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설계 서안(주), 선유도공원으로 2004 ASLA Awards 수상
- 한국 조경의 수준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 -
조경설계 서안의 Award of Merit 수상
ASLA는 전 세계의 조경 작품 및 연구 프로젝트 중에서 우수한 작품을 매년 선정, 학생부분(Student Awards), 전문가부문(Professional Awards), 사회봉사부문(Community Service Award) 등으로 나누어 시상하고 있다. 올해에는 5월 14일까지 작품을 접수 받았고, Professional Awards 부문은 작년보다 약 20% 증가한 550여개 작품이 design, analysis and planning, research, communications 등 4개 부분에 출품되었다.
조경설계 서안(주)(대표 정영선)에서 수상한 ASLA Professional Award는 Design Category의 Award of Merit로서, 올해의 경우 Design Category에서는 최고상인 Award of Excellence가 없었고, Award of Honor가 두 작품, Award of Merit는 15개 작품이 선정되었다.
올해는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의 Frederick R. Steiner 교수가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Barbara Faga(chair of the board of EDAW, Inc.), Richard L. Haag(principal of Richard Haag Associates, Inc.) 등 저명한 분야별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수상작들이 선정되었다.
심사결과는 지난 7월 13일에 발표되었고, Professional Awards 부문에서는 총 35개의 작품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시상식은 미국 솔트레이크 시에서 열린 ASLA Annual Meeting 중 10월 30일 토요일에 Salt Lake Convention Center의 Ballroom에서 개최되었는데 과거와는 달리 수상작에 대한 슬라이드 쇼 등 다채로운 시상식 관련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한편, 지난 2004년 9월호 Landscape Architecture(ASLA 발간)지에는 올해 Professional Awards 부문 수상작(35개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실렸는데, 선유도공원에 대해 아래와 같은 짧은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새로운 공원은 한강을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서울시가 발주한 선유도공원은 과거 수질정화공장의 기억을 담고 있는 한강의 섬이 가진 잠재력을 드러내기 위해 디자인되었다. 산업시설의 흔적에 의해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공간과 땅을 강조하기 위해 조경가는 선유도의 역사 속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 프로젝트의 또 다른 목적은 미래를 위해 환경과 자연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재조성된 땅의 아름다운 경관”, 그리고 “과거 산업단지의 흔적에 대한 멋진 활용”이 심사위원단의 평가다.”
시상식 분위기
조경설계 서안의 정영선 소장은 “자존심과 권위의식이 강한 ASLA에서, ASLA의 멤버도 아닌 동양 (설계사의) 작품에 상을 주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점에서 보다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설계업체로서는 처음으로 출품하여 수상한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는데, 막상 시상식에 가서 보니 일본, 중국 등에서는 이미 많이 참여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국내 설계 업체들의 참여가 활발해졌으면 한다”며 국내 작품들도 충분히 수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기억에 남는 것으로, 학생들 작품에 대한 시상을 할 때 지도교수가 모두 함께 나와서 제자가 상을 받는 것을 축하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멀리서 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고) 참 보기가 좋았다고 한다.
동행한 박승진 실장은 “처음에는 여러가지로 낯설었지만 수상을 하고 난 다음에는 동양인이 적은 탓인지 모두 환대해주고, 인사를 먼저 건네는 등 환영해주어 좋은 분위기 속에서 행사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며 “심사위원장 및 몇몇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선유도공원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바쁜 가운데서도 출품하게 된 것은, 협력사인 캐나다의 Envision - the Hough Group(구 HWNDL)이라는 회사의 고문이자 설립자인 Michael Hough가 권유를 해준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그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선유도를 보았고, 미국 조경잡지인 Landscape Architecture에 소개를 추진하는 중에 작품전에 내보라는 권유를 했고, 서안에서도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결국 출품하게 되었다.
