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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대천(名山大川)
  • 환경과조경 2005년 6월
경관, 시(詩)의 세계 - 풍수카메라의 파인더 동작동 현충원, 즉 동작동 국립묘지를 풍수 카메라로 촬영을 해 보면 공작이 나래를 편 형국이라는 그림이 인화되어 나오기도 하고 맹호(猛虎)가 출림(出林)을 하는 그림이 나오기도 한다. 나는 풍수의 전문가가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풍수를 잘 안다고 자처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조경가의 입장에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카메라가 몇 있는데, 아날로그 카메라로는 품에 넣고 다니기에 조금 무거운 롤라이 카메라가 있고, 디지털 카메라는 그 동안 몇 개 정도는 해먹은 이력이 있는데 조만간 새로 하나를 장만할까 생각 중이다. 그리고는 시중에서는 살 수 없는 카메라, 소위 풍수 카메라도 하나 있다. 가지고 다니기에 무겁지도 않고 완전 자동으로 작동하기에 건전지 충전 걱정도 없고 필름이나 메모리 용량을 체크할 필요도 없이 정말 편리하다.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본 경관, 그런데 풍수 카메라를 가지고 본 경관은 보편적으로 보아온 것과는 사뭇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최창조 교수는 일찍이 “한국의 풍수사상”이란 책을 통하여 사숙(私塾)한 터이지만 가까이서 직접 만나 뵌 것은 한 이삼년 정도 되는 모양이다. 어느 허름한 집에서 점심을 하던 자리였다. 반주 겸 대작을 하게 되었던 자리에서 나는 자판기에서 뽑아온 커피 잔을 들고 있었다. 그날 최 교수께 들은 이야기들 중 기억나는 것은 동작동 국립 현충원의 형국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현충원의 형국에 대해서는 전부터 ‘공작이 나래를 편 형국’으로 익히 듣고 읽어온 터였다. 그러나 그 분의 이야기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맹호출림(猛虎出林). “맹호출림이란 문자 그대로 산에서 내려오는 호랑이의 모습과 같이 커다란 덩어리의 맥이 듬직하게 힘차게 벋어 나오는 형세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 나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아 그냥 듣고만 있었다. 물론 맹호가 숲에서 나오는 모습이라는 이미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왜 현충원이 그런 형국으로 빗대어지는지를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이미 내 의중을 파악한 듯, 아니면 워낙 여러 사람들에게 반문을 받아온 터였기에 그런지, 이내 보충설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마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만, 현충원 일대의 여건만을 놓고 생각해서는 상상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기 멀리 있는 관악산에서부터 살펴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 거기서 ...” 이어지는 부연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경관을 해석하는 다른 세계와의 만남이었다. 풍수에 빠져들고 있었다고 하기에는 나 자신이 풍수를 너무 모르는 터였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상식적인 범위의 풍수이야기로부터 사고를 벗어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라고 해 두는 것이 더 옳을지 모르겠다. 처음 풍수를 접하고는 (또는 풍수에 관한 이야기를 접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누구나 주산과 좌우의 청룡 백호라 일컫는 환포된 산세를 머리 속에 떠올리며 현장을 더듬어 보는 게 거의 틀림없다. 그러나 관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산맥의 흐름에서 동작동에 이르는 줄기를 헤아려 본다면, 환포된 국면을 그리기 이전에, 전통적으로 내려온 풍수적 형세를 읽는 것이 상당히 광활하고 거시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 점에서 나는 풍수라는 파인더를 통해 보면 같은 경관이라 할지라도 상당히 보는 눈을 달리해 주게 되는 점이 있음을 보는 것이다. “동작(銅雀)이라는 지명으로 보아도 그게 공작(孔雀)이 나래를 편 형상과 밀접하지 않겠나 생각하실지 모르나, 그게 아닙니다. 