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공원 - 기념경관의 탄생, 성장, 상흔
하나의 신화, 몽촌토성의 도시경관
늦은 가을 오후, 평화의 문 주변 광장에는 인라이너들이 무심히 유영하고 있었다. 눈을 돌려 안쪽을 향하면 적막한 광장 뒤로는 물위로 떠오르는 신비한 곡선의 실루엣이 있다. 몽촌토성, 신비한 고대의 우주적 경관이다. 이곳, 평화의 문과 88마당을 잇는 주순환동선에는 만추의 산보객들과 코끼리열차가 조는 듯 지나고 있다. 노란 옷의 유치원생들은 열을 지어 행진을 하고 있는 위로, 조깅하는 젊은이들은 몽촌토성의 능선 위를 경쾌하게 뛰어 오르내린다.
강남의 도심부에 조성된 60만평에 달하는 이 거대한 공원은 1988년의 서울올림픽 유치 덕분에 얻어낼 수 있었던 서울을 대표하는 대공원 중의 하나다. 이에 앞서서도 이미 1960, 1970년대에 어린이대공원, 과천대공원 등의 대공원들이 조성된 바 있으나, 근대적 조경기법의 체계적 적용에 의해 탄생된 최초의 초대형 도시공원이었다는 점에 이 사업의 의의가 있다. 이 공원의 설계는 몇 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올림픽유치가 확정된 이후 1983년에 경기장단지를 포함하는 올림픽공원 전체의 현상설계가 시행되었다. 공원과 경기장시설물들을 포함하는 대규모 단지계획인 이 프로젝트는 조금 이른 시기의 독립기념관 현상설계와 함께 당시의 설계계를 뒤흔든 대형 이벤트였다. 여기서 당선작은 나오지 않고 6개의 우수작만 선정되었다. 이들 우수작들을 토대로 하여 최종적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일을 서울대 환경대학원 부설 환경계획연구소가 맡게 되었고 실시설계는 각 우수상 작가들이 나누어 맡게 되었다. 그 중 공원공간은 삼정건축과 우보기술단이 공동으로 수행하였다. 1980년대 초의 설계환경은 1970년대 중반의 조경학과 신설과 더불어 입학하여 정규 조경교육을 받고 졸업한 1세대 조경가들이 의욕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때이다. 당시 필자의 동기생들과 필자는 각각 올림픽공원의 기본계획과 실시설계에 참여하는 행운을 얻었고 그런 점에서 올림픽공원은 우리들이 본격적으로 설계를 익힌 계기가 되었던 고향과도 같은 프로젝트였다.
올림픽파크의 진수는 역시 몽촌토성이었다. 1968년부터 이 일대를 국립경기장 예정지로 지정해 놓았었는데, 당시로서는 몽촌토성을 개발대상에서 미연에 보호하기 위한 이중의 목적에서 사적(史蹟)지정과 함께 이중으로 지정해 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상지 중앙에 위치한 몽촌토성은 전체 면적의 대상지 전체의 30%에 육박하는 큰 면적을 차지하여 면적만으로도 전체 공원의 중심주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대공원과 한국 현대조경양식의 모형
올림픽공원에는 두개의 진입축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잠실대로와 연결된 것, 하나는 올림픽아파트와 연결된 것으로 이들 모두가 대칭적 형태의 직선축이라는 점에서 고전주의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중 잠실대로와 연결된 평화의 문 쪽의 축은 올림픽공원 구상에 앞선 잠실도시설계에 이미 설정되어 있었던 중심가로축의 연장이다. 현상설계시 요구조건으로도 제시된 바 있었던 주진입축이자 기념적 성격의 축이다. 또 하나의 축은 부지남쪽에 이미 설정되었던 선수촌아파트와의 연결축으로 부진입축의 성격을 갖으며 주변에 경기장 단지와 체육대학 등이 포진되어 있어 기능적 성격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잠실대로의 축은 그 정점에 올림픽공원을 위치시킴으로써 서울올림픽의 상징축이자 서울시 도시경관을 이루는 대표적 경관축의 하나가 되었다.
이 두개의 바로크적 정형축은 모두 중심의 몽촌토성을 향하고 있다. 즉, 양 진입경관의 정점에 공히 몽촌토성이 입지해 있다. 이들 두 진입축과 이들을 연결시키는 공원내의 간선가로망이 전체공원의 공간골격을 이루고 있다. 크게 보아 고전주의에 의한 두개의 입구 기념광장과 이들을 잇는 자연풍경식의 곡선형 원로와 해자가 전체 조경양식의 골격을 이루고, 수변 및 기타의 부분공간들의 세부설계는 기하학적이고 기능적인 모더니즘적 양식으로 처리된 절충적 양식이 공원설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절충적 양식은 멀리 옴스테드의 센트럴파크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1970, 1980년대의 우리나라 근대조경 도입기 공원설계의 일반적 모습을 집약해 보여준다 할 수 있겠다. 특히 이러한 3자 연합의 절충양식은 한국 대형공원의 기본모형으로 정착하여 이후, 평화의 공원, 서울숲 등의 대공원의 설계에서도 그 관성을 유지해 왔다고 보인다. 이러한 절충형이 이제까지 대중적 인기를 누려왔던 것은 대형 공원의 환경특성에서 숙명적으로 요구되는 전체구조의 명료성과 기념성, 그리고 배경으로서의 자연성(회화적 전원성 또는 생태성) 그리고 부분공간의 기능성을 동시에 해결하기에 편리하다는 유혹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양식들은 이미 300~400년전 유럽을 풍미하던 양식이었고, 시대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이 시대 한국의 경관표현을 위해 아직도 유용한 수단일 수 있겠는가에 대한 냉정하고도 광범위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그 대안의 생산을 포함하여 향후 극복해 내야할 조경설계계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생각된다.
김 한 배 Kim, Han Bae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