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낙원, 혹은 감각의 향연 카를로스 궁전을 지나 어두운 실내 홀로 들어서자 작열하던 태양 빛의 더운 공기는 사라지고 시원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 ‘대사의 방’을 들어서자 멀리 알바이신 마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흰색 톤이 주조를 이루는 마을 풍경이 눈길을 끌었다. 경치를 빌려오는 차경의 수법은 이곳에서 그 빛을 발한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그라나다의 장님이라는 속담이 쉽게 수긍이 간다. ‘대사의 방’에서는 화려한 벽면 장식과 작은 분수가 우리를 압도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머물고 있었지만 보글보글 올라오는 분수의 물소리가 공간의 모든 소음을 흡수해 버렸다.
다시 실내 홀들을 지나 ‘아라야네스 정원’에 들어섰다. 단순하고 절제된 공간이었다. 정원의 연못은 거울처럼 주위의 건축물들과 하늘의 풍경을 잡아내는 스크린과 같았다. 겉으로는 닫힌 정원이지만 하늘을 비추어냄으로서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이루어내는 듯하였다. 정원은 무척 감각적이면서도 신과 우주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다시 홀을 지나 사자의 정원을 만날 수 있었다. 실내 공간과 정원 공간, 즉 어두운 홀과 밝은 중정은 대비되고 교차되며 긴장감을 연출한다. 정원 중앙에는 12마리의 사자상들이 물을 내뿜고 있으며, 그 물은 다시 4개의 물길을 따라 흐르고 있다. 정원 외곽에는 124개의 대리석 기둥이 열 지어 서 있어, 정원을 바라보는 시선의 틀을 끊임없이 변화하게 만들었다. 벽면에 섬세한 장식이 이어지는 이 기둥들은 이슬람 지역의 가로에 늘어선 야자수를 연상하도록 만들어졌다 한다.
사자의 정원은 가장 대표적인 이슬람 정원의 원형에 가깝다. 페르시아 양탄자에 새겨져 있는 정원들을 보면 중앙에 분수가 있고 4개의 수로가 정원의 골격을 잡아 주고 있다. 4개의 수로는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온 물이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기혼, 피손의 문명의 발상지인 4개의 강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상징한다. 낙원이라는 뜻의 paradise는 ‘담을 두른 정원’이라는 뜻의 페르시아어의 pairidaeza가 그리스어를 통해 전해진 말이다. 코란에서 파라다이스는 지상에서 맛보는 낙원은 온갖 감각적 즐거움이 넘쳐 나는 곳이다. 지상의 낙원을 상징한 페르시아 정원에서는 꽃향기가 가득하고, 시원한 그늘이 있고, 마음껏 과일을 따 먹을 수 있는 나무들이 있다. 이곳에서는 무엇보다도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이 정원의 중심이 된다. 분수나 가로수는 페르시아 사막 지방에서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로서 이슬람이 그 원조이다. 이슬람 문명은 정원을 하나의 예술의 형태로 끌어올렸으며, 이슬람 문화가 유럽문화권에 전해 준 가장 큰 선물은 ‘정원’일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 외부로 나와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다 보면 또 다른 낙원인 헤레날리페가 자리 잡고 있다. 알함브라 궁전보다 앞서 지어진 헤레날리페는 여름 별궁으로 식당이나 주거용 방이 없다. 단지 머물고 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알함브라는 ‘붉은 성’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반면, 헤레날리페는 ‘가장 고귀한 정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한 때 이태리인이 이곳을 소유하는 바람에 일부가 이태리식으로 개조되어 원형이 조금 변형되기는 하였지만. 알함브라의 정원과는 또 다른 느낌의 다채로운 정원들이 펼쳐져 있다. 긴 장방형 수로로 꾸며진 중정은 한편의 물과 꽃의 유희를 보는 듯하다.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의 영롱한 소리들이 공간에 퍼지고, 다양한 초화류는 형형색색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 알함브라 궁전이 마주 보이는 전망대를 만나게 되고, 다시 이어지는 작지만 간결한 정원인 사이프러스 정원에 다다르게 된다. 영원한 삶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들로 꾸며진 이 정원은 잠시 머물며 정원의 의미를 적합한 곳이다. 그라나다의 왕들은 어두운 사이프러스 숲 사이로 비쳐 들어오는 햇빛과 그 빛을 받으며 부서지는 가는 물줄기를 보면 영원불멸은 소망했을 것이다. 루이 마시농은 헤레날리페의 망루에 있으면 꿈꾸게 된다 했다. 슬프지는 않지만 멜랑코리한 꿈을. 그 꿈들은 실타래처럼 얽히게 된다.