선유도공원은 현재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전문가로서 정영선 소장은 가볼 때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고 말하지만, 한번 방문했던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공원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이를 반증하듯 각종 드라마, CF의 배경장소로 이용되기도 하고, 콘서트 및 문화예술인의 모임, 시민단체의 모임 등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시싱허스트 정원
정원, 영국인의 러브 어페어 최근에 출간된 영국 정원을 소개하는 책자의 제목은 "The Garden : An English Love Affair"이다. 영국 사람들의 정원에 대한 애정과 탐닉은 유별나다. 그러기에 러브 어페어라는 책제목은 귀에 쏙 들어온다. 영국 사람들은 오래된 정원들을 자주 찾는다. 때로는 자신의 정원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으려 찾고, 때로는 정원 공간의 스펙타클한 풍광이나 아기자기한 디자인을 즐기고자 찾기도 한다. 때로는 정원에 담겨있는 로맨스를 확인하고자 찾기도 한다. 시싱허스트 정원은 이 마지막 경우에 해당하는 예이다. 시싱허스트 정원은 정원사적인 측면에서는 유명한 정원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정원 중의 하나이다. 그리 크지 않은 시싱허스트 정원에는 늘 방문객들이 넘쳐난다. 이곳에서 그들은 이 정원을 만들고 가꾸면서 지냈던 한 여류소설가의 특별한 삶과 사랑의 이야기를 만나고자 한다.시싱허스트 정원만들기- 1930년에서 1962년 비타는 해롤드가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콘스탄티노블 근처의 코스폴리에서 그들의 첫 번째 정원을 만들었다. 이후 1915년 비타의 고향인 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롱반(Long Barn)이라는 곳을 샀다. 비타는 이곳에 정원을 만들면서 정원디자인의 다양한 식재기법을 터득했다. 비슷한 계열의 초화류로 정원의 구획들을 꾸몄다. 1930년 비타와 해롤드는 시싱허스트 성을 방문한다. 비타는 처음보자마자 이 성에 매료된다. 비타는 시싱허스트와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나는 이 성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 곳은 잠자는 숲 속의 성이었다. 정원은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1932년 그들은 시싱허스트 성으로 이사했고, 오랜 기간에 걸쳐 정원을 가꾸어갔다. 정원디자인은 비타와 해롤드의 협동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정원에 부여된 정형적인 질서는 해롤드의 감각이었고, 비정형적인 자유로움은 비타의 터치였다. 해롤드의 아폴론적 질서는 강한 축과 단순한 형태로 구현되었고, 비타의 디오니소스적 풍요는 다채로운 식재로 표현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감각과 취향에도 불구하고 정원디자인에 완벽한 접점을 찾아내곤 하였다. 비타와 해롤드는 정원의 골격을 이루는 디자인에는 엄격한 정형성이 있어야 하고, 식재에서는 최대한 비정형적인 자유로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타와 해롤드가 체험했던 다양한 이국 경관이 정원을 만드는데 있어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비타는 어린 시절부터 이태리를 자주 방문하였고, 특히 플로렌스 지방의 건축과 정원 그리고 예술을 찬미했다. 해롤드가 외교관으로 콘스탄티노블에 근무할 때 비타는 페르시아 지역을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페르시아 정원에서 개인적인 정원의 원리를 발견 했다고 회고한다. 그녀가 발견한 원리는 ‘정원에서의 친숙한 기하학과 질서는 외부세계의 무질서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것이었다. 비타에게 시싱허스트는 아마도 외부세계로부터 단절된 세계로서 영혼을 구원하는 피난처였을 것이다. 비타는 남편인 해롤드가 국회의원 활동을 위해 런던에 머물 때도 남편과 함께하지 않고 시싱허스트를 지켰다. 낮에는 정원을 가꾸고, 밤에는 정원에 우뚝 솟아있는 타워의 방에서 글을 쓰며 소일했다. 비타에게 정원은 안식이었고, 글쓰기는 구원이었다. 조 경 진 Zoh, Kyung-Jin 서울시립대학교 건축도시조경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올해의 조경인 ; 특별상 - 성백진 · SK임업(주) 대표이사
성백진 · SK임업(주) 대표이사
조경도 할 수 있다! 건축, 토목분야의 견제와 불신을 넘고 조경의 대규모 공사수행 능력을 인정받은 SK임업(주)의 성백진 대표이사.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위치한 백상빌딩, SK임업 1백여명의 직원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곳이다.한국임학회 부회장, 한국조경학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한국산림휴양학회 부회장, 한국산림경영인협회 이사, 평화의 숲 지도위원, (사)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 고문 등 여러단체에서 매우 활발한 참여를 하고 있으며, 특히 1974년 SK임업(당시 서해개발주식회사)에 사원으로 입사하여, 1997년 사장에 취임하는 등 우리나라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알고 있고 믿고 있는대로 실천하는 원칙파이며, 목적이 생기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의지파. 올해의 조경인 특별상 선정에 대해 축하인사를 전하자, “선배 동료들도 많은데, 내가 선정되어 의외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조경영역의 발전에 더욱 기여하는 것이 남은 일이다. 특별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간단히 소감을 밝혔다.
SK임업은?서해개발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1972년 시작한 SK임업은, 처음에는 SK그룹의 고 최종현 회장이 외국으로 전액 유학을 보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재원 조달을 위해 세워진 뜻있는 기업이다. 1980년 조경식재 및 시설물 건설업 면허로 조경공사를 시작하였으며, 1981년 국민포장 수훈, 1988년 석탑산업훈장을 수훈하는 등 비약적인 발전이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1989년에 조경공사업 면허를 획득하면서 대규모의 조경공사들을 대거 수주 시공해 왔으며, 1992년 충남대학교 연습림으로 조림지 1,000ha 기증, 2002년에는 SK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프로젝트인 울산대공원 1,000억 공사를 시행하기도 했다. 공식적으로는 1998년에 SK입업주식회사로 상호변경하여 지금까지 오고 있다.
