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학회장을 하면서 사람들한테 상을 줄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그땐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상을 줄만한 자격이 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젠 상을 받는다고 하니까 조금 쑥스럽고 창피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김학범 교수는 올해 상복이 많다. 지난 10월 한국조경학회에서 선정한 <제6회 자랑스런 조경인상>을 수상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본지의 <제12회 올해의 조경인> 학술분야 수상자에도 선정이 되면서 조경분야에서 최고로 권위있는 상을 한꺼번에 거머쥐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남들의 부러운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소감은 매우 소박했는데, 수상 소식을 처음 접한 그의 첫마디는“왠지 쑥스럽다”는 말이었다.
선정 과정에서 많은 업적이 거론되었지만, 자연문화재분야의 학술적인 성과가 가장인정을 받았다. 그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약 6년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전문위원 활동을 하고, 2003년부터 지금까지 그 상급위원인 문화재위원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 그가 문화재청에서 활동을 하게 된 것은 1994년 발간된『마을숲-韓國傳統部落의 堂숲과 水口막이』라는 책자가 계기가 되었다. 문화재를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으로 나누어 보았을 때, 당시 자연유산 부문은 주로 노거수라든가 새와 같은 동·식물 대상의 천연기념물 위주로만 지정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물론 마을숲도 겉으로 보기에는 나무로 이루어진 숲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역사적 문화적인 가치가 깊이 깃들어 있는 자연유산으로서, 당시 문화재청에서도 그런 소중한 유산을 발굴하여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공감을 하고는 있었는데, 이와 관련된 연구가 전무한 상황이어서 손도 대지도 못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 마침 발간되었던 책자와 논문들을 보고 그를 전문위원으로 위촉하게 되었고, 마을숲을 통해 문화재청이 조경분야의 역할에 대해 눈을 뜨게 된것이다.
문화재분야에 조경의 지평을 넓히다
문화재위원으로서 많은 일을 해 왔지만, 특히 주목할 만한 분야는 “명승”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에 처음으로 명승이 지정된 이래 2003년까지 단 7건 밖에는 명승이 지정되지 않았다. 북한은 320건, 일본은 355건이 지정된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명승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뒤쳐져 있는지를 쉽게 실감할 수 있다.
김학범 교수는 그간 명승을 발굴하고 지정하는데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2003년부터 지금까지 6년 동안 50개의 명승이 추가 되면서 현재 국내에는 57개의 명승이 지정되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명승에 대한 개념 자체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한 전통조경학자들과의 작업이었는데, 특히 고정원에 대한 연구는 문화재분야에서 조경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함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실제 일본의 경우 350개의 명승 중 200개 가까이가 고정원이다.
“명승은 전공분야로 보면 당연히 조경이 제일 가까운 분야입니다. 내용으로 보면 고정원이나 공원들이 포함되고요. 우리나라에도 파고다공원이나 인천자유공원처럼 조성된지 100년이 넘는 공원들이 생겼는데, 공원도 오래된 것은 명승으로 지정되어야 합니다.”
산관학 협력, 환경조경발전재단 조직적 기반 마련
그는 서울시립대학교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을 나와 한국종합조경(주)과 효자종합건설(주)에서 약 10여년간 실무에 종사하기도 했다. 1991년부터 연암축산원예대학 조교수로 근무하다가, 1995년에 한경대학교에 조경학과가 설립되면서 자리를 옮겼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사)한국조경학회 학회장과 (재)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조경분야 산·관·학의 협력과 발전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특히, 조경분야의 대표 6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환경조경발전재단을 중심으로 그 위상에 맞는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면서 조직적 기반을 닦는데 공을 들였다. 재단 설립 이후 처음으로 사무국을 개설하였으며, 평소 소신이었던 조경법 제정을 위해서 조경법·제도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산하에 조경법추진소위원회, 조경직제홍보소위원회, 건설산업법개선소위원회를 두어 각각의 사업들을 진행하였다. 조경법추진소위원회는 한국조경백서인『한국조경의 도입과 발전 그리고 비전(2008 문화관광부 우수도서 선정)』을 제작하고, 국토환경보전·도시개발과 조경정책 등을 주제로 5차례 전략세미나를 개최하였으며, 조경직제홍보소위원회에서는 조경직제에 대한 다양한 홍보를 진행하여 실제 지방직을 중심으로 조경직제가 확대되는 성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건설산업법개선소위원회에서는 건산법 시행령 개정과 관련하여 조경공사업과 전문건설업이 최초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그 내용을 국토해양부에 전달하여 많은 부분이 시행령 개정(안)에 반영되도록 하였다.
특히 임기 내에 조경기본법 시안을 마련한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성과이다, “조경을 지켜줄 조경기본법이 없어서 다른 분야의 법이 생길 때 마다 조경의 업역이 타격을 받는 양상”이라며, 일찍이 업계에 있을 때부터 “조경법의필요성에 대해 절감” 해왔기 때문에 취임하면서부터 줄곧 관심을 가진 문제였다.
조경, 희망과 도전으로 빛나라
그는 조경학과가 생기기 이전 세대였지만, “만약 나중에라도 조경학과가 생기지 않았다면 지금쯤 은행원이나 공무원 등 다른 일을 했을 것”이라며, 학부시절부터 전공보다는 조경설계에 대한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단다. 그래서, 당시 조경학과 강의를 일부러 찾아 듣기도 했고, 학생 신분에도 선배가 운영하던 조경설계사무실에 나가 일을 돕기도 했다. 처음엔 그렇게 설계가의 꿈을 키우며 조경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한국종합조경 재직시절, 한국의 유명한 고정원 100개를 선정해서 서울올림픽 때 사용할 홍보 책자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는데, 이를 위해 전국에 있는 고정원을 찾아다니다 보니, 자연문화재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생겼고, 지금은 이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다.
“지금 하고 있는 소임을 다 하겠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열심히 해서 조경분야의 저변을 넓히는데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학범 교수는 현재의 우리들에 대해 희망적으로 전망한다. 또한 우리 모두가 각자의 소임을 다할 때 더욱 빛나는 희망이 피어날 것을 믿고 있다. 그의 긍정적인 힘 못지않게 올해의 조경인상도 또 하나의 빛나는 인연을 맺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