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 풍수와의 인연
축축한 습기가 묻어져오는 1996년의 여름, 홍강 - 중국에서 발원하여 하노이시를 가로지르는 대단히 규모가 큰 강이다. 서울의 한강과 같은 모습으로 강폭이 2-3km에 이른다. 침식된 토사의 영향으로 항상 붉은 물이 흘러 홍강(Red River)이라고 부른다 - 의 둑 위에서 끝없이 펼쳐질 미래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밭과 습지, 벼를 재배하는 논들이 신도시로 적합한가에 대한 의문은 계속 되었다. 2,500만평 규모의 하노이 신도시 계획에는 한국의 대우를 포함하여 세계 최고의 설계회사들이 참여하였다. 미국의 Bechtel사와 SOM사, 일본의 Nikken Sekkei사, 네델란드의 OMA사 등으로 그 이름만 들어도 명성이 자자한 곳들이다. 이곳이 신도시의 적지임을 베트남의 최고위층에 설명하기 위한 자료를 준비하였다. 공항과 항구 그리고 도시가 Golden Triangle를 형성하는 곳, 기존도시와 접근성이 좋은 곳, 장애물이 비교적 적고 넓은 부지의 확보가 가능한 곳 등이 적지임을 설득하는 모든 것이었다. 후덥지근한 날씨만큼이나 지루한 설득과정이 이어져갔다. 홍수의 위험은 없는지? 다른 지역보다 좋은 이유는 무엇인지? 군사적 방어에 적합한 지역인지? 끝없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기가 어려웠다. 여기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였다. 수천 년을 이어오는 동양의 도시입지는 어떻게 선정되었던가? 동양의 입지선정이론으로서 풍수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었다. 세계적인 설계회사들의 현대적 접근으로는 만족할만한 답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풍수연구의 의미
주거환경은 인간의 외부환경으로서 도시환경의 일부를 구성하며 인간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인간과 인간의 상호관계를 지속시켜 주는 여러 가지 물리적 조건을 뜻한다. 주거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자연적 요소와 인위적 요소로 구분 할 수 있다. 특히 주거환경의 자연적 요소인 지형지세, 향과 일조, 미기후 등에 많은 영향을 주는 입지선정과 공간구성에 대해 그 동안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으나 한국의 전통사상 중 풍수가 주거의 입지(이하 "주거입지"라 함) 및 건축의 외부공간 배치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심층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주거입지와 관련된 풍수의 연구는 단편적이고 편향된 풍수의 이론을 적용하여 연구되고 있거나 지형의 물리적 형태분석에 그치고 있어 한국의 주거입지가 갖는 풍수적 특성을 바르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원인 중의 하나는 주택의 입지선정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며 다른 이유로는 풍수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입지에 대한 해석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전통가옥의 안채공간은 대문과 안방, 대문과 부엌의 배치가 주역의 팔괘를 기준으로한 동서사택론에 부합하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월성 손동만 가옥)
조선시대의 주거건축
조선시대는 절대왕권을 전제로 한 전제군주국가였던 만큼 이에 부응하는 엄격한 신분제도가 확립되어 사회적 지위는 물론 주택에 있어서도 신분제의 제약을 받게 되었다. 조선은 개국과 더불어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땅이 한정되어 정 일품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계급에 따라 나누어 줄 집터[家垈]와 간수(間數), 장식을 제한하였다. 조선시대는 태조이래 유교를 정교의 최고원리로 숭봉한 결과 국민정신의 이상이 되고 조상숭배가 민간정신의 핵심이 되었다. 사회의 기본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으로 그것도 가부장적인 가족으로 대가족제를 이루는 것이었다. 가부장적인 대가족제도는 하나의 주택 속에서 여러 대(代)가 모여 살게 되었고 특히 대가에서는 3대, 혹은 4대에 이르는 여러 식구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따라서 주택건축은 큰사랑, 작은사랑, 안채, 아랫채, 별당 등 여러 채[棟]의 건물들이 지어져 하나의 커다란 주택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숭유억불정책은 남존여비사상과 엄격한 남녀구별의식을 가져와 내외법(內外法)에 의한 공간분화가 이루어졌다. 즉, 안채와 사랑채의 구별, 안방과 사랑방의 구별, 내측(內 )과 외측(外厠)의 구별 등 같은 주택 안에서도 남녀의 공간을 따로 마련하였다.
한양으로의 천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풍수사상은 주택건축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어 동족촌의 입지선정, 집터의 선정과 배치, 좌향(坐向)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본래 주거건축에 있어서 풍수의 적용은 택지의 선정에 한정된 것이었다. 땅의 길흉이 사람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는 풍수의 관점과 방법으로 볼 때 건물 자체보다는 건물이 들어설 자리를 판단하는 일이 본래의 기능이었다. 조선의 신증동국여지승람 산천조(山川條)에는 진산(鎭山)風水的 觀點에서 마을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산으로 마을 뒤편에 위치을 명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마을의 입지 또한 사신도(四神圖)의 기본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읍지에 수록된 강계, 산천, 형승조 등의 항목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물리적 형상물을 서로 통합하고 유기체적인 관계를 이룬다는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는데, 이러한 환경인식은 홍만선의 산림경제나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서도 찾을 수 있다. 풍수사상에 입각한 마을의 포치모습은 소위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으로 산을 등지고 남향으로 앉아서 앞에 경작지와 명당수(明堂水)로서의 생활하천을 마주하는 형태이다. 이에 더하여 장풍득수형(藏風得水形)이 우수한 지형으로 선호되었는데 뒷산과 이어져 마을 주위를 좌우로 감싸고 맞은쪽의 경작지와 물을 건너 마주 보이는 산이 있는[北玄武, 南朱雀, 左靑龍, 右白虎]지형을 말한다. 한편, 주거건축물의 배치와 관련해서는 양택삼요론(陽宅三要論)에 따르고 있다. 삼요(三要)란 출입이 이루어지는 대문[門]과 주인이 거처하는 주실[主], 그리고 먹을 것이 만들어지는 부엌[ ]을 말하며, 이 세 가지를 주택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이 세가지 요소의 좌향과 배치관계를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주역(周易)의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권영휴 Kwon Young Hyoo
조경학박사, 조경기술사, 문화재기술자, (주)대우건설 부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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