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후 급속한 개발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내 대부분의 공간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그리고 보도블럭으로 뒤덮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공원의 산책로, 궁궐, 전통정원 같은 자연적인 질감을 살려야 하는 공간에는 이러한 인공적인 포장들이 어울리지 않았고, 사람들도 점차 흙에 대한 향수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자연의 흙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아스팔트나 콘크리트가 지닌 강도에 버금가는 새로운 포장재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중 하나가 바로 KAP(Korean Anti Pollution Method) 공법에 의한 카프포장이다. 카프(KAP) 공법은 종래의 아스팔트 및 콘크리트 포장에 필요한 모래, 골재 등을 쓰지 않고 카프 토양경화제를 써서 시멘트와 현장의 토양, 또는 그와 대치되는 물건과 혼합함으로써 토립자 상호의 응결을 높이고, 이것을 다지고 굳혀서 내구성이 풍부한 영구노반(永久路盤) 및 표층(表層)을 만들어 내는 기술.
▲ 희원
이 공법은 주백건설(주)(대표 노재철, 구 태정산업(주))이 지난 1977년 일본과의 기술제휴를 통해 도입한 것으로, 흙의 단위중량당 시멘트를 10%, 시멘트의 경화보조제인 카프를 10% 정도 첨가하여 혼합고화처리하는 것이다. 주백건설(주)은 지난 20여년동안 꾸준히 이 공법을 연구해왔고, 개발을 거듭하면서 국내에 맞도록 접목시켰다.
이미 여러 공원이나 박물관, 국립공원, 궁원 등 자연스러운 느낌을 필요로 하는 공간에서 카프포장을 확인할 수 있는데,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인지도가 높지 않았지만 설악산 개발 때 주변의 포장을 도맡아 하면서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해왔다. 현재까지 올림픽 공원, 탑골공원, 관악산 등산로, 희원 등의 포장을 실시했고, 연매출 20억원 정도를 올리고 있어, 자연적인 느낌을 주는 토포장분야에서는 선두임을 자처하고 있을 정도.
▲ 북악 스카이웨이 팔각정
환경친화적 포장재
일반적으로 포장은 기능적인 면과 미적인 면에만 치중되어 선택되어져 왔다. 즉, 각 공간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충족시키고 보행자가 걷거나, 차량을 이동시키기에 적당한 강도를 갖고 있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면서 빗물을 머금지 못하는 이러한 포장재의 문제점이 대두되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카프포장은 다른 포장재와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즉, 색깔만 흙과 같은 포장이 아니라 자연의 흙이 가지는 특성 중 하나인 수분을 함유할 수 있는 성질이 있는 것. 보수성을 갖고 있어 물을 그냥 흘러보내는 것이 아니라 비가 올때는 머금고 있다가 건조기에 토양으로 수분을 되돌려 줄 수 있다. 또한 시멘트가 발생시킬 수 있는 화학적 오염물질을 그대로 토양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카프가 이를 일정정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오염물질을 줄이는 것도 환경에 일조하는 또다른 특징.
더불어서 콘크리트 포장에 버금가는 강도를 갖고 있으며, 균열이 적고 노면상에 요철이 생기지 않는 등의 장점도 갖고 있다.
▲ 연석 없이 카프포장이 산책로에 시공된 사례
전통 공간, 자연 공간에 어울리는 포장재
단단한 강도를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멀리서 바라보면 표면의 미세한 질감으로 인해 흙이 흩날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 ㄸ문에 공원이나 전통 공간에 카프포장을 설치하면 효과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리고 좌우로 수목이 심겨진 산책로의 경우 지피식물과 함께 설치하면 경계부에 연석을 설치할 필요가 없고, 이로인해 더욱 자연스러워 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최근 복원·보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고궁을 복원하거나 보수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럴 경우 카프 포장이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아스콘에 비해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경제적인 공법이라는 것이 주백건설(주) 측의 설명이다.
▲ 어린이 놀이터 진입부의 카프포장
미니 인터뷰
"환경친화적인 포장재 연구에 전력할 터"
노 재 철·주백건설(주) 대표이사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포장재를 통해 가장 한국적인 조경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노재철 사장(66세). 그는 1970년대 일본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연약지반을 처리하는 기술이 우리나라보다 휠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본 결과 흙과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강도가 높은 포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필요성을 절감, 국내에 기술을 도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염이 없는 포장재라는 뜻으로 카프(KAP)공법으로 이름을 정하고 지난 1977년 업체를 창립한 그는 이러한 환경친화적인 포장재가 더욱 많은 곳에 사용되리라는 신념으로 오로지 한 분야에만 매진해왔다. 그 결과 주백건설(주)는 현재 진천에 위치한 공장의 직원을 포함, 총 15명의 직원에 연매출 20여억원을 올리는 견실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수많은 경쟁업체가 생겨났다가 사라졌지만, 현재까지 꾸준히 제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한우물을 파는 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한국의 전통공간은 일본이나 중국의 그것과는 분명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조경을 배우는 여러 학생들이 전통적이고 자연스러운 공간에 대한 연구를 보다 심도있게 이루어, 가장 한국적인 조경공간을 알려내고, 또 새로이 창조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문화재 공간을 복원하는 경우에도 철저한 고증을 거쳐 제대로된 공간을 살려내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떤 조경공간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또 그에 어울리는 포장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우리나라 조경분야에서 토양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앞으로는 카프를 비롯, 토양 및 포장에 대한 연구를 모아 발표하는 기회도 가질 계획.
자연과 어울리는 환경친화적인 포장재를 연구·개발하는데 꾸준히 매진하겠다는 것이 그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다.
조 수 연 Cho, Soo Yeon·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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