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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ㆍ강릉
  • 환경과조경 2009년 9월
태ㆍ강릉(泰ㆍ康陵)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313-19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약 31만평(1,056,352㎡)으로, 조선 제11대 중종(中宗)의 두 번째 비인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의 ‘태릉(泰陵)’과 조선 제13대 명종(明宗)과 인순왕후(仁順王后)의 쌍릉(雙陵)인 ‘강릉(康陵)’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릉 조영의 전형으로서의 가치 및 능침, 석물 등의 능의 상설 및 정자각, 비각, 수복방, 수라간, 홍살문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70년 5월26일, 사적 201호로 지정되었다.

造營 _ 문정왕후가 1565년 4월 7일 창덕궁 소덕당에서 승하한 후, 시호를 문정(文定)이라 하고 무덤의 이름을 ‘신정릉(新靖陵)’이라 하였다가 곧 ‘태릉(泰陵)’으로 고치고, 1565년 7월 15일 양주 노원면 대방리 임좌병향(壬坐丙向(북서에서 남동향)) 언덕에 단릉(丹陵)으로 예장하였다. 또한 1567년 6월 28일 명종이 경복궁 양심당(養心堂)에서 승하한 후, 선조 즉위년 1567년 7월 묘호(廟號)를 명종(明宗)이라 하고, 무덤의 이름을 ‘강릉(康陵)’이라 하여 1567년 9월 22일에 양주 노원면 대방리 임좌병향의 금산(金山) 언덕에 조영하였으며, 인순왕후의 경우 1575년 1월 2일 창경궁 통명전(通明殿)에서 승하 후 시호를 인순(仁順)이라 하였고 1575년 4월 28일에 강릉에 쌍릉(雙陵)으로 조영하였다. 한편 태ㆍ강릉은 1565년 조영된 이래로 한국전쟁 당시 태릉의 정자각(丁字閣)이 파손된 것을 1995년 복원하였고, 1970년 재실(齋室)이 낡아 없어진 후 현재 수영장이 위치하고 있으며 태릉선수촌, 육군사관학교가 능역을 잠식해 사용하고 있다.

立地 _ 태·강릉은 불암산(佛巖山(표고 509m))을 주산(主山)으로 하여 남쪽으로 뻗은 능선 허리 해발 50m 부근에 남동방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강릉은 태릉 능침에서 좌측으로 능선을 따라 1km 뻗어나간 남동방향에 능침이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인 묘(卯)에서 맥이 입수3하고 있다. 주변환경과의 관계에서 보면, 태·강릉 일원의 하천으로 서부 저지 한천(漢川)이 남류하며, 서쪽의 우이천과 동쪽에서 서류하는 당현천(堂峴川), 태릉천이 중랑천 수계의 일부를 이루며 지형적으로는 동부 산지, 서부 구릉지의 형태로 태백산맥 철령부근에서 갈라져 서남주(西南走)하는 광주산맥(廣州山脈)의 일부에 잔구성(殘丘性)산지이다. 현재 태·강릉 전면에는 경춘선과 화랑로가 지나가 고있으며, 도로를 중심으로 도시화를이루고있다.

空間構成 _ 1)配置形式
태·강릉은 능의 공간위계를 따라 진입공간, 전이공간, 능침공간으로 구분되며, 홍살문, 정자각, 장명등, 상석, 봉분이 공간축을 이룬다. 진입공간은 홍살문 밖의 공간으로, 금천교와 재실(현재 소실되어 사라짐)이 해당되며, 전이공간에는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참도, 신도, 어도, 판위, 수복방이 위치한다. 능침공간에는 사초지 위의 봉분 주위로, 곡장, 명등석, 난간석, 혼유석, 망주석, 병풍석, 문석인, 무석인, 석마, 석호, 석양이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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