직도 넓지 않다. 이 자리를 빌려 “조경가로 산다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정교하게 진단하고 그 원인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또한 오늘의 자리는 처방과 진단을 위한 토론일 뿐만 아니라 한국 조경의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장기적인 설계라 생각한다.
Ⅰ. 조경설계사무소에는 왜 40대가 없을까?
배정한 : 첫 번째로 우리가 다룰 것은 현재의 문제를 진단하는 주제다. 몇 주 전에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한 여학생으로부터 아주 어려운 질문을 받았다. “정말 설계를 하고 싶은데 설계사무소에는 가기 싫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이 오랫동안 귓전을 맴돌았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설계사무소가 초창기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40대가 굉장히 부족하다. 익히 알겠지만 이직도 심하고 청운의 꿈을 품고 설계사무소에 취직한 후 지쳐서 휴식을 찾아 전업을 택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 그만큼 오랫동안 조경설계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구나 싶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이호영 : 초년병의 위치에서 보는 조경설계의 문제에 대해 말하자면 전문가임에도 너무 낮은 연봉과 계속되는 철야와 야근, 그 외에도 비전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투명함이다. 조경설계사무소에 40대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그만 두었기 때문이 아닌가. 초년생이 돈과 야근을 떠나 그만두는 이유라면 조경가로서의 자기확신이 없기 때문이며, 그나마 조경가로서의 자기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적당히 적응하면서 어느 수준에 이르면 설계를 책임지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된다. 그 정도의 사람들이 그만두는 이유는 역시나 연봉과 야근과 철야는 기본적인 이유이고, 그 외에 자기 스스로 조경설계가로서의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 한계를 느꼈을 때는 재교육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다든지, 유학을 떠난다든지, 그래도 안되면 좀 더 편안한 대기업이나 공기업으로 이직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설계사무소에 남아서 조경가로서 설계를 하고 있는 분들은 설계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안 겪어봐서 모르겠지만 그 즈음되면 작가로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라 본다.
오형석 : 연봉과 야근, 철야, 개인적인 확신의 문제가 설계를 그만두게 하는 이유라고 했는데 하나 더 덧붙인다면, 내가 초년병이었을 때 그만두거나 이직하려는 마음을 갖게하는 요인은 3가지였는데, 연봉이나 야근, 철야보다도 첫 번째가 인간관계에 대한 부분이 었다. 누구하고 함께 일하느냐가 설계사무실에서 계속 조경설계를 할 것인지 아닌지를 좌우하게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연봉이나 야근, 철야도 가능해 진다. 그리고 (이호영 대리 입장에서 보는) 어려움을 딛고 살아남은 사람들, 그들의 입에서 나올 말은 “필요에 의해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고, 자기만족을 위해서”가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어쨌든 야근이나 철야 문제보다도 인간관계가 첫 번째 요소라고 생각한다.
황용득 : 오늘 이 자리가 흥미로운 토론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초청을 받고 이제 나도 고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토론회에서 많은 공격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 자리에 왔다. 이호영 대리의 의견에 동감하는 바이고, 더 이상 연봉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분야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10년 동안 회사를 나가는 직원들을 보니 인간관계에서 상당히 많은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두번째로는 진로를 처음부터 잘못 선택한 경우도 많았다. 우리시대에 설계를 시작할 당시에는 드로잉을 못하면 아예 설계를 할 생각을 못했었는데, 최근에는 캐드 등의 발달로 설계를 할 수 있는 계층이 넓어진 것 같다. 그러다보니 예전에는 밥을 주던 안주던 설계를 한다는 것을 자신들의 이상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쨌든 인간관계, 잘못된 진로선택이 우선의 이유이고 연봉이야기는 그 이후 이야기라 생각한다. 시공보다 설계가 나을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설계사무소에 취직한 후 아무리 열심히 하고 모든 것을 쏟아내도 너무 힘들기만하고 일의 강도에 비해 연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설계사무소의 일이 많아 직원들이 마지막 전철을 타고 애인을 만나러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누가 조경을 하라고 했는가. 결국 자신이 선택한 상황에 대해 연봉만 운운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기본적으로 연봉을 많이 주기 싫어하는 소장은 없다. 다만 현실적으로 조경이 부가가치가 낮은 직종이라는 것 뿐. 그래도 누구를 원망하기 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길이고 자신의 일이므로 낮은 연봉을 받고서도 미래비전을 보고 갈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형석 : 동감하는 부분이 많지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예전에 드로잉을 못하면 설계할 생각도 못했다는데, 개인적으로 설계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며, 설계는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컴퓨터 등 도구를 이용해 자기의 생각을 표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만 잘 그려서 표현해 내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멋있는 디자이너일지 모르지만 드로잉이 최우선 조건은 아니라고 본다. 이제 사무실을 시작한 지 6개월 되었지만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한다. 그 중 하나가 비전 제시에 대한 부분이고 막연한 제시보다 구체적 대안을 내준다면 후배들이 따라오는 데에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정한 : 비전이 제시될 때 많은 부분들이 상쇄되고 후배들이 자기 나름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인 듯 하다. 신입사원이 회사에 바라는 것이나 회사가 신입사원에게 바라는 것, 그 사이에 공통분모가 있더라도 그 결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 점에 대한 패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호영 : 비전 제시와 관련해 회사를 운영하면 어떻게든 이윤 창출이 필요할텐데, 회사인 조경설계사무소가 신입사원들을 조경가로 키우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신입사원의 재능을 어떻게 끌어 주고 계시는지 말씀을 듣고 싶다.
황용득 : 좋은 지적을 해주었다. 그 전에 우선 오형석 소장의 의견에 대해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게 단순한 드로잉을 말한 것은 아님을 밝힌다. 설계라는 것이 무엇을 하든 안을 그려내야 하는데, 그 시대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고(손에 땀이 나 종이가 젖는 경우 등) 최근 표현 툴이 많아져서 더 유리하다는 의미로 한 얘기이다. 과거에 설계하는 사람이 백명이었다면 지금은 천명을 넘을 정도이니 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하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설계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묵묵히 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한 얘기였다. 설계사무소 소장들 대부분 경영도 하면서 설계가로서의 두가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사원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소질을 기르기 위해서는 잘하는 것만 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나중에 훌륭한 설계가가 되겠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는 하나만 잘해서 먹고 살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건축의 경우 구조, 계획, 설계 등 전문분야가 모두 세분화되어 있지만 인원과 상관없이 계획부터 내역까지 모든 것을 다 컨트롤해야 하는 우리의 시스템에서는 하나의 특기만으로는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아마도 조직이 큰 회사일수록 사원을 특화하고 조직이 작을수록 여러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구조로 운영하게 될텐데(일부러 인원을 많이 안 두려는 회사도 있고 적극적으로 인원을 늘리는 회사도 있다), 회사가 어떤 경영을 하는가의 문제는 입사하려는 사람의 선택의 문제가 될 것이다. 후배들에게 회사를 선택할 때 어떤 이유로 선택했는지 묻고 싶고, 또한 사람을 보고 회사를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다. 설계는 하나의 도제제도다. 동인마당에 오려면 나의 철학과 생각을 존중하고 흠모하는 사람이 와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배울 수 있고 다 가르쳤을 때 떳떳이 보내줄 수 있는 것이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