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일세. 이렇게 편지를 써 보는 게. 월간 <환경과 조경>사에서 전문가에게 한국현대 조경작품에 대해 설문을 하고 그 결과에 대해 특집을 준비하는 모양일세. 나에게 우리 조경 디자인의 현실에 대한 생각을 물어왔네. 쉽게 풀어 낼 수 있는 화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만.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물어봄세.
난 늘 우리의 조경작품들이 너무 평이하지 않나 생각해왔네. 평이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난하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가 평이하다 할 때는 평범하다거나 뭔가 특별히 집어낼 만한 것이 없을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싶네. 솔직히 말하면 별게 없는 거라 할 수 있는 거지. 물론 이런 내 생각은 오래 전에 떠났던 실무를 다시 접하게 되면서 그리고 우리의 설계현실을 다시 이해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부드러워지긴 했지만 그 생각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거든.
무엇을 우리는 디자인이라고 부를까. 모든 작품이 설계라는 디자인의 과정을 거치니까 당연히 작품마다 디자인은 있는 거라고 볼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디자인이라 할 때는 뭔가 다른 것이 있는 게 아닐까. 난 무엇보다도 디자인이라 한다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봐. 다들 까다로운 조건이긴 하지만 그러니 디자인이 고통스럽고 힘든 작업이지 그렇잖으면 아무나 하게. 내가 보기에 작품에 있어 디자인의 유무(有無) 또는 좋은 디자인과 일반 디자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첫째, 그 작품에서 작가가 읽히느냐는 것일세. 작가가 읽힌다는 의미는 작품 속에서 작가가 평소에 추구하는 작가의 작품세계가 엿보이느냐는 것인데, 만약 그렇다면 일단 그 작품은 성공한 디자인의 요건을 갖춘 게 아닌가 싶네. 우리는 그 작품으로부터 그게 누구의 것인지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거지. 이 조건을 ‘작가성(作家性)의 조건 또는 작가(作家)의 조건’이라 부를 수 있을 걸세.
둘째 조건은 말일세. 일종의 표현의 조건인데, 구체적으로 얘기해 소재(素材)와 주제(主題)의 관계조건이 아닌가 싶네. 다시 말하면 그 작품에 사용된 소재가 작가의 주제와 작품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느냐는 것이지. 생각해 보게나. 풍경화 화가에게는 자연풍광이, 작곡가에게는 음계가 소재가 되는 것처럼 주제를 실제 표현하는 수단이 다름 아닌 소재들이 아닌가 말이야. 때문에 어떤 소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주제 표현의 강도와 우열을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겠네. 우리 조경작품의 큰 약점이 작가의 주제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전혀 엉뚱한 소재로 때론 지나칠 정도로 과다하게 때론 지나칠 정도로 빈약하게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지. 수원의 어느 사례에서 보여지듯 어떤 작품들을 보면 그 작품에 들어간 공사비의 반 정도로도 해당 주제를 훨씬 더 잘 표현할 수 있겠다 싶거든.
셋째 조건은 그 작품이 우리의 미적 감성에 얼마나 부응하느냐는 것이냐 일세. 어떤 경우라도 작품은 우리가 체험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일단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보네. 주제가 어떻든 작품세계가 어떻든 작품은 우선 아름답고 볼 일이지. 눈에 띄려면 일단 보기 좋아야 하거든. 이 조건은 평소 우리 조경작품들이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늘 추구하고 있는, 그래서 가장 익숙한 조건이라고 보네만.
마지막 조건, 아마도 우리의 작품 속에서 제일 취약하고 고백하기 싫은 부분일 수 있는데, 이건 우리의 작품이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일세. 이것은 작은 소재에서 소위 패러다임에 이르는 긴 디자인의 여정 속에서 아마도 가장 충족시키기 어려운 디자인의 조건일 수도 있을 걸세. 독창성이 도대체 뭐야 하고 자네는 따질 수도 있겠지. 쉽게 얘기할 성질의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보기엔 독창성이란 그동안에 나타났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이 작품만이 갖고 있는 작품의 내용이 아닐 까 싶네. 이 조건은 특이성, 식별성, 정체성 등으로 부를 수 있는 작품의 ‘다름’에 대한 조건이 아닐 까 싶네.
오늘 설계 공정회의가 여러 개 겹친 탓에 파김치가 됐다네. 오늘은 이 정도로 하세나. 내일 다시 함세.
…후략…
진 양 교 Chin, Yang Kyo
(주) CA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