원래 이 지역의 이름은 구리 銅자를 써서 동재기라고 불려 왔었어요. 공작과는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동작동 현충원은 ‘공작이 나래를 편 형상인가 맹호출림형인가?’ 만약 ‘맹호출림형’이 맞다면 ‘공작이 나래를 편 형상’은 아니라는 것일까? 아니면 ‘공작의 형국’이니 ‘맹호출림형’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인가? 우리는 풍수의 전문가가 아닌 터에, 동작동의 형국을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하여야 할까를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만약 고민할 필요가 있다면 그 핵심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풍수적으로는 무엇이 맞게 해석된 것이 될지언정 우리는 맹호출림과 공작의 나래의 두 관점에서 함께 현충원과 그 일대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풍수학적으로는 어떻게 접근될지 모르나, 일단 동작전철역 이층 테라스에 나가 현충원을 비롯한 일대를 한번 훑어보는 것으로 이 장소의 경관을 만나보면 어떨까 싶다. 천천히 주위를 살피고 음미하면서 현대도시공간에서 이 곳이 어떠하며 장차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지를 보아가는 것이다. 고개를 똑바로 돌리면 현충원이 쾌적하게 자리를 하고 있다. 그 앞으로는 수많은 자동차의 물결이 흘러간다. 대단한 소음을 내며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고가 차도를 지나가는 차량소음에 공작이며 맹호며 거론할 일도 아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보면 4호선 지하철이 터널을 뚫고 지나가는 모습이 들어온다. 관악산에서 묵직하게 흘러오던 능선이 끝나는 즈음의 산 덩어리를 뚫고 지하철 터널이 건설되어 있다. 터널입구는 소위 환경설계라 하든지 아니면 경관계획이라 하든지 여하튼 한옥모양의 지붕을 씌워놓음으로써 다른 일반적인 터널들과 차별성을 보여주려 했던 흔적을 만난다. 아예 관악산에 올라가 이 일대를 내려다보는 것도 좋지만, 일단은 지도를 펴놓고 본다. 관악산에서 줄기가 흘러흘러 동작동 일대로 내려온다. 신림동 방향으로 난 대로가 이 흐름을 잘라내고 있다. 산보삼아 다니기에는 썩 좋은 환경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 길을 더듬어 걸음을 재촉해본다. 맥의 끊어짐, 소위 단맥이라 하는 것의 의미와는 무관하게 산의 흐름이 단절되고 녹지가 단절되며 하는 등등의 조경학적인 생각이 물씬 풍겨난다. 이 흐름을 다시 잇는다는 것은 현대 도시경관 상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만약 풍수적 파인더를 통해 본 도시경관이 단맥을 이어주는 현대조경의 해석으로 이어진다면 어떨까? (…중략…) 긴 여행의 끝 경관은 현실의 공간이며 현실의 공간에 덧붙여진 시의 세계다. 경관의 관리며 역사경관의 보존이며 하는 일에 몰두하다보면 자칫 경관이 가진 시의 세계를 놓치는 경우가 생긴다. 경관을 형성시키고(경관형성계획) 경관을 조성하며(조경) 하는 전통조경의 업무는 원래 역사적 향기가 가득한 경관으로부터 전통의 이미지를 그윽하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싶다. 언제부턴가 나 자신도 시의 세계로서 경관을 다룬다는 초심을 잃고 바람직한 보존과 관리를 위한 일에 진력을 하다보니 원래의 시의 세계를 그로부터 기억 해내지를 못하게 되었다. 맹호가 출림하는 그림을 읽다가 뇌수술을 받아 뇌사상태가 된 맹호를 만나고 청산의 계곡에 자리한 청계를 만나러 갔다가 치렁치렁 온갖 명품으로 둘러놓은 귀부인에 홀려, 마치 싸이렌의 노래에 취해 정신이 혼미해진 이타카의 오디세우스처럼, 정신이 아스라해진 나 자신을, 전통조경이 목표하던 바가 진정 무엇이었던가를 잊은 지 오래된 우리 자신을 백운사 뜨락에 서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정 기 호 Jung, Ki Ho·성균관대학교 건축·조경 및 토목공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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