숫자 ‘1’에 얽힌 이야기한국사람 중에 SK그룹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원으로 시작하여 유명 대기업 계열사의 사장이 되기까지 분명 남다른 노력이 뒤따랐으리라. 성백진 사장은 입사전 UN한국산림조사사업기구에서 5년, 산림청에서 3년 정도 근무를 했다고 한다. 1974년 6월에 들어왔으니까 올해가 SK입업에 입사한지 30년이되는 해다. 입사 초기인 1970~80년대만 해도 조경공사라고 하면 식재 위주의 시공뿐이었고, 그래서 토지에 관상수를 심어 생산/판매하여 그 수익으로 조경사업을 확대하고 조림사업도 지속해 왔다. 회사 초창기때야 다들 어렵지만 IMF의 파고는 큰 고비였다. 1차산업의 규모적인 특성상 농업을 가지고는 조림사업의 재원을 조달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자금 압박이 심했다. 주변회사의 부도도 어려움을 부채질했다. 그리고 작년에 있었던 SK사태는 계열사 모두가 자금난에 시달리는 위기 상황이었다. 위기때 마다 회사와 함께 했고, 모든 것을 일에 바친 것이 현재의 그를 만든 비결이 아닐까.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1등이 되자”는 남달리 강한 목표의식이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항상 남들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했는데, 일요일에도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나 현장을 확인하기도 하였으며, 약간 우스갯 소리지만 “목요탕을 가도 1번 옷장에 옷을 넣었어요. 주차를 할때도 1번에 차가 있으면 11번에 넣었으니까.(웃음)”
울산 대공원 공사를 잡아라! 1965년에 고려대학교 임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8년에 한양대학교 환경과학대학원에서 조경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고려대 경영대학원과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으며, 상명대학교 대학원 환경조경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내가 학부를 다닐때는 조경학과가 없었다. 그러나 임학을 전공한 사람이 조경에 애정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며 조경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업계의 주도권을 찾기 위해서는 조경에 대한 공부가 아니더라도 영어든 일본어든 뭐든지 배워야 한다. 그것이 경쟁력이다.”사실 ‘공원은 조경이 만드는 것’이라는 확고한 정의도 현실에서는 흔들릴 때가 많다. 특히 대규모 공사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성백진 사장이 말하는 경쟁력은 그래서 필요한지도 모른다.
“처음 울산 대공원에서 조경은 ‘나무만 심어라’는 의견이 대부분 이었다. 같은 그룹에서 조차도 조경에는 못 맡기겠다는 말이 많았으니, 울산대공원 공사를 조경으로 가져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2002년 울산 대공원 공사를 SK임업에서 하겠다고 나선 것은 많은 현실적 장벽에 대한 도전이었다. “조경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다만, 조경에 대한 견제를 넘어서는 것이 문제였다. 조경의 업역과 관계된 일이었다. ‘조경은 공원내의 모든 것들, 도로와 연못 등을 다 할 수 있는 분야인데, 왜 그런것을 토목과 건축에 맡기는가?’ 라는 생각에 이 사업을 반드시 조경분야로 수주하자고 마음먹고 동분서주했다. SK그룹의 본사와 공장, SK그룹 회장실, 울산시청 등을 찾아다니며, 여러가지 문제들을 해소하고 설득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였으며, 결국 1차 공사를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1차 공사를 잘하고 나니 울산대공원 2차 공사는 쉽게 수주되었다. SK임업이 대규모의 조경사업을 주도적으로 해나가는 것은 조경공사에 대한 위상을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최근에는 이런 대규모 공사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인천 송도신도시 2·4공구 공원·녹지 조성공사”를 높은 지분율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공사는 단일조경공사로는 최대 규모인 1,000억대의 공사로서 하청업체만도 30여개의 업체가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성백진 사장은 앞으로도 ‘업역확장’ 이라는 과제는 지속해야 할 고민이라고 말한다. 조경 업계가 한데 뭉쳐서 업역을 확대하지 않으면 다른 건설분야로 흡수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분리발주가 없어졌는데, 조경공사업을 분리 발주하는 제도를 복구하는데 힘쓸 생각이다. 최근 어느 시군에 가면 생태하천을 토목에서 발주하는데 왜 그것이 토목의 일인가.”조경 소재 개발에도 관심이 많다. “SK임업은 산이 많은 회사인데, 우리나라 산야를 찾아다니면 서울시내 가로변에 심을만한 자생상록 관목을 좀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조경은 사람의 마음을 가꾸는 일“아주 바쁘게 생활했다. 지금은 입찰제도로 인해 많이 나아졌으나, 예전에는 공사를 수주하기 위한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거의 사업에 매몰되어 살았다”. 결코 후배들에게 권장하고 싶은 점은 아니라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일에 열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집안일에는 소흘했다. 열두번 이사를 했는데, 한번도 이삿짐을 날라준 적이 없었다. 마사회 공사장에 나가 있을때 아버님의 부음을 받고 달려간 적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집에서 불만을 토로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며 고마운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이 ‘내조의 힘’이 아니냐고 하자, 굳이 부인하지는 않으나, “무엇보다 어려운 시기마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신을 믿어 준 직원들의 힘이 제일 컸다.”며 공을 직원들에게 돌린다.“사실 업계 현실이 어렵다. 토목, 건축 등 다른 건설사보다 급여도 좀 떨어지지만 그런 현실을 인내해준 직원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어느 기간이 되면 후생복지 부분에서 건축분야만큼 보장해 줄 날이 올 것이다.” 그는 지금 현실적으로 조경업에 종사하는 후배들이 많은 좌절감을 느끼고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하나 띄웠다.“조경은 전도시를 가꾸고, 사람의 마음을 가꾸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조경인이 조경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일에 몰입하면 희열을 느낍니다.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최선을 다할때, 승리합니다.”이번 수상이 그의 “조경사랑의 길”에 큰힘이 되길 바란다.
