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사진이나 그림엽서로 너무나 익숙했던 ‘타지마할(Taj Mahal)’을 실제로 본다는 기대감과 묘한 흥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떠밀리는 듯한 수많은 관람객 속에서는 역사적 유적에 대한 어떤 감흥보다는 인파에 쉽게 지치게 된다.
무굴(Mugul)제국의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이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위해 만든 무덤인 타지마할은 아그라(Agra)에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인도가 힌두(Hindu)교를 근간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당시 무굴제국은 이슬람(Islam)교를 근간으로 한 왕국이었다. 16세기 중엽에 힌두교도를 평정한 무굴제국의 3대 황제 악바르(Akbar)는 수도를 델리(Delhi)에서 아그라로 옮기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했다. 악바르 이후 4대 자한기르(Jahangir), 5대 샤 자한, 6대 아우랑제브(Auranzeb)에 이르는 150여 년간 무굴제국은 황금기를 누렸다.
사랑하는 아내의 애틋한 죽음 앞에 바쳐진 타지마할은 연중 수많은 관람객이 몰리기 때문에 고즈넉한 감흥을 갖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감흥을 제대로 느끼려면 아그라의 외곽에 있는 시칸드라(Sikandra)를 찾으면 된다. 이곳에는 ‘악바르황제의 영묘(Tomb of Akbar)’가 있다. 악바르황제는 뭄타즈 마할의 시할아버지가 되는데, 영묘는 타지마할에서와 같은 ‘차하르 바그(Chahar Bagh)’ 즉 ‘사분원(四分園)’의 공간구성을 보이고 있다. 다만 우윳빛 대리석의 타지마할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시칸드라에 잠들어 있는 악바르황제와 함께, 50회에 걸쳐 연재했던 ‘조경사적 외국정원’도 잠들고자 한다. 잠시 잠들다 깨어날지 아니면 영원히 잠들지 지금은 모르겠다. 격월로 연재했으니 햇수로는 8년이 넘어 대학을 2번 졸업하고도 남는 셈이다. 그 동안 귀한 지면을 할애해 준 환경과 조경 관계자와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강 철 기 Kang, Cheol-Gi
경상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
무굴(Mugul)제국의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이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위해 만든 무덤인 타지마할은 아그라(Agra)에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인도가 힌두(Hindu)교를 근간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당시 무굴제국은 이슬람(Islam)교를 근간으로 한 왕국이었다. 16세기 중엽에 힌두교도를 평정한 무굴제국의 3대 황제 악바르(Akbar)는 수도를 델리(Delhi)에서 아그라로 옮기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했다. 악바르 이후 4대 자한기르(Jahangir), 5대 샤 자한, 6대 아우랑제브(Auranzeb)에 이르는 150여 년간 무굴제국은 황금기를 누렸다.
사랑하는 아내의 애틋한 죽음 앞에 바쳐진 타지마할은 연중 수많은 관람객이 몰리기 때문에 고즈넉한 감흥을 갖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감흥을 제대로 느끼려면 아그라의 외곽에 있는 시칸드라(Sikandra)를 찾으면 된다. 이곳에는 ‘악바르황제의 영묘(Tomb of Akbar)’가 있다. 악바르황제는 뭄타즈 마할의 시할아버지가 되는데, 영묘는 타지마할에서와 같은 ‘차하르 바그(Chahar Bagh)’ 즉 ‘사분원(四分園)’의 공간구성을 보이고 있다. 다만 우윳빛 대리석의 타지마할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시칸드라에 잠들어 있는 악바르황제와 함께, 50회에 걸쳐 연재했던 ‘조경사적 외국정원’도 잠들고자 한다. 잠시 잠들다 깨어날지 아니면 영원히 잠들지 지금은 모르겠다. 격월로 연재했으니 햇수로는 8년이 넘어 대학을 2번 졸업하고도 남는 셈이다. 그 동안 귀한 지면을 할애해 준 환경과 조경 관계자와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강 철 기 Kang, Cheol-Gi
경상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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