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은 지구의 뼈와 같은 것이며, 많은 정원의 얼개와 같은 것이다. 돌은 산과 강, 그리고 다른 경관요소를 상징하고, 돌은 영적인 성질을 갖는 요소로서 작은 정원을 지구와 심지어는 우주로 연결하는 매체이다. 현대의 실용주의적 사고가 우리의 감성을 억누를지라도 스톤헨지의 영감을 버리지 않았으며, 강도, 단단함, 내구성과 같은 물리적 성질 이상의 영적인 힘과 경외감을 잃지 않고 있다." 이상은 정원가이며, 소설가인 미국의 도로디(Dorothy Sucher)가 쓴 "더 인비지블 가든(The Invisible Garden)"에서 돌에 대한 작가의 심상을 그려놓은 것을 옮겨 놓았다. 이러한 돌에 대한 이미지는 작가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으며, 그 대상도 흙, 물, 불, 쇠, 풀, 나무 등으로 확대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이 재료는 물리적 실체로서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고유한 심상을 갖게 하는 상징적 요소이며, 설계가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설계개념을 전달하기 위한 설계매체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조각분야에서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시도해온 재료의 물성을 이용한 의미전달이나 재료의 형상화를 통한 실험은 현대에 들어서 조경가에게 큰 과제가 되고 있다. 조경재료를 이해함에 있어 우리는 크게 2가지의 접근방법을 취하게 된다. 그것은 과학기술에 근거한 공학적 측면의 접근방법과 예술적 사고에 근거한 미학적 측면의 접근방법으로서 전자는 재료가 갖는 역학적, 물리적, 화학적 성질에 초점을 두지만 후자는 재료가 갖는 미적 성질에 관심을 두게 된다. 건축과 조각에서도 이러한 구분이 가능하지만, 건축에서는 재료의 실체인 디테일이 건물의 부분으로서 담당해야 할 기능이 명확하므로 미적 측면에서 재료의 물성을 이용하는데 제약을 받게 되며, 조각에서는 미적 감흥과 상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중요하므로 미적 측면에서의 재료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러한 잣대로 보면 조경에서는 건축분야와 같이 치밀하게 구속받지 않으며, 대상자체가 환경이라는 포괄성을 가지게 되므로 예술적 표현에 있어 자유스럽게 재료의 이용이 가능하지만, 최소한의 기능성이 요구되므로 조각보다는 다소 부자유스럽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절적인 시각은 건축, 조경, 조각의 장르가 허물어지고 있고, 동시에 이러한 장르를 뛰어넘어서 활동하는 설계가와 조각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부적절한 것일 수도 있으며, 한편으로는 재료의 공학적 측면의 접근을 세속적이고 저급한 것으로, 미학적 측면의 접근은 고상한 것으로 오해시킬 수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는 단지 재료의 물성을 미적 측면에서 보고자 하는 자세를 견지하고자 한다.
조경분야에서 물성이라는 말은 그동안 잘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낯설기도 하다. 물성(物性, materiality)은 물질의 고유한 특성으로서, 미적 측면에서 본다면 재료에 본성에 의해 표현되는 미적 특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 즉, 재료는 공간을 점유하고 감성(senses)이나 느낌(feeling)을 갖게 하는 물리적 실체(bodies)라는 것이다. 단순히 공학적 성질에 대한 관심으로는 미학적 측면에서 재료의 물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붉은 색의 녹슨 철판, 잘게 금이 간 색유리, 콘크리트 벽천을 흘러내리는 흰 포말, 동심원으로 파여진 붉은 흙, 검은색의 울퉁불퉁한 돌, 황갈색의 점토 블럭, 촘촘이 채워진 색자갈, 헤어라인 처리된 스테인리스 등은 재료의 물성이 잘 드러난 좋은 사례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돌과 철, 그리고 유리의 물성을 살펴보자. 돌은 자연에 풍부하고 자연의 주요한 구성요소로서 인간에게 친숙한 매체이다. 무거우나 외관이 장중하고, 다양한 색채와 질감의 연출이 가능하며, 내구성이 높아 조각, 건축분야의 주요한 재료로 이용되어왔다. 돌의 물성이 가져다 주는 안정성, 믿음성, 불멸성, 영속성, 생명성은 인류가 만든 스톤헨지, 잉카와 마야의 유적,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 많은 유적에서 볼 수 있으며, 지금도 예술적 목적으로 이러한 물성이 이용되고 있다. 또한 철은 구조적으로 매우 강한 재료로서 열을 가하면 부드러워 지므로 가공이 용이하며, 녹으면 틀에 부어 원하는 형상을 만들 수 있다. 모든 금속은 함유되는 물질에 따라 다른 색과 강도를 가지게 되는데, 외부공간에 노출된 청동은 부식되어 청록색의 아름다운 녹이 생긴다. 이와 같이 금속은 구조성과 강인함, 다양함과 천연스러운 자연성을 느끼게 해준다. 한편 유리는 천연재료로서 깨지기 쉬우나 평면이나 3차원의 형태 등 다양한 형태로 가공이 쉽다. 또한 색을 넣거나 표면마감을 다양하게 할 수 있으며, 빛에 대한 성질이 뛰어나 반사, 굴절, 투시의 효과를 얻을 수 있어 미적 활용을 위한 잠재력이 높은 재료이다. 이러한 물성은 사람들에게 투명성이 가져다 주는 진솔함, 깨진 유리의 날카로움에서 오는 긴장감, 쉽게 깨지는 연약함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이 각 재료가 갖는 고유한 물성은 조경, 건축, 조각이라는 행위를 통하여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이를 통하여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는 매체로 사용된다.