-
제4회 생태조경·녹화대상 공모 당선작
The 4th Ecological and Green Landscape Architecture Awards
(사)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회장 정태건)에서 주관하는 제4회 생태조경·녹화대상의 시상식이 지난 10월 28일 개최되었다. 이번 공모에서는 지난 2004년 9월 1일부터 20일까지 접수된 총 9점의 작품을 대상으로 9월 22일 1차심사, 10월 3~5일에 2차 현장심사를 거쳐 대상 1작품, 우수상 2작품, 장려상 3작품 등 총 6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본지에서는 대상과 우수상 작품을 소개한다.
대상부천 상동지구 “시민의 강” 조성공사건축주 : 한국토지공사(김진호)시공자 : 화성산업(주)(이홍중)설계자 : (주)한림조경기술사사무소(김경윤)
우수상우면산 자연생태공원건축주 : 서울시 서초구청시공자 : (주)세진조경(이영숙)설계자 : (주)토문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김기성)
우수상걸매생태공원건축주 : 제주도 서귀포시청시공자 : 자연제주(이석창)설계자 : 남원건설에지니어링(변금옥)
-
제1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1st National Exhibition of Korea Landscape Architecture
환경 및 조경, 건축분야를 아울러 매년 개최되어 오던 「늘푸른 환경조경설계 공모전」(주최: (재)늘푸른)이 올해부터 「제1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으로 격상되어 개최되었다. 이번 공모전은 새로운 도시공간을 위한 창의적 공간의 재생, 지속가능한 미래 환경을 위한 본질적인 경관의 형성을 주제로 총 89개 작품이 응모하였으며, 그 중 5차에 걸친 심사 결과, 대상 1팀, 최우수상 3팀, 우수상 3팀, 특선 6팀, 입선 다수작이 선정되었다.-편집자주
대상Collaging Edges박경탁, 이상수, 김희원(서울시립대학교)
최우수상相反收斂이진욱(상명대), 김경환(고려대 대학원)
최우수상21th 골목.jpg박주하, 김수진, 박영선(영남대학교)
최우수상Eco-villageum CHOL-AM김승희, 장영수(숙명여자대학교)
-
악바르황제의 영묘(靈廟)
인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사진이나 그림엽서로 너무나 익숙했던 ‘타지마할(Taj Mahal)’을 실제로 본다는 기대감과 묘한 흥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떠밀리는 듯한 수많은 관람객 속에서는 역사적 유적에 대한 어떤 감흥보다는 인파에 쉽게 지치게 된다. 무굴(Mugul)제국의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이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위해 만든 무덤인 타지마할은 아그라(Agra)에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인도가 힌두(Hindu)교를 근간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당시 무굴제국은 이슬람(Islam)교를 근간으로 한 왕국이었다. 16세기 중엽에 힌두교도를 평정한 무굴제국의 3대 황제 악바르(Akbar)는 수도를 델리(Delhi)에서 아그라로 옮기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했다. 악바르 이후 4대 자한기르(Jahangir), 5대 샤 자한, 6대 아우랑제브(Auranzeb)에 이르는 150여 년간 무굴제국은 황금기를 누렸다. 사랑하는 아내의 애틋한 죽음 앞에 바쳐진 타지마할은 연중 수많은 관람객이 몰리기 때문에 고즈넉한 감흥을 갖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감흥을 제대로 느끼려면 아그라의 외곽에 있는 시칸드라(Sikandra)를 찾으면 된다. 이곳에는 ‘악바르황제의 영묘(Tomb of Akbar)’가 있다. 악바르황제는 뭄타즈 마할의 시할아버지가 되는데, 영묘는 타지마할에서와 같은 ‘차하르 바그(Chahar Bagh)’ 즉 ‘사분원(四分園)’의 공간구성을 보이고 있다. 다만 우윳빛 대리석의 타지마할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시칸드라에 잠들어 있는 악바르황제와 함께, 50회에 걸쳐 연재했던 ‘조경사적 외국정원’도 잠들고자 한다. 잠시 잠들다 깨어날지 아니면 영원히 잠들지 지금은 모르겠다. 격월로 연재했으니 햇수로는 8년이 넘어 대학을 2번 졸업하고도 남는 셈이다. 그 동안 귀한 지면을 할애해 준 환경과 조경 관계자와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강 철 기 Kang, Cheol-Gi 경상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
-
門이 있는 풍경
불로문, 문이 있는 풍경을 위한 치밀한 계획
우리의 전통문화를 생각할 때 “자연과의 조화와 자연에 순응”이라는 사실을 빼놓을 수 있을까? 다듬은 듯하지만 한쪽 귀퉁이가 일그러진 토기며 질그릇, 초가지붕에 덩덕실 올라가 있는 박 덩이나 다듬어지지 않은 원재료의 모양 그대로 휘어진 채로 세워진 기둥이라든가 하는 등등의 모습들이 그로써 연상되는 이미지들이 아닌가 싶다. 굳이 전통조경에 국한된 일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러움을 잘 표현했거나 자연스러운 형상을 즐겨했다는 사실이 우리 전통문화의 한 특징이라는 이야기다.
