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금속재와 강화플라스틱을 다뤘다. 다양한 표현력을 요구하고 뭔가 얘깃거리를 전달하고 싶은 소위 포스트모던의 영향에 따라 현대시대의 외부공간은 과거 어느 때보다 금속재와 강화플라스틱의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언제까지 지속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아니면 상당히 오랜 기간 금속재와 플라스틱재는 외부공간에서 그 영향력을 강화시켜 나갈 것으로 짐작된다. 나중에는 터미네이터에서 나온 기계 쪽의 전사, 즉 T-1000이나 T-X처럼 원할 때마다 모양과 색 그리고 질감을 바꾸는 재료가 외부공간에 등장해 사람들을 더욱 즐겁게 하게 될 지도 모른다. 또 그런 재료는 필요에 따라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과 서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거나 정보를 검색하게 하는 네트워크의 단말기 기능도 겸하게 될지도 모른다.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의 시대에 뭐가 불가능하겠는가. 메탈과 플라스틱은 현시대의 재료적 코드다. 먼지가 미끄러질 듯한 매끄러움에서 녹이 슨 거칠음까지, 눈부실 것 같은 광택에서 어두운 이끼가 덮인 것 같은 청색 녹까지, 날아갈 것 같은 날렵함에서 온 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것 같은 둔중함까지 금속재의 표현력은 무궁무진하고 변화무쌍하다. 가능성이 정말 무한한 재료다.
이번 달에는 약속대로 나무를 다루기로 한다. 전에 다룬 것은 죽은 나무에서 만들어지는 목재였지만 이번에 다룰 것은 살아있는 나무, 성장하는 나무에 대한 것이다. 이번 달의 글 제목은 과거 중앙일보 기자생활을 했던 고규용 씨가 쓴 책이름을 그대로 빌렸다. 고규용씨의 책은 제목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책 겉표지의 나무사진이 - 넓은 들판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저녁햇살을 역광의 실루엣으로 받고 있는 나무 사진의 모습이 - 좋아 집어 들게 됐다. 나무가 우리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감흥을 마치 한 곳에 집약시킨 모습으로 서있는 나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나무는 다른 재료와 달리 살아있는 재료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더 새로워지는 재료이다. 나무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하면서 나무가 왜 조경하는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재료이면서도 또 왜 조경하는 이들이 가장 쓰기 어려워하는 재료인지도 함께 들여다보기로 하자.
미래를 보며 오늘을 심는다
나무는 태어나서 죽는 과정을 거친다. 나무에 수명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생명을 유지하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그 수명이 유달리 길다. ‘나무와 숲이 있었네’의 저자 전영우에 따르면 무려 5천년을 사는 나무도 있다. 미국 모하비(Mojave)사막 인근의 화이트마운틴에 산다는 브리스틀 콘 소나무(Bristle cone Pine)라는 나무인데 고산지대의 건조기후에 적응하느라 천천히 살았던 모양이다. 그 정도면 나무 한 그루가 인류의 시작을 처음부터 지켜보면서 지금껏 살았다는 얘기가 된다. 나이도 나이지만 끔찍하게 큰 나무들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시에라네바다산맥에 살고 있는 미국 삼나무인 레드우드(redwood)는 줄기의 구멍으로 자동차가 지나갈 정도로 크기 때문에 종종 관광책자에 실려 유명세를 유지한다. 27층의 건물높이라니까 층높이를 3미터만 잡아도 대략 80미터의 키를 갖고 있다는 얘기고 줄기의 직경이 무려 10미터가 넘는다고 하니 정말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명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큰 나무도 작은 씨앗으로부터 생명을 시작한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자라기 시작한다. 나무의 긴 수명은 사실 따지고 보면 천천히 살기 때문이랄 수 있다. 어린나무인 묘목의 단계를 거치면서 성목(成木)이 되기까지 많은 시간을 요하기는 하지만 쉬지 않고 자란다. 나무에 따라서 다소 빨리 크는 나무가 있고 천천히 크는 나무가 있다. 다른 재료는 설계에 따라 완성된 형태로 시공이 된다. 하지만 나무의 경우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외부공간을 설계하는 이가 머리에 그리고 있는 나무모습은 나무가 어느 정도 자라 제 모습을 갖춘 성목, 즉 나무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 40년을 자란 나무들이다.
하지만 시공 당시에 설계가가 의도한 크기의 나무를 그대로 구해다 심는 예는 거의 없다. 그 정도로 자란 성목을 농장에서 찾는 것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나이가 그 정도 되면 나무를 옮기는 이식작업이 그리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통상 조경가가 시공 당시에 심겨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대략 10여년 정도 자란 다소 어린 나무들이다. 그 정도 연륜의 나무들이 구하기도 좋고 농장에서 떠나와 옮겨 심겼을 때 무사히 적응해 삶을 지속하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무의 성장 가능성과 이식의 어려운 점 때문에 조경가는 쉽게 얘기해 10년 나이의 나무로 30년 후의 성목을 예상할 수 있어야한다. 그런데 그 예측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아무리 나무를 잘 아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떤 나무가 몇 십 년 뒤에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누군들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또 어려운 점은 나무라는 재료가 생육조건을 따질 수밖에 없는 생명체라는 것이다. 돌이나 벽돌처럼 어디에 놓이건 놓인 대로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나무는 자신의 삶을 지속하기 위한 조건들을 까다롭게 따져낸다. 추위에 약한 나무가 있고 공해에 약한 나무가 있다. 모든 나무가 햇빛을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강한 직사광선을 싫어하는 나무도 적지 않다. 물을 좋아하는 나무가 있는 한편 오히려 마른 땅을 좋아하는 나무도 있다. 이러한 소위 생육조건은 나무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경기이북의 외부공간에 추위에 약한 동백이나 매화를 쓸 수 없는 것처럼 나무를 잘 쓰려는 이들은 이들 생육조건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해야 한다. 그런데 나무는 오죽 그 종류가 많은가. 그래서 나무는 외부공간을 다루는 이들이 가장 흔히 쓰며 그들만이 쓰는 유일한 재료이기도 하지만 종종 애를 먹이는 재료이기도 한 것이다.
진 양 교 Chin, Yang Kyo·(주) 토문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무소 부소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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