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층의 중심에서 희망을 외치다
지구상의 모든 장소에는 각각의 특이성을 창출시키는 사건의 지층이 존재한다. 이러한 지층은 접근가능한 모든 것을 움켜쥐고 고정시켜버리는 블랙홀의 위력을 가진다. 하지만 각각의 지층들은 미래와의 만남을 통해 코드화와 영역화의 영향을 받아 끊임없는 탈지층화를 모색한다.
선유도공원에도 다양한 사건의 지층들이 존재한다. 지층들은 공간의 두께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코드를 표상하며 현재의 지층으로 고정되어버린다. 사건의 지층을 형성하는 주체는 선유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이다. 현재 선유도 공원에 형성된 다양한 지층의 단면들을 만나보기위한 여정을 떠나보기로 하자(여기서 소개하는 지층의 단면들은 직접 인터뷰를 바탕으로 필자가 재구성한 것임).
지층1: 사진 찍기
나는 20대 후반의 회사원. 사진카페 동호회 회원이다. 우리카페에서는 한달에 한두번씩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인다. 올림픽 공원, 하늘공원에도 가지만 선유도 공원은 사진 찍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이기 때문에 가장 많이 온다. 현재까지 30번 이상 방문한 것으로 기억된다.
선유도 공원은 콘크리트의 회색 느낌을 자유롭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공원이다. 콘크리트와 대나무, 수생식물과 수목, 선유교 등이 어우러져 멋진 감성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른 색조의 변화는 회색조의 바탕색과 어우러져 색다르고 다양한 감각으로 다가오며, 실내의 폐기된 정수 및 펌프시설도 환경조형물로서의 역할을 멋지게 수행한다. 이슬을 머금고 있는 꽃의 모습, 서쪽으로 떨어지는 석양의 모습 등 이곳에서는 다양한 줌인과 줌아웃을 통해 장소의 압축을 경험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보다 원색적인 색감을 가지는 공간도 많았으면 하는 것이다. 이는 단지 사진 찍기 편한 보다 집약된 장소를 희망하는 행복한 투정인지도 모르겠다.
지층2: 소요(逍遙)
나는 시 쓰기를 좋아하는 30대 여성. 선유교를 건너 공원으로 들어와 선유(仙遊)의 의미를 되새기며 장소의 감성을 느껴 본다. 수생식물원에 가보니 하천에서 볼 수 있는 수생식물들이 수조에 담긴 채 자라고 있다. 인공적 하천정비를 통해 수생식물의 삶의 터전을 빼앗은 인간은 이제 여기에 속죄의 마음으로 다시금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멈춰버린 시계바늘처럼 기둥들만 덩그러니 서있는 녹색기둥의 정원. 기억만이 존재하는 곳. 현재가 부재하는 듯한 침묵이 흐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보니 멈춘 줄만 알았던 시간은 담쟁이를 통하여 느리게 흘러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인간은 도시화를 통해서 무엇을 얻으며 또한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가? 끝없는 질문들이 녹색기둥의 담쟁이처럼 머리를 감싼다.
시간의 정원이라고 명명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를 물을 일이다. 나는 지금 이곳에 아름답게 머물고 있는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구절이 떠오른다. 과거의 더러웠던 침전지의 물이 이제 나무와 풀에 생명을 부여하는 물이 되었다. 인간을 위한 물과 자연을 위한 물. 이곳의 주제는 물이 아니던가. 과거엔 건물의 내부였을 곳이 지금은 하늘을 향해 열려있고. 견고한 벽대신 수목이 식재되어 있다. 문화와 자연의 새로운 만남. 인간을 위한 과거의 내부공간은 현재의 외부공간이 되어 도시민을 부르고 있다. 건설하고자 했던 의지만큼 되돌리려는 또 다른 의지가 이곳에서 문화와 자연을 결합시키며 시간의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수변데크에서 쌀쌀한 강바람을 맞으며 한강을 내려보다, 양지바른 담벼락에 놓여있는 벤치에도 앉아본다. 현재의 휴식을 얻으러 왔다가 이곳에서 도시의 조각들과 자연의 조각들이 어우러진 시간의 퍼즐조각들을 맞추다가 돌아가는 느낌이다. 여기저기에서 현재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아름다운 시간의 퍼즐조각들을 사진기에 담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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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층의 여정을 마치며
도시공원이란 도시민의 건강, 휴양 및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하기 위하여 조성하는 것이라는 법적 해석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공원을 이용하는 도시민의 이용행태, 참여도, 만족도 등과 같은 도시민의 반응을 조성하는 것은 공원의 현재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공원 이용자들에 의해서 나타난 주요지층의 퍼즐조각들을 맞추어보는 것은 전체 공원의 외삽(外揷)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선유도 공원에는 위에 대표적으로 언급된 사진 찍기, 소요, 숨바꼭질, 환상체험, 걷기, 데이트, 환경교육, 답사와 같은 지층 외에도 수많은 다양한 사건의 지층들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각각의 지층들은 현재의 특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퍼즐조각으로 기능하면서 선유도 공원의 ‘현재’라는 총체적 그림을 완성하고 있다. 현재의 지층을 파악해보는 것- 이는 미래의 지층에 대한 새로운 감성을 획득하기 위한 선행조건이다.
이와 같이 고정된 지층들은 시간이 점점 흐름에 따라 현재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탈주를 시도하기 시작한다. 현재의 지층은 미래의 시간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사건 생성에 의한 탈지층화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탈지층화에 촉매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선유도 공원의 풍부한 물성과 대지의 잠재력을 극대화한 대상지 자체가 가지는 역동적인 힘이다. 다른 공원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청각적, 촉각적 메시지, 시간의 켜를 느낄 수 있는 장소에서의 공감각적 체험과 여러 갈래의 동선들은 수평적, 수직적 공간과 리좀적 리좀(rhizome)이란 곧은 뿌리, 곁뿌리로 이루어진 나무뿌리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감자 등과 같이 중심이 없이 사방으로 연결된 뿌리줄기를 의미한다.
연결을 형성하면서 다양한 공간적 깊이를 제공하며 새로운 지층의 생성을 부르고 있다.
참여를 통하여 지층을 형성하는 공원의 이용객들은 이러한 촉매요소들의 영향을 받아 지층의 퇴적작용(sedimentation)과 습곡작용(folding)을 발생시키며, 새로운 지층으로의 분절을 시도한다. 이는 공원에 예기치 못한 흥미를 야기 시키게 되며, 이러한 탈지층화 과정은 공원에 활력을 부여하는 동시에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예측할 수 없는 미래로 나아가는 공원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우리의 과거의 흔적은 우리의 현재를 억압하여서는 안되며, 우리의 현재 또한 미래를 구속하여서도 안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서로를 교호하는 동시에 서로에게 자유로워져야 한다. 선유도 공원에서는 과거의 흔적이 우리를 강제적으로 억압하지 않으며, 현재의 형태가 미래를 구속하지도 않는다. 새로워지지 않는, 부스러지고 녹슬며 색이 바래가는 세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선유도 공원은 완성되지 않은 채 만들어져 나가는 미완의 가치를 우리의 후손들에게 선물해주고 있는 것이다.
김 정 호 Kim, Jung Ho
(주)랜드엔지니어링, 한경대학교 겸임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