아무리 소박하게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일종의 프로세스가 있기 마련이다. 즉 솜씨 좋은 손끝을 이용하여 그릇을 만들어가거나 돌을 다듬어 석상을 만들며 정으로 돌을 쪼아 석조형물을 만들어 가는 동안, 떠오른 착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머리 속으로 그려가는 것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디자인과 실행의 과정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당연한 과정도 일종의 설계 프로세스라 할 수 있다.
창덕궁 후원의 불로문은 애련지 쪽으로 들어가는 원지의 출입문 같기도 하고 단독으로 세워진 조형물 같기도 하다. 문 따로 담장 따로 각각 별개로 만들어졌을 것이 아니라고 본다면, 우리가 바라보는 불로문 역시 문 따로 담장 따로 바라보지는 않을게 아닌가. 불로문이 그냥 담장에 걸쳐있는 하나의 문에 불과하게 보이기에는 이 주변에 울창한 숲이 있고, 게다가 연못이며 수로까지 걸쳐 있으니 불로문을 감상함에서 문 자체만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지하철 경복궁 역 구내에 세워놓은 불로문 복제품이 창덕궁 후원의 원조 불로문과 여러 면에서 비교되는 것은, 그것이 복제된 것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문은 그것으로 하나의 조형물이 되기에는 담장과의 관련성이 너무나 짙게 연계되어 있고, 담 주위며 그 안팎의 풍경이 함께 하는 것이기에 전철역의 불로문은 그것 하나만으로 서 있음으로 해서 초라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창덕궁 후원으로 들어서서 주합루 부용지 일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자유시간을 가진 뒤 연경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지금까지의 관람 코스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이제 옥류천 쪽으로도 개방되었다하니 최소한 스쳐 지나가는 발치에서도 불로문은 그를 위시한 풍경과 함께 하나의 점경물로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겠는가 싶다.
통으로 돌을 다듬어 조형해 놓았기에 무미건조할 정도로 단순한 형태와 통째로 다듬은 돌의 크기를 셈하여 보면서 우리의 전통조형물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대상임을 느껴본 사람들도 적지 않으리라.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불로문은 그냥 단순무식하게 네모난 테두리를 만들고 모를 둥글게 죽여서 만든 그런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작도된 일련의 도형의 바탕에서 높이와 폭, 그리고 문 꼴의 두께며 그 옆으로 이어진 담장의 규모와도 잘 짜 맞추어진 정교한 디자인에 의거한 조형물이 아니겠는가 하는 이야기다.
디자인은 독창적인 구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구상이 구체적인 조형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머리 속으로 그려오던 문의 모양이며 담장과의 비례며 그리고 문의 안과 밖의 대지의 미세한 높낮이까지 고려한 제작과 설치의 과정이 필요하다. 불로문을 분석해보면 빈틈없이 잘 맞아가는 일사불란한 도형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불로문을 분석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주위의 지인들로부터 두 종류의 되물음을 받곤 한다.
“정말 그럴까?”
어쩌면, 꼭 묻고자 하는 의도라기보다는 생각 밖의 경우를 만나, 그냥 툭 던져 보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정말 그렇고 아니고를 떠나 그림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다른 말이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신반의하는 것은 자로 잰 듯 도형을 그렸고 거기에 맞추어 치밀하게 도안된 것이 아무래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조화와 순응의 법칙, 또는 그에 따른 무심함이 베여있을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있기 때문이니 무리한 이야기도 아니다.
다른 한 가지의 반응은,
“왜 그렇게 했을까?”
하는 이야기다. 물론 그 앞에는 ‘정말 그렇다고 치더라도’ 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보더라도 신빙성이 결여된 것 같다는, 보다 의구심이 짙게 묻어있거나 혹은 그게 사실이라 생각할 때 정말 왜 그랬을까 싶어 몹시 궁금해 하는 되물음이다. 우리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의구심을 풀기 위함이 아니라 순리적인 유추를 위하여 이런 자문자답을 해 볼 수 있다.
왜 그랬을까? 정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또는 그렇게 할 경우 어떤 효과적인 결과를 취할 수 있는가?
