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어둠의 그늘이 사라지고 시원하게 열린 서울의 하늘과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 그리고 어느 정도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한달음에 이루어진 사업의 추진력, 청계천 사업을 통해 주변 재개발계획의 당위성 확보와 이를 통한 부의 확대 재생산과 수직적 거대도시를 향한 욕망의 실현 따위가 우선 거칠게 보이는 청계천 개발의 가시적인 성과일 것이다. 거기다 정치적인 입지의 확보까지 얘기하지 하지 않더라도 관계된 모든 사람들과 서울시민들에게 행복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2002년 5월부터 2003년 7월까지 일년 조금 넘게 웹에서 청계천을 주제로 열린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우리에게 청계천은 과연 무엇인지, 청계천을 개발한다고 했을 때 접근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궁극으로 청계천을 통해서 과연 우리는 무슨 꿈을 꿀 수 있는지를 놓고 온라인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였다. 그때 작업 중에 썼던 몇 편의 글 속에 청계천 개발에 대한 준거의 단초를 놓아 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에 대한 확신은 유보적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이제 그 준거에 대해 간단하게 얘기하려 한다.
지금 청계천사업 전반을 평가하는 것은 위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동안 끊임없이 제기 되었던 상충된 의견들이 있었지만 의견은 수렴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철저하게 일방적인 절차로 진행되었다. 시민참여를 위한 행사나 공청회가 요식행위였음은 결과가 말해주지 않나. 여기서 과정의 문제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청계천 개발이 내포하고 있는 다양성과 잠재된 가능성, 그리고 삶의 터전으로 청계천변이 가진 삶에 대한 존중을 위해서 충분한 시간과 합의는 이 프로젝트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한 새로운 전범이 될 수 있었지만 그러한 기회를 스스로 박탈한 꼴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소외받은 계층에 대한 배려와 땅에 대한 신중함,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요구되는 사업이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원형에 대한 합의, 개발에 따른 명확한 준거들이 먼저 정립되어야 했다. 여기서 문제는 대략 세 가지로 드러나고 이것이 청계천개발사업을 바라보는 하나의 준거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적어도 스스로의 관점에서는 그러하다.
세 개의 준거準據
시간 - 역사적 층위가 공존하다
서울의 사대문 안이 그러하지만 특히 청계천은 다층의 시간이 공존하는 독특한 장소다. 그 시간은 단지 고고학적 시간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이 현재 시간의 한 유형으로 공존하며, 새로운 시간을 꿈꾸는 서로 다른 시간의 주기가 얽혀 있는 곳이다. 무형의 사람이 만들어 내는 시간이 그렇고, 존재하는 도시 기반시설의 물리적 구성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청계천 개발에서 무엇보다 고려되어야 할 것은 획일적인 어느 시간의 적용이 아니라 다층의 시간 구조를 존중하면서 그리고 또 그 각각의 시간이 가진 서로 다른 시간 주기의 섞임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되어야 했다.
삶 - 그들이 아니라 이들이 문제다
청계천 복개와 함께 오늘날의 상권으로 자리를 잡는데 꼬박 삼십 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이전에 무허가 난민촌과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지만 청계천을 따라 일정한 수요와 공급 그리고 판매가 순차로 일어나는 유기적인 체계를 갖추기까지 청계천의 사람들은 개발론자들이 공란으로 남겨두었던 내용을 채워나가면서 스스로 삶의 모형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의 삶이 각각의 공간에서 톱니처럼 이루어져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한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무슨 근거에선지 여전히 낡고 불합리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있다. 삶의 모형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 계획가와 설계가, 개발론자들에게 있었다. 청계천의 삶을 흐트러트릴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상 - 꿈 또는 전망을 놓다
지상에서 가장 긴 공중가로정원을 생각했었다. 느릿느릿 흐르다보면 사대문 안 동쪽 끝과 서쪽 끝을 나지막한 건물과 산이 둘러싸고 그 길 아래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내려보는 꿈을 꿨다. 거대 도시 안에 지구 상에서 가장 활동적인 공간을 관조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다가 계단을 내려가면 나도 거기 한 사람임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억지로 역류해서 다시 흐르는 물이 아니라 끊어졌던 주변의 천을 하나, 둘, 다시 살려내서 그 이름을 돌려주고 싶었다. 백운동천, 삼청동천, 계생동천, 북영천 ... 하면서. 어항 속의 수초가 아니라 살아있는 개천을 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도시 전체가 다시 물길을 만들어 순환하는 자연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청계천은 기존의 서울을 증폭시키는 거대한 꿈의 용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특정인의 팍팍한 꿈이 아니라 만인의 넉넉한 미래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더디고 더디지만 그것이 가능하리라 봤다. 이 시대에서 조경을 하는게 부끄럽다.
이 수 학 Yi, Soo Hag
아뜰리에나무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