마치 실타래처럼 연결된 정원의 물길처럼. 알함브라에서 헤레날리페에 이르는 지역은 다양한 모습의 정원들이 구석구석 숨겨져 있다. 마치 정원에 관한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것처럼 여러 가지 빛깔이다. 때로는 밝고 경쾌하게, 때로는 고요하고 적막하게. 물의 유희도 다채로움의 극을 보는 듯하다. 이슬람 건축과 장식 그리고 정원은 그라나다의 풍광과 어우러져 잠시도 한 공간도 눈을 떼지 못하도록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곳에 머무는 순간순간은 지루함을 거두어도 될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두 자매의 방’의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써 있다. “나는 정원이다. 매일 아침 새로운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나타난다. 나의 옷을 세심하게 관찰하라. 당신은 장식에 대한 어떤 말보다도 더 깊은 감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은 아름답지만 애절한 구석이 있다. 이 곳에서 머무르는 동안은 영원함과 소멸, 기쁨과 슬픔의 이미지들이 교차되어 진다. 아마도 그 까닭은 알함브라 궁전이 담고 있는 애절한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 경 진 Zoh, Kyung-Jin
서울시립대학교 건축도시조경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다시 실내 홀들을 지나 ‘아라야네스 정원’에 들어섰다. 단순하고 절제된 공간이었다. 정원의 연못은 거울처럼 주위의 건축물들과 하늘의 풍경을 잡아내는 스크린과 같았다. 겉으로는 닫힌 정원이지만 하늘을 비추어냄으로서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이루어내는 듯하였다. 정원은 무척 감각적이면서도 신과 우주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다시 홀을 지나 사자의 정원을 만날 수 있었다. 실내 공간과 정원 공간, 즉 어두운 홀과 밝은 중정은 대비되고 교차되며 긴장감을 연출한다. 정원 중앙에는 12마리의 사자상들이 물을 내뿜고 있으며, 그 물은 다시 4개의 물길을 따라 흐르고 있다. 정원 외곽에는 124개의 대리석 기둥이 열 지어 서 있어, 정원을 바라보는 시선의 틀을 끊임없이 변화하게 만들었다. 벽면에 섬세한 장식이 이어지는 이 기둥들은 이슬람 지역의 가로에 늘어선 야자수를 연상하도록 만들어졌다 한다.
사자의 정원은 가장 대표적인 이슬람 정원의 원형에 가깝다. 페르시아 양탄자에 새겨져 있는 정원들을 보면 중앙에 분수가 있고 4개의 수로가 정원의 골격을 잡아 주고 있다. 4개의 수로는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온 물이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기혼, 피손의 문명의 발상지인 4개의 강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상징한다. 낙원이라는 뜻의 paradise는 ‘담을 두른 정원’이라는 뜻의 페르시아어의 pairidaeza가 그리스어를 통해 전해진 말이다. 코란에서 파라다이스는 지상에서 맛보는 낙원은 온갖 감각적 즐거움이 넘쳐 나는 곳이다. 지상의 낙원을 상징한 페르시아 정원에서는 꽃향기가 가득하고, 시원한 그늘이 있고, 마음껏 과일을 따 먹을 수 있는 나무들이 있다. 이곳에서는 무엇보다도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이 정원의 중심이 된다. 분수나 가로수는 페르시아 사막 지방에서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로서 이슬람이 그 원조이다. 이슬람 문명은 정원을 하나의 예술의 형태로 끌어올렸으며, 이슬람 문화가 유럽문화권에 전해 준 가장 큰 선물은 ‘정원’일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 외부로 나와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다 보면 또 다른 낙원인 헤레날리페가 자리 잡고 있다. 알함브라 궁전보다 앞서 지어진 헤레날리페는 여름 별궁으로 식당이나 주거용 방이 없다. 단지 머물고 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알함브라는 ‘붉은 성’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반면, 헤레날리페는 ‘가장 고귀한 정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한 때 이태리인이 이곳을 소유하는 바람에 일부가 이태리식으로 개조되어 원형이 조금 변형되기는 하였지만. 알함브라의 정원과는 또 다른 느낌의 다채로운 정원들이 펼쳐져 있다. 긴 장방형 수로로 꾸며진 중정은 한편의 물과 꽃의 유희를 보는 듯하다.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의 영롱한 소리들이 공간에 퍼지고, 다양한 초화류는 형형색색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 알함브라 궁전이 마주 보이는 전망대를 만나게 되고, 다시 이어지는 작지만 간결한 정원인 사이프러스 정원에 다다르게 된다. 영원한 삶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들로 꾸며진 이 정원은 잠시 머물며 정원의 의미를 적합한 곳이다. 그라나다의 왕들은 어두운 사이프러스 숲 사이로 비쳐 들어오는 햇빛과 그 빛을 받으며 부서지는 가는 물줄기를 보면 영원불멸은 소망했을 것이다. 루이 마시농은 헤레날리페의 망루에 있으면 꿈꾸게 된다 했다. 슬프지는 않지만 멜랑코리한 꿈을. 그 꿈들은 실타래처럼 얽히게 된다.
마치 실타래처럼 연결된 정원의 물길처럼. 알함브라에서 헤레날리페에 이르는 지역은 다양한 모습의 정원들이 구석구석 숨겨져 있다. 마치 정원에 관한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것처럼 여러 가지 빛깔이다. 때로는 밝고 경쾌하게, 때로는 고요하고 적막하게. 물의 유희도 다채로움의 극을 보는 듯하다. 이슬람 건축과 장식 그리고 정원은 그라나다의 풍광과 어우러져 잠시도 한 공간도 눈을 떼지 못하도록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곳에 머무는 순간순간은 지루함을 거두어도 될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두 자매의 방’의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써 있다. “나는 정원이다. 매일 아침 새로운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나타난다. 나의 옷을 세심하게 관찰하라. 당신은 장식에 대한 어떤 말보다도 더 깊은 감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은 아름답지만 애절한 구석이 있다. 이 곳에서 머무르는 동안은 영원함과 소멸, 기쁨과 슬픔의 이미지들이 교차되어 진다. 아마도 그 까닭은 알함브라 궁전이 담고 있는 애절한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 경 진 Zoh, Kyung-Jin
서울시립대학교 건축도시조경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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