정 기 호 Jung, Ki Ho·성균관대학교 건축·조경 및 토목공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일본의 경관법 제정
- 지자체의 경관보전·관리에 대한 노력을 국가적 차원에서 법적으로 지원 -
지난 6월 18일 일본에서 ‘경관법’이 공포되었다. 1968년 일본 가나자와시에서 전통환경보존조례를 제정한 이래 타카야마시, 쿠라시키시 등의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지역의 역사적 경관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1972년 교토시의 시가지경관조례, 1978년에는 고베시의 도시경관조례가 제정되었는데 이 시기부터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경관을 보전하고 관리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하기에 이른다. 즉, 국가의 법제하에서 보호되기 어려운 경관을 지켜나가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스스로 조례를 제정하여 자주적으로 대처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관법은 이러한 지방자치단체의 경관보전 및 관리에 대한 노력을 국가적 차원에서 법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편, 우리의 경우는 2000년에 새로이 도입된 지구단위계획에서 경관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였고, 2003년에 제정된 국토의계획및이용에관한법률에서 도시기본계획내에 경관계획을 포함하도록 하였다. 아울러 올해 자연환경보전법 개정안에서도 자연경관에 관한 내용이 추가되어 ‘경관’에 관한 법적 인식이 한층 높아졌다. 또한, 관련 학회에서도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여 경관에 관한 학술적 논의가 활발하여 ‘경관’의 중요성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경관법의 제정 배경 : 경관 관련 최근 동향
최근 일본에서는 경관법 제정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국가적 움직임이 있었다.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도시재생특별조치법」에 의한 「전국도시재생을 위한 긴급조치」이다. 2002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있었던 일들을 아래 표와 같이 정리하였다.
이 표에 나타난 것처럼 ‘경관법’이 제정되기까지 관련 정책들이 수립시행되었다. 특히 ?立市 맨션소송은 ?立시민의 경관권을 위해 소송대상인 맨션의 13층 이상에 해당하는 부분의 철거명령이 내려진 소송으로써, 경관권이라는 것을 최초로 법적으로 인정한 상징적인 사례이다.
이후 국가적으로는 구조개혁특별구역법을 제정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일정 구역을 지정하여 지역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농산어촌의 ‘문화적 경관’을 보호 활용하기 위한 조사가 실시되었고, 이어서 ‘아름다운 국토만들기 정책대강’이 만들어졌으며, 여기서는 15가지의 구체적 시책 중 경관에 관한 기본법제의 제정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또한 ‘관광입국행동계획’을 수립하였는데, 일본의 자연경관과 역사문화경관을 보존하고 이를 관광에서 활용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물과 綠의 아름다운 마을계획’에서는 풍요로운 자연환경 및 경관보전을 중점방향의 하나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 해 말 동경 신주꾸에서 개최된 ‘경관기본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동경대학 니시무라 교수가 ‘풍경을 시민의 것으로’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부터 라고 할 수 있다.
니시무라 교수는 ‘풍경행정에 관한 제언’에서 경관기본법 제정, 법정 풍경기본계획작성, 토지이용과 풍경보전 및 창조라는 2가지 축에 입각할 것, 지방자치단체의 경관 조례에 법적 근거 부여, 도시계획제도의 상세화, ‘풍경의 보전과 창조’를 건설관련법규의 목적에 삽입할 것 등을 들고 있다.
특히 이 발표에서 경관기본법안의 갖추어야 할 특징으로써 가장 첫 번째로 언급한 것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법적 근거를 부여하는 법률이다. 둘째로는 경관에 관한 기본이념을 명시하고, 셋째는 경관지구와 경관형성지역이라는 복수형태로 하며, 경관중요건축물에 대한 우대조치를 마지막으로 들고 있다.
2004년에 들어서면서 1월에는 환경재생심포지움에서 경관법안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있었으며, 2월에는 ‘경관법안’이 발표되었다. 이후 6월 18일에는 드디어 경관법이 공포되어 현재는 경관법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경관법의 제정 필요성
현재 일본 지방자치단체의 경관에 관한 대처는 약 500여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자주조례로써 경관조례를 제정하는 등 지방공공단체에서 적극적으로 경관의 정비 및 보전에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다음과 같은 한계가 존재하고 있다.
