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영국인의 러브 어페어
최근에 출간된 영국 정원을 소개하는 책자의 제목은 "The Garden : An English Love Affair"이다. 영국 사람들의 정원에 대한 애정과 탐닉은 유별나다. 그러기에 러브 어페어라는 책제목은 귀에 쏙 들어온다.
영국 사람들은 오래된 정원들을 자주 찾는다. 때로는 자신의 정원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으려 찾고, 때로는 정원 공간의 스펙타클한 풍광이나 아기자기한 디자인을 즐기고자 찾기도 한다. 때로는 정원에 담겨있는 로맨스를 확인하고자 찾기도 한다. 시싱허스트 정원은 이 마지막 경우에 해당하는 예이다. 시싱허스트 정원은 정원사적인 측면에서는 유명한 정원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정원 중의 하나이다. 그리 크지 않은 시싱허스트 정원에는 늘 방문객들이 넘쳐난다. 이곳에서 그들은 이 정원을 만들고 가꾸면서 지냈던 한 여류소설가의 특별한 삶과 사랑의 이야기를 만나고자 한다.
시싱허스트 정원만들기
- 1930년에서 1962년 비타는 해롤드가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콘스탄티노블 근처의 코스폴리에서 그들의 첫 번째 정원을 만들었다. 이후 1915년 비타의 고향인 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롱반(Long Barn)이라는 곳을 샀다. 비타는 이곳에 정원을 만들면서 정원디자인의 다양한 식재기법을 터득했다. 비슷한 계열의 초화류로 정원의 구획들을 꾸몄다. 1930년 비타와 해롤드는 시싱허스트 성을 방문한다. 비타는 처음보자마자 이 성에 매료된다. 비타는 시싱허스트와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나는 이 성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 곳은 잠자는 숲 속의 성이었다. 정원은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1932년 그들은 시싱허스트 성으로 이사했고, 오랜 기간에 걸쳐 정원을 가꾸어갔다. 정원디자인은 비타와 해롤드의 협동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정원에 부여된 정형적인 질서는 해롤드의 감각이었고, 비정형적인 자유로움은 비타의 터치였다. 해롤드의 아폴론적 질서는 강한 축과 단순한 형태로 구현되었고, 비타의 디오니소스적 풍요는 다채로운 식재로 표현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감각과 취향에도 불구하고 정원디자인에 완벽한 접점을 찾아내곤 하였다. 비타와 해롤드는 정원의 골격을 이루는 디자인에는 엄격한 정형성이 있어야 하고, 식재에서는 최대한 비정형적인 자유로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타와 해롤드가 체험했던 다양한 이국 경관이 정원을 만드는데 있어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비타는 어린 시절부터 이태리를 자주 방문하였고, 특히 플로렌스 지방의 건축과 정원 그리고 예술을 찬미했다. 해롤드가 외교관으로 콘스탄티노블에 근무할 때 비타는 페르시아 지역을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페르시아 정원에서 개인적인 정원의 원리를 발견 했다고 회고한다. 그녀가 발견한 원리는 ‘정원에서의 친숙한 기하학과 질서는 외부세계의 무질서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것이었다. 비타에게 시싱허스트는 아마도 외부세계로부터 단절된 세계로서 영혼을 구원하는 피난처였을 것이다. 비타는 남편인 해롤드가 국회의원 활동을 위해 런던에 머물 때도 남편과 함께하지 않고 시싱허스트를 지켰다. 낮에는 정원을 가꾸고, 밤에는 정원에 우뚝 솟아있는 타워의 방에서 글을 쓰며 소일했다. 비타에게 정원은 안식이었고, 글쓰기는 구원이었다.
조 경 진 Zoh, Kyung-Jin
서울시립대학교 건축도시조경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최근에 출간된 영국 정원을 소개하는 책자의 제목은 "The Garden : An English Love Affair"이다. 영국 사람들의 정원에 대한 애정과 탐닉은 유별나다. 그러기에 러브 어페어라는 책제목은 귀에 쏙 들어온다.
영국 사람들은 오래된 정원들을 자주 찾는다. 때로는 자신의 정원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으려 찾고, 때로는 정원 공간의 스펙타클한 풍광이나 아기자기한 디자인을 즐기고자 찾기도 한다. 때로는 정원에 담겨있는 로맨스를 확인하고자 찾기도 한다. 시싱허스트 정원은 이 마지막 경우에 해당하는 예이다. 시싱허스트 정원은 정원사적인 측면에서는 유명한 정원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정원 중의 하나이다. 그리 크지 않은 시싱허스트 정원에는 늘 방문객들이 넘쳐난다. 이곳에서 그들은 이 정원을 만들고 가꾸면서 지냈던 한 여류소설가의 특별한 삶과 사랑의 이야기를 만나고자 한다.
시싱허스트 정원만들기
- 1930년에서 1962년 비타는 해롤드가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콘스탄티노블 근처의 코스폴리에서 그들의 첫 번째 정원을 만들었다. 이후 1915년 비타의 고향인 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롱반(Long Barn)이라는 곳을 샀다. 비타는 이곳에 정원을 만들면서 정원디자인의 다양한 식재기법을 터득했다. 비슷한 계열의 초화류로 정원의 구획들을 꾸몄다. 1930년 비타와 해롤드는 시싱허스트 성을 방문한다. 비타는 처음보자마자 이 성에 매료된다. 비타는 시싱허스트와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나는 이 성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 곳은 잠자는 숲 속의 성이었다. 정원은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1932년 그들은 시싱허스트 성으로 이사했고, 오랜 기간에 걸쳐 정원을 가꾸어갔다. 정원디자인은 비타와 해롤드의 협동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정원에 부여된 정형적인 질서는 해롤드의 감각이었고, 비정형적인 자유로움은 비타의 터치였다. 해롤드의 아폴론적 질서는 강한 축과 단순한 형태로 구현되었고, 비타의 디오니소스적 풍요는 다채로운 식재로 표현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감각과 취향에도 불구하고 정원디자인에 완벽한 접점을 찾아내곤 하였다. 비타와 해롤드는 정원의 골격을 이루는 디자인에는 엄격한 정형성이 있어야 하고, 식재에서는 최대한 비정형적인 자유로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타와 해롤드가 체험했던 다양한 이국 경관이 정원을 만드는데 있어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비타는 어린 시절부터 이태리를 자주 방문하였고, 특히 플로렌스 지방의 건축과 정원 그리고 예술을 찬미했다. 해롤드가 외교관으로 콘스탄티노블에 근무할 때 비타는 페르시아 지역을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페르시아 정원에서 개인적인 정원의 원리를 발견 했다고 회고한다. 그녀가 발견한 원리는 ‘정원에서의 친숙한 기하학과 질서는 외부세계의 무질서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것이었다. 비타에게 시싱허스트는 아마도 외부세계로부터 단절된 세계로서 영혼을 구원하는 피난처였을 것이다. 비타는 남편인 해롤드가 국회의원 활동을 위해 런던에 머물 때도 남편과 함께하지 않고 시싱허스트를 지켰다. 낮에는 정원을 가꾸고, 밤에는 정원에 우뚝 솟아있는 타워의 방에서 글을 쓰며 소일했다. 비타에게 정원은 안식이었고, 글쓰기는 구원이었다.
조 경 진 Zoh, Kyung-Jin
서울시립대학교 건축도시조경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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