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관아
창덕궁(주합루, 부용정 연못 부근)
창덕궁에 후원이 조성된 시기는 태종 때 이궁(離宮)으로 창덕궁이 창건된 때와 거의 비슷하다. 이후로 창덕궁 후원은 점차 넓혀지고 원내에 여러 건물이 들어섰는데 특히 세조 때 왕이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하면서부터 크게 궁장(宮墻)을 넓히고 새로운 연못을 만들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후원은 황폐해졌고 광해조에 들어와 다시 옛모습을 찾게 되었는데 인조 때 옥류천을 새로이 파고 주변에 정자를 만들게 되어 조선왕조의 가장 규모가 크고 풍치 좋은 궁원이 된 것이다. 창덕궁 후원은 옛 기록에 후원 외에 북원(北苑, 北園), 금원(禁苑), 일제 때에는 비원이라고 불려졌으나 조선왕조실록에 가장 보편적으로 불리어진 명칭은 후원(後苑)이었다. 창덕궁에 후원을 건립하게 된 최초의 기록은 태종실록 권11 태종6년 4월 기사조(己巳條)이며 여기에‘창덕궁 동북우(東北隅)에 해 온정(解亭)을 지었다’라고 적혀 있다. 이때는 창덕궁이 창건되고 약 반년이 지난 때인데 창덕궁의 동북우는 바로 지금의 후원의 위치가 된다. 태종실록에 의하면 이 정자에는 전지(前池)가 있어서 이곳에서 연회, 관등(觀燈) 등의 유연(遊宴)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세조 때 왕이 창덕궁으로 이어하고 나자 후원엔 연못이 새로 만들어지고 주위에 정자가 세워지게 되었다. 우선 세조 5년 9월에는 ‘후원에 어(御)하여 좌우로 나누어서 착지(鑿池)하였다’고 하였고 7년 11월에는‘열무정(閱武亭)에 어(御)하였다’고 하여 새로이 연못을 파고 정자가 세워졌음을 알려준다.
열무정 외에도 세조조에는 신아정(新芽亭)이란 정자가 있었고 세조 14년 8월에는 무일전(無逸殿)이란 건물이 지어졌다
※ 키워드:창덕궁, 부용정, 규장각
※ 페이지: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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