첫째, 경관을 정비 및 보전하기 위한 국민공통의 기본이념 미확립
둘째, 자주조례에 기초한 행위의 신고권고 등의 유연한 수법의 한계표출(경관을 둘러싼 소송의 제기)
셋째,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자주적인 대처에 대하여 국가로써의 세제 및 재정상의 지원체계 불충분
일본 전국 각지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주적으로 경관조례를 제정하여, 양호한 경관의 보전 및 형성에 대해 계속 대처해 나가고 있으나, 지방자치단체의 경관조례에는 법적 근거가 없으므로, 바람직한 대처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실효성이 높아지지 않는 실태가 존재하고 있다. 게다가 國立(쿠니타치)시 맨션재판으로 대표되는 것처럼 경관을 둘러싼 사업자와 시민 사이의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 양호한 경관형성에 관한 사회적 구조에 대한 시민의 욕구가 높아지고 있으므로, 점차 국가로써도 경관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경관의 보전 및 형성에 대한 국가로써의 입장을 명확하게 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따라서 여기에 경관법 제정의 필요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경관법의 의의
이상과 같이 경관법의 제정 배경 및 구성과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제정 공포되기 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시민과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양호한 경관보전과 형성을 향한 지속적인 노력이 국가를 변화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최초로 경관법이 도시계획의 틀에 그치지 않고, 도시계획구역을 초월하여 농지 및 국립공원행정과도 관련되게 된 것은 상당히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경관계획제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경관에 관한 자주적인 대처를 행하고 있지 않지만 앞으로 이를 사용하려고 하는 지방자치단체에 따라서는 상당히 기대할 수 있는 체제일 것이다. 즉, 이미 자주적으로 경관조례를 제정하고 있는 선진적인 지방자치단체는 경관법이라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보다 더 실효성이 있는 경관의 보전 및 관리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행하고 있는 경관마찌즈쿠리의 운용시에 경관법에 의거하여 보다 더 주민주도의 성격을 가지며, 주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조례의 제정 및 연계가 가능할 것이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주택가격에서 일조권 및 조망권 등 환경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최고 20%라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그만큼 이제는 쾌적한 환경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개인 혹은 특정 집단의 권리이해에 관련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지방자치단체가 자신의 지역에 존재하여 고유성과 지역성을 갖는 경관을 보전하고 관리한 사례는 극히 드문 형편이다.
물론 2003년에 제정된 국토의계획및이용에관한법률에서 경관계획이 도시기본계획에 포함되어 있고 많은 부분 그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경관계획에 대한 정의가 모호할뿐더러, 해당 시행령에는 경관계획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실정이다. 즉, 법률에 나타난 경관계획은 법적 구속력이 결여된 선언적 의미가 크고 이에 대한 세부지침은 지나치게 시각자원관리 위주로 되어 있어 주민에 의한 경관형성측면의 고려가 미흡한 형편이다.
게다가, 현재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에서 경관조례 제정경향을 보면 16개의 상위 지방자치단체중 3개 지방자치단체가 4개의 조례를, 227개의 하위지방자치단체중 40개의 지방자치단체가 경관조례를 제정하고 있는 등 증가일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하위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연경관조례의 제정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조례가 제정되어 있어도 조례에 근거하여 지방자치단체수준의 경관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한 사례는 전무하다시피한 실정이다. 이는 경관조례 제정의 필요성은 인식하였지만, 조례운영의 사례와 경험이 없고, 조례운영의 실효성을 담보할 만한 법적 구속력이 상위법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의 경관법이 지방자치단체의 경관조례 운영의 법적 근거마련 요구에 부응하여 국가적으로 제정되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경직적이고 획일적인 우리의 경관정책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오 민 근 Oh, Min Geun·서울대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 박사 수료, 일본 동경대학 도시계획연구실 협력연구원(전)
-
헤르만 마테른과 헤르타 함머박허
헤르만 마테른은 설계를 하기 위해 부지를 찾는 순간 이미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었더라고 전해진다. 도면위에 굵은 선을 던져 놓는 것으로 작업을 마치던 그는 말하자면 전형적인 예술가 타입이었고 임기응변에 능했는데, 그의 아내이자 동료였던 헤르타 함머박허는 파고드는 노력파에 고지식한 완벽주의자로 마지막 지피식물의 위치까지 한 치도 틀림없이 그려 넣었으며, 시공현장에서는 두려운 존재로서 초화류를 스무 번도 넘게 옮겨 심게 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마테른과 함머박허 커플은 각기 1인자, 2인자의 위치를 겨루며‘사랑과 이별 그러나 평생의 공동작업’ 이라는 그들만의 특이한 이야기를 엮어 간다.
대학시절에 만나 “CC"가 되고, 칼 푀르스터가 1929년 설립한 설계사무실에 나란히 취직이 된 이들 신혼부부는 곧 푀르스터와 의기투합하여 2년 만에 직원에서 동업자로 둔갑하게 된다. 이로서 20세기 독일조경의 트로이카가 탄생하는데 이들의 작업공동체는 그러나 1948년에 동서가 갈림으로서 일단 막을 내린다. 당시 74세의 고령이었던 푀르스터는 비록 포츠담이 공산화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으나 평생의 업이 담겨 있는 식물원을 떠날 수 없어 그대로 머물게 되고 헤르만 마테른은 헤센지방의 카셀로, 헤르타 함머박허는 베를린으로 각각 거점을 옮기게 된다.
마테른과 함머박허 부부는 1935년에 이미 이혼한 사이였다. 동료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관계는 계속 유지되었으며 그들의 정신적인 유대관계는 오히려 깊어져 갔다.
