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규와 공간 - 모든 땅엔 임자가 있다
세상의 모든 땅에는 주인이 있다. 땅 주인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개인(민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이 아니면 공공(公共)이다. 여기서 민간이라 함은 개인일 수도 있고 개인들이 같은 이익을 위해 모인 집단일 수도 있다. 민간의 땅은 개인에게 속해있고 공공의 땅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속해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속해있다는 말은 결국 그 땅이 특정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소유라는 얘기다. 주택과 주택에 속해있는 정원은 민간의 땅이다. 몇 천 세대가 몰려 살건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도 민간의 땅이다. 집 대문을 벗어나자마자 만나는 도로와 공원 등은 모두 공공의 땅이다. 하천이나 강 그리고 바다도 공공의 땅이다. 잘 아시겠지만 땅의 소유문제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국가와 일반 민주주의 국가를 구분하는 단초가 된다. 물론 영국처럼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에도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땅의 공개념을 강조하며 땅에 관한한 민간의 소유보다는 공공의 소유에 가치를 더 부여하는 국가도 없진 않다. 법규는 민간의 땅이라 할지라도 개인이나 집단이 마음껏 재산권 행사를 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 중략 …
전통의 계승 - 모든 것엔 뿌리가 있다
설계란 전문분야에서 전통적인 양식을 적용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전통적인 양식이란 말 자체에 이미 현 시대에서는 아웃데이트(outdate)되어있는 낡은 문화라는 의미가 내재해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양식과 우리가 현재 몸을 담고 있는 현(現) 문화와의 상충은 언제나 예정되어 있다. 일본의 민속주거가 그랬듯이 우리의 전통주거들도 그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그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현 문화와의 타협을 통해 살아남은 것들은, 그러니까 현 시대의 요구에 따라 모습을 조금씩 바꾼 경우겠는데, 이럴 경우 현 시대 문화의 강력한 색깔에 가려져 전통이란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경우가 십상이다. 전통의 순수한 성격이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 시대에 그것이 적응할 가능성이 오히려 적어진다. 이러니 전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쉬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설계분야에서 전통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두 가지의 방법이 적용되어왔다. 하나는 전통의 문화에서 전해지는 옛 공간언어들을 변경 없이 적용하는, 즉 다시 말하면 옛 형태나 무늬, 패턴 또는 재료를 그대로 다시 모방해 쓰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옛 전통의 공간언어들을 현대의 시각으로 다시 변형해 쓰는 방법이다. 두 번째의 방법은 옛 공간의 형태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옛 공간의 개념은 빌려오되 그 형태와 재료는 현대적인 것들을 사용한다는 얘기다. 첫 번째의 방법인 복사(複寫)가 두 번째의 방법인 원용(援用)에 비해 훨씬 쉽다. 그래서 적지 않은 설계가들이 복사 쪽을 택한다. 그리고는 많은 비판을 받는다. 쉽긴 하지만 첫 번째의 방법은 나쁘게 말해 시간을 속이는 것이 된다.
옛것은 옛 시간대에 속해 있어야하고 새것은 새 시간대에 속해있어야 한다. 뿌리는 이어져야 하되 다른 시간대의 언어로 다시 읽혀져야 한다. 그래야 전통의 올바른 계승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복사에 가까운 전주시청사의 건물은 전주 성문(城門)에서 온 것이긴 하지만 전통을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저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보는 사람들에게 전해준다. 청계천의 자문관계로 한국을 들렀던 로마건축가협회의 회장인 스키야타렐라 (Schiattrallea)교수도 청계천의 설계내용 중 일부구간에 적용된 전통양식을 보고는 "그대로 베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던져 놓고 갔다. 사실 우리보다 훨씬 긴 역사를 지닌 로마는 더 오랜 시간을 전통의 문제와 싸워왔을 것이다. 로마에서 역사적 시간이 얽히지 않은 장소가 어디 있었겠는가. 곳곳의 모든 장소에서 전통의 문제와 싸워왔을 것이다. 그런 그들한테도 복사는 답이 아니었던 게다.
진 양 교 Chin, Yang Kyo?(주) 토문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무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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