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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틱을 건너며
한국은 작은 나라이다. 작은 나라의 작가가 항상 다양한 생각과 넓은 시야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힘키우기 모델이다. 큰 나라에 태어나서 남의 나라말을 배워야 할 필요를 못 느끼며 살고있는 사람들이 부러운 적도 있었지만, 외국생활 5년차에 접어드는 지금 생각해보면 이 천부적 기회는 우리의 행운이다.
해외유학과 여행인구가 해마다 엄청난 숫자로 늘어나고 있는 것을 외화낭비로 보는 시각도 없지는 않지만, 사람이 곧 가장 큰 자원인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습득한 인력이 증가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한편, 유학을 가기도 힘들고 가려는 사람도 적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스스로가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외국에서 생활하는 기간이 오히려 경력의 공백(gap)으로 작용할 날이 오고 있다.

매니징 아메리카(Managing America)
미국은 흔히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나라라고들 한다. 넓은 땅에 수많은 인종이 섞여 살고 있는 나라가 이제껏 큰 탈 없이 운영되어온 것은 소수의 엘리트가 좋은 시스템을 제어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설계회사의 그림보다는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고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고 배울 수 있었던 것이 내게는 더 큰 수확이었다. 조경이나 건축 설계 사무실들은 그 규모와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큰 규모의 사무실이 시스템 자체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면, 작은 규모의 사무실은 디자이너간에 상호능동적인 설계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의 질을 제어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점에 있다 하겠다.
본인이 일했던 차일드 어소시에이트(Child Associates, Inc.)는 수잔 차일드(Susan F. Child)가 1983년에 설립한 이래 이제까지 3∼6명의 디자이너들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스튜디오 형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작기 때문에 조직이 유연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대학원을 갓 졸업하여 실무 경험이 전무한 디자이너에게도 설계를 직접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프로젝트 매니저의 부재가 발생할 경우 아랫사람이 그 역할을 수행해야만 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물론 주어진 기회에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만큼 위기상황에 노출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나이와 경력보다 실질적인 수행능력에 초점을 맞춘 이러한 운영은, 개인에게는 기회를 극대화하여 몇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고 한편 회사에는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와 표현기술을 프로젝트에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본인이 석사학위 취득 후 2년 여의 짧은 기간동안 상대적으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작은 조직의 장점에서 온 것이었다. 물론 유색인종에 대한 저간의 차별은 존재하고 언어와 생활습관의 차이가 적응을 더디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장애는 스태프(staff)단계에서 프로젝트 매니저의 단계로 올라가게 되면 더 명확하게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외국경험의 걸림돌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건축 시공자와 법적 책임의 소재를 따져야 할 경우가 있었는데 상대방에서 나의 불완전한 언어능력 등을 슬며시 거론하며 책임을 돌리려 하는 일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 스스로 완벽히 증빙자료들을 모아두는 정도의 철저함을 가지고 있다면 프로젝트 진행에 있어서 오히려 유리한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는 동양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철저히 이용하는 동시에 때로는 그들보다 더한 개인주의적 생활방식을 익히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라 하겠다.

호적등본(originality)
젊은 시절의 외국경험은 이렇게 여러 가지로 값진 경험이다. 하지만, 외국 생활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보고 배운 것을 내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남의 것을 소화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그대로 내 상황에 끼워 넣으려고 할 때 갈등과 부적응이 생긴다. 외국에 처음 갔을 때 겪었던 문화충돌을 한국에 돌아왔을 때 또 한번 겪게 되는 것이다.
유학과 해외 취업 후 한국으로 돌아오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역시 전적으로 개인의 결정에 달린 일이다. 필자의 경우는 항상 한국을 머리 속에 두고 있었다. 편안한 미국생활에 물들어 주말만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나태한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한국은 그 존재만으로도 언제나 큰 자극이었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고비가 있을 때마다 나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은 든든한 배짱(?)을 가지게 해 주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세계화라는 말이 강박관념처럼 되뇌어 지는 요즘, 오히려 각 개인의 발생능은 더 중요시되고 있다. 작가의 고향이 곧 그의 문화적 역량으로 직결되며, 그의 작품은 그 문화와 연결, 접근되어 진다. 항상 묻기 마련이다, 호적등본 떼어오라고.

아틀린틱을 건너며(crossing over the Atlantic)
지금 우리는 물리적으로 몸이 어디에 살고 있는가가 무의미해진 듯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필자 역시 미국의 생활을 접고, 마치 서구문화의 호적등본을 때보는 심정으로, 유럽으로 날아가고 있다. 문화가 그 뿌리를 경작에 두었다지만, 유목을 위한 유목도 가능한 포스트(post)한 세상이다. 아무리 거대해 보이는 역동도 무게 중심이 있기 마련이고, 무게 중심은 모든 힘이 모이는, 열려있는 작은 점이다. 그들이 열어서 우리가 유목할 수 있었듯이, 우리도 열고 불려야 그 중심이 잡히지 않을까?


김 정 윤 Kim, Jung Yoon·Associate
Susan Child Associates,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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