그러면, 조경재료의 물성이 갖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먼저, 미(beauty)는 다양하게 정의되므로 쉽게 표현하기 어려우나 즐거움을 전제로 한 지각으로 추함(ugliness)과 반대되는 것으로 조경재료의 미와 관련하여 3가지로 구분을 할 수 있다. 첫째는 재료의 색채, 질감, 규격 등을 통하여 개체적인 아름다움을 파악하게 되는 형식미, 둘째는, 재료의 물성인 녹슬음, 깨지기 쉬움, 형태의 다양성, 거칠음, 자연스러움이 가져다 주는 긴장감, 영속성, 생명감 등의 감성미, 마지막으로 재료의 물성을 통하여 설계개념이나 의도를 표현하는 상징미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미적 반응의 단계로 볼 수 있으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면에서는 개별적인 것으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물론 조경재료의 물성을 미학적 측면에서 볼 때, 모두가 미적 감상의 대상이 되며, 의도하는 바에 따라, 또는 보는 사람에 따라 재료의 물성은 다르게 인식될 것이다. 예를 들어 마야 린(Maya Lin)이 설계한 워싱턴 D.C.에 있는 베트남 메모리얼의 기념벽은 검은색의 광내기 마감된 돌 위에 시간에 따라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전사자의 명예를 위로하고 시간적 흐름을 나타내며, 지표면 아래로, 그리고 다시 지표면으로 나오는 듯한 기념벽은 전쟁의 어둠과 새로운 희망을 의미하는 상징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 또한 보스톤에 만들어진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는 5개의 정방형 유리타워가 강한 시각적 흥미를 유발하고, 유리 위에 적힌 번호는 무고하게 죽어간 많은 생명들의 죽음의 참혹함을 나타내고 있으며, 유리의 투명성과 빛의 효과를 이용하여 생명성과 깨끗함을 표현하였다. 이와 같이 조경재료의 물성에서 미는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이 가능하며, 형식미와 감성미는 미적 감각에서 직접적인 느낌과 감정을 가져다 주는 반면, 상징미는 설계개념을 은유적으로 구현하고 설계가의 철학 및 기호를 잘 나타낸다고 보겠다.
미학적 측면에서 조경재료의 물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조경가들은 조경재료에 대한 의식의 환기가 필요하다. 첫째, "살아있는 재료(living materials)"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재료는 변화하는 성질과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예를 들어, 흰색의 화강석 기념벽에 빗물이 흘러 검게 보임으로서 기념성을 더욱 강하게 전달할 수 있으며, 일본식 정원에 깔려 있는 콩자갈을 쇠스랑으로 긁어 독특한 질감을 연출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실용성과 경제성이라는 가치에만 집착하여 고정된 시각으로 재료의 제한된 측면을 이용하였으나 변화하는 재료의 다양한 물성을 이용함으로서 자유스러운 미적 표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둘째로 재료와 환경과의 관계에 대하여 상세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조경재료는 자체적인 물성을 가지고 있지만 지리적 동일한 지역의 자연 및 인문환경과의 관계, 즉 지역성(regionality), 작게는 장소적 의미를 반영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재료의 물성을 이용함에 있어 더욱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미학적 접근방법으로 현대의 조경작품에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네바다에 있는 붉은 색 사암(red rock)은 표면이 연질이므로 고대로부터 나바호 인디언(Navajo Indian)들은 여기에 암각화를 그렸었는데, 인디언의 문명이 남겨져 있는 이곳에 동일한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여 이곳의 장소적 의미를 구현하였다. 이 밖에도 오레곤 포틀랜드에 있는 산림박물관 앞에는 이곳의 유명한 규화석(Petrified stone)을 나타내기 위하여 돌로 나무의 나이테와 단면을 묘사하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셋째, 재료의 물성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감각적으로 지각되는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역으로 말하면, 재료의 물성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킬 것인가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조경재료의 물성은 지나치게 시각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재료의 물성은 사람이 갖는 미적 감흥인 만지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는 성질을 되찾음으로서 물성의 다양한 감각적 성질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상 석 Lee, Sang Suk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