둘은 서로의 능력을 깊이 존중하였고 조경에 대한 이해와 기본개념이 같아 여러 차례 정원전시회를 함께 설계하였으며, 베를린의 국제건축전시회 (IBA)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들을 공동으로 수행하기도 한다,
전후 마테른은 카셀대학에서, 함머박허는 베를린공과대학에서 각각 교수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파괴된 국토와 도시를 복구하고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찾는 움직임을 이끌어 가는 핵심멤버들로서도 이들의 길은 끊임없이 교차한다.
바우하우스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마테른은 몇몇 지기와 함께 바우하우스를 부활시키려는 시도를 해 보지만 실패하고 대신 카셀에 도쿠멘타를 개최한다. 한편 함머박허는 베를린공대 최초의 여교수로서 조경과가 아닌 건축과에서 조경을 가르치며 건축과 조경의 접목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바우하우스 건축이 표명하는 기능의 미를 항시 껄끄럽게 생각했던 그는 바우하우스 재건운동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근원이 자연으로부터 출발하였으므로 자연이 모든 것의 바탕이 되어야 하고 따라서 건축도 자연을 닮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유사한 견해를 가진 한 무리의 건축가들이 소위 유기적 건축으로 알려진 후고 헤링이며 루돌프 슈타이너이고 한스 샤룬이었는데 헤르타 함머박허를 베를린 공대로 불러들인 것은 후에 필하모니와 국립도서관건축으로 유명해지는 건축대학 학장 샤룬이었다. 함머박허와는 대학시절부터 알던 사이였고 함머박허를 독일 최고의 조경가로 인정하였던 그는 푀르스터의 세계에도 매료되어 있었다. 그의 “유기적 건축”이 생기기까지는 푀르스터 정원을 드나들며 보니머파와 수없이 나누었던 토론에 힘입은 바 크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용인 죽전3차 현대홈타운
· 위치 : 용인시 수지읍 죽전동 택지개발지구 1BL· 대지면적 : 112,448.00㎡· 조경면적 : 41,632.74㎡· 세대수 : 1,998세대· 시공사 : 현대건설주식회사(대표 이지송, 현장소장 이행기)· 조경설계 : (주)그룹한(소장 박명권, 이주희, 허대영, 김도연, 김은영, 문미영)· 조경식재· 시설물 : 아아조경(주)(대표 이광성, 전무 임재홍)
잔잔한 연못위로 드리워진 나무그림자가 정겹게 느껴지는 단지의 중앙공원 역할을 하는 친수공간이 보인다.한 켠은 감상을 할 수 있고 한 켠으로는 아이들이 물에서 뛰놀 수 있도록 한 이 친수공간에는 특히 당초 용인 죽전1번지로 불리우던 지역, ‘용의 탄생지’라는 기존 마을의 유래를 상기하고 싶다는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용의 알을 상징하는 조형의자와 사인물이 설치되기도 했다.또 다시 다양한 식물이 인도하는 보행로를 따라 동 사이를 거닐다보면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할 수 있는 작은 모임터도 여러 군데 조성되어 있다.어린이들이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테마 놀이터도 중간중간 만나게 되고, 야생화 화단과 건강을 위한 맨발지압로도 즐길 수 있다.온 가족이 함께 쉴 수 있는 넓직한 팔각정자와 평상, 듬직한 정자목 아래 주민들이 마주보고 얘기할 수 있는 쉼터, 그리고 각종 야생 들꽃이 식재된 화단도 조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연령층의 다양한 이용행태와 입주민들의 이벤트도 유도할 수 있는 대규모 다목적 운동장도 조성되어 있다.단지 외곽의 긴 산책로와도 연계되어 있는, 마중하고 기다리고 배웅하면서 즐겨 찾게 되는 곳인 보행자 출입공간에는 레벨 차이로 생긴 옹벽을 활용한 벽천을 조성해 마을 입구의 돌무더기 같은 자연석 사이로 시원한 물줄기가 청량하게 쏟아지는 풍치에 한여름의 더운 햇살도 잠시 잊을 수 있도록 했다.용인 죽전3차 현대홈타운에서는 여타의 아파트에서 보기 어려운 다람쥐들이 단지내 조경공간을 뛰어다니고, 풀벌레와 개구리 소리가 단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주변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는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으로 건강한 아파트 단지로 조성해냈기 때문이다.단지 전체에 대형목이 주가 되는 풍성한 녹지를 조성해 기존 자연녹지와 연결되는 녹색의 스카이라인을 그리고 있는 죽전3차 현대홈타운에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소나무를 비롯한 대형목들이 20여층에 달하는 건물군 사이의 시원스러운 조경공간에서 녹지의 상승곡선을 그리며 위압감을 완화시키고 있다. 부지의 고저차가 만만치 않아 조성과정에서 많은 입지적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에 주력했고, 그 결과 동과 동 사이의 레벨을 이용하여 모든 입주민들이 녹지와 함께 생활하고, 모든 세대가 공원을 감상할 수 있는 중정을 조성, 녹지속의 보행로를 만들었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