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도(古都)의 옛 성이나 왕릉주변에는 지형적 문화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단지 즉흥적 편의주의에 따라 생겨난 국적 없는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이러한 반문화적·반역사적 상황은 백제웅진시기(475~538)의 도성이었던 공산성 주변에서도 예외 없이 펼쳐지고 있다. 공산성은 비록 64년이라는 짧은 기간의 도성이었지만,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개로왕이 전사한 후 남쪽으로 천도하여 비로소 안정을 되찾고 사비시기를 열기 위해 백제 왕실이 힘을 키웠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공산성의 역사성이 무질서한 주변 환경 때문에 크게 훼손되고 있다. 현재 성의 북문지를 복원해 놓았으나, 선진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경이 성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산성에 인접해 있는 무질서한 상점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불쾌감마저 들게 한다. 외지에서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런 거리 풍경에 누구나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즈막한 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공주만의 포근한 주변 환경과 오래된 고도로서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걸맞지 않는 거대한 석조물도 최근 축조되고 있다. 조형물 자체의 예술성을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이 거대한 (물론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조형물은 도시 전체의 조화를 단번에 깨뜨린다. 갑자기 시야가 답답해 지고 가슴이 막혀온다. 공주의 역사와 자연 환경을 염두에 두고 제작이 이루어진 것인지 의심스럽다.
오늘날 지역개발사업체는 흔히‘문화재 보존’이나‘환경 보호’등을 일종의 장애물로 간주하는 경향이 짙다. 문화재 보존이나 환경 보호는 사유재산권 행사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건축이나 지역 편의주의적인 개발과 서로 대립관계에 놓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기관 내의 건축부서와 문화재부서의 정책이 간혹 상충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경우 한결같이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문화유산을 다양한 관광자원으로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의 예를 보면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할지 그 방향이 감지된다. 그들이 여러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해결책을 참고하는 것이 우리에겐 보다 지혜로운 선택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여러 전문가를 참여시켜 전통과 현대의 기능이 조화된 바람직한 도시설계와 정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민간인들은 사유재산만 고집하기 보다는 무엇보다 도시 속에서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겸허함을 마음깊이 새겨야 한다. 사람들간의 조화 못지않게 건물간의 조화와 아름다움 역시 후손들에게 남겨주어야 할 소중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 키워드 : 공산성 북문지, 공주, 백제
※ 페이지 : p132~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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