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건축가들에게) ‘랜드스케이프’라는 단어는 … 미국인들이 ‘퍽’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 이상으로 자주 쓰이고 있다”는 MVRDV 대표 건축가 위니 마스(Winny Maas)의 지적처럼, 랜드스케이프(landscape)는 동시대 건축의 뜨거운 감자다. 세계 건축 설계 시장과 교육을 휩쓸고 있는 스타 건축가들의 어휘 목록에서 랜드스케이프가 빠지는 경우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험적 전략이건 실체가 모호한 패션이건 간에 그들이 랜드스케이프를 언어나 개념의 차원에서 건축 전선에 배치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 우리가 눈여겨 볼 부분이다. 건축가가 공원과 같은 전통적인 조경 영토로 진입했다―라빌레뜨공원 설계경기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는 수준에서 건축과 조경의 경계 해체가 예고되던 1980년대의 상황과 달리, 최근의 건축은 내용과 형태 모두에서 조경과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건축의 조경화”라고도 할 만한 이런 현상을 증명하거나 확인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점의 건축 코너에서 최근 작품집 몇 권만 뽑아들더라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나는 건축가 몇몇의 이름을 인터넷 검색창에 쳐 넣기만 하더라도, 우리는 대지가 건물을 타고 올라가고 건물 지붕이 곧 정원이고 건물이 지형 속에 파묻히고 주변의 경관이 건물 안으로 관입되어 뒤섞이는 예사롭지 않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 중략 …
“건축의 조경화”는 유럽의 브랜드 건축가들에게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이미 한국의 건축 환경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랜드스케이프’라는 좌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2000년대 한국 건축의 실험장이라 할 만한 는 랜드스케이프라는 개념이 한국 건축의 영토에 도입된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건축적 랜드스케이프”라는 상표를 즐겨 달아온 플로리안 베이겔(Florian Beigel), 그리고 그와 사고를 공유하는 민현식, 승효상, 김종규, 김영준으로 구성된 다섯 명의 코디네이터가 마련한 파주출판도시 건축지침의 핵심은 “건축을 인프라스트럭처로 이해해 랜드스케이프를 써나가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건축들이 모여 하나의 특별한 환경을 만든다’는 일반화된 생각에서부터 ‘환경 또는 땅의 조건들에서 건축이 도출되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파주 건축지침의 바탕인 것이다. 출판도시의 랜드스케이프가 도시적 스케일이라면, 에서는 개별 건축의 스케일에서 랜드스케이프와의 접점을 모색한 작품을 다수 만날 수 있다. 김종규+김준성 설계의 는 건축이 구성하는 지형이라는 것, 또는 이른바 건축적 랜드스케이프라는 것을 단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헤이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최문규+조민석+제임스 슬레이드(James Slade)의 는 상품 캐릭터를 주제로 한 일종의 테마공원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롭지만, 건축 내외부의 경계 허물기라는 점에서, 더 나아가 건축물 자체를 하나의 작은 산과 같은 랜드스케이프로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 건물도 공원도 아닌 인공의 산에서는 건물은 건축이 설계하고 그 외부 공간은 조경이 설계한다는 도식적 이분법이 통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양상이 파주나 헤이리처럼 특별하게 계획된 도시나 단지 규모의 부지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 캠퍼스의 복합 공간이나 복잡하고 고밀한 도시 조직 한가운데에서도 건축과 랜드스케이프는 관계를 맺고 있다.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의 계획안이나 렘 콜하스(Rem Koolhaas)+마리오 보타(Mario Bota)+쟝 누벨(Jean Nouvel)의 을 손쉬운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이를테면 김억중의 ―이나 학교 건물―예컨대 유걸의 ― 같은 개별 건축에서도 주변 지형?경사로?계단 등을 단골 매개물로 삼아 “건축의 조경화”가 드물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조경 같은 건축”의 다양한 층과 결을 보다 면밀히 구분하여 분석하고 그 내용적 의도와 형식적 양태에 비판적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다만 건축과 랜드스케이프의 접점을 찾는 이론적?실천적 실험이든 또는 그러한 실험의 우산 아래에 기생하는 일부 아류작이든 간에, 동시대 건축이 그려내고 있는 함수에서 랜드스케이프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지형이나 경관을 고려하거나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건축”일 수도 있고, 이른바 “지형적 건축”(topological architecture)일 수도 있다. 플로리안 베이겔처럼 “건축적 랜드스케이프”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며, 김종규처럼 “랜드스페이스”라는 이름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찰스 젱크스(Charles Jencks)는 “랜드폼 건축”(landform architecture)이라는 이름을 짓기도 했다. 또 하늘을 향해 치솟는 고층의 마천루 건축, 즉 스카이스크레이퍼(skyscraper)와 대조적으로 “땅을 기는 건축”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신조어 “랜드스크레이퍼(landscraper)”가 오히려 최근의 경향을 재치 있게 설명해 주는 개념이자 명칭일 수도 있다. 국내에만 국한된 경우이지만, 원어로는 조경과 마찬가지인 “랜드스케이프 건축”이라는 말이 쓰이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이처럼 그럴듯하면서도 애매모호한 다양한 이름의 건축을 가로지르는 공통분모는 결국 “랜드스케이프”이다.
이제 조경의 시선으로 “그 랜드스케이프”를 볼 차례이다. 그러나 조경가의 입장에서 쟁점은 랜드스케이프라는 어떤 것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있지 않다. 오히려 “왜” 동시대 건축이 새삼 랜드스케이프에 골몰하는가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곧 “건축의 조경화”를 조경은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물음과 긴밀히 연관되기 때문이다.
(배정한 Pae, Jeong-Hann·단국대학교 환경조경학과 교수,조경비평 ‘봄’ 회원)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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